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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 그 참을 수 없는 가벼움>(이하 <연애참>) 에서 장진영은 남루한 삶을 사는 연아를 연기한다. 영화
속에서 연아는 영운(김승우)이란 평범한 청년을 만나 연애를 시작한다. 정인지 사랑인지 명확히 알 순
없지만, 어느새 영운은 연아의 인생에 결코 끊을 수 없는 사슬 같은 존재가 된다. 그리고 지독한 사랑 혹
은 집착이 시작된다. 영운은 다른 여자와 결혼하지만, 연어는 그를 잊지도 떠나보내지도 못한다. 위험하
고 전쟁같은 연애가 연아의 일상을 뒤흔들고, 그녀는 씻기 힘든 가름의 상처를 얻는다. 이 험난한 사랑
을 온몸으로 그려낸 장진영은 <청연>때 만큼이나 지쳐 보였다. 거친 사랑에 오랫동안 시름한 연아의 피
로함이 아직 남아있는 듯했다. 또 <청연>의 흥행 실패와 <연애참>의 힘겨운 촬영으로 인해 겪었던 부담
과 상처는 아직 완치되지 않아 보였다. 대신 그녀는 그간의 고단한 과정에서 무언가를 깨달은 듯한 눈빛
을 가끔씩 반짝거렸다. 배우로서 생명력과 에너지를 잃지 않고 있음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연애참>은 시나리오만 보면 지독한 사랑이야기 같다. 이들의 질긴 사랑에 숨이 턱턱 막히는 느낌이다.
- 누구나 한번쯤 해볼 수 있는 사랑이다. 지독한 사랑이 갖는 성질, 집착 같은 것도 물론 있다. 연아(장진영)와 영운(김승우)은 분명 '집착'에 가까운 관계다. 끝을 봐야 헤어질 수 있는. 이성적인 것과 거리가 멀고, 절대 계산하지 못하는, 어른스럽지 못한 사랑인 셈이지. 우리도 어릴적 이런 사랑 한번쯤 해보지 않았나?
어디 어릴 때 뿐인가. 나이 들어서도 그런 사랑에 빠진 사람 많이 봤다.
- 하하. 내 주변에서도 종종 본다. 사실 내가 맡은 연아란 인물은 처음 시나리오를 봤을 때 조금 당황스러웠다. 집착스런 면도 그렇지만 매사에 도통 종잡을 수 없는 캐릭터니까. 그런데 김해곤 감독님 이야기를 들어보니, 아는 사람 중에 연아의 모델이 된 여자기 있다고 하더라. 감독님이 친구 입장에서 그 여자를 보면 굉장히 쿨하다고 한다. 아마 이 영화를 본 다수의 남자들은, 연아 같은 멋진 여자가 우리나라에 있을까, 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연아가 감수해야 하는 '여자의 일생'은 아무나 선택할 수 있는게 아니다.
- 물론 여자 입장에서 그녀처럼 살기 싫다. 그녀는 계속 남자를 기다려야 하고, 또 남자를 잊기 위해 황폐한 ?? 속으로 다시 걸어 들어가 스스로를 희생하니까. 하지만 어떻게 보면, 연아만큼 순수한 여자는
없다. 비록 그녀를 둘러싼 환경들은 순수함과 거리가 멀지만, 그 여자의 사랑만큼은 무엇보다 순수하다. 순수하기 때문에 그녀가 사랑으로 인해 입는 상처는 더욱 깊고 고통스럽고 견디기 힘든 것이다. 그래서 그런 연아를 표현하는게 쉽지 않았다. 처음엔 연아 역이 너무 부담스러워서 작품을 포기할까 여러 번 망설였다.
<청연>에서 박경원 역할도 소화해낸 당신 아닌가. 연아 역이 그토록 힘들었다니 조금 의외다.
- 사실 극중에서 내가 등장하는 신은 30~40퍼센트 정도에 불과하다. 그런데 이 영화가 연아 이야기 같이 보이는 건, 연아 캐릭터가 매 신마다 아주 강렬하게 그려지기 때문이다. 때마침 촬영 스케줄이 <청연>홍보 기간과 겹쳐 내가 출여하지 않는 신에는 좀처럼 참여할 수 없었다. 작품의 흐름을 전반적으로 파악할 수 없는 상황에서, 매번 다른 임팩트를 줘야 하는 연아 연기가 결코 쉬운게 아니었다. 감정의 연결이 안되니, 어땐 때의 연아는 그냥 미친 여자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한캐릭터데 몰입하기가 이처럼 힘든 적이 없었다.
