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싱가폴에서 연락 드립니다.
한국은 4월이지만 꽃샘추위가 한참이라는데, 이곳은 여전히 덥고 하루에 한 번 내리는 스콜성 소나기 때문에 가끔 습하기도 합니다.
이 곳에 이렇게 글을 올려도 되나 싶지만, 어제 학과에서 개최한 소규모 세미나에 참석하였기에 소개해 드리고자 키보드를 칩니다. ^^
이 곳 사학과에서는 한 달에 한 번, 많게는 두 번 정도 해외의 방문학자나 학과 소속의 학자들이 연구주제, 혹은 출판물 등등을 주제로 해서 소규모 세미나를 가지는 데요. 가끔씩 해외에서 재미있는 주제로 연구하고 있는 박사과정의 학생을 초청하여 세미나를 가지기도 합니다. 어제가 바로 그런 경우 였습니다.
발표자의 이름은 Seng Guo Quan 입니다. 싱가폴에서 나고 자란 싱가포리안이구요. 학부는 캠브리지 대학교, 석사는 이곳 싱가폴 국립대를 나왔고, 현재 박사는 시카고 대학에서 과정을 밟고 있습니다. 발표제목은 발표자 본인의 박사논문 주제이기도 한 “The birth of the modern diasporic subject: law, knowledge, family reform and the overseas Chinese in British Malaya and Netherlands East Indies (1870-1942) - A Preliminary Report From Archival Research in Holland, Jakarta, and Kuala Lumpur” (한글 해석은 포기 ㅠㅠ)
제목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박사논문의 마무리과정이 아니라 한창 준비하고 있는 단계인지라, 발표는 본인 박사논문의 컨셉과 대강의 개요를 설명하고, 현재 인도네시아에서 진행하고 있는 사료 수집의 성과를 소개하는 형식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사실 제가 요즘 동아시아사 학계는 어떠한 흐름을 가지고 있고, 최신 연구는 이러이러하다 라는 식의 평가를 내리기에는 학계의 흐름이라는 것이 너무나 복잡한데다 저 자신 역시 부족한 식견을 지니고 있지만, 이런 저의 미천한(?) 눈에도 보일 정도의 뚜렷한 흐름들 중의 하나는 모더니티, 모더니즘, 흔히 한국에서는 근대성 정도로 해석되는 개념이 동아시아 역사에 어떻게 변용되어 왔는지에 대한 고민들입니다.
흔히, 동아시아 근대의 시작은 물질적 진보, 선진화된 경제 시스템을 앞세운 서양의 제국주의 국가들이 동아시아 여러 국가들에 영향을 끼치면서, 그리고 동남아시아의 경우는 식민지화가 진행되면서 시작되었다고 봅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동아시아의 근대성 이라고 하는 것은 서양의 근대성이 동아시아에 강제로 이식 혹은 복제되면서 형성되어 왔다고 여겨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사실 그러한 해석이 일정부분 맞는 것 같기도 합니다. 동아시아의 근대성이라고 하는 것도 결국에는 서양의 경험이 그 근원에 자리잡고 있으니까요. 이러한 논리에 반발하는 다른 한 극단의 논리는 동아시아, 특히 중국내부에 이미 근대성이라는 것이 자리잡고 있었다 라는 논리로 서양의 영향을 최소화 하려는 경향이지요.
