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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육십만인송(六十萬人頌)
교토 시내 시조(四條)에 가면, 테라마치(寺町)라고 하는 거리가 있습니다. 지금은 상점가입니다만, 옛날에는 그 동네에 절이 많았다고 합니다. 현재도 몇 군데 남아있는데, 그 중에 세이간지(誓願寺)라는 절이 있습니다. 이 서원사는 바로 잇펜스님의 시종과 인연이 있는 절입니다.
그 세이간지 입구에 안내판이 하나 서있습니다. 이 서원사를 무대로 하여 중세에 제아미(世阿彌, 1363?〜1443?)라고 하는 노(能)의 대본을 전문적으로 쓴 작가의 작품, 「서원사」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한 여인이 잇펜스님에게 물었다는 것입니다.
“왜 육십만명의 사람만이 극락에 왕생한다는 말입니까?”
이 질문을 이해하려면, 그 뒷배경을 알아야 합니다. 잇펜스님은 지금의 와카야마(和歌山)현에 있는 구마노(熊野)라는 곳에 있는 신사에서 신탁을 얻게 됩니다. 그리고 나서는 “나무아미타불 결정왕생 육십만인”이라고 하는 글을 써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었다고 합니다. 이를 후산(賦算)이라고 합니다.
저도 그 아주머니와 같은 생각을 한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아니더군요. 『잇펜 히지리에』에는 이 말이 나온 게송이 있습니다.
육자명호일편법(六字名號一遍法)
십계의정일편체(十界依正一遍體)
만행이념일편증(萬行離念一遍證)
인중상상묘호화(人中上上妙好華)
육자명호는 일편의 법이고
십계의 의보와 정보는 일편의 체이며
만행을 하면서도 망념을 떠나는 것이 일편
의 깨달음이니
(이렇게 할 수 있다면) 사람들 중의 상상
의 묘호화일세.
여기에, 그 첫머리 글자를 모으면 ‘육십만인’이 되지요. 그래서 이 게송을 「육십만인송」이라 이름합니다.
또 여기서 ‘일편’이라는 스님의 법명이 나옵니다만, 이는 하나와 전체가 둘이 아니라는 흔히 화엄에서 말하는 법 그 자체를 의미합니다. 따라서 “육자명호는 불법의 가장 보편적인 법이고, 십계의 의보와 정보는 불법의 가장 보편적인 체이며, 만행을 하면서도 망념을 떠나는 것은 불법의 가장 보편적인 깨달음이다”라는 의미가 되겠지요. 이렇게 잇펜 스님은 정토가(淨土歌)이면서도, 화엄이나 선적인 것과 통하는 생각을 하신 분이었던 것으로 평가됩니다.
8. 아미타라 불린 사람들
일본불교사 책을 읽다 보면, 참 재미있는 이름들을 만나게 됩니다. “O아미타불”이라는 형식입니다. 예를 들면, 잇펜 스님의 뒤를 이어서 본격적으로 시종이라는 종파를 형성하게 되는 스님이 “他아미타불”입니다. 줄여서 “타아미”, 혹은 “타아”라고 합니다.
그런 예들을 더 들어보겠습니다. 1282년, 잇펜스님이 44세 때의 일입니다. 「연표」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10월, 唯아미타불, 娑아미타불, 大아미타불, 定아미타불, 向아미타불, 觀一房 죽다.”
이들은 모두 잇펜 스님 제자들입니다. 그러니까, 잇펜 스님은 자기 제자들 법명을 다 아미타불로 끝내는 것입니다. “아미타불”을 돌림자로 한 것입니다. 그들을 서로 구분해 주는 것은 “아미타불” 앞에 붙이는 한 글자로 구분되는 것이지요.
재미있지 않습니까? 어떤 종파든, 어떤 스님이든 이렇게 부처님 이름을 제자들의 법명으로 과감하게 써버리는 경우를 쉽게 발견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이렇게 법명을 지어주었던 것일까요? 거기에는 깊은 철학적 이유가 있습니다. 야나기 무네요시의 『나무아미타불』에는 일본정토의 세 분 조사들의 관점을 비교한 것이 있습니다. “나무아미타불”이라는 육자 명호에 대한 해석을 세분 조사들이 각각 어떻게 다르게 생각했는지 하는 점입니다.
호넨스님 : 목숨을 아미타불에게 바친다.
신란스님 : 아미타불의 명령에 따른다.
잇펜스님 : 아미타불의 명근(命根)에 돌아간다.
