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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작 프랑크 베데킨트의 희곡 <대지의 영혼>과 <판도라의 상자>
대본 알반 베르크
초연 1979년 파리(피에르 불레즈 지휘)
<2015년 5월 바이에른 국립극장 / 182분 / 한글자막>
바이에른 국립극장 오케스트라 연주 / 키릴 페트렌코 지휘 / 드미트리 체르니아코프 연출
룰루.........................마를리스 페테르젠(소프라노)
게슈비츠 백작 부인.....다니엘라 쉬드람(소프라노)
알바.........................마티아스 클링크
쇤 박사.....................보 스코푸스(바리톤)
곡마사......................마르틴 뵝클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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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로덕션 노트 ===
고전으로 안착한 <룰루>에, 또 하나의 파격을 입히다
1937년, 미완성 상태에서 2막으로 초연된 베르크의 <룰루>는 1979년에 피에르 불레즈에 의한 전막(3막) 초연 이후에도 온전한 공연으로 접하기는 어려운 게 현주소다. 그래서 2015년 바이에른 오페라극장에 오른 3막의 <룰루>는 단연 화제가 되었다. 연출의 '앙팡 테리블' 드미트리 체르니아코프, 2013년부터 바이에른 오페라극장 음악감독으로 재직 중인 키릴 페트렌코, 그리고 21세기 최고의 룰루 소프라노 마를리스 페테르센이 합류한 이 무대는 20세기 음악을 전복시켰던 베르크의 우주와 그 전위성을 이해하는 데에 전혀 부족함이 없다. 특히, 세기가 낳은 최고의 룰루 마를리스 페테르센의 열연과 현대사회의 병폐를 시크하게 그린 체르니아코프의 단색조의 무대를 보고 있노라면, 불레즈에 이어 이 작품은 이들로부터 다시 태어났다고 생각하게 될 것이다.
오페라 <룰루>는 베르크의 죽음으로 미완성으로 남은 작품이었다. 1937년 미완성인 상태에서 초연되었으나 미망인이던 엘레네 베르크는 쇤베르크에게 관현악 부분을 완성해달라고 부탁하였다. 처음에 그는 부탁을 받아들였지만, 베르크의 초안을 받은 후 그가 예상한 것보다 시간이 더 많이 걸리는 일이라고 답했다. 그러자 헬레네는 그 오페라를 완성시킬 사람을 찾았고, 40년이 넘도록 2막까지만 상영되었다. 그러던 중 1976년에 헬레네가 사망하고 나서 완전판이 만들어졌다. 초연은 1979년, 피에르 불레즈가 지휘봉을 잡았다. 현재도 이 작품은 2막까지 공연하는 것이 일반적이며, 꼭 필요한 경우에만 3막을 추가한다.
사정이 이러하니 3막까지 완성태를 갖춘 <룰루> 공연은 2015년 뮌헨에 위치한 바이에른 오페라극장의 시즌 화제작이었다. 오페라 연출의 '앙팡 테리블'로 각광받는 드미트리 체르니아코프, 2013년부터 바이에른 오페라극장 음악감독으로 재직 중인 키릴 페트렌코의 지휘, 그리고 21세기 최고의 룰루인 소프라노 마를리스 페테르센이 함께 한 프로덕션이었다.
타이틀 롤의 마를리스 페테르센만큼 룰루 역에서 그녀를 능가할 이는 없을 것이다. 독일 출신의 그녀는 모차르트부터 리하르트 슈트라우스는 물론 현대 오페라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2004년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의 <룰루>와 2010년 빈 오페라극장의 <메데아>를 통해 저명 오페라 전문지 '오펀벨트(Opernwelt)'로부터 '올해의 가수상'을 두 차례나 수상한 바 있다. 그뿐만 아니라 헨델·바흐·하이든 등의 종교음악에서도 두각을 나타내고 있으며, 리트 가수로도 명성이 높다. 전작에서 그랬던 것처럼, 그녀는 상대방을 관능으로 파멸시키고, 제 스스로 파멸하는 여인상을 잘 그려낸다.
그녀의 존재를 더욱더 빛나게 해주는 이는 연출가 드미트리 체르니아코프. 2010년, 바이에른 오페라극장의 풀랑크 <카르멜회 수녀들의 대화>(DVD BAC061/BD BAC461) 연출에서 해석을 과도한 범위까지 적용하여 결국 유족들이 저작인격권 침해 소송을 제기한 바 있다. 그의 이러한 예술적 과격함은 베르크가 <룰루>에 녹여넣고자 한 과격함과 전위적 시도와 잘 맞아 떨어진다. 그의 무대는 베르크의 그로테스크한 음향과 룰루의 광기를 차가운 색조, 거울과 유리를 적극적으로 사용하여 상징화했다.
작은 체구의 키릴 페트렌코가 이끄는 음악은 정교하다. <룰루>를 비롯하여 베르크의 여러 작품을 꿰고 있는 피에르 불레즈의 뒤를 이을 역작이라 볼 수 있겠다.
