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키타의 강한 손이 이츠키의 어깨를 잡았다.
바로 앞에서 눈이 튀어나올 것처럼 그렇게 강한 힘을 동반했다.
그러나 이츠키의 팔이 오키타의 다음 행동보다 빨랐다.
자신의 팔을 잡고 있는 오키타의 손을, 팔을 가볍게 움직이며, 힘의 반동을 만들어 뿌리치고는 동시에 오키타를 학교의 바닥으로 밀어버렸다.
오키타가 가을 낙엽처럼 힘없이 복도의 바닥으로 나가 떨어졌다.
그러나 씩씩거리는 폼이 아직 물러설 기미가 없다.
이츠키는 아직도 풀이 죽지 않은 오키타를 바라보고 인상을 찌푸렸다.
거친 분노의 표정을 실은 오키타가 넘어진 몸을 가뿐하게 일으켰다.
「잡아.」
이츠키의 말을 기점으로 어디서 나온 것들인지 한 무더기의 아이들이 쏟아져 나왔다.
「건들지 마라.」
으르렁거리는 폼이 곧장 이츠키에게 달려들 기세였다.
민주를 척하고 감싸고 있는 이츠키의 팔을 본 오키타의 눈에서 불이 뿜어졌다. 이츠키의 얼굴에 섬광처럼 승리가 일다가 사라졌다.
아이들에 의해 둘러싸인 오키타가 분노의 빛을 이츠키의 얼굴이 뿌려졌다.
꼼짝도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저 자신 만만하게 구는 이츠키에게 자신의 권력을 일깨워 줄 수 있다면...
저 건방진 이츠키에게 자신의 존재를 알릴 수만 있다면...
그러나...
이미 늦었다.
그렇게 이츠키는 민주의 입술을 훔치고 있었던 것이다.
아득한 기분에서 정신이 든 민주는 그제서야 그의 품에서 벗어나기 위해 바둥거리기 시작했다. 억센 힘이 민주, 자신의 허리를 더욱 죄어왔다.
「악~~~!!!!」
민주는 자신의 입술을 빨고 있는 남자의 정강이 부분을 앞이 뾰족한 신발로 걷어찼다.
순간 자신을 꽉 죄고 있던 무지막지한 이츠키의 손에 공간이 생기고, 민주는 그의 손아귀에서 쉽게 벗어날 수가 있었다.
입술이 떨어졌다.
분노를 뿜고 있는 이츠키의 얼굴이 민주의 얼굴을 뜨겁게 강타했다.
순간 이츠키의 분노를 마주보고 있던 민주가 자신의 입술을 훔친 이츠키의 잘난 얼굴을 향해 손을 들어 힘껏 내리 쳤다.
짝 하는 소리가 복도 전체를 울렸다.
지나가던 아이들의 놀란 얼굴들이 슬로우 모션으로 그렇게 민주의 눈을 스쳐지나갔다.
「한국을 모욕하는 언사는 다시 듣고 싶지 않아. 이츠키. 조심해.」
그러나 그렇게 분노를 삭히기도 전에, 막 뒤를 돌아 나서려던 민주의 귀에 억양 없는 굵은목소리가 들렸다. 살이 떨릴 만큼의 위협적인 목소리였다.
「서. 사카이.」
민주가 돌아서 교실로 들어서려던 발걸음을 멈추고 그대로 우뚝 섰다.
그리고 서서히 위협적인 목소리를 해 대고 있는 이츠키를 향해 뒤를 돌아보기 시작했다.
「내가 너를 보고 있을 때는 그렇게 가버리지 말라고 했을 텐데...? 내 얼굴을 때리는 것도 이번이 마지막이다. 운 좋은 사카이.」
공기를 가르고 들리는 음성이 심상치가 않다.
먹이를 놓친 아쉬움을 짙게 풍기는 것이 곧 미친 듯이 날 뛸 듯한 분위기를 풍겼다.
순간 민주의 도전적인 눈빛과 이츠키의 어두운 눈빛이 공중에서 튀었다.
이츠키의 눈빛이 빠르게 변하면서, 알 수 없는 분위기를 뿌리기 시작했다.
깊은 심연의 바다 속으로 한없이 끌려가는 기분이 드는 끌림이었다.
그렇게 한없이 깊게만 깊게만 빠져들고 있었다.