호넨스님에게 염불의 방향은 “나 ⟶ 아미타불”이며, 신란스님은 “아미타불 ⟶ 나”입니다. 그렇다면, 잇펜스님은 어떻게 될까요? 호넨스님이나 신란스님 처럼 쌍방의 관계가 아닙니다. 나와 아미타불은 함께 하나의 방향으로 향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아미타불의 명근, 즉 생명의 뿌리”입니다. 아미타불이 태어난 바로 그곳, 아미타불을 낳았던 바로 그곳을 명근이라 하였습니다. 그러니까, 나와 아미타불을 서로 바라보는 관계가 아니라 함께 하나의 방향을 향해서 바라보고 있습니다. 셍 떽쥐베리의 『어린 왕자』인가요, 그런 말이 있잖아요. 서로 사랑한다는 것은 함께 같은 방향을 바라보는 것이라고요.
이렇게 나와 아미타불이 함께 바라보고 있는 아미타불의 명근은 우리 모두가 다 갖고 있는 것이지요. 그리고 그런 점에서 우리 모두는 아미타불과 이미 인연의 끝이 연결되어 있는 것입니다. 아미타불이지요. 하지만, 『무량수경』에 나오는 아미타불과 같은 점도 있지만, 차이점도 있지요. 그 차이점을 잇펜스님은 O라고 하여, 아미타불 앞에 한 글자를 넣어줌으로써, 즉 “O + 아미타불”의 관계를 격한정복합어로 만들어 줌으로써, “모든 O아미타불은 아미타불 보다 작다”, 혹은 “모든 O아미타불은 아미타불의 부분집합이다”라는 의미를 만들어 내고 있습니다.
“그대는 아미타불이다. 아미타불과 연결되
어 있다. 하나의 작은 아미타불이다.”
이런 메시지를 잇펜스님은 제자들에게 심어주고자 하였던 것이겠지요. 재미있는 것은 이러한 생각은 우리 원효스님에게서도 보인다는 점입니다. “아미타불의 명근으로 돌아가다”라는 것이 “나무”의 본래 의미임을, 이미 원효스님은 『대승기신론소』의 첫머리에서 하고 있는 것 아닙니까. “귀의, 나무”의 의미를 “귀명”으로 읽어냈을 때 말입니다. 그때 ‘명’은 바로 부처님의 명근, 목숨이지요. 아미타불의 명근을 생명의 뿌리라고 해서 틀린 것이 아니지요. 비록 원효스님이 바로 그 자리에서 아미탐불의 명근이라 구체화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말입니다.
이렇게 잇펜스님을 읽어보면, 그 속에 우리 스님이 있습니다. 일본불교가 곧 한국불교임을 깨닫게 됩니다. 잇펜스님을 통해서 말입니다.
후기 : 이 시종의 제자들의 이름과 관련해서도 뒤에 「夢中問答」이라는 시를 지었기에 여기에 옮겨둡니다.
夢中問答
스님,
제게도 이름 하나
지어주세요
他아미타불
彌아미타불
그런 스님의 제자들처럼
( )아미타불
이라 이름 하나 지어주세요
스님을 좋아하고
스님을 사랑하니
그만한 자격 있지 않나요?
네 이름 있잖느냐?
金浩星(아미타불)
浩星(아미타불)
星(아미타불)
아니더냐
아미타불이 ( ) 속에 숨어있지
않더냐
스님,
( ) 속 말고
드러내놓고
( )아미타불
이라 불리울 이름 하나
지어주세요
멋있게 정해 주세요
허허,
이 사람
그런 것이 아니라네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 ) 속의 아미타불 불러 보게나
( ) 속의 아미타불 깨워 보게나
( ) 밖으로 나올 것이니
(2008. 7. 16)
9. 잇펜스님이 읊으신 한문게송들
잇펜스님에 관한 전기 중 가장 이른 시기에 성립된 것은 사후 10년 뒤에 제자 쇼카이(聖戒, ? - 1323)가 엮은 그림전기 『잇펜 히지리에(一遍聖繪)』(이하, '히지리에'로 약칭함)입니다.
그 뒤에 한번 더 그림전기가 만들어지지만, 그 권위에 있어서는 이 『잇펜 히지리에』에 미치지 못한다고 합니다.
실로 불교사만이 아니라, 일반적인 일본의 사회사 연구에 있어서도 이 『잇펜 히지리에』는 높은 사료적 가치를 갖는다고 합니다. 그 당시의 사회를 살았던 민중들에 관한 소중한 정보들이 그림으로 그려져 있기 때문이라 합니다.
아미노 요시히코(網野善彦, 1928〜2004)라고 하는 일본사 연구의 대가가 이 『잇펜 히지리에』를 갖고서 당시 사회상황에 대한 해석을 하는 글을, 저는 읽어 본 일이 있습니다.
이 『잇펜 히지리에』를 전체적으로 한번 읽어보고 싶은데, 제가 구한 번역본은 이와나미(岩波)문고에서 나온 오오하시 토시오(大橋俊雄) 교주본인데요. 못 읽습니다. 문제는 바로 이 분의 번역언어가 우리가 배운 현대 일본어가 아닌 것 같아서입니다.
