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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자: "내가 생각해 봤는데 우리 요즘 권태기인 것 같아", 차: "엔진오일을 바꿔"
Q. 권태기인가? 이리 봐도 내 사랑, 저리 봐도 내 애기, 세상 제일 좋던 내 차가 예전 같지 않다. 동력계통 소음은 왜 이리도 큰지, 연비는 어쩌자고 점점 나빠지는지, 힘은 힘대로 예전만 못하다. ECU를 좀 만져야 하나 아니면 흡기나 배기를 튜닝해야 할까. 처음 느낌 그대로 산뜻한 드라이빙을 즐길 수 있는 효과적이고 현명한 방법이 없을까?
A. 남자친구 여자친구가 지겹다고 섣불리 바꿀 생각부터 하면 쓰나. 주행 질감 안 좋아졌다고 튜닝부터 했다가는 후회하기 십상이다. 내 차와의 관계회복을 원한다면 튜닝 이전에 엔진오일부터 살펴보자. 오일 교체만으로 마법 같은 체질개선을 경험할 수 있다. 체질을 알고 오일을 다스리면 백전불태(百戰不殆)! 새 차 같은 컨디션으로 더 오래 즐겁게 타려면 현명한 엔진오일 선택이 기본이자 필수다.
엔진오일이 대체 왜 필요해?
그동안 엔진오일 역할을 얕봤다면 미리 사과하시길. 엔진오일은 자동차 관리에 매우 중요한 요소다. 엔진을 자동차의 심장이라고 봤을 때, 엔진오일은 심장을 채우는 혈액과 같다. 피가 맑고 건강하면 낯빛이 밝고 생활에 활기가 넘치는 것과 마찬가지다. 엔진오일은 차의 활력을 좌우한다. 엔진오일만 잘 교체해도 체질개선이 가능한 셈이다.
엔진오일의 역할
1. 윤활
1분에 수천 번의 상하운동을 반복하는 피스톤이 엔진 블록과 마찰을 일으키는 것은 당연지사. 엔진오일은 실린더와 피스톤 사이에서 유체 막을 만들어 마찰을 줄이고 매끄러운 작동을 돕는다.
2. 기밀성 유지
피스톤과 엔진 블록 사이에는 움직일 수 있는 최소한의 유격이 있다. 실린더와 피스톤이 조금씩 마모되면 이 틈은 점점 커진다. 바로 이 틈을 엔진오일이 채워 기밀 상태를 유지하고 엔진을 보호한다.
3. 청정 유지
엔진오일은 엔진 구석구석을 돌면서 오염 부위를 씻어내고 연소로 생성되는 산을 중화한다. 다만, 계속해서 생겨나는 오염물질 때문에 엔진오일은 갈수록 혼탁해진다. 엔진오일을 주기적으로 교환해야 하는 이유다.
4. 방청
연료와 혼합기에 수분이 섞이거나 겨울철 엔진 냉각으로 인한 결로현상 때문에 엔진이 부식될 가능성이 있다. 엔진오일은 엔진 주요 부분을 덮어 부식을 방지한다.
5. 냉각
제아무리 찬물을 돌려 엔진 열을 식히는 수랭식이라 해도 구조적으로 냉각수 공급이 어려운 부분은 생기기 마련이다. 이런 부분의 냉각은 엔진오일이 담당한다.
6. 유압 부품 작동
요즘 엔진에는 가변 밸브 타이밍 기구가 달리는 경우도 많다. 그런데 이 가변밸브는 주로 유압으로 작동시키는데, 바로 이 역할을 엔진오일이 맡고 있다.
이렇게 중요한 엔진오일, 언제 바꾸지?
엔진오일 교환주기에는 명쾌한 정답이 없다. 차종과 주행 스타일, 기존 엔진오일 교환 주기에 따라 차마다 적기가 다르다. 하지만, 믿고 따를 만한 가이드는 존재한다. 일반적으로 자동차 회사는 가혹 조건을 기준으로 5000~1만km 운행 후 또는 6~9개월 단위로 교체를 권장한다.
2012년 한국석유관리원이 1만km를 주행한 차의 엔진오일 상태를 점검한 결과, 새 엔진오일에 비해 점도가 크게 떨어지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점도는 엔진오일의 보호 능력이므로 점도가 멀쩡하다는 건 아직 쓸만하다는 것이다. 이 결과는 엔진오일을 지나치게 자주 교체하는 건 낭비라는 주장의 근거가 된다. 하지만 1만km 이상 주기로 오일을 갈아도 되는가에 대해서는 반론이 거세다. 국내 도로 사정상 교통정체가 심하고 언덕이 많아 가혹 조건에 해당할 여지가 많다는 의견이 있다.
