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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초반을 기억하는가. 아무리 생각해 봐도 이 글을 읽는 사람 중엔 이 시절을 중 고등 학생으로 지낸 이는 그리 많지 않을 듯 싶다. 이제 시대를 풍미하는 스포츠에서 농구는 한발 짝 떨어져 있지 않은가.
잠시 시계를 돌려, 1990년대 초반으로 돌아가보자. 노땅(어느새, 이 시기를 추억하는 이들은 노땅이 되어버렸다.)들의 한탄이라 단정짓고 페이지를 넘길지도 모르겠지만 글쎄, 그리 지루 하지 않으니 우리 젊은 친구들도 잠시만 참고 옛 이야기를 들어보자.
1990년대 초반. 3가지의 뜨거운 감자가 한반도를 공습했다. 그것은 NBA, 마지막 승부, SLAM DUNK였다. 가공할만한 위력을 가진 이 세 감자는 감수성이 예민할대로 예민한 청소 년들을 흥분시키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SBS가 공중파 TV방송을 시작하며 야심차게 내놓은 계획이 바로 NBA였다. 캐스터 이름은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한창도 해설위원의 해설이 아주 또렷하게 기억이 난다. AFKN을 통해 알아듣기 힘든 영어를 애써 참아가며 봐야했던 NBA 중계를 알아듣기 쉬운 한국어로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이것은 대단한 행운이었다. 타고난 한계 때문에 화려한 공중 기술이 상당 히 제한적인 한국 농구에 비해 주체할 수 없는 신체적 능력을 가진 그들의 플레이는 한마디 로 "AMAZING!" 그 자체였다. 생중계도 아니었고 녹화 방송에다가 1,2쿼터는 하이라이트만 보여주고 3,4쿼터만 보여주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인기는 시쳇말로 장난이 아니었다. NBA를 접하면서 우리는 한국 농구에서도 노마크 찬스에서는 당연히 덩크를 기대하게 되었고 마이 클 조던, 찰스 바클리, 클라이드 드렉슬러, 페트릭 유잉, 하킴 올라주원 등 생소한 외국인의 이름을 옆집 형의 이름처럼 외우고 논하기 시작했다.
또 하나, MBC에서 1993년말 방영한 마지막 승부라는 월화 드라마가 있었는데 이게 또 장난 이 아니었다. 지금도 펄럭펄럭 휘날리는 그 이름 장동건, 라스베이거스에서 장모가 잭팟터트 려 횡재한 손지창, 채시라랑 드라마 찍고 있는 이종원, 가오의 일인자 허준호, 이혼의 달인 이상아, 조폭의 대명사가 되어버린 신은경 그리고 이 드라마 한편으로 만인의 연인이 되어버 린 심은하까지 초호화 캐스팅(지금 이런 드라마를 다시 찍으려면 개런티만해도 왠만한 프로 농구팀 1년 샐러리 캡을 채우고도 남을 것이 분명하다.)으로 제작된 이 드라마가 다루고 있 는 소재는 다름 아닌 농구였다. 동네 농구의 수준으로 봐도 어설픈 배우들의 연기에 유치하 기로는 3류 무협지 못지않은 이 드라마는 단지 농구라는 소재를 다루었다는 그 이유 하나만 으로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다. 당시 나는 중학생이었는데 월요일 화요일이면 9시부터 진행 되는 학원 수업의 결석률이 50%를 넘었으니 이 드라마의 인기는 더 이상 설명하지 않았어도 될 것이다. 물론, 나도 학원을 빼먹은 50%중에 하나였다.
그리고, 이제 내가 논하고자 하는 바로 그 만화. SLAM DUNK가 있었다. 1992년 소년 챔프에 서 연재를 시작한 이 만화는 1권부터 13권이 진행될 때까지만 해도 내 관심밖의 만화였다. 그때까지만 해도 내 최대 관심사는 야구였으며 실제로 야구선수를 하려고 다니던 초등학교 에서 전학을 준비하기도 했었다. 그러나 초등학교 6학년 때 수학여행에서 접한 SLAM DUNK 14권은 야구말고도 다른 훌륭한 구기종목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려주기에 충분했다. 농구가 있었던 것이다. 수학여행에서 돌아온 후 나는 여기저기서 결국에는 슬램덩크 전권을 모으기 에 이르렀으며 연재가 끝난지 8년이 지난 지금도 단행본 전권을 소장하고 있기도 하다. SLAM DUNK의 무엇이 한 나라의 거의 모든 청소년을 들었다 놨다 할 수 있었을까. 어떤 이 유로 트렌드를 좌지우지할 수 있었을까.