특히 잇펜스님이 읊은 와카(和歌, 5,7,5,7,7의 음수율에 따른 일본 고대의 정형시)가 많은데 그 번역문은 더욱 더 어렵습니다. 아쉬울 수 밖에 없는데, 나중에 다시 일본에서 현대일본어로 번역된 책을 찾아보아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우선 아쉬운 대로, 한문으로 쓰여진 게송만을 좀 뽑아서 번역해 보고자 합니다. 이를 통해서 스님의 사상의 핵심을 알 수 있지 않을까 해서입니다. 차례대로 번호를 붙이면서 제시해 보겠습니다.
① 십겁정각중생계(十劫正覺衆生界)
일념왕생미타국(一念往生彌陀國)
십일불이증무생(十一不二證無生)
국계평등좌대회(國界平等坐大會)
(아미타불께서는) 십겁 이전에 중생들을
다 깨닫게 하셨으니
일념에 미타의 나라로 왕생하노라.
십겁과 일념이 불이 아니라는 무생의 이
치를 깨달으면
중생의 세계와 미타의 나라가 평등한 그
자리에 앉을 수 있으리.
『잇펜 히지리에』1권에 있습니다. 이 노래는 흔히 「십일불이송」으로 이름합니다. 벌써 선취(禪趣)가 느껴지지 않습니까? 스님의 염불사상을 제가 염불선이라 부르는 이유입니다.
② 육자명호일편법(六字名號一遍法)
십계의정일편체(十界依正一遍體)
만행이념일편증(萬行離念一遍證)
인중상상묘호화(人中上上妙好華)
육자명호는 일편의 법이요
십계의 의보와 정보는 일편의 체이며
만행을 하되 망념을 떠나는 것은 일편의
깨달음이니
(이렇게 할 수 있다면) 사람들 가운데 최
고의 묘한 꽃이로세.
『잇펜 히지리에』 3권에 나오는 게송입니다. 이를 「육십만인송」이라 이름함은 앞에서 서술하였습니다. 잇펜스님의 이름이 이 게송에서 나옵니다. 학자들은 ‘일편’의 의미를 화엄적으로 해석하여, 일(一)과 다(多)의 관계로 설명하기도 합니다. 틀린 해석은 아니겠지요.
그러나, 저는 일편의 의미를 일단 일편 스님 자신의 이름, 즉 이 노래에서 ‘일편’은 잇펜스님 입장에서는 ‘나’라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육자명호는 일편 나 자신이 내세우는 법이고, 십계(=육범 + 사성)의 의보(=환경)와 정보(=생명체 = 중생계)는 모두 나 자신의 몸이다. 만행을 하지만 그 속에서 망념을 떠나있는 것이 나 자신의 깨침의 경지이다.” 이런 의미로 저는 해석합니다. 또한 스님이 중생들에게 나누어준 후다(札)에 “나무아미타불 결정왕생 육십만인”이라고 썼습니다만, 왜 육십만인이라 하였는가에 대한 해석을 함에 있어서도 이 「육십만인송」의 육십만인이라는 해석이 있습니다.
③육자지중(六字之中)
본무생사(本無生死)
일성지간(一聲之間)
즉증무생(卽證無生)
육자 가운데에
본래 삶과 죽음이 없으니
한번 외우는 사이에
곧 무생을 깨치리라
역시 『잇펜 히지리에』 3권에 있는 게송인데, 「육자무생송」이라 이름합니다. 위의 「육십만인송」에 이어져 있습니다. 역시 염불이 곧 선이 되는 경지를 노래하고 있습니다.
④일칭명호중(一稱名號中)
삼존수화용(三尊垂化用)
시방중생전(十方衆生前)
구품현래영(九品顯來迎)
한번 명호를 부르는 사이
세 분이 교화의 작용을 보이시니
시방의 중생들 앞에
구품으로 래영을 나타내 보이시네.
『잇펜 히지리에』 6권에 있는 게송인데, 공조(公朝)라는 스님으로부터 편지를 받고서 쓴 답장에 나옵니다. 그래서 「답공조서송」이라 부릅니다. 삼존은 극락삼존, 즉 아미타불, 관세음보살, 대세지보살을 말하는 것은 다 아실 터입니다. 구품은 상품상생에서 하품하생까지 아홉 등급입니다. 래영은 극락의 세 분 불보살님께서 중생을 맞이하러 오시는 것을 말합니다.
⑤아제자등(我弟子等),
원종금신(願從今身), 진미래제(盡未來際),
불석신명(不惜身命), 귀입본원(歸入本願).
필명위기(畢命爲期), 일향칭명(一向稱名),
불설선악(不說善惡), 불행선악(不行善惡).
여차행인(如此行人), 의본원고(依本願故),
아미타불(阿彌陀佛), 관음세지(觀音勢至),
오오보살(五五菩薩), 무수성중(無數聖衆),
육방항사(六方恒沙), 증성제불(證誠諸佛),
주야육시(晝夜六時), 상속무간(相續無間),
여영수형(如影隨形), 무잠리시(無暫離時),
자비호념(慈悲護念), 영심불란(令心不亂),
불수횡병(不受橫病), 불우횡사(不遇橫死).
