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09월 26일 “오늘의 말씀 묵상 편지”
“그는 자기의 불법을 담당할지니라.”
“만일 또 어떤 사람이 주의 명령들에 의해 행하는 것이 금지된 이런 것들 중에 어떤 것을 범하여 죄를 지으면 비록 부지중이라도 죄가 되나니 그는 자기의 불법을 담당할지니라. 그는 네가 정한 값대로 양 떼에서 흠 없는 숫양을 취해 속건제물로 제사장에게 가져올 것이요, 그가 부지 중에 잘못하고 깨닫지 못한 것에 대해 제사장이 그를 위하여 속죄한즉 그가 용서함을 받으리라. 이는 속건제이니 그가 참으로 주를 대적하고 범법하였느니라." 하시니라.(레위기 5:17-19)
("If a person sins, and commits any of these things which are forbidden to be done by the commandments of the LORD, though he does not know it, yet he is guilty and shall bear his iniquity. "And he shall bring to the priest a ram without blemish from the flock, with your valuation, as a trespass offering. So the priest shall make atonement for him regarding his ignorance in which he erred and did not know it, and it shall be forgiven him. "It is a trespass offering; he has certainly trespassed against the LORD.")”
임마누엘!!
본문에서 우리는 매우 중요한 말씀을 읽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부지하다는 것은 자기의 불법이라고 하셨습니다.
한글 개역개정 성경에서는 ‘만일 누구든지 여호와의 계명 중 하나를 부지중에 범하여도 허물이라 벌을 당할 것이니 그는 네가 지정한 가치대로 양 떼 중 흠 없는 숫양을 속건제물로 제사장에게로 가져갈 것이요.
제사장은 그가 부지중에 범죄한 허물을 위하여 속죄한즉 그가 사함을 받으리라. 이는 속건제니 그가 여호와 앞에 참으로 잘못을 저질렀음이니라.’
여기 ‘불법’은 히브리어 'ashem(아샴)'은 ‘죄를 범하다’, ‘죄가 있다’, ‘유죄로 판결되다’, ‘형벌을 당하다’.
아샴(동사)은 기본어근이며, '죄(과오)를 범하다’, ‘위반하다(offend)’, ‘죄가 있다(be guilty)'를 의미합니다.
구약성경에서 이 단어는 35회 나오며, 다음과 같이 사용되었습니다.
1. 단순 능동형(칼형)에서
1) '위반하다, 죄를 범하다, 잘못하다, 위해를 가하다'(레 5:19, 민 5:7, 대하 19:10, 겔 25:12).
2) '죄가 있다, 죄를 범하게 되다'(레 5:4, 레 5:5, 겔 22:4, 호 13:1, 삿 21:22, 렙 50:7, 호 4:15, 합 1:11). 속죄제를 요구하는 죄(레 4:13, 레 4:22, 레 4:27), 속건제를 요구하는 죄(레 5:2, 레 5:3, 레 5:17, 레 5:23, 민 5:6)에 대해 언급합니다.
아샴이란 동사는 오경에서 레 4장, 레 5장, 레 6장과 민 5:6, 민 5:7에 나온다. 이 단어가 사용된 배경은 제의적, 윤 리적인 것입니다. 죄를 지은 사람은 누구든지 죄인이었습니다. 죄를 말소하는 절차는 아래에 개괄되어 있습니다. 대 개, 배상은 현금가치에 20퍼센트의 현금 벌금을 추가하여 행해졌음에 틀림없습니다. 특정한 가치를 지닌 짐승을 제 사장에게 가져와서, 죄를 고백하고 특별한 방식으로 그 집승을 제물로 바쳤습니다. 그 목적은 속죄와 죄의 용서였습 니다.
3) '유죄로 판결되다, 형벌을 당하다'(시 34:22, 시 34:23, 잠 30:10, 사 24:6, 렘 2:3, 호 5:15, 호 10:2, 호 14:1, 슥 11:5, 겔 6:6).
2. 사역 능동형(히필형)에서
시 5:10의 '하아쉬멤'은 '그들에게 유죄를 선언하다'를 의미합니다: "하나님이여 저희를 정죄하사 자기 꾀에 빠지게 하시고 그 많은 허물로 인하여 저희를 쫓아내소서 저희가 주를 배역함이니이다".
또 ’담당할 지니라.‘는 히브리어 ' nasa(나사) 는 기본어근이며, '들어올리다, 나르다, 가지고 가다, 취하여 가다'를 의미합니다.
구약성경에서 이 단어는 약 650회 나오며, 칼형이 600여회, 나머지는 니팔, 피엘, 히필, 히트파엘형으로 사용되었다.
1. 단순 능동형(칼형)은 기본적으로 세 가지 각기 다른 의미, 즉 ① '들어 올리다(to lift up), ② '가져가다, 나르다(to bear, carry), '지탱하다(support)’, ③ '취하다(to take)‘, '제거하다(take away)’를 나타냅니다.
1) '들어올리다(to lift up)‘라는 의미는 문자적으로, 그리고 비유적으로 여러 어구에서 사용됩니다. 즉 맹세할 때(신 32:40, 겔 20:5, 겔 20:6, 겔 20:15등), 폭력을 행할 때(삼하 18:28), 신호로서(사 49:22), 형벌을 가할 때(시 10:12), '손을 들어올린다'.
