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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사 논고 제1권 19~44장
19장. 유약한 군주라도 강력한 군주의 뒤를 이은 경우에는 그 지위를 유지할 수 있지만 유약한 군주가 연달아 즉위하게 되면 그 왕국은 더 이상 유지될 수 없다
(강력한 왕이 연달아 집권하면 위대한 업적을 성취할 수 있다) 로마 건국이후 연달아 즉위한 최초의 국왕 3인, 로물루스, 누마, 툴루스의 출중한 능력(virtu)과 수완은 로마에게 커다란 행운이었다. 출중한 로물루스>냉정하고 종교적인 누마>용맹한 툴루스
(다윗, 솔로몬, 바야지트) 다윗>솔로몬>르호보암. 능력이 부족한 르호보암은 왕국의 6분의 1을 물려받는데 그침
마호메트>문약한 투르크의 황제 바야지트>셀림은 조부의 영광을 능가한 것으로 보임
유약한 군주가 연이어 즉위하게 되면 프랑스 왕국의 경우처럼 옛 제도로 유지되지 않는 한 어떠한 왕국도 유지될수 없다. 그러므로 전쟁에 지속적인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군주들은 유약한 군주다.
(파멸은 유약한 왕의 연이은 즉위에서 비롯된다) 로마의 세번째 왕이 무용을 떨치지 않았더라면 로마는 스스로 자주적인 발판을 구축하지 못했을 것. 이러한 사실을 고려할 때 군주정이 지속되는 한 로마는 유약하거나 못된 왕 밑에서 파멸에 빠질 위험에 직면해 있었던 것이다.
20장. 두명의 유능한 군주가 연이어 즉위하면 위대한 업적을 달성한다 ; 잘 조직된 공화국은 필연적으로 유능한 지배자가 잇따라 출현하게 되며 그 결과 국력이 크게 신장된다
로마는 왕을 추방하고부터 유약하거나 사악한 왕이 권좌에 오를 경우 발생하게 마련인 위험을 겪지 않아도 되었다. 왜냐하면 권위의 무게가 집정관에게 실리게 되었으며 집정관은 자유로운 투표로 통치자의 지위에 오르기 되었고 항상 매우 뛰어난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공화국의 경우 선거라는 방법이 무수히 많은 유능한 지도자가 잇따라 집권하는 것을 가능하게 한다.
21장. 자신의 군대를 갖지 못한 군주나 공화국은 크게 비난받아 마땅하다
(사람이 있는 곳에 군인이 있다) 군주나 공화국이 자국민으로 구성된 군대를 갖추지 못하고 있다면 이는 크게 부끄러운 일. 40년 이상 평화를 누린 상태에서 권좌에 오른 툴루스는 훈련과 지도를 통해 순식간에 백성들을 용맹스러운 군인으로 양성함
테베인들은 스파르타의 속박에 의해 노예근성에 익숙해지고 유약해졌지만 펠로피다스와 에파미논다스는 백성들을 무장시킨 후 스파르타군을 격퇴시킴
22장. 로마의 호라티우스가의 세 용사와 알바의 쿠리아티우스가의 세 용사 간에 일어난 결투에서 주목할 만한 점은 무엇인가
로마의 왕 툴루스와 알바의 왕 메티우스는 각자의 나라에서 위에 언급한 세명의 용사를 대결시켜 이긴 쪽이 진 쪽을 지배하기로 합의했다. 승리한 호라티우스가의 한명이 로마로 돌아와 싸움에서 사망한 약혼자의 죽음을 슬퍼하는 누이를 죽임. 재판 결과 석방됨.
세가지 점을 주목 1.지배자는 자기 군대 일부만 의존해 나라의 운명을 걸면 안됨 2.잘 정비된 도시에서 범죄행위는 결코 다른 공적을 이유로 용서받아서는 안된다 3.준수가 불확실한 상황에서 조약을 체결하는 것은 결코 현명한 처사가 아님
23장. 장수는 전력을 다하지 않은 전투에 모든 운명을 걸어서는 안된다 ; 같은 이유로 군사적 요충지만을 방어하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
(산악의 요충지를 방어하는 데만 매달리는 어리석음) 당신의 모든 병력을 요충지에 배치하는 것이 용이하지 않다면 거의 항상 해롭다. 만약 그럴 수 있다면 그러한 계획을 채택할 수 있다. 단지 소수의 병력만인 주둔할 수 있는 제한된 지역에서 당신을 공격하러 온 대규모 병력을 감당할 수 없다.