점도만큼이나 산화 정도도 중요하다. 산화는 주로 시간에 영향을 받는다. 따라서 주행거리에 상관없이 6개월 주기로는 교체해주는 게 좋다. 실제로 교환 시기를 정하는데 중요한 요소 가운데 하나가 TBN(전염기가, Total Base Number)이다. 이상적인 교환 시기는 TBN이 TAN(산성가, Total Acid Number)과 일치하는 시점이다. 대부분 엔진오일의 TBN은 1만km 주행 이전에 TAN을 밑돈다.
따라서 연비 운전을 위주로 낮은 엔진회전수로 차를 모는 운전자는 7000~1만km마다, 경차·소형차·스포츠카처럼 엔진 회전수가 상대적으로 높거나 가고 서기를 반복하는 시내 주행이 많아 공회전이 많은 경우에는 5000~7000km마다 교체하는 게 좋다. 운전스타일과 상관없이 반년에 한 번 이상은 엔진오일을 가는 것도 좋다.
다 같은 엔진오일이 아니라고?
▲ 다 비슷해 보이는데 가격도 성능도 천차만별
엔진오일은 엔진과 차에 좋다는 여러 성분을 합쳐서 만드는데 그중에서도 기본이 되는 기름, 기유(基油)가 어떤 것이냐에 따라 몇 가지로 나뉜다. 성분에 따라 품질과 가격이 큰 차이를 보인다.
엔진오일 기유의 종류
광유
석유 정제 과정에서 얻는 부산물성 윤활유다. 끓는점이 높아 연료로 사용하기 어려워 윤활유로 사용한다. 2000년대 이후에는 순정 엔진오일이 대부분 VHVI 기유로 바뀌어서 요즘 광유는 주로 저가형 2행정 모터사이클이나 예초기 엔진오일로 사용한다.
합성유
- VHVI(Very Hight Viscosity Index) : 탈황처리한 광유를 고도로 정제해 만든다. 성분의 균일성이 높아져 점도지수가 높은 고성능 엔진오일을 만들 수 있다. 아래 다른 합성유에 비해 가격이 저렴하다. 국내 업체(SK 루브리컨츠, GS 칼텍스)가 전 세계 VHVI 기유 시장을 장악하고 있다.
- PAO(Poly Alpha Olefin) : 진정한 의미의 합성유. 석유를 기본으로 하지만, 값비싼 나프타에서 에틸렌을 뽑아낸 뒤 다시 에틸렌을 원료로 알파 올레인을 만든다. 이것을 다시 VHVI처럼 수소화 처리를 하고 중합반응을 일으켜 만든다. 광유에 비해 점도지수가 높고 저온유동성이 좋아 냉간 시동 시 엔진을 효과적으로 보호한다. 빠른 예열에 도움을 주기 때문에 연료효율에도 유리하다. 하지만, 처리 과정이 복잡해 가격이 비싸다.
- 에스테르 : 에스테르는 극성을 띠기 때문에 첨가제 용해성이나 윤활 효과도 좋고 청정성도 매우 우수하다. 다만 고온에서 수분과 반응해 가수분해되는 성질 때문에 수명이 매우 짧다. 가격도 가장 비싸다. 주로 PAO 기유와 섞어 고급 엔진오일을 만들 때 쓴다.
알쏭달쏭 엔진오일 스펙 어떻게 읽을까?
엔진오일을 사용할 때는 ‘오일 규격’과 ‘점도’ 딱 두 가지만 기억하면 된다. 자동차 매뉴얼을 보면 오일류의 규격과 점도가 지정되어 있으며 가능한 이를 따르는 게 좋다.
엔진오일의 성능 등급은 API(American Petroleum Institute, 미국석유협회), ILSAC(International Lubricants Standard and Approval Committe, 국제윤활유 표준화 및 승인위원회), ACEA(Association des Constructeurs Européens d'Automobiles, 유럽자동차제조사협회) 등의 규격을 따른다. 더 중요한 건 다음에 나오는 점도다.
