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의 피란 소설< 최척전>
조위한
-줄거리-
전라도 남원에 최척이라는 젊은이가 일찍 어머니를 잃고, 홀로된 아비와 살았다. 최척은 어렸을 때부터 기개가 있고 성품이 좋아 친구들과 벗하기를 좋아하였다. 임진왜란이 일어나 군사로 끌려가는 것을 걱정하던 아버지의 권유에 따라 최적은 정 상사에게 수학한다.
마침 정 상사 집에 서울서 피란 와 살던 옥영은 최척의 인물됨에 반해, 《시경》의 〈표유매〉라는 시를 건넨 것을 계기로 서로 마음의 정분을 쌓는다. 양가에서도 혼담이 오간다.
혼사는 최척이 가난하다는 데서 난관에 봉착한다. 옥영의 어머니는 완강하게 혼인을 반대하지만 옥영은 자결을 시도함으로써 자신의 의사를 굽히지 않는다. 서로 간 정이 깊음을 양가 부모가 인지하면서 혼사의 일단락이 정해진다. 혼사는 9월 보름에 하기로 한다.
그러나 이 두 연인의 시련은 이제부터다. 최척이 의병으로 차출되어 혼사가 미뤄진다. 하지만 둘 간의 아름다운 사랑을 끊을 수 없어 원래 혼인날에서 두 달 늦은 11월에 혼사가 치러진다. 둘의 사랑은 몽석이라는 사내아이를 낳으면서 더욱 행복한 모습이다.
1597년 8월 정유재란이 터져 남원이 함락된다. 최척의 가족은 왜군을 피해 지리산 연곡으로 도망치는데, 여기가 가족이 함께한 마지막이다. 최척은 가족들이 모두 죽은 것으로 생각하여 실의에 빠진 채 명나라 군사의 도움을 얻어 중국으로 간다. 옥영은 남장을 한 채 왜적에게 붙들리나 순후한 마음씨의 왜인 돈우를 주인으로 섬기며 그를 따라 바닷길을 다닌다. 한편 최척의 아버지와 장모는 피란 도중 어린 손자 몽석을 잃어버렸다가, 우여곡절 끝에 찾아 남원에서 산다. 한 가족은 이제 3국으로 각각 흩어져 살아간다.
최척은 중국 절강성 소흥현, 옥영은 돈우라는 왜병 뱃사공의 도움으로 일본 낭고야(나고야)로, 최척의 아버지와 장모, 그리고 장남 몽석은 남원에 남겨진 것이다.
최척은 중국으로 건너갔지만 얼마 안 돼 그를 돌보아주던 명나라 군관이 죽자 천지를 유람하기도 하며 신선이 되는 법을 배우려 하기도 한다. 그러다 학천과 함께 바다로 장삿길을 다니게 되는데 안남(베트남)에 도달했을 때, 최척은 쓸쓸한 심사를 억누르지 못하여 피리를 분다. 그러자 정박하여 있던 옆 일본 상선 안에서 자신과 아내만이 아는 시구가 흘러나오고 그것을 들은 최척은 넋을 잃는다. 그 읊조림의 주인공은 바로 옥영이다.
그해가 1600년 4월 음력 초하룻날이다. 남원에서 헤어진 지 3년 만에, 머나먼 안남에서 기적적 해우를 맞는다. 두 사람도 울고 배에 탄 뱃사람들도 감동한다.
돈우는 백금 두 덩이까지 주어 옥영을 최척과 함께 가게 하고 부부는 학천의 도움으로 중국으로 돌아가 항주에 자리를 잡는다. 부부는 여기서 일 년 만에 둘째 아들 몽선을 낳는다. 몽선이 성장하자 이웃에 사는 중국인 진가의 딸 홍도를 만나 혼인 약속을 한다. 홍도의 아비 진위경은 명의 군대로 조선에 갔다가 잔류하고, 홍도는 그러한 아버지를 그리워하다 조선인인 몽선을 만나 연분을 맺게 된 것이다. 홍도는 아비의 생사와 존재 여부에 대한 한 자락 희망을 갖는다.
1618년, 후금의 발흥으로 최척은 또다시 명군을 따라 출병한다. 이 전쟁에 조선군이 명군을 도우러 온다. 최척은 하북성 우모채라는 곳에서 조선 군사와 함께 진을 친다. 조선군을 이끄는 강홍립의 부대에 큰아들 몽석이 있었다. 명군이 패하자 조선군도 오랑캐에게 패한다. 최척은 조선 사람이었기에 겨우 살아남았다가 패한 조선군 무리와 함께 오랑캐에게 감금된다. 이 감옥에서 아들 몽석을 극적으로 해후한다. 아들과 헤어진 지 22년 만이다. 지키던 오랑캐 군사가 마침 조선에서 학정으로 도망 나온 사람이라 부자를 탈출시킨다.
최척과 몽석은 조선으로 향하나, 최척의 등에 난 종기가 심해 목숨이 위태로워진다. 이때 침을 다룰 줄 아는 진위경이라는 자를 만나 극적으로 병을 치료한다. 최척 부자는 은혜에 감복하여 남원의 집까지 같이 오는데, 침을 놓아 준 사람이 다름 아닌 몽선의 아내, 홍도의 아비임을 알고 크게 감탄한다. 그들은 무사히 남원 땅에 이르고 늙은 아버지와 장모와 상봉한다.
한편, 명이 후금에게 밀리고 패배했다는 소식을 들은 옥영은 최척의 안부를 걱정하고, 가족이 없으면 삶의 이유가 없다며 험한 바다를 건너 조선으로 가기로 결정한다. 몽선이 반대하나 홍도 또한 시어머니인 옥영의 결행을 지지한다. 옥영은 만반의 준비를 갖추자 1620년 2월 1일 배를 타고 조선으로 떠난다. 처음에는 항해가 순조로웠으나 곧 폭풍을 만나 난파하여 무인도에 조난당해 있을 때 해적선이 나타난다. 해적들이 배와 집기들을 약탈해 가자 그들은 절망에 빠진다. 얼핏 잠이 든 옥영의 꿈에 또 장육존불이 나타나 “죽지 않으면 반드시 즐거운 일이 있으리라”라고 용기를 준다. 그때 조선 배가 나타나 순천에 내려 준다. 출항한 지 두 달이 지난 4월이다.
조선 땅에 도착한 옥영 일행은 결국 남원 옛 집을 찾아간다. 거기서 홍도와 진위경, 그리고 최척의 온 가족이 상봉한다.
그들의 이야기를 남원 부사가 조정에 장계로 올리자 조정은 최척에게 정헌대부를 내리고 옥영을 정렬부인에 봉한다. 후에 몽석과 몽선은 호남 병마절도사, 해남 현감 등을 지내고, 최척 부부는 그때까지 살아서 아들들의 봉양을 받는다.
1621년 내가 남원에 머물렀는데 최척에게 이런 이야기를 듣고 그 대강을 기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