신무고통(身無苦痛), 심불착란(心不錯亂),
심신안락(心身安樂), 여입선정(如入禪定).
명단수유(命斷須臾), 성중래영(聖衆來迎),
승불본원(乘佛本願), 왕생극락(往生極樂).
저희 제자들이
이 몸에서 미래가 다하도록
목숨을 아끼지 않고 본원으로 들어가기를
원하옵니다.
목숨이 다할 때를 기약하며
한결같이 명호를 부르며
선과 악을 말하지 않고
선과 악을 행하지 않겠습니다.
이렇게 수행하는 사람은
(아미타의) 본원에 의지하는 까닭에
아미타불과 관음 세지
스물 다섯 분의 보살님과
무수한 성중들과
육방의 갠지스강 모래알 같이 많은
증명해 주시는 모든 부처님께서
하루 스물 네 시간
끊어짐 없이 이어서
그림자가 물체를 따르는 것과 같이
잠시도 떠날 때가 없으며
자비로써 호념해 주시니
마음은 어지럽지 않으며
갑작스레 병들지 않고
갑작스레 죽지 않습니다.
몸에 고통이 없으며
마음에는 어지러움이 없으니
몸과 마음이 모두 안락한 것이
마치 선정에 들어있는 것과 같아서
잠깐 사이에 목숨이 끊어지면
성중들이 맞이하러 오시며
부처님의 본원을 타고서
극락에 왕생합니다.
『잇펜 히지리에』 8권에 있습니다. 잇펜스님의 서문(誓文)입니다. 일종의 발원문인데요. 특별히 어려운 것은 없을 것으로 생각됩니다만, ‘필명위기’는 “목숨이 마치는 임종시를 기약하면서”라는 의미로서, 지금이 곧 임종시라는 생각으로 염불하자는 것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그것이 시종(時宗)의 기본입장이니까 말입니다.
⑥계수생목여의륜(稽首生木如意輪)
능만유정복수원(能滿有情福壽願)
역만왕생극락원(亦滿往生極樂願)
백천구지심소념(百千俱祗心所念)
생나무에 새긴 여의륜보살님께 머리숙이노
니
능히 유정들의 복과 장수에 대한 소원을
채워주시며
또 능히 극락에 왕생하려는 원을 채워주시
니
백천구지 오랜 세월에 마음으로 염원하던
일이네.
『잇펜 히지리에』9권에 실려 있습니다. 여의륜관세음보살님을 찬탄하는 시입니다.
⑦서사즉시해탈산(書寫卽是解脫山)
팔엽묘법심련고(八葉妙法心蓮故)
성공즉시열반성(性空卽是涅槃聖)
육자보호무생고(六字寶號無生故)
서산산은 곧 해탈산이니
여덟 잎 묘법은 마음의 연꽃이기 때문이며
성공스님은 곧 열반하신 히지리이니
육자의 보배로운 명호가 무생하기 때문이
네.
서사산은 효고(兵庫)현에 있는 산입니다. 이 산에 잇펜스님이 참배하였을 때, 지은 시입니다. 쇼쿠(性空, 910〜1007)스님은 천태종 스님으로서, 효고현 서사산에 원교사(圓敎寺)를 개창하신 분입니다. 10세 때부터 『법화경』을 독송하였으며, 가슴에 아미타불을 새겨 모셨다고 합니다. ‘열반성’은 열반의 성인으로 옮길 수도 있겠으나, 열반의 히지리라고 하였습니다. 일본불교에서 히지리, 즉 ‘저자거리의 성인’ 혹은 ‘아미타의 성인’이라는 의미에서 큰 의미가 있기 때문입니다. 잇펜스님 역시 히지리이지요. 그래서 『잇펜 히지리에』라고 하여, 그의 전기를 읽을 때에도 ‘히지리/聖’가 들어있는 것이다.
이상 일곱 수의 게송을 옮겨보았습니다. 이 외에도 12지물(持物)에 대한 것이 있는데, 이는 엄격한 의미에서 한시 형식은 아닙니다. 그래서 여기서는 생략하지만, 나중에 따로이 소개하고자 합니다.
흔히 우리는 불가의 한시라고 한다면, 선시를 떠올리는데요. 그러나, 잇펜스님의 경우에서 보듯이 정토의 신앙세계를 노래한 시도 모아볼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이른바 정토시(淨土詩)라 할 만한 것들 말입니다.
10. 가쿠신(覺心) 선사와의 법거량
앞에서도 말씀드렸습니다만, 잇펜스님의 정토사상은 염불선이라 할 수 있습니다. 고려 중기 이후 우리의 선사스님들이 가졌던 염불관과 거의 유사한 생각을 갖고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타력의 정토신앙에서 자력의 최고봉인 선(禪)을 다시 만날 수 있다니 말입니다.