「그래, 그까짓 것, 마음대로 해. 싸구려들끼리 붙어 있던지 삶아 먹던지.」
순간 민주의 주위를 감싸고 있던 환상이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이츠키가 그대로 민주를 스치고 교실로 성큼 성큼 걸어 들어갔다.
마치 무성 영화 필름이 중간중간 끊기면서 그렇게 움직이는 것 같았다.
「자. 오늘은 일본 주변국에 대한 공부를 해 봅시다. 일단 한국이라는 나라는 삼국 시대부터 시작을 합니다. 여기 지도를 보시죠. 여기 이 백제라는 나라는 우리 나라 사람이 선조입니다. 우리 일본에서 건너간 물건들이 한국의 삼국 시대에 많이 남아 있습니다. 결국 일본은 B.C 19년부터 한국을 통치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무척 애석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역사 선생의 자랑스러운 듯한 목소리가 교실 전체를 울렸다.
절대로 찬성할 수 없는 말소리다.
「한국은 고조선이 처음 나라입니다. 단군은 서기전 2333년 아사달(阿斯達)에 도읍을 정하고 단군 조선을 개국했습니다.」
순간 주위가 어수선해지면서 학급 학생들의 시선이 민주에게로 쏠렸다.
「사카이? 무슨 말이지?」
역사 선생의 눈빛이 몹시 못마땅한 얼굴로 민주의 얼굴 위를 빠르게 배회하기 시작했다.
「역사는 올바로 가르쳐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민주의 도전적인 눈빛이 역사 선생의 눈빛과 마주쳤다.
「내 역사관이 잘 못 되었다고 말하고 있는 거냐?」
역사 선생이 민주의 곁으로 성큼 다가왔다.
「그래, 너의 그 잘난 한국의 역사가 그리도 중요하더냐? 후진국의 나라 정도야 어찌 되든 무슨 상관이야? 너희 나라는 동남아의 역사에 대해 자세히 상세히 구체적으로 가르치든? 건방진 한국 계집.」
몹시 거들먹 거리는 역사 선생의 유들 유들한 얼굴이 민주의 정수리 부분에서 뿌려졌다.
그리고는 역겨울 듯한 비웃음을 흘리며, 역사책을 들고 민주의 정수리 부분을 신경이 날카로워 질 때까지 건드렸다.
어느 순간, 역사 선생은 손끝에 힘을 실으며, 민주의 머리를 자신이 가지고 있던 역사책으로 세게 눌러버렸다. 민주의 얼굴이 무겁게 짓누르고 있는 역사책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책생 면에 쿵 하고 닿았다.
학급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교실 전체에 공포스럽게 번져갔다.
「선생은 학생에게 자신의 과목에 대해 올바르게 가르칠 의무가 있습니다.」
또다시 일제의 학생이 말소리가 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오키타의 분노의 얼굴이 역사 선생의 얼굴에 닿았다.
「아, 오키타 군?」
「학교에서 녹을 먹는 이상 학생들이 제대로 된 교육을 받아야 정상 아닌가요? 돈이 아깝지 않게... 게다가 교실 내에서의 학생 폭력이라... 」
많이 흥분한 상태의 오키타다.
그럴 때의 오키타는 위험했다.
그는 ... 일본 최고의 야당 야스다 총재의 외손자였던 것이다.
역사 선생의 얼굴이 심하게 일그러졌다.
자존심도 자존심이거니와 아무 것도 아닌 한국 아이의 신변 때문에 자신의 위치가 볼상사나워 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오키타 군. 그건...」
「누가 감히 건방지게 수업시간을 마음대로 어지럽히고 있는 거지? 제대로 된 수업을 들을 수가 없어. 한낱 한국 여자아이의 신변이 그렇게 중요해?」
몹시 불쾌한 듯한 표정이 서린 사자의 분노다.
지금이라도 당장 오키타의 멱살을 잡고 흔들 기세다.
이츠키의 건방진 눈빛이 오키타를 스치다 역사 선생의 얼굴이 머물렀다.
분노에 떨리는 민주의 얼굴이 이츠키를 향해 돌아섰다
「일제시대 정신대 이야기도 그래, 한국이나 중국의 여자들이 돈을 벌기 위해 스스로 자원 했다는 자료가 있는데도 이제 와서 강제로 끌려왔다고 하면서 돈을 요구하는 뻔뻔한 나라잖아?」
죽이고 싶을 정도로 너가 싫어. 이츠키.