요충지를 빼앗기게 되면 당신의 인민과 나머지 군대는 거의 언제나 엄청난 공포에 휩싸여 무용을 시험할 기회도 얻지 못한 채 패배하고 말 것. 그리하여 당신은 단지 병력의 일부만 사용한 채 국가 전체의 운명을 망치게 된다
(1515년에 프랑스군은 알프스 통로에 경비대가 없는 것을 발견했다) 여러 역사책을 주의 깊게 읽은 자는 유능한 장수가 그러한 요로를 확보하려는 일은 거의 하지 않는다는 점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프랑스의 왕인 프랑스아 1세가 롬바르디아 국가를 재탈환하기 위하여 이탈리아에 진격.
24장. 잘 조직된 공화국은 시민에 대한 상벌제도가 분명하며 공을 세웠다 하여 잘못을 묵인하지 않는다
호라티우스 사례-공적인 대단하다 하더라도 누이 살해로 사형에 처하기 위해 재판에 회부. 이러한 관행이 잘 준수될 때 도시는 오랫동안 자유를 누릴수 있음. 그렇지 않으면 그 도시는 곧 멸망할 것이다.
(작은 보상이 많은 것을 의미할 수도 있다) 나쁜 일을 저지른 데 대해 처벌을 엄수하기 위해서는 로마가 그런 것처럼 좋은 행위에 대해 항상 상을 주는 것이 필수적이다.
25장. 자유로운 국가에서 오래 유지된 정부를 개혁하고자 하는 자는 적어도 구제도의 외양만은 남겨두어야 한다
(군주제의 흔적) 이는 새로운 형태가 실제로 과거의 제도와 전적으로 다를지라도 인민들에게는 정부가 그 형태를 바꾸지 않은 것처럼 보이게 하기 위해서다. 로마인들은 1인의 군주제를 폐지하고 2인의 집정관제를 신설했을 때 집정관 밑에 왕을 수행했던 관리의 수인 12명 이하의 수행원을 두기로 결정함. 로마에서의 매년 희생 의식(?)도 지속적으로 거행
(새로운 제도는 인민의 마음을 뒤흔든다) 만약 관직들이 숫자 권한 임기에서 과거의 것과 다르다면 적어도 그 명칭만은 유지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참주제라고 부르는 바와 같은 절대적 권력을 옹립하고자 하는 자는 모든 것을 새롭게 조직해야 한다.
26장. 신생 군주는 그가 정복한 도시나 지역에서 모든 것을 새롭게 조직해야 한다
(참주는 모든 사람들을 자신에게 의존하게 한다) 왕국이든 공화국이든 입헌적 정부를 건설할 수 없다면 군주국을 유지하기 위한 최선의 수단은 국가의 모든 것을 새롭게 개편하는 것이다. 부자를 가난하게 하고 가난한 자를 부유하게 하는 것까지도 포함. (다윗 왕) 그는 빈자들을 좋은 것들로 채워주고 부자들을 빈털터리로 만들었다.
군주는 새로운 도시를 건설하고 이미 세워진 도시들은 헐어야 하며 주민들을 다른 곳으로 이주시켜야 한다. 그리하여 누구든 당신에게서 유래한 것임을 인정하지 않는 등급이나 지위, 관직이나 부를 향유하는 일이 없도록 한다. 합법적인 정부라는 처음의 좋은 방법을 사용할 수 없는 상황에서 그 지위를 유지하고자 하는 자는 이처럼 사악한 방법을 채택해야 한다.
28장. 로마인들이 아테네인들보다 자국민에 대해 배은망덕하지 않았던 이유가 무엇인가
여러 공화국의 역사를 읽어본 사람들은 누구든 거기서 자국민에 대한 배은망덕한 소행을 발견할 수 있다. 그러나 로마에서는 아테네보다도 그러한 예가 적었는데 이는 로마인들이 아테네인들보다 자기 나라 시민들을 의심할 이유가 적었기 때문이라고 생각됨.
