저는 1936년 전북 전주시 우아동에서 태어났습니다. 어릴 때부터 장로교회에 나가다가 미국 남장로교 선교부에서 일했습니다. 거기에서 출판에 관계되는 일을 보면서 여러 부흥집회에 다녀 봤습니다. 그러나 신앙에 대한 굳은 확신이 서지 않아 늘 답답한 마음이 가시질 않았습니다.
1956년 당시 교계에서는 불의 사자 박태선 장로님의 집회를 통해 성령의 역사가 불같이 일어난다는 소문이 파다했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저는 귀가 번쩍 뜨이면서, 장로님을 직접 만나 뵈어야겠다는 마음을 먹게 되었으며 서둘러 서울로 가기로 작정하였습니다. 서울에 올라와 수소문 끝에 장로님께서는 충무로에서 공장을 하신다는 말을 듣고 그곳에 갔습니다. 그러나 그곳에는 계시지 않고 원효로 3가에 가보게 되면 자택이 있고 그 옆에 큰 집회 장소가 있다고 하였습니다. 저는 그길로 원효로에 가서 헤매다가 장로님 댁을 찾았습니다. 일러 준 대로 집 옆에는 바닥이 마루로 된 큼직한 제단이 있었습니다. 그곳이 바로 원효로구제단 이었습니다.
거기에서 안내원의 안내를 받아 2층으로 올라가 하나님을 처음 뵙고 인사를 드렸습니다. 그랬더니 안찰부터 받으라 하여 누웠습니다. 하나님의 손이 눈으로부터 시작하여 배로 내려오는 순간 배 속이 그렇게 시원할 수가 없었습니다. 마치 시원한 물이 배 속에서 계속 흐르는 것 같았습니다. 이러한 희한한 체험은 난생 처음이었습니다. 게다가 마음은 한없이 편안해졌으며 기쁨을 물밀 듯 넘쳤습니다. 저는 그 자리에서 ‘성령의 역사가 바로 여기에 있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고, 이곳을 떠나면 안 되겠다고 생각되어 전주로 내려가는 것을 완전히 포기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때부터 저는 계속 서울에 있으면서 구제단 예배에는 한 번도 빠지지 않고 나가 은혜를 받았습니다.
당시 구제단 예배 시간에는 사람들이 어찌나 많이 몰려왔던지 제단 안에는 더 이상 앉을 자리가 없어서 밖에서 예배드리는 분들이 엄청나게 많았습니다. 그해 용산구 청암동, 한강이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에 새로 이만제단을 짓게 되었습니다. 저는 그 건설 현장에서 몸 바쳐 일하기로 하고 생수빵(생명물로 만든 빵)을 공급하는 일도 하였습니다. 그때는 아무리 힘든 일을 해도 힘드는 줄 몰랐으며 입에서는 하루 종일 찬송이 그치질 않았습니다. 자고 일어나면 새 힘이 솟고 또 솟았습니다.
이만제단이 완공되는 시점에 저는 주일학교 반사와 특별전도대원으로 있으면서 전도에 힘을 쏟았습니다. 때로는 하나님을 따라 ‘무더기 심방’ (하나님께서 서울 시내 구역별로 각 가정을 심방하실 때 사람들이 수백 명씩 무더기로 따른다 하여 붙여진 별칭, 영적 수도 공사라고도 하셨음.)‘도 하고 북을 치며 노방 전도도 하였습니다. 당시 이만제단에서는 어찌나 많은 사람이 모였던지 일요일 대예배 때에는 말 그대로 인산인해를 이뤘습니다. ’원효로전도관‘ 하면 서울에 사는 사람치고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습니다. 지붕에는 ’서울중앙전도관‘이라는 대형 네온사인이 밤새 번쩍였으며, 한국에서는 처음으로 대형 음악종이 확성기를 타고 울려 퍼졌습니다. 새벽이면 강건너 영등포 구로동까지, 강북에서는 북악산까지 들리는 정도였습니다. 그 아름다운 음악 소리는 수많은 사람들의 가슴을 파고들어 감동을 주었는데, 심지어 한강에 자살하러 나왔던 사람이 그 종소리를 듣고 마음을 돌이킨 일이 일어나기도 하였습니다.
1957년 11월 3일, 저는 하나님의 특명으로 경북 경산에 개척 전도사로 발령받았습니다. 당시 개척 전도사라고 하면 식구 한 사람도 없는 곳에 발령받기가 일쑤였습니다. 의지할 곳도 기댈 데도 없는 가운데서 오직 하나님만 믿고 움직이다 보면 신기한 기적이 일어나 식구들이 모여들기 시작하면서 제단이 서곤 하였습니다. 경산 역시 제단 건물이 없고 임시로 천막에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 제단에 하나님께서 한 달에 한 번씩 오셔서 집회를 인도하셨습니다. 이 것은 그 때 저에게는 다른 개척 전도사들이 부러워할 정도의 행운이었습니다.
그때 집회에 참석했던 사람 중에는 난치병인 나병(문둥병)으로 고생하던 과수원 집 남매가 있었습니다. 이들은 천막 제단에 나와 은혜를 받고 부산 대신동 집회, 밀양제단 집회등을 따라다나며 하나님께 안수와 안찰을 받았습니다. 드디어 이 남매의 나병이 완전히 나아 새사람이 되었습니다. 이 신기한 기적을 본 마을 사람들은 놀라워하며 제단으로 몰려와 어떻게 된 일이냐고 자초지종을 묻기도 했습니다. 이 일로 많은 사람들이 이 제단에 나오게 되었습니다.
또 이런 일도 있었습니다. 경산 장로교회 김무생 목사와 그의 딸 김신희(초등학교 교사), 그리고 그녀의 친구 이은경 선생은 제단에 열심히 나오는 식구였습니다. 김 목사의 딸과 이은경 선생은 당시 폐결핵 3기였는데, 그들은 하나님의 순회 집회 때 안찰을 받고 씻은 듯이 나아 온 동네가 다시 한 번 들끓었습니다. 이런 기적이 잇따르자 70평 되는 천막 제단이 좁을 정도로 식구가 불어났습니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경산에도 세 제단이 번듯하게 지어졌습니다.
이것은 부족한 저의 교역 생활에서 제단 하나가 지어지던 과정을 요약한 것입니다. 당시 이런 기적들이 전국 방방곡곡에서 일어나 하나님을 따르는 수가 백만도 넘었습니다. 생명물을 한 모금이라도 마시고 안수 한 번이라도 받은 사람들까지 치면 그보다 훨씬 많은 수가 하나님의 은혜를 받았습니다. (2편에 계속 됩니다)
<141회 1997. 8. 17 /24. 게재>
첫댓글 좋은 글 감사합니다 ~
잘보고가요
잘 봤습니다 감사합니다
병이 낫는 기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전도됐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