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비 유물론인 ‘경험비판론’을 공격하다
레닌은 철저한 유물론 신봉자, 보다 정확하게 말하면 변증법적 유물론의 신봉자였으며 그의 사상적 적은 관념론이었다. 레닌이 생각하기에 관념론은 물질세계를 의식의 한 형태로 간주하며 의식이야말로 세계를 변형시키는 힘이라고 보는 이론이었다. 이러한 관념론적 세계관은 현실이 아닌 복잡하고도 고차원적인 인간의 정신적 힘을 최고의 덕목으로 삼으며, 일반인들은 그러한 관념으로부터 철저하게 배제된다. 관념론은 지배계급의 이익과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있는 것이다. 레닌이 관념론을 배격하고자 하는 것은 그것에 전제된 계급적 이해관계 때문이기도 하거니와 유물론적 세계관은 관념론과 달리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세계에 대한 명쾌한 이해 방식이기 때문이다.
레닌이 자신의 유물론 철학을 설파하고자 한 대표적인 저서는 《유물론과 경험비판론》(Materializm i empiriokrititsizm, 1909)이다. 레닌은 자신의 유물론 교리를 설명하기 위해서 유물론과 대비되는 ‘경험비판론’이라는 이론을 비판한다. 흥미로운 사실은 이 경험비판론이 대표적인 관념론이라기보다는 스스로 유물론 혹은 경험론을 자처하는 철학이라는 점이다. 더군다나 경험비판론은 오스트리아의 사회주의적 성향을 지닌 과학자이자 철학자 에른스트 마흐(Ernst Mach, 1838~1916)에 의해서 창시된 것으로서 당시 레닌이 소속되었던 러시아 사회민주당의 많은 사람들이 신봉하던 이론이었다.
레닌이 마흐의 경험비판론을 공격한 것은 사회주의 혁명을 신봉하던 러시아 사회민주노동당의 다수파, 즉 멘셰비키가 신봉하던 철학이기 때문이었다. 소수파 볼셰비키를 대표하는 레닌이 보기에 멘셰비키가 추종하는 경험비판론은 결코 유물론의 형태가 아니며 관념론의 변형에 지나지 않는 것이었다. 따라서 그는 경험비판론이 유물론의 교의와는 전적으로 다른, 아니 정반대인 관념론의 성격을 지닌다는 사실을 명확하게 밝히는 것을 자신의 책의 목표로 삼았다. 레닌의 말에 따르자면 그가 《유몰론과 경험비판론》을 쓴 동기는 ‘마르크스주의 옹호’라는 허위적인 슬로건으로 마르크스주의를 왜곡하여 관념론으로 둔갑시킨 마흐주의의 오류를 폭로하는 것이었다.
레닌에 따르면 경험비판론이 유물론을 빙자하고 있으나 관념론의 특성을 지니는 것은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이다. 유물론의 가장 기본적인 교의는 물질과 의식의 관계에서 물질이 우리의 의식과 관계없이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우리가 눈을 뜨고 있건 감고 있건 태양은 그대로 존재하며 동쪽에서 떠서 서쪽으로 진다. 물은 위에서 아래로 흐르고 사과는 그 물질적 특성 때문에 빛에 반사되면 대표적으로 붉은색 파장을 띠어 우리에게 붉은색으로 지각된다. 이 모든 것은 우리가 물질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른 것이 아니라 물질 그 자체의 특성들이다. 유물론은 물질과 의식의 관계에서 물질에 우선성을 부여한다.
이에 반해서 마흐의 경험비판론은 매우 교묘한 방식으로 유물론의 교의를 관념론으로 바꾸어놓는다. 경험비판론에서 핵심은 경험이다. 이때 경험은 물질세계에 대한 우리의 경험을 뜻한다. 그런데 우리가 경험하는 물질세계는 오로지 감각을 통해서만 알려진다. 가령 사과는 우리가 만져봤을 때 일정한 공간을 점하고 있으며, 빨간색을 띠고, 시고 단맛이 난다. 사과에 대한 이 모든 정보는 우리의 감각을 통해 알 수 있다. 따라서 마흐는 존재란 감각이라고 주장한다.
그런데 마흐에 따르면 이때 감각은 단지 우리의 주관적인 의식 활동에 국한되지 않는다. 감각 자체가 물질을 이루는 요소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빨간색, 신맛, 구형 등의 요소는 사과라는 물질의 특성이자 동시에 우리의 감각에 의해서 지각되는 이중적인 특성을 지니는 것이다. 한마디로 마흐가 말하는 이러한 감각적 요소는 물질이자 동시에 의식이다.
레닌이 보기에 이러한 마흐의 주장은 하나의 궤변이자 궁극적으로 관념론의 변형에 지나지 않았다. 그것은 우리 인간과 상관없이 자연과 물질 자체가 독립적으로 가지고 있는 합법칙적 특성을 부정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감각이란 인간의 의식 활동에 지나지 않지만 마흐는 감각을 의식과 물질이라는 두 항 모두를 포괄하는 것으로 설명한다. 결국 마흐의 감각이론, 즉 경험비판론은 물질세계의 독자성을 거부하는 것이다. 이는 유물론의 교의와 양립할 수 없는 관념론의 한 양태에 불과하다.
[네이버 지식백과] 사이비 유물론인 ‘경험비판론’을 공격하다 (보고 듣고 만지는 현대사상, 2015. 08. 25., 박영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