이에 반해 자유를 빼앗긴 경험이 있는 아테네는 시민들 중 잘못을 저지른 자는 말할 것도 없고 조금이라도 혐의가 있는 자는 가차없이 처벌하였다.(도편 추방ostracism 기원전 487년 이후 70년간 시행) 인민은 자유를 잃지 않고 지속할 때보다도 오히려 일단 잃었던 자유를 되찾았을 때 더 과격한 행동을 보이는 법이다.
29장. 인민과 군주 가운데 어느 편이 더 배은망덕한가
공화국이나 군주가 탐욕에 움직인 나머지 성공한 장군에게 상을 주기보다는 모욕이나 중상을 가한다면..그 이유는 사람들은 은혜를 받는 것에 보답하기 보다는 상처를 입은 것에 복수하려는 성향이 강하다. 보은은 손해로 여기는 반면, 복수는 이득으로 여기기 때문이다.(코르넬리우스 타키투스)
(두려움이 변명의 여지가 되는 경우) 탐욕이 아닌 의심과 두려움 때문에 그 인물에게 해를 가했을 때에는 인민이나 군주 모두 약간의 변명이 성립. 인간의 본성은 허영심과 의심이 많아 타인의 성공을 질투하고 더욱이 군주는 일신의 안위를 바라는 것 외에는 어느 것도 염두에 두지 않음.
(베스파시아누스가 안토니우스에게 저지른 배은망덕) 유대 혹은 이집트에 있던 베스파시아누스는 황제로 추대되어 안토니우스와 함께 이탈리아에 친입하여 로마를 점령함. 베스파시아누스가 파견한 무치아누스는 안토니우스의 공을 알고 있음에도 군대지휘권을 박탈하고 베스파시아누스 마저도 냉혹하게 배신함.
(페르디난도가 곤잘보에게 저지른 배은망덕) 에스파냐의 용장인 곤잘보 페란테는 아라곤의 왕 페르디난도를 위해 나폴리 왕국에 군대를 출동시켜 프랑스군과 싸워 왕국을 확보함. 그럼에도 페르디난도 왕은 곤잘보의 군대지휘권을 몰수하고 그는 에스파냐로 끌려감.
(공화국의 배은망덕은 자유에 대한 사랑에 기인한다) 자유를 누리고 있는 국가는 두가지 목적..1.자국을 강대하게 하는 것 2.자국의 자유를 유지해 나가는 것. 두가지 중 한쪽에 대한 욕망이 지나쳐서 과오를 범한다. 자유의 유지와 관련된 과오는 보상받아야 마땅한 시민을 박해하거나 신뢰할 만한 인물을 의혹의 눈초리로 보는 것인데 많은 경우에 참주정치를 더욱 촉진하게 됨(카이사르 경우)
(로마가 배은망덕한 경우는 매우 드물었다) 스키피오의 사례 이외에 배은망덕한 사례가 없음. 스키피오에 대해 인민이 배은망덕한 소행을 저지른 것은 그들이 다른 인물에게는 한번도 품어본 적이 없는 두려움을 스키피오에게서 느꼈기 때문. 강적을 격파하고 순식간에 얻은 명성, 젊음과 신중함 등 고상한 덕망이 인민들에게 두려움을 가져다 줌. (재무관,집정관,감찰관을 지낸 카토 프리스쿠스) 행정관조차 두려워하는 시민이 한 사람이라도 있는 도시라면 자유로운 도시라고 불릴 수 없다고 하면서 스키피오를 탄핵하기 시작함.
30장. 군주나 공화국이 배은망덕이라는 악덕을 범하지 않기 위해서는 어떻게 하면 좋은가, 또 시민이나 장군이 배은망덕한 행위로부터 피해를 입지 않기 위해서는 어떻게 하면 좋은가
(군주가 스스로 장군이 되어야 한다) 군주는 두려움이나 배은망덕 속에서 살아야 할 필연성을 피하기 위해 본인이 친히 원정에 나서야 한다. 군주가 전투에 직접 참가하지 않을 때에는 그 영광이 실전에 참가한 다른 사람의 것이 되고 만다.