그리고 명예를 회복시킬 때(창 40:13, 창 40:20), 즐거움과 독립심을 보일 때(욥 10:15, 슥 2:4, 시 83:3), 그리고 성문의 상인방들(lintels)을 나타내는 비유적 표현으로서(시 24:7, 시 24:9), '머리를 들어올리다'. 선한 양심, 확신, 호의, 혹은 용납의 표시로서 '얼굴을 들다'(삼하 2:22). 종종 '바라보다', 혹은 '보다'라는 동사 앞에서 종종 중복적으로(창 13:10, 창 13:14), 사람에 대한 사랑이나 욕망 때문에(창 39:7), 하나님을 향하여(시 123:1),
그리고 우상에게(겔 18:6, 겔 18:12, 겔 18:15) '눈을 들다'. 또한 '울고 외치다'를 뜻하는 동사 앞에 중복적으로(창 27:38, 삼상 30:4), 그리고 즐거워하는 것을 나타낼 때(사 24:14) '소리를 높이다'.
여호와의 이름(출 20:7), 기도(렘 7:16, 렘 11:14), 노래(민 23:7), 비난(시 15:3)과 같은 것을 '목소리로(어떤 것을) 높인다', 마음이 '사람을 들어올림'으로써 행동을 유발시키거나(출35:21, 출 35:26, "마음에 감동을 받아", 출 36:2) 오만과 교만(왕하 14:10)을 야기시킵니다.
이상 세가지 중요한 의미 중에서 첫번째 의미가 이 단어를 죄와 연결시키는 것은 또한 들어올린다, 집어올린다라는 범주에서입니다. 사람은 성막을 더럽힘으로써(출 28:43, 민 18:22), 이웃을 미워함으로써(레 19:17), 동물의 시체를 만짐으로써(레 22:9), 혹은 여호와의 성물을 더럽힘으로써(민 18:32) 부정과 죄를 집어올릴 수 있습니다. 즉 초래할 수 있습니다, 혹은 물들 수 있습니다.
2) '지다, 가지고 가다, 나르다'라는 두번째 의미의 범주는 특히 죄 혹은 죄의 형벌을 지는 것에 대해 사용됩니다. 예컨대 가인은 "내 형벌이 내가 질 수 있는 것보다 더 크다"(한글개역, "내 죄벌이 너무 중하여 견딜 수 없나이다" 창 4:13)라고 불평합니다. "그가 그의 죄를 질 것이다"라는표현이 빈번히 나옵니다(레 5:1, 레 5:17, 레 7:18, 민 5:31, 민 14:34 등). 이것은 대표나 대리(레 10:17)에 의해 다른 사람의 죄를 진다는 개념이나 속죄양(레 16:22)의 개념에 쉽게 이르릅니다.
사 53:11의 어근 사발(짐을 지다)은 사 53:4에서처럼 다음 구절에 나오는 나사(지다), 즉 "종이 많은 사람의 죄를 지다"와 병행됩니다. 이러한 짐(debits = 차변들)은 세상 생활을 영향하는 현세적 근거에 의해 아버지로부터 아들에게로 넘어갈 수 있습니다(민 14:31, 민 14:33).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은 그들이 주장해 온 바대로 이것을 계속적이고 필수적인 사태로, 특히 영원토록 숙명적으로 적용하는 잘못을 범했습니다(겔 18:19-20). 왜냐하면 신 24:16에서는 그 반대가 분명히 진술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3) 세번째로 이 단어는 제거함, 용서, 혹은 죄, 불의, 범죄의 용서를 강조합니다. 이러한 죄를 제거하는 행동은 하나님의 속성 중의 하나로 열거될 정도로 특징적입니다(출 34:7, 민 14:18, 미 7:18). 종종 나사의 이러한 형태는, 예를 들면 요셉의 형제들의 심부름꾼(창 50:17), 바로(출 10:17), 이스라엘을 위하여 모세(출 32:32,민 14:19), 나봇을 위하여 아비가일 (삼상 25:28), 사무엘에게 사울(삼상 15:25)이 드리는 중보 기도에서 사용됩니다. 이것은 또한 여호수아가 임종을 앞두고 한 말에서도 사용됩니다(수 24:19). 이 의미의 대표적인 표현은 의심할 여지 없이 시 32:1, 시 32:5에서도 발견됩니다. 죄는 제거될 수 있기 때문에 용서되고 잊혀질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자기의 작은 허물이나 불법을 담당하여 속죄를 위하여 어린양을 속죄의 제물로 드리게 하였습니다.
아무리 작은 허물이나 불법도 죄이기에 그 결과는 사망입니다.
어린양은 대속의 제물입니다. 이 어린양의 죽음은 바로 어린양으로 이 세상에 오셔서 친히 세상의 모든 죄를 친히 짊머져 주신 구주 예수를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주 예수 그리스도만이 우리의 구주이십니다. 죽을 수밖에 없는 나를 살려 주심은 어린양 주 예수의 은혜임을 이렇게 이미 레위기 제사법을 통하여 말씀해 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서울에서
이 우복 목사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