야나기 무네요시의 비유에 의하면, 이쪽에서 열심히 산을 올라가서 정상에 이르러 보니 저쪽에서 열심히 올라온 사람들을 만나는 것과 같다는 것입니다. 자력의 궁극에서 타력을 만나고, 타력의 궁극에서 자력을 만난다는 것입니다. 이 자력과 타력의 하나됨을 구현해 보인 분이 잇펜스님이라 평가하고 있었습니다. 그런 점에서 정토신앙의 정점에 서 있는 분이 잇펜스님이라, 야나기는 말하고 있습니다. 그의 그러한 관점이 『나무아미타불』 안에 자세히 서술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잇펜스님은 선사와의 만남을 통해서 선사로부터 인가를 얻고 있기도 합니다. 바로 임제종의 선승으로서 입송하여 허당(虛堂)으로부터 인가를 받아온 법등(法燈)국사 가쿠신(覺心, 1209〜1298)선사와 만나서 선적인 측면에서도 교감을 나누었다 합니다.
가쿠신스님이 잇펜스님께 “망념이 일어나면 망념인 줄 알아차려라(念起卽覺)”라는 가르침을 내립니다. 선수행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가르침입니다. 그러자 잇펜스님은 다음과 같이 와카 한 수를 지어서 화답합니다.
이름 외울 때
부처님과 나 모두
없어지리라
나무아미타불만
그 소리만 남으리
그러나 법등국사는 이 노래를 듣고서 “아직 철저하지 못하다”라고 비평합니다. 인가할 단계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물리치면서 다시 잇펜스님을 좀더 코너로 몰아갔다고 볼 수 있겠지요. 잇펜스님도 둔한 사람이 아니니, 이내 선사의 가르침을 알아챕니다. 그래서 다시 와카를, 다음과 같이 수정해서 제시합니다.
이름 외울 때
부처님과 나 모두
없어지리라
나무아미타불만
나무아미타불만
앞의 와카는 아미타불도 나도 사라지고 “나무아미타불”만이 남으리라는 의리를 말한 것이지요. 말하자면 아직 알음알이가 남아 있는 의리선(義理禪)의 단계라고 할 수 있다면, 후자는 그러한 알음알이가 지워졌습니다. 알고 있는 것이 아니라 들어갔음을 보여준 것입니다. 조사선(祖師禪)의 단계에 비유할 수 있을까요.
이에 법등국사는 인가의 징표로서 수건과 약상자[藥籠]를 내렸다 합니다. 여기서 수건은 손으로 짠 것으로 길이가 1.9미터 정도 되는 것입니다. 스님들이 옷 위에 둘러서 앞쪽에서 묶도록 된 천 같은 것이었다 합니다.
11. 몇 수의 와카(和歌)를 읽다
잇펜스님께서는 한문의 게송을 몇 수 남기기도 하셨지만, 일본의 정형시인 와카를 여러 수 남기고 있습니다. 스님의 전기를 그림으로 그리고 글을 덧보탠 『잇펜 히지리에(一遍聖繪)』를 통해서 전해져 왔습니다.
다카노 오사무(高野 修)선생의 저서 『잇펜성인과 히지리에』라는 책을 읽을 때, 거기서 와카를 여러 수 보았습니다. 하지만 일본의 고어로 쓰여진 와카를 해독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소개하지 못하였습니다. 하지만 그동안 『나무아미타불』 역주 스터디를 하면서 다소 고어에 대한 감이 조금은 늘었던 것같습니다. 이번에 다만 몇 편이라도 이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 번역을 시도해 봅니다.
물론 와카라는 것이 5, 7, 5, 7, 7이라고 하는 음수율(音數律)을 정확히 지키는 것이라서, 우리말로 옮기기가 쉽지는 않습니다.(와카의 5, 7, 5, 7, 7에서 앞 부분의 5, 7, 5,만으로 시를 이룰 때 곧 하이쿠가 됩니다.) 아무래도 시라는 것은 외국어로 옮겼을 때는 원어에서 맛볼 수 있는 것을 많이 상실할 수밖에 없습니다. 다시 한번 그런 점을 실감합니다만, 우리로서는 뜻이라도 대충 짐작할 수밖에 없습니다. 다만 가능하면 와카의 음수율에 맞추어 보려고 노력하였습니다. 즉 우리말 음절 수 역시 5, 7, 5, 7, 7자가 되도록 하였습니다. 그러다 보니 할 수 없이 의역이 될 수밖에 없는 부분이 있습니다만, 그런 경우에는 해설을 통해서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①스스로 홀로
서로 만날 때조차
헤어질 때도
언제나 홀로이네
홀로일 밖에 없네
잇펜스님께서 한번 출가하셨다가 아버지의 부름으로 다시 집으로 돌아와서는 아마도 결혼을 하였던 것같습니다. 그러다가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자, 집안정리를 다 하고서는 두번째의 출가를 하십니다. 이때 집을 떠날 때는 일행이 몇 사람 있게 됩니다. 초일(超一)은 아내, 초이(超二)는 딸, 염불방(念佛房)은 집안에서 일하는 하인과 같은 존재이고, 쇼카이(聖戒)는 동생입니다. 이 분이 스님 사후에 『잇펜 히지리에』를 쓰는 분입니다. 그림은 엔이(円伊)라는 화가가 그립니다만 ---.