(장군은 어중간한 경로를 피해야 한다) 승리를 거둔 장군이 곧바로 전열에서 떠나면 군주는 모든 의심 섞인 두려움에서 해방됨. 그런 처신을 꺼린다면 정복으로 획득한 것 일체를 군주에게 넘겨주지 않고 자신이 확보하기 위해 모든 조치를 취해야 함.
(공화국은 장군으로 시민들의 한 사람을 보내야 한다) 로마 공화정의 방책을 추천. 로마에서는 전시가 되면 귀족이든 평민이든 전 시민이 다같이 전쟁에 참가하여 용맹스런 인물들이 속출함. 그런 인물의 수가 많아 서로 견제하기 때문에 특정한 한 사람만을 대상으로 하여 두려움을 품을 이유가 없음. 유력한 인물들도 몸가짐을 엄정하고 신중하게 함. 임시독재집정관의 지위에 오른 자도 직무를 수행하는 즉시 그 직책에서 물러나는 것을 커다란 영광으로 여김.
31장. 로마 장군들은 그들의 과오에 대해 과도하게 처벌받은 적이 없었다 ; 그들의 무능이나 잘못된 계획이 로마에 손해를 끼쳤다 하더라도 그것 때문에 처벌받지 않았다
장군이 저지른 죄가 악의에 의한 것이었다 하더라도 인간적인 방법으로 처벌되었으며 무능함으로 잘못을 저지른 경우에는 전혀 처벌받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상이나 명예를 수여받은 적도 있음. 로마인들은 장군이 자유롭고 편안한 마음 상태에서 외부적인 요소를 고려하지 않고 결정을 내리는 것이 중요하다고 판단함.
고의로 범한 과오에 대한 조치 사례 : 장군1(세르기우스)와 장군2(비르기니우스)는 베이인의 포위 공격 중에 장군1이 다른 종족에게 공격당했으나 그는 장군2에게 원군을 청할 바에는 차라리 패주하는 편이 낫다고 생각함. 장군2는 장군1이 수모를 당하기를 기대하며 사태를 관망함. 이 경우 다른 공화국이었다면 반드시 사형에 처했을 터인데도 로마는 두 사람에게 벌금형을 언도함.
무능함으로 저지른 잘못에 대한 조치 사례 : 집정관인 바로의 경솔한 행동 때문에 로마인은 칸나이에서 한니발에게 대패했으며 하마터면 공화국은 자유를 잃을뻔함. 그러나 로마인들은 그를 처벌하지 않고 오히려 칭찬함. 그가 로마로 귀환했을 때 원로원 의원 전원이 그를 영접함.
32장. 공화국 또는 군주는 인민들에게 은혜를 베푸는 일을 부득이 그렇게 할 수 밖에 없을 때까지 지체해서는 안된다
(정부의 선견지명) 로마인들은 예로부터 국가가 위급한 상황에 처했을 때에도 인민에게 관대하게 대함으로써 난국을 성공적으로 헤쳐 나감. 전쟁 중에 원로원은 평민들의 지지를 얻기 위해 “가난한 백성은 그 자식을 양육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공공의 이익에 충분히 봉사하고 있다”고 말하면서 염세등 세 부담을 덜어줌.
로마 공화정의 조치가 좋은 결과를 낳았던 이유는 처음부터 로마 인민은 자기들의 이익을 위해 법률이 제정되는 것을 목격했기 때문. 이를테면 재판의 판결에 불복할 경우 민회에 제소할 수 있다는 법률 등이 그런 예.
33장. 국가의 내부 또는 외부에서부터 커다란 위험이 엄습했을 경우, 그것을 직접 공격하기보다는 그것을 다루면서 지연시키는 정책이 훨씬 더 안전하다
로마가 성장함에 따라 부근의 40여개 부족들이 로마에 대항하여 동맹조약을 맺음. 이에 로마인들은 국가 존망의 위기에 대처하는 중대한 구제책을 사용하기로 결의함. 임시독재집정관 제도를 창설. 이 제도는 당시에 유용했고 로마에 닥친 숱한 위기를 타개하는 원동력이 됨.