보통 배우들은 아주 하드한 캐릭터를 끝내면 조금은 라이트한 캐릭터를 선택하지 않나? <청연>처람 정신적, 육체적으로 고단한 영화를 찍은 후, 당신은 쉬어가는 페이지처럼 <싱글즈>같은 작품을 고를 수도있었을 텐데.
- 물론 가벼운 작품을 하고 싶었다.(웃음) 하지만 그런 걸 염두에 두고 보는 시나리오들 모두 <싱글즈>의 아류더라. 어떤 건 아류다 못해 아예 <싱글즈>속편같은 영화도 있었고, 한마디로 내가 흡족할 수 있는 시나리오가 별로 없었다. 그러던 중<연대참>시나리오를 보게 되었는데 너무 좋은 거다! 오랜만에 마음에 든 이 작품을 마다할 이유가 별로 없었다. 한편으로 평소에 안하던 욕도 해야 하고 큰 소리도 쉬지 않고 내질러야 하는 연기가 걱정되었지만.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영화 편집본을 본 영화 관계자들 이야기를 들어보니, 모두 당신 연기가 썩 괜찮다고 하더라.
- 글쎄? 너무 기대하지는 마라(그러면 실망도 클 테니). 사실 촬영 내내 난 발가벗겨진 느낌어었다. 촬영이 끝나면 서둘러 어디론가 숨고 싶었다. 앞서 설명했듯, 연아라는 캐릭터에 쉽게 이입되지 못한 까닭 이었다. 집중이 안되고 멍한 상태가 꽤 오래 지속되었다. 어떻게 보면 굉장히 정신적으로 좋지 않은 작품이었다.(웃음) 촬영을 끝낸 후 집 안에 틀어박혀 한동안 주변 사람들과 연락을 끊고 지냈다. 우울증에 걸릴 정도로 앓았다.
그 우울증엔<청연>의 저조한 흥행 성적도 한몫 했을 것 같다. 여배우로서 <청연>은 축복 같은 작품이었지만, 시간과 노력을 투자한 것에 비하면 결말이 너무 허망했다.
- <청연> 흥행 성적이 공개되고 <연애참>의 촬영이 모두 끝난 후 2-3일간 집에서 쉬고 있었다. 그런데
쉬는 게 쉬는 것 같지 않았다. 무언가 불안하고 허전했다. 그냥 한가롭게 피부관리를 받고 있는 시간에도 벌떡 일어나 무엇인가를 행 할 것 같은 거다. 그리고 어느 날, 잠을 자고 일어났는데 눈에서 뜨거운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리더라. 왜였을까. 아, 난 <청연>의 실패에 대한 배신감을 잊지 못하고 있는 거였다. 잊으려고 그렇게 노력했는데, 잊은게 아니었다. 1년여동안 매달린 영화에 대한 기대와, 신뢰, 그 모든 것이 단박에 무너진 것에 대한 상실감이 가슴 깊이 사무쳤나 보다. 안되겠다 싶었다. 나라도 재개봉, 아니 재개봉 차원이 아니라 다른 차원의 새로운 개봉을 모색하려고 했다. 몇몇 감독과 관계자를 만나 이에 대해 의논하기도 하고.... 그런 와중에 스크린쿼터 축소 문제가 터졌다. 힘을 줄 수 있는 영화인들이 그 사안에 신경 쓰느라 <청연>을 돌볼 여력이 없었다. 글고 얼마후 DVD까지 나와버리더라.(웃음) 모든게 너무, 너무, 늦어버렸던 거다. 결국 <청연>은 우리들이 미치도록 노력한 과정만 남고, 그 과정에 뒤따르는 관객과 평단의 반응 같은 일종의 '결과물'은 제대로 보지 못한 채 끝나버렸다. 그 아쉬움이 너무나 짙게 남았다. <청연>을 생각하면 항상 슬프다.