다만, 1990년대가 지나고, 새로운 밀레니엄이라는 2000년대에 들어선 이후 나오는 또 다른 이야기는 서양 것도 동양의 전통도 아닌 새로운 모더니티의 탐색인 듯 합니다. 동아시아 여러 국가의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서양 제국주의의 영향으로 모더니즘이 강제로 이식되는 것은 맞지만, 그들이 근대적인 문물과 문화, 시스템을 경험하고 인식하는 과정에서 그들에게서 서양의 것도 아닌, 그렇다고 동양의 전통과도 다른, 제3의 근대성이라는 개념이 발생하게 되었다는 겁니다. 이를 증명하기 위해 어떤 학자는 상해 중국은행에서 일하는 소위 은행원, 그러니까 근대적인 교육도 받고 모던화된 상해의 도시생활을 즐기며 살고 있는 중간 계층의 인물들의 일상생활을 관찰하면서, 그들이 매일 경험하고 있는 서양의 근대적인 물질문명이 이러한 계층의 상해 도시민들에게 어떻게 인식되고 있고, 어떻게 소통되는 지를 밝혀내려 합니다. 그것을 통해 새로운 근대성을 발견할 길을 모색하려 하는 것이죠.
서론이 길었네요. ^^ 어제의 발표도 그런 컨셉 이었던 듯합니다. 영국 혹은 네덜란드의 식민통치를 말레이시아 혹은 인도네시아에서 경험하게 되는 해외 이주 중국인들이 모국에서 벗어나 해외에서 근대적인 법과 제도, 질서에 편입하게 되면서 그들만의 Diasporic modernity를 창출해 내는 과정을 묘사하는 것이 주요 주제인 듯 했습니다.
발표자의 문제의식은 1931년, 인도네시아를 일부 통치하고 있던 네덜란드 식민정부가 중국을 상대로 인도네시아 거주 중국인들을 네덜란드 식민지 가족법 제도를 적용해서 관리하겠다 라고 논의 한 사실로부터 출발합니다. 19세기 중반부터 20세기 초 중반에 이르는 100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화교 가족들이 어떠한 경험을 하게 되었기에, 근대적인 가족법과 제도의 범주에 편입되고, 이러한 논의가 양 국 정부차원에서 이루어지게 되었는지에 대한 의문인 것이죠.
특히 가족이 유지되는 근간인 땅, 토지의 소유과 관계된 내용이 주를 이루었습니다. 한 화교 가장이 땅을 소유하게 되고, 그것이 다시 자손에게 상속되는 과정이 반복되면서 화교인들만의 커뮤니티와 문화가 형성되는데, (현재도 그렇지만) 소유와 상속이라는 것이 단순하지만 복잡하고 법적인 분쟁이 발생할 가능성이 많은 영역이었습니다. 세 번째 사진에 보이는 표를 보면, 왕문성이라는 화교 가장은 부인이 3명이었는데, 유언 없이 세상을 떠나버렸습니다. 이 경우 누구에게 상속이 가고, 어느 부인의 자식이 땅을 소유하게 되는 지에 대한 분쟁이 자연스럽게 따라올 수 밖에 없습니다. 자연스레 네덜란드 식민정부의 법정에서 이 문제를 다루게 되고, 식민정부의 입장에서도 많은 땅을 소유하고 있는 화교들의 토지의 소유, 상속문제를 법제화하고 관리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게 되는 거죠.
발표는 대부분 발표자가 자료를 구하는 과정, 발견한 사료들과 사례들을 논문에 어떻게 적용시킬 것이라는 내용이 주를 이루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주제는 흥미로웠습니다만, 발표내용은 약간 산발적이었습니다. 발표 뒤, 질의 응답시간에 무엇을 말하려는지 모르겠다, 조금 더 정리해서 핵심을 요약해서 설명해 달라는 질문이 나왔을 정도니까요.
사실 유명한 학자라든가, 사람들의 관심을 끌만한 주제를 가지고 소개해 드렸으면 좋았겠다 라는 후회도 하는데요. 다만 이 카페에 현재 논문을 준비중 이거나 쓰고 있는 대학원생들, 혹은 관심있는 학부생들도 많이 들르는 것 같아 소개해 드립니다.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도움이 되었길 바랍니다. 그럼 좋은 하루 보내세요. ^^
첫댓글 흥미롭게 잘 읽었습니다. 특히 전통과 또 서양의 그것과 구분되는 제3의 근대성이란 논지는 흥미롭네요, 특정 시기 외부로부터 유입된 물질문명<?>에 대한 내지인들의 인식과 유통, 그것으로 말미암은 일상의 의식적이거나 혹은 무의식적인 변화들, 또 그로부터 파생된 새로운 사회적 힘들을 근대화의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생각합니다. 외부에서 들어온 것들은 명백히 서양의 것이고 또 그를 사용하는 사람 혹은 그 맥락은 오래간 그 땅위에 이어져 오던 것이니까, 제3의 것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같습니다. 다만 구태여 새로운 근대성이라 이름 붙이기보단 그저 근대시기의 변화들이라 말하고 싶습니다.
