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남이섬
이번 서울여행의 당초계획에는 남이섬은 없었다. 한강 유람선 타기를 계획했는데 아들이 '한강 유람선 탈래? 아니면 남이섬에 갈래? 라고 선택 조건을 주길래 나중에 혼자라도 가 보기가 쉬운 '한강 유람선 타기'보다는 남이섬에 가 보고 싶어서 선택된 여행지였다.
그런데 남이섬은 혼자 사색에 빠져 조용히 섬 주변을 산책하면 딱 제격이었다. 섬 둘레가 강이고 섬에는 아름드리 수목들이 피톤치트를 마구 뿜어내는 그야말로 환상의 섬이었다. 섬 둘레를 산책하다 쉬고 싶으면 어디던지 벤치가 있으니 쉬면 되고 중간에 카페나 음식점도 있으니 카페에 앉아 조용히 커피를 마시며 시상을 떠올려 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남이섬에 대한 개요를 다음백과를 통해 알아보면 다음과 같다.
『조선 세조 때 무관인 남이장군의 묘가 있다고 하여 남이섬이라 했다. 총면적은 46만 평방미터에 둘레는 약 5km이다. 청평 댐 완공으로 수위가 높아지면서 완전한 섬이 되었다. 1960년대 중반에 경춘관광주식회사에서 본섬을 매입하여 관광지로 조성했다. 남이장군이 묻힌 장소는 정확하지 않으나 관광회사에서 돌무더기에 흙을 덮어 봉분을 덮고 잘 꾸며 지금의 묘를 만들었다.』
서울에서 남이섬에 갈려면 우선 경기도 가평읍 북한강변로에 있는 남이섬 가평선착장으로 가서 남이섬으로 가는 배를 타야 한다. 남이섬은 행정구역상 춘천시에 속하나 가평군 달전리와 접하므로 대부분의 관광객들이 이곳을 거쳐 간다. 북한강변로가 지번으로는‘달전리’가 된다. 아래의 스크랩된 지도를 통하여 위치를 확인해보자.
남이섬 가평선착장의 행정구역이 가평군 달전리에 속한다. 그러나 남이섬은 춘천시 남산면에 속한다. 위치를 확인했으면 이제 남이섬에 무엇이 있는지 관광 안내도를 살펴보자.
그러고 보니 남이섬이 송편같이 생겼네. 방문한 전날이 추석이었는데...
주차장에 차를 대고 선착장으로 가는데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많은 비는 아니지만 혹시 많이 오면 곤란할까 편의점에서 우의를 샀다. 그런데 머리 위로 사람들이 의자에 매달려 지나가고 있다. 짚와이어를 타고 남이섬으로 들어가서는 나올 때 배를 타기도 한단다.
추석 연휴라서 그런지 사람들이 정말 많았고 티켓을 사기 위해 한참 줄을 서야만 했다.
짚와이어 타는 곳에서 오른쪽에 곤돌라처럼 생긴 것이 보이는데 그 곳에서는 번지점프를 하고 있었다.
분수대 옆으로 구경을 마치고 나오는 배를 타려고 사람들이 줄을 서 있다. 이 날 많은 사람들 때문에 코로나에 감염될까 두렵기도 했다.
선착장에서 내리면 바로 이렇게 기와지붕이 있는 문으로 들어간다.
남이섬에는 오래된 나무들이 많고 일단 차가 별로 없어 공기가 맑고 휴양하기가 좋을 것 같다.
섬 둘레에는 이런 모타보트 타는 곳이 있는데 대여해서 타기도 하고 수상스키도 즐긴다.
버스를 타고 운전자가 직접 안내 멘트를 해 주는 관광을 할 수도 있다. 우리도 처음에는 도보로 이리저리 구경을 마치고 투어버스를 이용해서 한 번 더 섬을 돌았다.
타조를 사육하고 있었는데 사람들이 모이를 주어서 사람들만 보면 앞으로 왔다.
섬에는 몇 군데 연못을 만들어 놓은 곳이 있었다.
장승을 작품으로 만들었는데 상당히 육감적이고 피카소의 그림을 연상케 한다.
쭉 곧은 나무의 기둥 사이 숲이 주는 그늘이 아늑한 이부자리 같아 보인다.
메타세콰이어 꽃말이 아미타불이라고 한다. 여기가 겨울연가 촬영장이었는데 겨울연가에 이 메타세콰이어 길의 장면이 나오는지 모르겠다.
아내가 복을 기원한다고 타종을 했다.
우리 어머니 시절에는 저 물레방아를 이용해서 쌀도 찧어 떡도 만들고 고추도 빻고 온 동네가 이용했는데 지금은 사라진 풍속도이다.
이곳은 부부가 이용할 수 있는 투투별장이다.
남이장대는 2006년 방화로 소실된 유네스코 문화유산인 서장대와 2005년 산불로 쓰러진 낙산사의 잔재목과 불에 그을린 소나무, 신라 쌍계사의 금강문 기와를 사용하여 서장대를 복원하고 남이장군을 기리는 마음에서 남이장대라 이름 붙여졌다고 한다.
강물을 이용해 연밭을 형성해 놓았다.
유원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오리배. 그러고 보니 오리배를 타 본 기억이 없다.
섬의 강변을 따라 코스모스가 운치를 더해 준다.
노란 꽃으로 일찍이 봄을 알리더니 이제 붉고 탐스런 열매로 가을을 맞이하는 산수유나무를 보니 새삼 나는 뭐 했나 싶은 생각이 든다.
남이장군이 묻힌 장소는 정확하지 않으나 관광회사에서 사람들이 남이장군이 묻혔다는 돌무더기에 흙을 덮어 봉분을 덮고 잘 꾸며 지금의 묘를 만들었다.
남이 장군은 27세의 나이에 당파싸움의 희생양이 된 역사 속의 인물이 되었다.
백두산석 마도진 - 백두산의 돌은 칼을 갈아 사라지고 白頭山石 磨刀盡
두만강수 음마무 - 두만강의 물은 말을 먹여 없애고 豆滿江水 飮馬無
남아이십 미평국 - 남자 이십세에 나라를 평안케 하지 못하니 男兒二十 未平國
후세수칭 대장부 - 후세에 누가 대장부라 부르겠는가 後世誰稱 大丈夫 |
남이 장군의 북정가이다. 유자광이 모함을 할때 세번째 행의 평(平)을 득(得)으로 고쳐서 모함을 했다고 하니 남이장군의 시를 읽을 때마다 안타까운 마음이다. 17세에 무과에 장원급제하고 세조때 이시애의 난을 평정하였고 북벌로 여진족을 처단하러 가는 길에 북정가라는 시를 지었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공중전화 박스가 어느 새 우리 주변에서 다 사라져 버렸다. 우체통을 보니 김광석의‘가을 우체국 앞에서’라는 노래가 생각난다. 이제 남이섬 구경은 끝났다. 우리는 다시 배를 타고 가평선착장으로 돌아가서 주차장에 둔 차로 서울로 향했다. 중간에 전망좋은 카페에 들어가서 커피를 한 잔 하자고 아들이 제안하여 우리는 아들이 가 본 경험이 있는 카페에 들어갔다.
조금씩 가을로 물들어가는 나무들과 강 건너 풍경.
흐려진 하늘을 배경으로 수크령이 가을을 부르고 있었다. 이로서 서울 구경 전편을 마무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