『잇펜 히지리에』2권에는 쇼카이와 헤어지는 장면이 나온다고 합니다. 그때 지은 와카가 위의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오사무 선생의 말에 따르면 그러한 상황을 생각할 때, 떠오르는것이 위의 노래였다 합니다. 함께 있을 때나, 헤어질 때나 우리는 홀로라는 철저한 고독의 탄성입니다. 그것이 자연이라는 것이지요. 그 자연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는 마음이 녹아있는 시입니다.
②어디에서나
나무아미타불을
외우신다면
나무아미타불에
태어남도 맡겨야
이 노래에는 잇펜스님의 염불선 사상이 오롯이 들어있는 것으로 생각되는 와카입니다. 비록 짧지만 말입니다. 『잇펜 히지리에』에는, 스님께서 가고시마신궁(鹿兒島神宮)이라는 신사를 참배했을 때 신으로부터 얻은 노래라고 합니다. 즉 이 노래의 작자는 가고시마신궁의 신이라고 합니다만, 실제로는 잇펜스님의 마음이 담겨 있습니다. 이렇게 잇펜스님의 생애에는 신사의 신과 깊은 연관이 있음을 보여줍니다. 신불습합의 모습입니다. 이 가고시마신궁의 신 역시 아미타불의 수적(垂迹, 화현)이라고 합니다.
잇펜스님의 생각은 이렇습니다. 우리가 평소에 “나무아미타불” 염불을 많이 해놓으면, 나중에 임종시에 그 힘으로 왕생할 수 있다고 보지 않습니다. 그렇게 되면 나, 아미타불, 그리고 나무아미타불이 다 따로 놀게 되는 것이겠지요. 그렇지 않고, “나무아미타불” 염불하는 순간, 나도 없고, 아미타불도 없고, 존재하는 것은 오직 “나무아미타불”만이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극락에 왕생하는 것은 “나무아미타불” 자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늘 우리가 “나무아미타불”이라 명호를 외우는 순간, 우리는 어느덧 “나무아미타불” 속으로 사라져서, 그 순간 왕생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순간순간 염불이 곧 순간순간 왕생이 됩니다.
이제 스님은 말씀하십니다. 우리의 왕생은 “나무아미타불”에 맡기라고 말입니다. 사후대책은 “나무아미타불”에게 맡기라, 맡겨놓고 안심하라 말합니다.
③비오면 젖고
젖게 되면 마르니
소맷자락 위
비조차 사랑하고
도모하지 말지니
1280년, 스님께서 입적하시 기 3년 전 나가노(長野) 쪽에서 관동지방으로 가시다가 오노데라(小野寺, 도치기현)에서 스님 일행은 비를 만납니다. 그 일행 중에 마침 비구니스님도 있었습니다. 이 비구니스님은 비가 오니까, 당황하여서 옷이 젖지 않도록 하고, 또 그 옷으로 얼굴을 뒤집어 쓰고 했던 모양입니다. 이렇게 잇펜스님의 유행길에 따라 나서는 일행들의 형편이 비가 오면 비를 맞을 뿐, 어디 비를 피할 데를 얻기도 쉽지 않은 날이 비일비재하였습니다.
고생스럽기 짝이 없는 일이었지요. 이 비구니스님의 당황하는 모습을 보고서, 스님께서는 위의 와카를 읊으셨다 합니다. 마지막 구절 “도모하지 말지니”라는 표현은 참으로 옮기기 어려웠습니다. 달리 더 좋은 표현을 찾지 못했습니다. 오는 비 속에 스스로를 내다맡길 뿐, 그것을 피하려고 의도하거나 도모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소맷자락 위에 떨어지는 비조차 사랑할 수 있는 이가 아니라면 어찌 유행자(遊行者)가 될 수 있었겠습니까. 우리 스님, 잇펜스님 이렇게 살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스님을 사랑합니다.
④마음 오롯이
서쪽으로 매어놓고
흘러 가노니
물 위의 거품같이
애닯은 이 내 세상
무사시노 구니(武藏國, 도쿄, 사이타마현, 가나가와현의 일부 지역)의 한 입도(入道, 재가신자)가 “출가해서 시중에 들어가고 싶다”고 했지만, 스님께서는 무슨 까닭인지 거절했다 합니다. 이에 그 재가신자는 스님께 어떻게 하면 극락에 왕생할 수 있는가, 물었습니다.