그래도 <청연>에서 당신의 열연은 오랫동안 회자될 만큼 강렬했다고 본다.
- 박경원이란 캐릭터가 워낙 강렬했으니까.(웃음) 물론 난 <청연>의 연기에 자부심을 갖고 있다.
언젠가 <청연>은 우리 기억속에 다시 나타날 수 있다고 믿는다. 어쩌면 명절날 TV에서 빠지지 않고 나오는 영화가 될지도 모르고.(웃음)
<청연>은 당시 남자 주인공이 득세하던 영화판에서 드물게 여자 주인공 영화였기 때문에 더욱 큰 관심
을 모았다. <청연>의 흥행과 관련없이 여배우가 남자배우에 비해 홀대받는 경향이 다소 나아졌다고 생각하나? 만약 나아지지 않았다면, 최근 불거진 스크린쿼터 축소가 여배우 주연 영화의 제작을 더욱 위축시키진 않을까?
- 여배우들을 위한 시나리오가 다양하지 못한 건 여전하다. 그러나 스크린쿼터 축소가 우리를 어떤 상황
으로 내몰지는 잘 모르겠다. 스크린쿼터 축소의 문제가 가시화되지 않은 지금도 여배우에겐 늘 어려운 시기라고 생각한다. 여러 좋은 여배우가 꾸준히 작품 활동을 하지 못하고 놀고 있는 상황이다. 얼마 전 <데브라 윙거를 찾아서>(할리우드 여배우가 캐스팅에서 불이익을 당하고 단명하는 현실을 다큐멘터리로 풀어낸 작품)란 영화를 본 적이 있다. 위안 아닌 위안이지만, 여배우가 처한 현실이 비단 우리나라뿐은 아니구나 란 것을 알았다. 최근 영화 속에선 우리가 고전들을 통해 감탄하며 보았던 여배우의 '여성스러움'을 포착할 수 없다. 여배우들에겐 뚜렷한 개성도, 다양한 캐릭터도 주어지지 않는다. 이건 답답하고 웃기는 일이다.
그럴수록 30대 여배우의 대표주자라는 자부심을 잃지 않기를 바란다. 그러면 꾸준히 발전할 수 있을 것이다. 당신은 배우로써 꽤 호감도가 높은 편이니까.
- 배우로서만? 하하하. 인간으로서의 호감도는 어떤데?
음, 일단 지금은 배우로서만 평가하는 게 옳지 않겠나. 이제 한 작품만 더 하면 두 자리 수 필모그래피를
갖게 된다.(<자귀모>(99)를 데뷔작으로 계산하면 <연애참>은 아홉 번째 작품이다.) 앞으로 당신은 어떤배우로 자리매김하게 될까?
- 나이가 들수록 모든 게 두려워지고 소심해진다. 이번 작품에선 어떻게 연기를 해야 할 지 몰라 많이 해맸다. 마치 처음 연기를 시작했을 때 그랬던 것처럼. 지금까지 여러 캐릭터들을 연기한 게 신기하고, 또 무모했다고 생각할 정도다. 다음엔 나아질 거란 생각 대신 더 힘들어질 것 같다는 걱정을 한다. 사실 내가 잘할 수 있을 지 모르겠다.
사주를 본 적이 있나? 30대 이후부터는 잘 풀린다고 하지 않던가?(그녀의 이력을 돌이켜 짐작한 것임)
- 아, 사주를 믿을 수밖에 없다. 30대 이후로는 잘 풀린다고 했고 실제로 그렇게 되었으니까.(웃음) 아, 사주에 또 이런게 나오더라. 사람에게 잘 만족을 못한다고. 그리고 지금 만나는 사람들에게는 아무 두려움 없이 자신있게 대하지만, 훗날 내 자식에게는 쩔쩔매게 된다고.
어쨌든 지금까지의 점괘대로라면, 배우로서의 당신의 미래를 낙관해도 되지 않을까?
- 음...글쎄? 그래도 될까?
글 김도훈 기자
첫댓글 청연때매 속 많이 상했나보다...
진짜 좋아하는데 아쉬워요..저도 청연보러가니깐 이미 막내린 상태..
진짜 맘고생 마니 했네..연애참 꼭봐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