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지(析枝)는 이미아주(利米亞洲), 거수(渠搜)는 구라파주(歐羅巴洲)
2021년 02월 15일
○ “사기(史記)”의 지명(地名)을 주석(注釋)한 “사기지명고(史記地名考)”의 총목(總目)편을 보면, “요동요서(遼東遼西)는, 서북변(西北邊)” 측에 기록(記錄)되어 있다.
이런 기록(記錄)은, 이를 보고 어떻게 이해(理解)하느냐하는 사고(思考)의 문제(問題)이다. 즉(卽) 역사(歷史)를 바라보는 관점(觀點)에 따라 전혀 다른 역사(歷史)가 전개(展開)된다는 것이다.
역사통설(歷史通說)의 ‘반도사관(半島史觀)=식민사관(植民史觀)’의 눈에서 바라보면, 이는 편집(編輯) 또는 인쇄(印刷)과정(過程)에서의 오류(誤謬)라고 항변(抗辯)할 수도 있고, 착오(錯誤)라고도 변명(辨明)할 것이다.
반대(反對)로, ‘대륙(大陸)조선사(朝鮮史)’를 주장(主張)하는 필자(筆者)와 같은 무리들은, 이게 바로 올바른 ‘역사적(歷史的) 사실(事實)’이라고 힘주어 말할 것이다.
● 당연(當然)한 이야기다. ‘요동요서(遼東遼西)’가 중원(中原) 땅에서 볼 때, 동북방(東北方)이 아닌 서북방(西北方) 변(邊)에 있었다고 한다면… …「중원(中原) 대륙(大陸)의 드넓은 땅은, 곧 동방(東方)이요, 동역(東域)이며, 진국(辰國)이며, 동국(東國)이 된다.」 바로 조선왕조(朝鮮王朝)의 터전이었다.
이건 다음의 주제(主題)다. 오늘의 주제(主題)로 들어가자.
●『‘석지(析智)=석지(析支)’는 이미아주(利米亞洲)=Africa(아프리카)요, ‘거수(渠搜)=거수(渠廋)’는 구라파주(歐羅巴洲)를 지칭(指稱)한다.』고 하였다.
역사통설(歷史通說) 논자(論者)들은, 무슨 망령(亡靈)된 이야긴가? 하겠지만 기록(記錄)은 속일 수 없으며, “진실(眞實)은 밝혀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 정의(正義)다. 이게 순리(順理)다.
바로 조선왕조(朝鮮王朝)의 대신(大臣)을 두루 역임(歷任)했던 격변(激變)의 19세기(世紀)를 살다 가신 “환재(瓛齋) 박규수(朴珪壽, 1807~1877)”의 말씀이다.
… 환재(瓛齋) 박규수(朴珪壽, 1807~1877) : 19세기 조선의 역사적 격변기를 살다간 인물이다. 또한 격변기의 중심에서 평안도 관찰사와 우의정 등을 역임하며 정치와 외교에서 중대한 역할을 했음은 물론 문학과 사상 등 여러 방면에서 주목할 만한 성과를 남겼다. 19세기 조선의 정치ㆍ문학ㆍ사상을 살피기 위해서라면 결코 그의 존재를 외면할 수 없으며 이에 당연히 학계에서도 환재를 주목해왔다. 중략(中略). [출처(出處):고전번역원]
► 환재집(瓛齋集)4권 地勢儀銘 원문(原文) 이미지 / 출처(出處) :고전번역원db
○ 瓛齋先生集卷之四 潘南朴珪壽瓛卿著 / 雜著 瑄壽按先兄遺藁。凡羽翼經傳。不可殿後之作。其篇名或無類或單寡。難以作卷。故仿韓昌黎集,方正學集例。編之雜著而首文。/ 地勢儀銘 幷叙
《或曰崑崙者.地之形也.衆山叢萃之勢也.葱嶺以東以西是也.析支者.其地支析而旁出.西夷稱利米亞洲者是也.渠搜者.地海交錯.有若循溝渠而搜之.西夷稱歐羅巴州者是也.盡禹貢織皮之西戎也.若朔方之縣賜支之地.不足以當之.》