“그저 염불하면서 죽는 것 밖에 방법이 없다.”
잇펜스님의 대답입니다. 그러저 그 재가신자가 하는 말이 “그렇다면 간바라(浦原)에 가서 기다리고 있겠습니다.”라고 하고서는 먼저 길을 떠났습니다. 그리고 후지가와(富士川)라는 곳에서 말하였습니다.
“나무아미타불이라 말하면서 죽으면 아미
타불께서는 맞이해 주신다고 히지리(잇펜스
님 --- 인용자)께서 말씀해 주셨으므로, 저
는 극락에 갑니다. 아무쪼록 이별을 슬퍼하
지 말아주십시오.”
그리고는 말에 매어두었던 끈을 풀어서, 허리에 매고서는 입수(入水)해 버렸습니다. 이에 자색(紫色) 구름이 일어나고 서쪽으로부터 음악이 들려왔고, 끈이 위로 끌어 올려지면서 그 재가신자는 합장한 자세 그대로 하늘로 올라갔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모습은 흔히 『왕생전』(왕생한 사람들의 전기)에 나오는 표현입니다. 자색 구름이 일고, 서쪽으로부터 음악이 들려오고 하는 묘사 말입니다. 이 재가신자는 산 채로 서쪽으로 왕생했다는 이야기입니다. 우리의 『삼국유사』에 나오는 ‘욱면비의 왕생(郁面婢念佛西昇)’ 장면과도 유사합니다. 다만 여기서는 입수왕생(入水往生)이라는 점이 다를 뿐입니다.
어쨌거나 이러한 장면을 보시고서는 잇펜스님이 읊은 시가 바로 위에 인용한 와카입니다. 서쪽세상과 이 세상이 잘 대비되어 있습니다. 물 위의 거품과 같고, 애닯은 이 세상을 떠나서 서쪽으로 마음을 매어놓고, 왕생하는 왕생인(往生人)의 모습을 잘 그리고 있습니다.
⑤추려면 춰요
춤추려면 추어요
봄날 말처럼
나아가야 할 그 길
아는 이는 알아요
1284년 스님께서는 천태종의 총본산인 엔랴쿠지(延曆寺)와 가까운 시가(滋賀)현의 어느 엔마도(염마당, 염라대왕을 모신 작은 절)에서 머물고 있었습니다. 이때 엔랴쿠지의 동탑(東塔)에서 한 스님이 찾아왔습니다. 그 스님은 잇펜스님의 무리들이 추는 춤염불, 즉 염불춤을 보고서는 “춤을 추면서 염불을 하는 것은 괴이한 것이 아닌가”라고 잇펜스님을 비난하였습니다. 이에 잇펜스님께서는 위의 노래로 대답을 했다는 것입니다.
봄날의 말은 겨우내 갇혀지내다가 해방된 말을 가리킵니다. 춤을 추는 것은 정서의 해방입니다. 그렇게 해방된다고 해서 곧바로 불법과 상반되는 것은 아니라는 이야기입니다. 그 속에서도 봄날 말이 지나가야 할 그 길을 아는 이는 안다는 것입니다.
⑥함께 추어요
어찌됐든 추어요
내 속 망아지
아미타의 가르침
들으니 기쁘다네
이 노래는 ⑤의 와카에 이어서 읊은 연작시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내 속 망아지’는 우리 마음 속에서 뛰어노는 번뇌망상을 말하는 것입니다. 춤을 추더라도, 그 춤을 추면서도 외는 “나무아미타불” 염불을 들으니 어찌 기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라는 말씀입니다.
이렇게 춤을 추면서 염불하는 것은 우리의 원효스님에게서 예를 볼 수 있고, 일본에서도 구야(空也, 903〜972)스님이 이미 시도한 적이 있었습니다. 잇펜스님은 그러한 전통을 이었던 것입니다.
오늘은 여기까지 말씀드리겠습니다. 차차 공부가 된다면, 또 더 옮기면서 소개하고자 합니다. 나무아미타불
12. 왕생의 주체
옛날부터 지금까지 인도철학과 불교학의 영역에서 가장 많은 관심을 불러모으는 주제의 하나가 “누가 윤회를 하는가” 라는 문제입니다. 이른바 윤회의 주체 문제입니다.
그런데 이 문제는 정토신앙의 입장에서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정토신앙의 맥락에서 문제되는 것은 윤회가 아니라 왕생이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정토에 갈 것인가, 라는 데에 관심이 놓여 있습니다. 물론 겐신(源信, 942〜1017)스님의 『오죠요슈(往生要集)』에서는 정토를 말하기 전에 먼저 예토를 말합니다. 즉 지옥 아귀 축생 수라를 다 말합니다. 잔인한 장면을 있는 그대로 다 보여주는 것이지요. 하지만 이는 윤회에 관심이 있어서가 아니라 정토에의 관심을 높이기 위해서일 뿐입니다.