너의 그 머리 속을 락스로 세정해 버리고 싶어.
하얀 백지가 될 때까지.
「잘 알고 이야기하는 거야? 무식한 이츠키?」
민주가 분을 이기지 못하고 책상에서 고개를 들어 이츠키를 바라보았다.
분노로 심하게 짙어진 검은 동공이 한 가닥 남은 이성조각을 흔들어 놓고 있었다.
두 주먹을 불끈 쥐고 참을 인자를 계속 써 대면서 그렇게 그에게로 향하는 자신의 주먹을 참고 있었던 것이다.
무식한 이츠키라는 말을 듣는 순간 이츠키의 얼굴이 몰라 볼 정도로 심각하게 굳어져 있었다.
민주를 향하는 이츠키의 얼굴이 알 수 없는 도전을 나타내고 있었다.
또 다른 강한 끌림이 느껴졌다.
「사카이. 조용히 해.」
역사 선생의 날카로운 혀를 실감하는 말이다.
그녀는 이츠키로 향했던 시선을, 만만한 민주에게로 돌려 오키타에게 당했던 분풀이를 하기 시작했다.
역사책의 단단한 부분이 민주의 뒤통수를 두 번 강타했다.
민주의 얼굴이 오뚜기처럼 책상에 닿았다 다시 올라오고 다시 쿵하고 닿았다 다시 올라왔다.
순간 오키타의 두 눈이 눈에 뜨일 정도로 커지면서 몸을 벌떡 일으켜 세웠다.
이츠키의 날카로운 관찰이 오키타의 행동을 보고 인상을 찌푸렸다.
「그만 두시죠. 역사 선생.」
두 주먹을 불끈 쥐고, 날카롭게 노려보는 품이, 오키타는 역사 선생의 얼굴을 죽을 듯한 표정이다. 순간 움찔하는 역사 선생의 모습이 보였다.
「다시 한 번 만 사카이를 그런 식으로 다룬다면 당신은... 무사하지 못합니다.」
그렇게 오키타는 나머지 수학과 일본어 시간을 남겨두고 민주의 손을 잡고 밖으로 나왔다.
학교의 혼탁한 일본 내임을 벗어난 신선함에 민주는 가슴 깊이 공기를 흡입했다.
그렇게...
일본에서의 또 하루가 지나갔다.
오늘도 아빠는 늦는 모양이다.
일본으로 건너오면서 부유해지기는 했지만 아빠는 무척 피곤해 했다.
아빠도 나와 같은 직장 내 이지메라는 것을 당하고 있는 것일까?
민주는 6살 때의 아빠를 기억해 냈다.
너무나 온화하고 부드러운 30대 후반의 남자.
'아빠. 아빠는 왜 다른 아빠들처럼 돈 받고 치료 안 해?'
언젠가 동네 친구 하나가 놀다가 몸을 다쳐 민주의 집에서 치료를 하러 왔을 때, 아빠는 마
침 아래동 아주머니의 종기 부위를 시술하고 있었다.
'민주야. 치료는 돈을 목적으로 하는게 아니야. 봐라. 나에겐 이게 기술이지만 환자에게는 생명인 거야. 기술은 사용하면 사용할수록 늘고 요령이 생기지만 환자의 생명은 단 한 번으로 사용으로 없어지는 소모야.'
'민주야, 모든 것이 그래. 사람을 만나고 도와주는 것을 봉사라고 생각하면 안돼는 거야. 우린 그걸 사랑이라고 하지. 사람을 사랑하면 반드시 그 사랑이 나에게 되돌아온단다. 사랑을 실천하는 거야.'
'아무리 못된 사람도 자신이 선하다고 생각해. 그건 그 사람들에게도 사랑이 있기 때문이야.
우리 민주는 그런 사람도 사랑하고 감싸주는 좋은 사람이 되야 한다? 약속하지?'
아빠...
나도 아빠의 말을 믿었어.
유치원 때 아이들이 내 노트에 검은 색으로 낙서를 해도, 그것 때문에 선생님한테 혼나도, 아이들이 내가 혼나는 것을 보고 손가락질하고 놀려도 난 그들을 미워하지 않으려 했어..
그런데 아빠...
그건 옳지 못하다는 것을 알았어.
아빠가 거짓말 장이라는 것을 ...
난 사랑하지 않아.
나를 지탱하는 것은... 악 인가 봐.
난 미워하고 있는 게 편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