=== 작품 해설 === <2012년 8월 23일자 발행 네이버캐스트 / 이용숙 글>
베르크, 룰루
12음 기법을 통한 음악적 심리묘사가 뛰어난 작품
베르크의 미완성 유작. 그후 프리드리히 체르하에 의해 완성, 1979년 2월 24일 파리에서 초연
남자를 유혹해 자신의 욕망이나 목적을 채운 뒤 그를 파멸에 이르게 하는 여성을 '치명적인 매혹을 지닌 여성'이라는 뜻으로 '팜므파탈(femme fatale)'이라고 부르죠. 사실 '팜므파탈'로 분류할 수 있는 여성이란 실제로 존재하지 않습니다. 여자에게 빠져 인생을 망친 남자들이 핑계를 대기 위해 만든 일종의 환상이라고 해야겠죠.
이 단어는 보통 '요부(妖婦)'라고 번역하는데요, 오페라에서 이런 대표적 여주인공이 바로 룰루입니다. [카르멘]의 경우는 여장부 같은 원작소설 캐릭터를 오페라 무대의 매혹을 위해 팜므파탈로 바꾸어놓은 것이지만, 룰루의 경우에는 원작부터 완벽한 팜므파탈로 그려져 있습니다. 독일 극작가 프랑크 베데킨트(Frank Wedekind, 1864-1918)의 희곡 [땅의 정령 Der Erdgeist](1895)과 [판도라의 상자 Die Buchse der Pandora](1904)가 이 오페라의 토대죠.
[보체크]로 알려진 알반 베르크(Alban Berg, 1885-1935)의 [룰루]는 작곡가의 유작으로 남겨졌고, 1937년 6월 2일 취리히 오페라극장에서 미완성인 채로 초연되었다가 1979년 2월 24일 프리드리히 체르하(Friedrich Cerha)가 완성한 3막본으로 파리 국립오페라극장에서 재초연을 맞이했습니다. 이때 지휘는 피에르 불레즈가 맡았답니다.
아름다움으로 남자들을 죽이는 여주인공
막이 열리면 무대에 맹수조련사가 등장해 관객에게 다양한 동물들을 소개합니다. 그런 다음 이제 ‘여성의 원형’인 뱀을 보여주겠다고 말하는데요, 그가 소개하는 뱀은 바로 룰루(소프라노)입니다. 이 부분은 프롤로그에 해당합니다.
1막은 보건위생국 참사관 골 박사의 집입니다. 박사의 아내 룰루는 신문사 편집장인 쇤 박사(바리톤)와 혼외관계를 맺고 있죠. 하지만 룰루를 모델로 그림을 그리는 화가(테너) 역시 룰루에게 빠져 있습니다. 귀가하다 화가와 룰루의 정사 장면을 목격한 룰루의 남편은 그 자리에서 심장마비로 사망합니다.
쇤 박사는 룰루에게서 벗어나려고 룰루를 화가와 결혼시킵니다. 화가가 결혼생활의 행복에 흠뻑 젖어있을 때, 과거에 룰루를 데리고 있었던 건달 쉬골히(베이스)가 돈을 얻으려고 찾아와 체조선수 로드리고(베이스)를 룰루에게 소개합니다. 한편 유력인사의 딸과 결혼하려는 쇤 박사는 룰루에게 절교를 선언하고, 그 이야기를 우연히 듣게 된 화가의 질문에 박사는 룰루와 자신의 관계 및 룰루의 과거를 털어놓게 됩니다. 모든 이야기를 듣고 엄청난 충격을 받은 화가는 절망에 빠져 자살합니다.
쇤 박사는 룰루를 쇼걸로 만들어 무대에 서게 해줍니다. 룰루는 쇤의 아들 알바(테너)가 작곡한 음악에 맞춰 춤을 추지만, 극장 객석에 앉아있는 쇤과 그 약혼녀를 발견하자 분개해 무대 위에서 실신합니다. 쇤이 분장실로 달려오자 룰루는 탐험가인 대공이 자신에게 결혼을 신청했다는 사실을 알리고, 질투를 느낀 쇤 박사는 결국 룰루가 시키는 대로 약혼녀에게 ‘헤어지자’는 편지를 씁니다.
2막에서 룰루는 마침내 쇤과 결혼합니다. 그러나 룰루의 레즈비언 연인 게슈비츠 백작부인(메조소프라노)이 찾아옵니다. 쇤 박사의 아들 알바가 나타나 룰루에게 격정적으로 사랑을 고백하자 아들과 룰루의 관계를 알게 된 쇤은 룰루에게 권총을 주며 자살을 종용하지요. 하지만 룰루는 오히려 그 권총으로 쇤을 쏘아 죽이고 경찰에 체포됩니다. 룰루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백작부인은 희생적으로 룰루의 도주를 도와주고, 룰루는 알바와 결혼해 파리로 떠납니다. 베르크는 여기까지 작곡을 마치고 세상을 떠났답니다.
