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노포동 ‘깊은 산속’ 농장엘 갔습니다. 그 동안 농장형님은 귀농학교도 수료하고
여전히 농사지을 궁리로 바쁘네요. 이런 저런 얘기 나누는데 지난 밤 잠을 설친 탓인지
잠이 쏟아집니다. 마침 장난감같은 포크레인 가지고 일하러 가신 틈을 타 잠시 소파에
누워 한뎃잠을 잤네요. 꿈결같이 포크레인 작업하는 소리가 들리고 어느새 형님이
담요를 덮어주었는지 전화벨 소리에 잠이 깼는데도 코끝에 와닿는 상쾌한 한기와 담요
속 포근한 온기를 즐기며 한참을 누워서 아무 궁리도 걱정도 없습니다.
내가 좋아하는 알래스카 사진작가 ‘호시노 미치오’의 글에
“볼을 스치는 북극바람의 감촉, 여름철 툰드라에서 풍기는 달콤한 냄새, 백야의 엷은 빛,
못보고 지나칠 뻔한 작은 물망초. 문득 걸음을 멈추고 그 풍경에 마음을 조금 얹어서
오감의 기억 속에 남겨놓고 싶다, (...) 또 하나의 시간이 흐르고 있는 것을 마음
어디에선가 느끼면서 살고 싶다.”는 귀절이 있습니다.
언감생심 꿈도 못꿀 정경이지만 혹 나에게 흐르는 또 하나의 시간은 없을까요. 어쩌면
오늘 농장에서의 달콤한 잠이 그러할 테고 오래전 설악산 자락의 석양빛에 물든
분교에서 어린 오누이가 그네타는 모습, 어느 가을날 오후 처음 들른 평사리 마을
언저리에서 바라본 악양들의 황금빛 물결, 겨울 남도여행길 늦은 저녁 고갯마루에서
마주친, 보름달을 조명으로 환하게 펼쳐진 영암읍내와 월출산의 기막힌 타이밍, 어느
비내리시는 인적없는 밤 독서실 마치고 8차선도로의 신호를 받아 미끄러지듯 정지하며
바라본 가로등 불빛 너머 꿈결같은 밤하늘...
그렇지요. 마음을 조금만 얹는 게 중요하지요. 수류화개(水流花開)라 하였나요.
물흐르고 꽃피는 자리에 살짝 얹은 그 마음처럼, 궁리도 걱정도 없이...
가을이 깊어지네요. 좋은 날^^
가을농장1
가을농장2
가을농장3
가을농장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