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 찾아 떠난 긴 여정 끝에는
김 상 립
대학 3학년, 겨울 방학 때였다. 나는 고향에 가지도 못하고 학생회 일을 보고 있었다. 학생처장님은 P교수님이 셨는데, 매우 인자하시고 조용하신 분이셨지만, 신앙에는 한치의 빈틈이 없는 분이셨다. 한일회담 반대 대모로 봄부터 학교사정은 말할 수 없이 소란스러웠고, 언제 또 폭발할지 모를 처지인데, 신학을 연구하신 분이 어찌 이런 자리를 맡았는지? 나는 처장님과 거의 매일 만나다시피 했다. 대략 공식업무가 끝나면 사담이 시작되었는데, 거의가 기독교에 관한 얘기였다. 아마 작심하고 나를 주님의 충실한 종으로 만들 작정이었던 것 같다.
하루는 처장님께서 새삼 “김회장, 구약성서를 읽은 소감이 어떤가?” 하고 물었다. 나는 한 동안 뜸을 드리다가 “처장님, 제가 읽어보니 정말 대단한 판타지 대하소설 같았습니다. 인류가 아득히 먼 옛날에 겪었다는 환상 같은 얘기 말입니다. 문제는 그런 스토리가 최고 최대의 베스트 셀러라는 사실이 더 놀랍습니다.” “그럼, 신약은?” “글쎄요. 철저한 종교서적이라 할까요, 잘 꾸며진 잠언서라 할까요? 역시 소설 같은 느낌도 있고요, 그런데 기적을 행하거나 부활에 관련된 얘기를 읽으면 제 마음은 절실한데, 전혀 실감이 나지 않습니다.”
처장님은 하버드대학에서 칼 바르트(Karl Barth 1886-1968. 스위스출생. 개혁파 조직 신학자) 신학을 연구하여 박사학위를 받았다는 설명과 함께, 그의 신학이론을 1시간 넘게 설명해 주셨다. 내가 제대로 알아 들을 수는 없었어도 애써 귀 기우려 듣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다음 날, 우리가 이런 저런 얘기를 하던 중에 나는 엉뚱한 질문을 하고 말았다. “처장님은 학문적으로 신학을 그리 깊이 공부했는데, 어찌하여 하나님을 무조건적으로 믿으십니까?” 처장님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 그는 무쇠 난로에서 팔팔 끓고 있는 보리차를 가만히 컵에 따른다. “김회장! 지금 이 차가 얼마나 뜨거우냐고 내게 물어보면, 나는 뭐라고 답해야 할까? 틀림없이 직접 마셔봐야만 알 수 있다고 말하지 않았겠는가?”
“신앙이란 자기가 믿는 만큼만 믿게 되고, 체험을 통하여 직접 몸으로 느끼게 된다면 더욱 믿음이 확고해 지지. 신학 공부한다고 저절로 믿음이 생기는 건 아니라네.” 하셨다. 처장님은 부모님 따라 태어나면서부터 교인이었다 했다. 그래서 운명적으로 주어진 믿음을 더욱 확실히 하기 위해 신학공부를 시작했고, 지금까지 신학연구 때문에 신앙이 흔들린 적은 한 번도 없었다 했다. 그리고는 “만약에 하느님께서 펄펄 끓는 물에 네 몸을 푹 삶아 제단에 바칠 수 있겠냐고 물으신다면 김회장은 어쩌겠나?” 하신다. 나는 망설임도 없이 “그럴 수는 없겠지요. 제가 없어지면 믿음도 없지 않습니까? 처장님은요?” “만일 하느님 음성을 통해 그 말씀을 직접 듣는다면, 나는 기꺼이 시키는 대로 할 것이네.” 나는 눈 앞에 닥친 단단한 벽을 느꼈다. 설령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했다 쳐도, 이미 태어난 생명이 하나님의 길을 따른다 할지라도, 목숨까지 내맡길 만큼 맹목적일 수는 없지 않겠는가?
어느 날인가 처장님은 “처음엔 김회장이 좋은 목회자가 될 수 있을 것이라 보았는데 지켜보니 힘들겠어(웃음). 아마 평생을 믿음에 갈증을 느끼고 살기는 해도, 생명의 샘을 찾아 직접 목을 추기지는 못할 것 같네. 믿음이란 조건 없이 시작되어야 정진할 수 있는 법인데, 출발부터 교리를 따지고 분석하기 시작하니 근본에 접근하기 어렵겠네.” “사람이 신앙을 가지고 살면 좋겠지만, 무신론자로 사는 사람들도 많지. 억지나 사이비로 믿는 것 보다야 한 발 물러나 믿음에 대한 순수한 갈증이나 동경을 지니고 사는 것도 괜찮은 일이지” 하셨다.
