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을 좋아한다면 절대로 카라얀을 욕해선 안된다 / 김 정 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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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클래식음악을 좀 듣는다는 이들 앞에서 카라얀을 좋아한다고 고백(?)하는것은 상당한 용기가 필요하다
김광석 성시경을 얘기하는데 나훈아를 좋아한다며 끼어드는 경우라고 할까?
나름 클래식 음악을 듣는다는 이들은 카라얀 이름만 나오면 삐죽거린다
클래식을 조금 안다면 카를로스 클라이버나 불프강 자발리쉬 정도는 얘기할 수 있어야한다는 표정이다
이찌 그 천박한 쇼맨십의 카라얀을 들먹이냐는 거다
하긴 70~80년대 한국에서는 카라얀이나 베를린 필하모니 사진한장 안 붙어있는 문화 공간은 없었다
'음악은 귀로 듣는것이지 ,눈으로 보는 것이 아니다'라는 주장이다
화려한 카라얀의 동작과 표정이 음악의 본질을 훼손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런 얘기를 하는 이들은 음악을 들을 때 ,눈을 지그시 감고 조명도 최대한 어둡게 한다
귀의 감각에 집중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인간은 모든 정서적 경험은 하나의 감각기관으로만 결정되는것이 아니다
음악은 절대 귀로만 듣는것이 아니다
음식도 마찬가지다
입으로만 먹는것이 아니다
내가 살고 있는 일본 교토 아라시야마에 '깃초'라는 가이세키 요릿집이있다
깃초는 미슐랭 가이드에서 별을 세개 받았다고 해서 유명해진 집인데 일인분에 4~5만엔 한다
엔저인 요즘 환율로 해도 40~50 만원인데 부모님이 오셨을 때 효도하는 마음으로 큰 결심해서
한 번 가보았다
솔직히 우리입맛에 그리 감동적인 맛은 아니었다
그러나 음식하나하나가 너무 예뻤다
정말 폼 났다
음식사진찍어 블로그에 올리는 이들을 그토록 경멸하는 나이지만 , 그때 만은 사진을 찍어 다른사람에게 보여 주고 싶었다
바로 먹어 없앨 음식을 어찌 이리 아름답게 만드는것일까 안타까운 생각마저 들었다
그 정성에 감동한 프랑스 사람들이 미슐랭의 별을 세 개나 준 듯했다
시각과 미각의 공감각적 경험이 만들어내는 감동 이었다
실제로 안대로 눈을 가리거나 귀를 막고 음식을 먹으면 맛을 제대로 느낄 수 없다는 연구 결과가 부지기수다
인간의 모든 감각적 경험은 '공감각 共感覺' 적이다
음악은 귀로만 듣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일찌감치 눈치챈 카라얀은 음악과 영상의 편집을 시도한다
사람들은 카라얀이 세계 최초의 뮤직비디오 제작자라는 사실을 잘 모른다
1965년 예술 감독으로 오페라 <라보엠>을 찍은 후 1967년에는 오페라 <카르멘>의 연주를 본인이 직접 감독한다
당기 기껏해야 공연 실황으로 연주되던 클래식 공연을 카라얀은 다양한 영화적 기법을 동원해
최초의 뮤직비디오를 만들었던 것이다
그 이후 본격 등장한 베를린 필하모니의 뮤직 비디오는 거의 '카라얀 감독. 카라얀 각본 카라얀 주연' 이었다
그의 지나친 나르시즘은 욕먹어야 마땅하다
그렇다고 해서 '눈으로 보는 음악'을 창조해낸 카라얀의 업적을 폄하해서는 안된다
대중음악 뮤직비디오는 카라얀의 뮤직 비디오가 제작된 후 한참 뒤에 만들어졌다
대중 음악계에서는 1975년 퀸의 <보헤미안 랩소디>가 최초의 뮤직비디오로 알려져 있다
10년을 앞서 클래식 음악으로 뮤직비디오를 제작한 카라얀의 혜안은 칭송받아 마땅하다
카라얀을 '음악과 영상의 편집"이라는 21세기적 에디톨로지의 선구자다
클래식 음악의 영역으로만 그를 평가해서는 안 된다
그가 엄청나게 예쁜 부인을 포르쉐에 태우고 ,베를린에서 잘츠부르크까지 무지막지한 속도로 달렸다고
배 아파해서는 안 된다
그가 없었다면 클래식은 그야말로 늙은이들의 음악으로 20세기 중반에 사라졌을 확률이 높다
그가 만들어낸 그 폼 나는 영상들이 클래식에 대한 대중적 환상을 만들어 냈기 때문에
클래식이 오늘날까지 우아하게 버틸 수 있는 것이다
카라얀은 클래식의 황제 대접을 받아 마땅하다
그 숱한 음악가들이 그 덕분에 오늘날까지 폼 나게 먹고살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순전히 내 생각이다
유쾌한 인문학으로 돌아온 문화심리학자
에디톨로지 /김 정 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