위험이 심각하여 모든 사람이 두려움에 사로잡힐 경우 가장 안전한 계획은 그것을 기어이 제거하려고 애쓰기 보다는 적당히 대처하면서 시간을 버는 것이다.(일의 성공과 실패를 결정하는 요인의 하나로서 ‘때’를 중요시) 이는 대개의 경우 위험을 없애려고 섣부른 치유책을 시도하게 되면 도리어 그 위세를 강화시켜 줌으로써 우려하던 위기를 더욱 촉발시키는 계기를 만들기 때문
(코시모 데 메디치) 메디치가가 피렌체에서 처음으로 권력을 잡게 된 기초를 쌓은 코시모 데 메디치(상업과 금융업으로 재부 축적, 피렌체 시민에게 국부로 불림) 코시모가 군림하기 전 피렌체에서 과두정의 유력자인 니콜로 다 우차노는 코시모의 명성에서 야기될 명백한 위험을 예측하지 못한 첫 번째 실수를 저질렀지만 코시모를 몰아내고자 시도하는 두번째 실수를 저지르지는 않음. 이런 기도는 자기 당파의 지배권을 완전히 붕괴시키고 말 것이라고 판단함. 그러나 피렌체 시민들은 코시모에 대항하여 그를 피렌체에서 추방함. 이에 분격한 코시모의 당파는 코시모를 도로 불러들여 그를 공화국의 원수로 앉힘.
(카이사르) 기원전 60년 카이사르, 크라수스와 함께 제1차 삼두정치를 행사한 폼페이우스는 처음에 카이사르의 역량을 찬양했지만 얼마 안 있어 찬양은 두려움으로 바뀜. (키케로) 폼페이우스가 이제와서 카이사르에게 두려움을 느껴 봤자 이미 때는 늦었다.
해악이 싹트기 시작할 때 그것을 발견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이러한 해악이 발견되더라도 그것을 덮어놓고 없애려 하지 말고 적당히 다루면서 시간을 버는 편이 현명한 결정. 통치자는 해악의 위력을 잘 검토해야 하며 그것을 치유할 수 있는 만반의 태세가 되어 있다고 생각할 때 주저하지 말고 단호히 공격해야 한다. 로마 인근의 여러 부족들 간의 동맹은 도리어 로마 시민들을 더 단결시키고 강력하게 했으며 임시독재집정관 제도 같은 새로운 제로를 고안하게 함.
34장. 임시 독재 집정관의 권한은 로마 공화국에 유익하면 유익했지 유해하지는 않았다 ; 자유로운 투표로 주어진 권력이 아니라 시민들 스스로 강탈한 권력이 시민정부를 파괴했다
(무력으로 관직을 얻는 것은 쉽다 / 관직으로 무력을 쉽게 얻을 수는 없다) 일부 식자들은 임시독재집정관 제도가 결국 로마를 참주정치로 몰고 간 원인이라고 지목함. 그러한 관직이 없었더라면 카이사르가 참주정을 정당화시키지 못했을 것이라고 역설함. 그러나 로마를 노예화한 것은 그런 관직이나 칭호가 아니라 일부 시민들이 군대 통수권을 연장하여 갖게된 권력임.
(로마에 부패가 없었을 때는 임시독재집정관의 해악도 없었다) 어떤 시민이 스스로 불법적인 권한을 탈취하기 위해서는 재력을 갖추고 수많은 지지자나 파벌을 거느리는 등의 조건이 필요한데 이는 법률이 제대로 준수되고 있는 곳에서는 충족될 수 없는 것이다. 설사 그가 그러한 조건을 갖춘다고 해도 그러한 인물은 위험스러운 존재이기 때문에 자유로운 선거에서 일반의 지지를 모을 수 없다.
임시독재집정관은 비상사태에 관련된 안건 처리에 대한 광범위한 권한이 있지만 원로원이나 민회의 권한을 축소하거나 구제도를 폐지하고 새로운 제도를 수립하는 등의 현행 통치 형태 자체에 영향을 주는 일은 일절 용납되지 않음. 따라서 임시독재집정관의 임기가 짧고 권력이 제한적이며 로마 민중들이 아직 타락해 있지 않아 임시독재집정관이 국가에 해독을 끼치는 일을 불가능하게 함.