당시의 정치상황이나 내 개인적인 계획 실패로 차라리 다 잊고 교회에나 귀의할까 싶은 생각도 들어, 겨울부터 다음 해 여름이 갈 때까지, 나는 처장님이 주제하는 기도회에 비서처럼 따라다녔다. 당시 서울에서 이름난 교회는 상당수 방문했던 것 같다. 그러다 갖가지 사람들을 만났다. 방언하는 신도도 여럿 만났고, 그런 방언을 해석할 능력을 가졌다는 사람도 만났다. 예수님이 거지 모습으로 자기집에 왔었다는 얘기도, 오직 기도만으로 불치 병이 완치되었다는 주장도 직접 들었다. 그 외에도 신비스런 얘기가 많기도 했지만 어쩐지 큰 관심이 일지 않았다. 그런 류의 신도들은 또 저들끼리만이 서로 통하는 뭔가 있을 수 있겠지 여기고 말았다. 하루는 처장님께 “이제 경험할 만큼 했으니, 앞으로 잊지 않고 늘 기도하며 살겠습니다.” 라고 정중하게 말씀 드리고 이별을 고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돌아서자 곧 바로 신비주의적 기독교에 빠져있는 모 공과대학의 L교수를 만나, 그가 이끄는 기도 그룹에 참여하여 밤만 되면 잠을 줄여가며 몇 시간씩 기도에 빠져 1년여를 보냈다. 같이 출발한 사람들은 이적을 경험하고 특별한 능력을 얻어 독자적인 길을 찾아 나서기도 했지만, 어쩐 일인지 나는 성령 곁에도 못 가본지라, 열심히 기도한다고 아무나 종교인이 되는 게 아니로구나 싶어 모임을 떠나버렸다. 또 한 때는, 경주 부근의 산 속 작은 암자에 뛰어난 스님이 계시다 하여, 6개월을 먼 길 다니며 강론을 들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은 어떻게들 알고 오는지 사람들이 끊이지 않고 암자를 찾아와 기복(祈福)을 위한 철야 기도를 하고 있었다. 그러자니 아무리 좋은 강론도 그만 심드렁해져서 큰 깨침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종교란 구원만이 아니고 피할 수 없는 어떤 한계가 있는 것인가? 종교단체에 따라 신비주의적 믿음이나 기복신앙이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는 생각에 고민은 커졌다. 중년에 들어 정신공부를 시작한 것도 순전히 인간문제를 연구함으로써 새로운 길을 찾아보자는 생각에서였다. 그러나 정신공부가 깊어가니 그 곳에도 신비주의가 자리잡고 있었다. 유체이탈이니, 접신(接神)이니, 산신(山神)과의 대화 등등이 그런 것이다. 인간이란 존재는 어떤 믿음의 과정을 거치든, 종국에는 무조건 신에 의지해야만 완성이 되는 것인가? 나는 관계하고 있던 여러 단체에서 모두 빠져버리고 혼자 공부를 계속했다. 그래도 여태 살아오면서 기독교나 불교, 유교 등 널리 알려진 종교에 대해서는 조금도 배척하지 않았고, 교리를 무시한 적도 없이 기회만 오면 귀 기울려 경청하고 진정한 믿음이 생겨나기를 바랐지만 쉽지 않았다. 또 누가 당신 종교가 뭐냐고 물으면 얼른 무교(無敎)라는 대답이 나오지 않을 만큼 미련도 컸지만, 80이 넘은 지금까지도 비 종교인으로 산다.
요즈음은 동네길 따라 산책하며 성당이나 교회, 사찰을 만나면 더러 걸음을 멈추고 생각에 잠긴다. 만약 내가 저 곳에서 교역자로 살고 있다면 어떤 모습일까? 과연 지금보다 행복할까? 학생시절 처장님과의 대화를 평생 풀어야 할 숙제처럼 품고 살며, 내 한 몸 던질 믿음을 찾아 나름으로 애썼건만, 여태 신앙인이 되지 못한 여정의 끝이 종국에는 자신에게로 돌아와 있음을 안다. 내가 겪은 길고도 험한 여정은 바로 내 영혼을 위한 길이기도 했으니. 죽음과 동시에 멀고 먼 우주를 향해 떠날 영혼이 거침없이 빠르고 더 멀리 날기를 소망하며, 내 삶을 끊임없이 회개하고 교정하며 살아왔지 않았던가? 이제 내 영혼 하나 믿고 생의 종말을 맞을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만일 다음 생이 주어진다면 그래도 믿음을 찾는 여정을 계속할성싶다.