요즘, 생각이란 것을 할 기회가 흔치 않은데 이렇게 기회를 줘서 기뻐요! ...음, 백수란 생각보단 재미없는거 같습니다 ..
주제가 참 재미있네요. "이런 글" 완전 좋으니 앞으로도 많이 올려주세요. 스크롤의 압박도 대환영입니다~ 중국과 싱가폴에 특파원을 두고 있는 것 같아 든든하네요. 승아가 미국 특파원이 되주길 바랍니다. ^^ 서론에서 말한 1990년대 이후 연구경향을 뭉뚱그려서 cultural studies라고 하는데요, 근 20년간 거의 역사학을 장악하고 있습니다만, 이제 좀 염증도 나는 것 같아요. 버클리의 예원신 같은 연구자도 상해에 전기가 들어오고 가로수 등과 네온사인으로 인한 심야 스카이라인이 등장하는 것이 상해인의 심태에 미친 영향, 근대성에 대해 논하는데, 한국사도 신문,광고를 이용한 연예, 여성, 연애, 사교, 근대성 이런 연구가
학계나 출판계, 강연계(박물관 초청 시민강좌 등)를 휩쓸고 있으니까요. 정치사, 경제사, 외교사, 군사사, 과학기술사, 농업사 등 중요 분야가 공백이 심합니다. 이런 분야도 한편으로는 흡입력있는 글쓰기는 좀 배워야 할 것 같아요. 본인을 비롯하야... 위 발표 주제가 더욱 흥미있으려면, 쑹짠요우 선생 연구처럼 국내외 타지의 동향회관이 주로 재산분할 분쟁을 조정했기 때문에, 그 사례와 네덜란드 정부의 해석이 어떻게 다르고 같은지를 비교하면 좋을 것 같네요.
^^ 제가 위에서 예로 들었던 중국은행 은행원 이야기도 사실 예원신의 책과 논문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그리고 이런 이야기들이 대중들에게 더욱 어필할 수 있는 여지가 많으니 인기를 끄는 것 같습니다. 뭔가 있어 보이지 않습니까? ㅎㅎ 저만해도 사람들에게 주제를 소개할 때 환율이 어쩌니, 금본위제가 어쩌니 하는 이야기를 하면 서로 뻘쭘한 상황이 되는 경우도 많구요. 그래서 차라리 저도 모더니티를 집어놓고 시작(?) 할까 하는 고민도 하거든요. 그런데 이런 이론적인 틀을 강조하는 경향에 대해서는 이 곳 연구자들도 느끼는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박사과정의 학생이 발표를 하다보니 조언을 해주는 경우가 많았는데,
시카고 대학에서 연구하는 점을 걱정하면서 그 곳 학풍이 이론을 강조하는 경향이 강하니까 이론에 함몰되지 않도록 주의하라는 조언도 나왔었습니다. 그러면서 사료가 스스로 말할 때까지 기다리고, 사료의 목소리를 들으려 노력하라는 말을 하는데, 파란 눈의 교수님이 그런 얘기를 하니까 기분이 묘했습니다. 한국에서 있을때 학부, 석사를 통틀어 항상 듣던 말을 여기서 서양사람에게 듣게 될 줄은... ㅎㅎ 어쨋든 재밌게 보셨다니 다행이네요. 승아도 흥미롭게 봤다니 다행이고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