심의기구나 행정관은 무슨 일이든 독자적으로는 할수 없고 다른 기관의 승인을 얻어야 하기 때문에 공화국에서 통상적으로 시행되는 법적 절차는 더디게 진행됨.
베네치아 공화국은 비상시에 소수의 시민들(1310년에 창설된 10인회 제도)에게 다른 심의를 거치지 않고 전원일치로 결정을 내릴 수 있는 권한을 위임함. 모든 사태에 대처할 수 있는 법률을 갖추고 있지 않은 국가는 결코 완전한 공화국이 될수 없을것이다.
35장. 로마의 10인회는 인민의 자유로운 보통선거로 선출되었는데도 어째서 공화국의 자유에 유해한 존재가 되고 말았는가
로마에 법률을 제정하기 위해 선출한 10인회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참주들로 변하여 로마의 자유를 유린함. 무제한적인 권위가 1년 이상의 장기간에 걸쳐 주어짐. 임시독재집정관의 권위와 비교해 볼 때 10인회의 권위가 비교도 안될 정도로 큰 것으로 나타남. 임시독재집정관이라 하더라도 호민관,집정관,원로원의 권한을 박탈할 수 없었으나 10인회 창설 시 집정관과 호민관이 폐지되고 10인회는 마치 그들이 로마 인민 전체인양 법률을 제정.
36장. 고위직에 있는 시민들은 하급직에 있는 시민들을 얕보아서는 안 된다
(베네치아인들의 관행은 로마인들의 것보다 열등하다) 로마인들은 자기가 지휘관이었던 군대에 백의종군 하는 것을 불명예스러운 일이라고 여기지 않음. 오늘날 베네치아에서는 요직에 취임했던 시민이 하급의 직책에 취임하는 것을 수치로 여기며 정부 당국도 그 경우에는 취임 거부를 인정하는 나쁜 관행이 있음. 공화국은 높은 식견과 능력을 갖춘 사람들이 새롭게 승진한 사람들을 조언하고 보좌하여 신참자의 경험부족을 메워주는 과정이 필요함
37장. 농지법이 로마에 어떠한 불화를 초래했는가 ; 먼 과거까지 소급하는 효과를 가진 법률을 고래의 관습에 반하여 제정하는 것은 공화국에 불화를 야기한다
인간의 갈망은 그들이 얻을 수 있는 능력보다 항상 크기 때문에 그들은 자신들이 얻은 것에 불만을 느끼고 거기에서 아주 작은 만족을 얻는데 그친다.
(국가는 부유해야 하고 시민은 가난해야 한다) 로마의 평민들이 호민관 제도를 창설함으로써 귀족들에게서 자신들을 보호하는 것으로 충분치 않아 명예와 부를 귀족들과 공유하겠다는 야망으로 투쟁을 시작하고 무질서가 초래되어 농지법에 대한 투쟁을 야기함. 마침내 그 투쟁은 공화국을 파멸로 몰아넣음. 그러므로 잘 정비된 공화국은 그들의 국고를 넉넉하게 하고 시민은 가난하게 해야 한다.
농지법의 두개의 조항 1.어떤 시민도 일정 양 이상의 토지 소유를 허용치 않는다 2.적에게서 빼앗은 토지는 로마 인민에게 분배. 귀족들에게 지대한 손해를 야기. 귀족들은 교묘한 발상으로 법안을 저지하고자함. 군대를 소집하거나 법안을 제출한 호민관들에 대한 이간질 등.
(공적인 해악에 대해 사적인 치유책을 내놓는 것에 따르는 위험) 농지법은 평민과 원로원 사이에 커다란 증오를 불러일으켜 급기야 무력충돌 및 유혈사태를 야기함. 당국이 그것을 치유할 수 없게 되자 각 당파는 사적인 치유책에 의존하기로 하고 자신들을 방어하기 위해 지도자를 선출하기로 결정함. 평민은 마리우스를 지지하고 귀족은 마리우스의 부하였다가 이후에 마리우스를 무찌르고 임시독재집정관에 오른 술라를 지원함. 많은 유혈사태 이후에 귀족들이 승자가 됨.