그래서 정토신앙을 갖고 있는 사람들에게 윤회는 걱정꺼리가 아닙니다. 지옥 아귀 축생 수라의 악취(惡趣)는 걱정할 것이 못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우리가 고민(?)하는 것은 정토에 가서 나는 것, 즉 왕생입니다.(사실 아미타불의 자비로 인해서 왕생할 것이므로 이 역시 걱정꺼리는 아닙니다만 ---.)
이 왕생에 대해서 종래, 호넨스님의 정토종에서는 생전에 열심히 “나무아미타불”을 염해 놓으면, 임종시에 아미타부처님께서 맞이하러 와주신다고 말합니다. 이를 내영(來迎)이라 합니다. 그러니 정토종에서 모시는 아미타불은 내영해주시는 아미타불입니다. 이러한 내영사상은 우리에게도 널리 퍼져있습니다. 「아미타내영도」라는 그림들이 많이 그려진 것도 그러한 분위기를 전해주고 있습니다.
한편 신란스님의 정토진종에서는 내영을 말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내영은 임종시에, 즉 이승에서의 숨이 넘어갈 때에, 숨이 끊어질 때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냐는 것입니다. (물론 『삼국유사』에 나오는 욱면비염불서승의 이야기나, 건봉사에서의 발징화상 외 31인의 왕생은 임종왕생이 아니라, 지금 살아 있는 채로 허공에 떠서 날아가는 왕생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아미타불께서 내영해 주신 것입니다.) 그것은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지금 한 생각, 아미타부처님의 원력을 믿으면 지금 이 자리에서 바로 왕생이 이루어졌다고 봅니다. 이를 평생업성(平生業成)이라 말하는 것이지요.
이렇게 믿음을 내는 바로 그 순간에 왕생이 결정되므로, 굳이 아미타부처님께서 내영을 와야 할 필요도 없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진종의 가르침에는 선적(禪的)이고 돈오적인 그 무엇이 느껴집니다. 이 점이 신란스님의 큰 특징의 하나라고 봅니다. 저는 이미 신란에게서도 선적인 정토가 말하여 진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다만 그 선적 성향이 더욱 철저화된 것이 잇펜스님일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전통 속에서 가장 늦게 출현한 잇펜스님은 내영이니 불래영(不來迎)이니, 임종시의 왕생이냐 평소의 왕생이냐 하는 문제를 다 뛰어넘어 버립니다. 그 실마리가 명호입니다. “나무아미타불”입니다. “나무아미타불”, 이렇게 염하는 그 순간에 왕생은 이루어진다고 봅니다. 그러면서 말씀하시기를, “나무아미타불이 왕생한다”고 하였습니다.
일찍이 문제가 되었던 윤회의 주체 대신에, 왕생의 주체는 무엇인가 라는 문제가 다시 제기될 법도 합니다. 하지만 잇펜스님은 그 질문을 아예 틀어막아 버립니다. “누가 왕생하는가?” 라고 묻지 말라. 내가 가는 것도 아니고, 아미타불이 오는 것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내가 간다고 생각하는 것은 호넨스님의 정토종이고, 아미타불이 온다고 생각하는 것은 신란스님의 정토진종입니다.
그럼 도대체 누가 가는가? 잇펜스님은 바로 “나무아미타불”이 간다고 대답하십니다. 여기에는 아미타불께 나아가는 나 자체가 없을 뿐만 아니라, 나를 맞이하러 오시는 아미타불 역시 없습니다. 있는 것이라고는 “오직 나무아미타불” 뿐입니다. 명호가 갑니다. 명호만이 왕생합니다. 이는 무아왕생(無我往生)이라 할만 합니다.
이것이 잇펜스님의 시종입니다. 이러한 스님의 가르침이야말로 일본정토사상사의 클라이맥스라고 야나기 무네요시는 말합니다. 『나무아미타불』이라는 책, 특히 제13 ‘래영불래영’조에서 입니다.
이러한 잇펜스님의 가르침을 제가 시로 한번 더 노래해 봤습니다. 스님께서 즐겨읊으셨던 와카라는 형식을 빌어서입니다. 와카에서는 제목이 없는데, 저는 그와 달리 제목을 붙여 두었습니다.
그때
--- 時衆
나는 두고서
나무아미타불만
극락에 가네
나무아미타불만
나무아미타불만
(2012. 1. 2)
“나무아미타불” 속에서는 나도 없고, 아미타불도 없습니다. 아미타불도 없다는 소식을 표현하기에는 음절 수가 제한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나는 두고서”라고만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나는 두고서” 속에 “아미타불도 없이”라는 의미가 중첩된 것으로 읽을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여기까지 쓰고 이 글을 마치려 하니, 또 한 수가 떠오릅니다.
왕생가(往生歌)
님 찾는 소리
나무아미타불에
나를 맡기네
윤회도 벗어놓고
극락도 벗어놓고
(2012. 1.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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