3막은 프리드리히 체르하가 이어 작곡한 부분입니다. 룰루는 백작부인 행세를 하며 파리의 호화저택에서 알바와 함께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탈주범으로 쫓기는 룰루의 처지를 알고 포주인 후작은 룰루를 카이로의 매춘굴에 팔아넘기겠다고 협박합니다. 체조선수 로드리고도 룰루에게 돈을 벌어오라고 압력을 가하고, 알바는 주식투자를 했다가 전 재산을 날립니다. 룰루는 체조선수에게서 자유로워지기 위해 쉬골히를 시켜 그를 죽여버립니다.
시간이 흐르고, 런던의 허름한 다락방에서 룰루, 알바, 쉬골히가 함께 살고 있습니다. 룰루가 매춘을 해 겨우 모두의 생계를 꾸려가고 있는데 이곳으로 백작부인이 찾아옵니다. 알바는 룰루의 단골손님인 흑인남자와 싸우다가 죽고, 룰루는 유명한 연쇄살인범 '칼잡이 잭(Jack the Ripper)’의 칼에 찔려 죽지요. 백작부인은 룰루를 도우려고 잭에게 달려들었다가 역시 그의 칼에 찔려 숨을 거둡니다.
12음기법과 음악의 다중적 심리묘사
원작자 프랑크 베데킨트는 독일 하노버에서 태어난 극작가입니다. 괴테와 하이네의 영향을 받아 문학과 예술의 길을 걸으려 했으나 법관이 되기를 원하는 아버지와의 갈등으로 식품회사에 취직했지만, 결국 뮌헨 대학에서 문학과 예술을 전공하고 작가가 되는 데 성공합니다. 서커스 등의 신체예술에 관심을 가지면서 사회비판적이고 대중적 성격을 지닌 카바레 작품들을 집필했는데요, 그의 문학작품들은 시민사회와 인간본성의 관계를 집중적으로 추구하고 있고, 음악적 리듬감과 빠른 템포가 특징입니다. 작곡하기에 이상적인 리듬을 지닌 작품이라는 것이죠. [사춘기], [땅의 정령], [판도라의 상자]가 그의 대표작입니다. [사춘기]는 [스프링 어웨이크닝]이라는 제목으로 우리나라에서도 연극으로 공연된 작품이고, [판도라의 상자]는 그야말로 '치명적인' 미모의 여배우 루이스 브룩스가 주연한 팝스트 감독의 1929년 무성영화로 유명합니다.
베데킨트는 일반적인 시민사회의 도덕적 잣대로 룰루를 판단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1부 [땅의 정령]에 나타나는 룰루의 성적 매력과 유혹적 태도에는 면죄부가 주어집니다. 베데킨트는 목적의식으로 남자를 대하지 않는 룰루의 천진하고 순수한 모습을 자연의 일부로 간주하고 있거든요. 그러나 2부 [판도라의 상자]에서 이런 룰루는 결국 윤락여성으로 전락하고 파멸을 맞게 됩니다. 가부장적 사회의 희생양으로 그려지는 것이죠. 아무리 완벽한 아름다움과 성적 매력을 지녔다 하더라도 여성은 남성의 전리품에 불과하며 여성으로서의 정체성을 지닐 수 없다고 외치는 남성중심의 사회를 작가는 비판하고 있습니다. 룰루를 사랑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자신의 욕구와 이기심을 위해 철저하게 그녀를 이용할 뿐인 시민사회의 속물 남성들을 다양한 유형으로 독자와 관객에게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가난하고 힘겨운 청소년기를 보낸 작곡가 베르크는 대입자격시험에 실패하고 실연까지 당하자 자살을 기도합니다. 공무원으로 취직했지만 작곡가의 꿈을 버리지 못하고 독학한 그는 쇤베르크에게서 한때 작곡을 배웠지요. 1차대전 중에 입대했지만 몸이 허약해 후방에서 근무했던 그는 이때의 체험을 살려 오페라 [보체크(Wozzeck)]를 구상했습니다. 이 작품은 큰 성공을 거뒀고, 베르크는 음악평론가로도 명성을 얻었는데요, [보체크]에서 쇤베르크에게 배운 무조음악과 표현주의 기교를 선보인 베르크는 한 걸음 더 나아가 12음 기법으로 [룰루]를 작곡했습니다. 한 인물이 등장할 때마다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라이트모티프가 특색이며, 음악으로 관능적인 아름다움과 다중적 심리묘사를 탁월하게 성취한 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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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반] 테레사 스트라타스, 이본느 민튼, 로버트 티어, 프란츠 마추라 등. 피에르 불레즈 지휘, 파리 국립오페라극장 오케스트라, 1979년 녹음, DG
[DVD]파트리시아 프티봉, 줄리아 주온, 애슐리 홀랜드, 폴 그로브스 등, 마이클 보더 지휘, 런던 코벤트가든 로열오페라 오케스트라 및 합창단, 올리비에 피 연출, 2010년 바르셀로나 리세우 대극장 공연 실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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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 지식백과] 베르크, 룰루 - 베르크 (클래식 명곡 명연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