(부자들의 야망에 따르는 위험) 도시가 다양한 수단과 방식으로 부자들의 야망을 억누르지 않는다면 그것은 즉시 그 도시를 파멸에 빠뜨릴 정도로 위험한 것이다. 농지법을 둘러싼 투쟁이 로마를 노예상태로 빠뜨리는데 300년이 걸렸는데 평민들의 투쟁이 없었다면 더 일찍 노예상태에 빠졌을 것.
38장. 허약한 공화국은 우유부단하고 결단을 잘 내리지도 못한다 ; 설사 그들이 어떤 결정을 내린다 해도 그것은 선택의 결과라기보다는 부득이한 필요 때문에 강요된 것이다
(로마 원로원은 현실을 직시했다) 로마에 혹독한 페스트가 창궐하자 주변의 A부족과 B부족이 로마를 공격하면서 C부족과 D부족의 영토를 약탈함. 이에 C,D 부족이 로마에 도움을 요청했으나 자신들의 무력으로 스스로 방어하라고 답변함. 원로원은 이전에 주변 부족들이 스스로 무장해서 방위하는 것을 금지했으나 덜 나쁜 결정을 더 나은 것으로 판단함.
39장. 같은 일이 종종 다른 인민들 간에 일어난다
(항상 동일한 인간 본성) 이러한 통찰이 식자들에게 무시되거나 이해되지 않기 때문에, 이해되더라도 통치자들에게 알려지지 않기 때문에 어느 시대건 동일한 분쟁이 반복해서 일어나기 마련이다.
(피렌체의 불안정) 1494년 피사 등 영토의 일부를 잃은 피렌체는 강력한 적과 전쟁으로 많은 전쟁 비용을 지출하고 있었음. 이 전쟁은 10인 전쟁위원회라 불린 평의회가 수행하고 있었는데 고율의 세금으로 인해 인민들의 불만이 10인 위원회에 집중됨. 그 다음 선거에서 위원회를 폐지하고 그 임무를 최고 시정위원회에 넘김
이 결정으로 전쟁이 종식되기는 커녕 신중하게 전쟁을 치르던 인재들이 쫓겨난 상태에서 혼란이 가중되어 피사는 물론 아레초 등 많은 지역을 잃게 됨. 자신들의 오류를 깨달은 인민은 질병의 원인은 열이지 의사가 아니라고 판단하여 10인 위원회를 부활시킴
(로마의 사례) 잇따른 전쟁으로 힘들어진 로마 인민들은 전쟁이 귀족들의 야망으로 초래되었다고 믿게 됨. 이에 집정관의 권력을 감찰하고 제한하기 위해 5인 위원회 설치를 제안하기도 함. 결국 호민관들의 주장으로 집정관 제도가 폐지되고 집정관의 권한을 가진 호민관 제도를 창설하기도 함. 이후 로마인들이 자신들의 과오를 깨닫고 집정관 제도를 부활함.
40장. 로마에서 10인회의 창설 그리고 그 사건에서 배워야 할 점 ; 다른 무엇보다도 우선 어떻게 해서 그러한 사건이 공화정을 구원하거나 공화정을 참주정으로 몰아넣는지를 고찰하고자 함
이에 대한 논의는 원로원이나 평민들이 과오를 저질러 자유를 침해하게 된 사실을 보여주고 10인회의 우두머리인 아피우스가 로마에 참주정을 수립하려다 실패하면서 저지른 많은 오류를 보여줄 것
(아피우스의 위선) 로마의 자유를 더욱 굳건하게 하기 위한 법의 제정을 둘러싸고 인민과 귀족들이 많은 논쟁과 분쟁을 거듭한 후 솔론이 아테네를 위해 제정한 법률의 사본으로 로마의 법을 기초하기로 합의함. 새로운 법률의 검토와 결정을 담당할 위원으로 1년 임기로 10인의 시민을 임명함. 그 위원들이 아무런 제약을 받지 않고 새로운 법률을 기초할 수 있도록 로마의 모든 관직, 특히 호민관과 집정관 직위를 폐지하고 인민을 소집하여 동의를 구하는 절차마저 없애 버림. 여기에 명석하지만 격정적인 아피우스 클라우디스가 포함됨. 평민들의 지지에 힘입어 아피우스는 모든 권한을 장악함.