첫댓글 제가 과연 종교인일까하는 생각을 늘 합니다. 저의 믿음은 처음부터 끝까지 기복입니다. 가족들 건강하게 해달라고 부탁만 주어라 해댑니다. 가끔 그 가족 중 일인인 제게도 관심 좀 가져 달라고 조아리고 또 조아립니다. 저는 스님이나 신부님,목사님 처럼 성직자가 아닙니다. 그래서 술도 마셨고 담배도 피웠고 노름도 했습니다. 결혼도 하고 먹고 산다고 아부도 하고 뇌물도 갖다바치며 지금까지 살아왔습니다. 뒤늦게 회계하고 '차카게' 살려고 그냥 노력 중입니다. 저의 맨토이신 선생님 생을 본받으며......ㅎ
훌륭한 중생(정말 인간다운 중생)입니다^^
사람이 종교를 위해 사는 것보다 종교가 사람을 위해 있다고 생각합니다. 현세에 잘살았던 것처럼 다음생에도 잘살거라 터무니 없는 믿음을 갖고 살아요. 약속하신 작품 올려주셔서 진심으로 고맙습니다.
남평 선생님의 과거사가 거의 제 과거사와 흡사합니다. 성격도 비슷하고~
저는 문학을 이해하고 나서 부활을 이해 하게 되었습니다. 인간의 정신세계는 감성적인 영역과 이성적인 영역이 있고 그 위에 영성적인 영역이 있는데 대부분의 중생은 감성적인 영역에서만 머무르다 갑니다. 그다음 사색을 많이 하는 철인들이 이성적인 영역 까지 이해하며 살고 그 이성적인 영역을 뛰어 넘는 분들이 영성적인 영역에 다다르게 되고 생의 환희를 느낍니다. 영성적인 세계에 다다르려면 정신세계가 지극히 순수해야 합니다. 문학예술도 영성적인 영역에서 보고 느낀 이야기를 그려 낼 때 최고가 됩니다.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는 영성적 차원의 시라고 생각 합니다. 아주 깨끗합니다. 크림튼의 그림 "키스"도 영성적인 그림이고 뭉크의 "절규"도 영성적인 그림이라 생각 합니다. 굳건한 이성적인 의지가 뒷받침이 되지 않는 상태에서 영성적인 세계로 뚜껑이 열리면 미쳐버립니다. 방언도 폐하고 예언도 폐하고 다 폐한다는 성서 기록이 바로 그 뜻이라 생각합니다. 진정으로 중요한 가르침은 우리는 살아 있는 생명이기에 어떠한 경우도 서로 사랑해야 한다는 바로 거기에 있지 허황된 예언이나 방언 따위에 있지 않다는 것
입니다. 쉽게 표현하면 문학상 몇 개 받았다고 대 문호가 된 양 중심을 잃어버리거나 국회의원 감투 썼다고 백성을 물로 보거나 돈 좀 벌었다고 사람을 깔보는 인간들이 다들 그렇게 예언이나 방언을 쫓아 다니는 부류 입니다. 기적을 행하면 사람들이 몰려 오겠지만 몰려오는 영혼들을 밝음의 세계로 이끄는 데는 더 더욱 어렵게 만드는 것이 기적이기도 합니다. 이적은 방편일 뿐 본질이 아닙니다. 본질은 생명이고 존재 입니다. 존재가 아름다운 이유는 느끼기 때문입니다. 희노애락애오욕을 느끼기 때문에 아름다운 것입니다. 느끼고 표현하기 때문에 아름다운 것입니다.
내 손에 잡힌 물고기가 자기 존재의 이유를 알고 내게 '살려주십시요' 하고 애절하게 울면서 빈다면 나는 평생 물고기를 먹을 수가 없을 것입니다. 생선 회를 뜨는 어부에게 물고기도 아프겠다고 했더니 물고기는 그런 것을 못느낀다고 하더군요. 거기서 만물의 영장이란 많은 것을 느끼기에 영장이라 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인간 중에서도 못 느끼는 인간들 많지요. 마성의 포로가 된 악마입니다. 저도 선생님의 연세쯤 되면 지금보다 더 많은(또 다른) 것을 느낄 것입니다. 건강 건필하십시요.
신의 영역에 가까이 다가서기 위한 인간의 끊임없는 노력, 예컨데 사랑, 자선, 희생, 봉사, 정화, 극기....그리고 회개 따위가 아닐지요
모르겠습니다. 어렵기도 하고요. 제게 신앙은 좀 덜 나쁜 사람으로 인도하는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