《或曰崑崙者.地之形也.衆山叢萃之勢也.葱嶺以東以西是也. : 어떤 사람이 “곤륜(崑崙)이라는 것은 땅의 형태로 여러 산들이 한데 모여 있는 형세인데, 총령(蔥嶺)의 동쪽과 서쪽이 이곳이다. 析支者.其地支析而旁出.西夷稱利米亞洲者是也.:석지(析支)라는 것은 그 땅이 갈라져 사방으로 퍼져 나온 것인데, 서양 오랑캐들이 이미아주(利米亞洲 지금의 아프리카)라고 일컫는 곳이 이곳이다. 渠搜者.地海交錯.有若循溝渠而搜之.西夷稱歐羅巴州者是也. : 거수(渠搜)라는 것은 육지와 바다가 서로 교차하여 마치 도랑을 따라 찾아가는 것 같은 곳인데, 서양 오랑캐들이 구라파주(歐羅巴州)라고 일컫는 곳이 이곳이다. 盡禹貢織皮之西戎也.若朔方之縣賜支之地.不足以當之. : 이들은 모두 서경(書經) 우공(禹貢)편의 직물과 피물을 바치는(織皮), 서융(西戎)에 해당되는데, 삭방(朔方)이란 현(縣)과 석지(賜支)의 땅은 해당시킬 곳이 없다.”라고 한다.》고 하였다.
이게 무슨 의미(意味)를 갖는 것일까? ‘중원(中原) 대륙(大陸)이 바로 동방(東方)이요, 동역(東域)이요, 동국(東國)이요, 조선(朝鮮)이었다.’는 뜻이다.
➊ 역사통설(歷史通說)【반도사관(半島史觀)=식민사관(植民史觀)】에서는 : 「‘석지(析枝)=석지(析支)’는 오늘날의 감숙(甘肅), 청해(靑海), 섬서(陝西), 내몽고(內蒙古) 서부(西部)의 일부 땅을 말하는 것인데, 곧 하(河) 상류(上流)측을 말한다.」고 설명(說明)한다. 아래의 원문(原文)은, 사기(史記) 및 사기지명고(史記地名考) 및 그 주석(注釋)이다.
【史記.史記地名 (1) 析枝 : [五帝本紀 : 西戎, 析枝, 渠廋, 氐, 羌.] [夏本紀 : 織皮昆侖, 析支, 渠搜, 西戎卽序.] ➀ 索隱:鄭玄曰,山名,在西戎.王肅曰:析支在河關西:夏本紀》 ➁ 大戴禮云,鮮支,渠搜,則鮮支當此析枝也.鮮,析音相近:五帝本紀. ➂ 案:司馬彪曰:西羌自析支以西,濱於河首左右居,河水屈而東北流,逕於析支之地,是爲河曲羌.】
【史記.史記地名 (2) 渠廋. 渠搜 : [五帝本紀 : 西戎, 析枝, 渠廋, 氐, 羌] [夏本紀 : 織皮昆侖, 析支,渠搜, 西戎卽序] ➀ 索隱:鄭玄曰,山名,在西戎.地理志朔方有渠搜縣:夏本紀 ➁ 案:禹貢渠搜與漢渠搜不同,當在今陝,甘境.】
➋ 조선(朝鮮) 학자(學者)는 말씀하시기를 : 『析支者.其地支析而旁出.西夷稱利米亞洲者是也. : 석지(析支)라는 것은, 그 땅이 갈라져 사방으로 퍼져 나온 것인데, 서양 오랑캐들이 이미아주(利米亞洲 지금의 아프리카)라고 일컫는 곳이 이곳이다.』라는 것이며,
➌ 역사통설(歷史通說)【반도사관(半島史觀)=식민사관(植民史觀)】에서는 : 「거수(渠搜)=거수(渠廋)는, 삭방(朔方) 즉 중원(中原)의 북방지대(北方地帶) 또는 감숙(甘肅)과 섬서(陝西) 지경에 있다.」고 설명(說明)하고 있다. 그러나
【史記.史記地名 (2) 渠廋. 渠搜 : [五帝本紀 : 西戎, 析枝, 渠廋, 氐, 羌] [夏本紀 : 織皮昆侖, 析支,渠搜, 西戎卽序] ➀ 索隱:鄭玄曰,山名,在西戎.地理志朔方有渠搜縣:夏本紀 ➁ 案:禹貢渠搜與漢渠搜不同,當在今陝,甘境.】
➍ 조선(朝鮮) 학자(學者)는 말씀하기를 : 『渠搜者.地海交錯.有若循溝渠而搜之.西夷稱歐羅巴州者是也. : 거수(渠搜)라는 것은 육지와 바다가 서로 교차하여, 마치 도랑을 따라 찾아가는 것 같은 곳인데, 서양 오랑캐들이 구라파주(歐羅巴州)라고 일컫는 곳이 이곳이다.』라는 것이다.