먼저, SLAM DUNK의 등장인물들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 캐릭터가 이상하다는 것이 아 니라 인물의 배치가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 어떤 스포츠 만화에서 갓 시작한 "풋내 기"가 주연의 위치에 떡하니 버티고 서있었던가? 타고난 천재가 조연의 위치에 놓여진 만화 가 몇이나 있던가. SLAM DUNK는 일단 상식을 벗어난 인물의 비중으로 눈길을 끈다. 주인공 이 조금씩 실력을 늘려갈수록 독자는 만화에 빠져들게 된다. 때마침 슬슬 불어오는 농구의 열기에 자의반 타의반으로 농구공을 잡게된 이들은 자연스럽게 자신과 캐릭터 사이에 동질 감을 느끼게 된다. 내가 연습 중인 레이업 슛을 만화의 이 놈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녀석 이 도저히 패배를 모를 것 같은 녀석들의 슛을 쳐내고(북산 VS 능남과의 연습 경기에서 강백 호는 접전 중에 윤대협의 점퍼를 뒤에서 쳐내버린다.)그런 녀석들을 제치고 리바운드를 따낸 다. 이건 완전히 사람 미치게 만드는 쾌감이다. 이것에 독자들은 SLAM DUNK에 빠져버리게 된 것이다.
SLAM DUNK는 스토리에 있어서도 상식을 벗어난다. 해남과의 도내 최종예선전을 떠올려 보 자. 북산이 해남에게 패할 것이라고 예상했던 사람이 있었을까?. 정대만의 마지막 3점 슛이 림을 외면할것이라 예상했던 사람 손들어보자. 그렇다. 상식적으로 주인공의 팀은 당연히 이 겨야 하는 것이지만 이 괘씸한 작가는 아슬아슬하게 주인공 팀을 패하게 한다. 그것도 정말 이지 아슬아슬하게 다잡은 대어를 눈앞에서 놓친다. 이게 미안했는지 전국대회에서 최대어 인 산왕을 극적으로 잡아버리지만 토너먼트 3회전에서 무참히 패하며 채치수의 목표인 전국 제패는 결국 꿈으로만 남겨 놓았다. 하지만 만약 중반부인 해남과의 경기가 북산의 승리로 끝났다면 SLAM DUNK의 인기는 이토록 오래가지 못했을 것이다. 그 패배로 인해 북산의 선 수들이 최종 예선에 대한 집중이 극에 달한만큼 독자들도 SLAM DUNK에 대한 집중이 극에 달해버렸으니 말이다.
공들인 그림이나 실제 경기를 보는 듯한 구도, 농구선수였던 작가의 경력들은 이미 상식이 되어버렸으니 더 이상 언급하지는 않도록 하자. 이 만화덕분에 그리 인기가 높은 종목이 아 니었던 농구는 1990년대 초중반 최고의 히트 상품이 되었다. 학교 운동장은 짬만 나면 농구 공을 튕기는 사람들이 지배해버리기 시작했고 코트가 있는 곳은 항상 초만원을 이루었다. 겨 울에 벌어졌던 농구대잔치의 인기 역시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었다. 지금도 프로 선수 생활을 하고 있는 문경은, 전희철, 이상민, 우지원 등 연세대와 고려대의 선수들은 훗날 H.O.T따위 와는 비교도 안될 우상급의 스타였다. 당시의 중고등학생들은 등교하자마자 10분이라도 슛 을 던졌고 수업시간에는 책상밑으로 SLAM DUNK를 봤으며 집에 가서는 NBA와 마지막 승부 에 열광했다. 하루종일 농구와 함께 한 것이다. 지금은 에어맥스와 에어 포스 원이 지배하는 운동화 바닥이지만 그때는 누구나 농구화를 신었었다. SLAM DUNK와 농구 열풍에 대한 특 집 TV프로까지도 종종 있었다. 농구는 1990년대 초중반을 중고등학생으로 지낸 사람들에게 는 하나의 이데올로기였다. NBA, 마지막 승부, SLAM DUNK등 이 세가지 요소가 그 밑거름 이 되었지만 난 그중에서도 SLAM DUNK의 역할이 가장 컸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때를 지 금도 그리워하고 있다.
1996년. 단행본 31권을 끝으로 연재가 끝나면서 SLAM DUNK는 잠시 숨을 고르게 된다. 그 때부터 농구 자체의 인기가 떨어지기 시작했다는 것은 지나친 억측일까. 박찬호가 MLB에서 승승장구하고 월드컵에서 한국이 선전하면서 농구의 인기는 MLB와 축구 쪽으로 옮겨가기 시작했고 지금까지 왔다. 작년의 Hip-Hoop 열기가 SLAM DUNK의 대타역할을 해주지 않을 까 생각했지만 그 정도까지의 영향을 끼치지는 못하였다. 누군가 역사는 돌고 돈다 했다지. 가까운 시일내에 농구가 다시 10여년전의 인기를 회복하리라 믿는다. 그리고 그때 다시 SLAM DUNK는 그 인기의 최전방에 있을 것이다.
출처는 Da KICKZ (http://cafe.daum.net/dakickz)입니다 |
첫댓글 오오,ㅠ슬램덩크♥역시멋지죠^ ^*
음 ~ 내용을 정리해보자면~ 슬램덩크 무쟈게 좋다는 애기^^;; 임다~~~~~
정말 옛생각나게 하는 글이네요..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