(아피우스가 본색을 드러내다) 10인회는 최종적으로 법률이 확정되기 전에 법률안을 열개의 동판에 써서 공공장소에 게시하여 누구나 그것을 읽고 시비를 논한 후에 결함이 발견되면 확정되기 전에 수정함. 아피우스는 열개의 동판에 두개들 더 추가해야 한다고 여론을 조성하여 임기를 1년 연장하여 10인을 재선출 하기로 함. 그를 의심한 인민들은 그에게 차기 10인회의 명단을 제출할 권한을 일임함. 아피우스는 자신을 제1인자로 지명하고 그를 선호하는 인물들로 9인을 지명함. 그는 자신을 경호하는 릭토르를 12명에서 120명으로 증원함
(아피우스가 인민의 지지를 잃다) 폭력적인 수단을 통해 통치를 지속하던 10인회는 전쟁의 위기가 다가오자 자신들의 취약한 처지를 깨닫게 됨. 원로원이 없으면 전쟁을 수행할 수가 없고 원로원이 소집되면 그들의 지위를 잃을 것으로 판단함. 당시 원로원은 10인회를 자진 사퇴시킬 수 있었으나 인민을 미워하던 원로원은 10인회가 사퇴하면 호민관직이 부활될 것으로 생각하여 그들 권한 행사를 삼가함. 아피우스의 비르기니아 사건으로 야기된 군인들과 평민들의 농성으로 10인회가 물러나고 호민관과 집정관이 임명됨
(인민과 부자, 모두의 이기적인 욕망) 자유에 대한 인민의 지나친 욕망과 귀족들의 지나친 지배욕. 인민은 집정관제도를, 귀족들은 호민관 제도를 폐지하기 위해 10인회를 설치하고 막강한 권한을 부여함.
(현명한 군주는 인민의 지지를 확보한다) 여기에서 인민들이 호감을 느끼고 부자들이 적대감을 느끼는 참주들은 내부적인 세력만으로도 더 확고한 지위를 누린다는 결론이 나옴.
41장. 중간단계를 적절히 거치지 않고 겸손에서 오만으로, 자비에서 잔인함으로 돌변하는 것은 경솔하고 무익한 짓이다
(10인회에 대한 추가적 논의) 참주정치를 유지하고자 한 아피우스가 저지른 실책 중에서 묵과할 수 없는 것중 하나는 그가 한가지 심성에서 다른 심성으로 너무나 갑자기 돌변했다는 점. 한동안 선량하게 행동하다가 자신의 목적에 따라 사악하게 행동하고자 하는 자는 예전의 지지가 사라지기 전에 새로운 지지를 얻을수 있도록 천천히 과도적인 과정을 거쳐야 한다.
43장. 자신들의 영광을 위해 싸우는 자들이야말로 훌륭하고 충직한 군인들이다
로마군은 집정관의 지휘하에서는 승승장구한 데 반해 10인회의 지휘하에서는 항상 패전을 거듭했다. 10인회 지휘하의 로마 군대는 동일한 능력을 갖추고 있었으나 예전과 같은 사기를 지니고 있지 않았다. 10인회가 일소되고 로마인이 다시금 자유인으로서 싸우게 되자 예전의 용기를 되찾음
44장. 지도자가 없는 다중은 무력하다 ; 먼저 위협하고 나서 권력을 요구해서는 안된다
(10인회 사건의 결론) 사람이란 결코 속내를 드러내서는 안되며 무슨 수단을 써서라도 자신의 소망을 달성하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법. 어떤 사람에게 그의 무기를 달라고 할 때 ‘나는 그것으로 당신을 죽이려고 한다’고 말하지 말라. 당신은 그 무기를 수중에 쥔 연후엔 당신의 소망을 성취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