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인과 직무교육
나는 40여 년간을 교직에 종사하였다. 선생이라는 직업을 성직으로 알고 한 번도 후회해 본 적이 없다. 뛰어나지는 못했지만, 가르치는 일도 돌보는 일도 내 나름대로 있는 힘을 다하였다. 보수가 좋거나 힘이 있는 직종을 부러워해 본 적도 없다. 내가 하는 일이 가장 보람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면서 나날을 보냈고, 퇴직한 지금도 이러한 생각에 변함이 없다.
나의 이러한 조그만 교직관은, 선생을 만들어 준 사범학교의 선생님들께서 가르쳐 주신 사범교육 때문이다. 하나의 인간을 선생으로 만들어 준 그 사범교육 때문이다. 특히 교육학 과목 선생님들께서 시간에 들어오시면, 교과 지식을 가르침과 아울러 선생이란 이런 것이라는, 선생이 가야 할 길을 깊이 안내해 주셨다. 선생이 가져야 할 윤리적 자세를 바르게 깨우쳐 주신 것이다.
“여러분은 어떤 선생이 되어야 하는가? 공부 못하고, 집이 가난하고, 몸이 약하고, 부모가 없는 그런 학생들을 돌보기 위해 여러분이 필요하다. 다 갖추고 다 잘하는 학생들만 있다면, 그냥 두어도 잘될 터인데 왜 여러분이 꼭 필요하겠는가? 여러분들은 그러한 학생들 때문에 필요한 것이다.”
선생님들께서 가르쳐 준 소중한 말씀이다. 이런 말씀을 들으면서 선생이 되었다. 들을 때도 감동이 깊었다. 가슴이 아련하게 찡했었다. 교육 현장에 나와 근무하면서 어려움이 닥칠 때마다 이러한 말씀들이 문득문득 떠올랐다. 이러한 사범교육이 몸에 배어 선생을 할 수 있었고, 여러 가지 어려움도 헤쳐나갈 수가 있었다. 선생 만드는 교육 즉 사범교육이 선생을 만들어 주었기 때문이다.
사람을 키우는 선생에게 사범교육이 필요하듯이, 인간의 생명과 관련된 일에 종사하는 의사, 간호사, 판검사 등도 그 계통에 맞는 직무교육이 강화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의사들은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수정한 ‘제네바 선언’을 일반적으로 낭독한다고 한다. 양심과 위엄으로서 의술을 베풀며, 환자의 건강과 생명을 첫째로 생각하겠으며, 환자가 알려준 모든 내용의비밀을 지키겠다는 등의 선서를 한다고 한다.
간호사들도 나이팅게일 선서를 한다고 한다. 간호사로서 필요한 기초간호학 수업을 마치고 임상 현장에 실습을 나가기 전, 간호학과 학생들은 선서식을 통하여 전문직업인으로서의 간호사 정체성을 가지는 계기를 갖는 것이다.
히포크라테스 선서나 나이팅게일 선서도 물론 중요하다. 그러나 이러한 통과 의례적인 일회성의 행사로 끝나서는 윤리적 교육이 부족하다. 평소 교육에서 의사로서의, 간호사로서의 윤리와 자세를 가다듬는 직무교육이 강화되어 몸에 체득되어야 한다.
나의 인척 중에 꽤 이름난 의사가 한 사람 있다. 어느 날 그에게 내가 배운 사범교육을 이야기하고, 그와 같은 의료 윤리 교육을 받아본 적이 있느냐고 물어보았다. 그랬더니 그가 하는 말이, 어느 나이 많은 교수 한 분이 그러한 말을 한 번 했을 뿐, 그 외는 들은 적이 없다는 것이었다. 참으로 실망스러웠다.
지금 의과대학생 증원 문제로 세상이 시끄럽다. 의과대학생들이 휴학을 신청하고, 전공의들은 그 직을 떠나고 의대 교수들은 사직서를 제출하고 있다. 의사는 환자가 있기 때문에 의사다. 병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의사다. 죽어가는 생명을 살리기 위해 의사가 있다. 그래서 우리는 그들을 존경하고 성스럽게 여긴다. 의사들은 다시 한번 그 소명 앞에 엄숙해졌으면 좋겠다는 것이 이 촌로의 생각이다.
생명과 관련된 직무에 종사하는 사람이 판사다. 사람의 생명을 좌우하는 판단을 내리는 사람이 판사다. 무거운 직무를 수행하는 사람들이다.
판사는 율사로서 해당 사안에 대해 적정한 법 조항을 적용하는 전문지식을 가진 사람이다. 판사는 그러한 전문인이기에 앞서, 율사로서 갖추어야 할 인격과 그를 떠받치는 윤리를 체득하고 있어야 한다. 판사는 이 사회의 범사에 진위를 가려주는 엄중한 심판관이다. 엄히 말하면 판사는 생사를 가름하는 중대한 업무를 수행하는 사람이다. 사람을 단죄하는 위치에 있는 만큼 높은 품성과 인격을 가져야 한다. 주어진 권력에 휩쓸려서도 안 된다. 말을 아무렇게나 해서는 더더욱 안 된다. 그러므로 판사는 임명되기 전에 판사 만드는 교육이 반드시 필요하다. 법률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 외에 보통 사람이 아닌, 판사가 되는 직무교육이 반드시 필요하다.
선생을 만드는 데 사범교육이 있는 것처럼 말이다.
첫댓글 의대 증원 문제로 정부와 의료계의 대립을 보고 있으려니 참 큰 일이라는 느낌입니다. 대화를 한번 나눈 지금 까지는 별 뾰족한 수도 없는 듯합니다. 가슴이 답답하구요. 정부와 의료계 대표를 각 5명 정도 뽑아서 어느 폐쇄된 공간에 들어가게 하고, 합의에 이르지 못하면 문을 열어주지 않는 방법이라도 시행해 보았으면 하는 마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