위의 글 ‘➊+➌’은 역사통설(歷史通說) 논자(論者)들의 21세기(世紀) 역사해설(歷史解說)이고,
위의 글 ‘➋+➍’는 19세기(世紀) 격변(激變)의 시대(時代)를 살다간 조선(朝鮮)학자(學者)의 설명(說明)이다.
➎ 19세기(世紀) 조선왕조(朝鮮王朝)의 조정(朝廷)에서, 평안도관찰사(平安道觀察使)와 우의정(右議政)등을 역임(歷任)했으며, 정치(政治)와 외교(外交)에서 중대(重大)한 역할(役割)을 담당(擔當)했으며, 문학(文學)과 사상 등 여러 방면에서 주목할 만한 성과를 남겼다고 하는 “환재(瓛齋) 박규수(朴珪壽, 1807~1877)”의 말에 따르면:
… “석지(析枝)=석지(析支)”라고 했던 ‘하(河) 상류(上流)의 땅’은, ‘오늘날의 아프리카(Africa-利米亞洲) 땅’이고,
… “거수(渠搜)=거수(渠廋)”라고 했던 ‘삭방(朔方)의 땅’은 ‘오늘날의 구라파주(歐羅巴洲) 땅’이다.
○ 이걸 어떻게 받아들이겠는가? 하는 문제(問題)는, ‘각자(各自)의 사고(思考)역량(力量)이나 사관(史觀)등에 의해 결정(決定)되어질 것이다.’라고 유추(類推)해 볼 수 있다.
그러나 역사적(歷史的) 사실(事實) 즉(卽) 사실(史實)을 알려한다면, 조선인(朝鮮人)의 기록(記錄)을 신뢰(信賴)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당시(當時)에 존재(存在)했던 사실(事實)을 기록(記錄)”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무엇 때문에 ‘조선사(朝鮮史)=한국사(韓國史)’는 왜곡(歪曲)과 조작(造作)을 거쳐 편집(編輯)되고, 축소(縮小)되고, 비굴(卑屈)한 모습으로 만들어진 것일까?
무엇 때문에, 이 땅의 젊은이들은 일제(日帝) 제국주의자(帝國主義者)들의 앞잡이가 되어, 하수인(下手人)이 되어, 매국노(賣國奴)를 자처(自處)한 것일까?
무엇 때문에, 작금(昨今)의 이 땅에는 지금까지도 ‘부(富)와 명예(名譽)와 권력(權力)’을 움켜쥐고 있었던, 통치세력(統治勢力)들이었던, 기득권(旣得權)을 가졌던 일부(一部) 무리(群)들은, 친일(親日)을 부르짖으며, 매국행위(賣國行爲)를 하고 있는 것일까?
● 이를 반성(反省)하지 않는다면, 을사오적(乙巳五賊)【을사조약(乙巳條約)을 체결(締結)할 때, 이에 찬동(贊同) 혹은 묵인(默認)하여 조인(調印)을 용이(容易)하게 한 다섯 매국노(賣國奴)】이 또 나오지 않는다고 보장(保障)할 수 있겠는가?
2021년 02월 15일 [글쓴이 : 문무(文武)]