엔진오일의 점도는 SAE(자동차기술협회, Society of Automotive Engineers) 규격을 따른다. SAE 점도는 보통 ‘5W30’처럼 ‘숫자W숫자’ 형식으로 적는다. W는 겨울(Winter)의 약자로 W 앞 숫자는 저온에서의 유동성을, W 뒤쪽 숫자는 100℃ 에서의 점도를 나타낸다. 시중에서 구할 수 있는 자동차용 엔진오일은 대부분 저온점도는 0~20, 고온점도는 20~80 사이로 나온다.
앞 숫자(저온 점도)가 작을수록 낮은 기온에서의 유동성이 우수해 추운 날씨에 시동이 잘 걸린다. 엔진 마모는 대부분 시동을 걸 때 발생한다. 엔진오일의 저온 유동성이 우수하면 시동 걸 때 엔진 구석구석 퍼지는 시간이 짧아 마모를 줄일 수 있다. 대신 저온 점도 수치가 낮을수록 상대적으로 증발량이 많고 수명이 짧으며 고속주행에 불리하다. 최근에는 기유의 품질과 점도지수 향상제 성능이 매우 향상돼 유명 메이커의 0W 엔진오일이 자동차 설명서 기준 교환주기 이내에서 성능이 저하되는 일은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 엔진오일 점도 차이를 가장 잘 보여주는 영상. 저온상태에서의 실험으로 추정된다
<출처: 유튜브 채널 Vall Jimov>
예열 후 엔진오일 온도는 80~100℃ 정도다. 뒤 점도 수치(고온 점도)가 높을수록 엔진 내부에서 엔진오일이 형성하는 유막이 두꺼워져 고부하 상황에서 엔진보호에 유리하다. 엔진 이상으로 인해 연료나 수분이 엔진오일에 많이 유입되는 경우에 점도저하 염려도 어느 정도 줄어든다. 하지만 점도가 높을수록 엔진 작동에 저항이 높아져 연비가 나빠진다.
점도는 자동차 설명서가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 기후·계절·차종·엔진출력·주행습관·주행환경을 고려해 선택한다. 보통 국내에서 승용차에는 사계절용으로 5W30 엔진오일을 많이 쓴다. 고속주행 성능과 고속주행 시 엔진오일의 엔진 보호능력을 중시하는 운전자는 고온 점도 수치가 이보다 더 높은 엔진오일을 선택하고, 연료효율을 중시하는 운전자는 5W20처럼 고온 점도가 낮은 엔진오일을 사용하면 연비 향상에 도움이 된다.
추천! 유형별 엔진오일
▶ 시내 주행이 많거나 경차·소형차: GS칼텍스 Kixx G1 FE SN 5W20
기존 Kixx G1 FEx의 리뉴얼 모델. 5W20으로 점도가 낮은 엔진오일에 속한다. 가솔린 엔진의 연비 향상에 초점을 맞췄기 때문에 경차나 소형차의 연비 운전에 적합하다. ILSAC 등급: GF-5, API 등급: SN/CF이다.
▶ 연비 따지는 가솔린차와 디젤차: GS칼텍스 Kixx PAO1 0W30
0W30으로 한겨울 강추위에도 엔진 보호에 특화한 PAO 기유 제품. 제조사 설명에 따르면 연비 향상과 배기가스 배출 저감에 최적화했다고 한다. ACEA 등급: A5/B5-12, C2-12, API 등급: SN/CF이다.
▶ 시내 주행과 고속주행 모두 무난한 다재다능: 모빌 MOBIL1 EP 5W30
어지간한 차종에 모두 무난한 5W30 점도의 엔진오일. 고성능 합성 기유에 균형 잡힌 첨가제 성분을 더했다. 고급 제품은 아니지만 흠잡을 곳이 없기 때문에 제조사 순정 엔진오일을 쓰던 운전자가 사제 엔진오일을 고려할 때 많이 선택한다. ACEA 등급: A1/B1, API 등급: SN/CF이다.
▶ 고속주행 & 펀드라이빙: 캐스트롤 EDGE TITANIUM SN 5W40
고출력을 내면서도 고온에서 엔진 마찰을 최소화하도록 고온 점도를 높였다. 엔진 출력이 꽤 높은 차량을 운전하거나, 종종 고RPM을 써가며 운전하는 경우 추천하는 엔진오일이다. ACEA 등급: A3/A4, API 등급: SN/CF이다.
▶ 고성능 고출력에 적합 : 리퀴몰리 SYNTHOIL RACE TECH GT1 10W60
평범한 차는 이 엔진오일을 쓰면 연비와 초반 가속력에 안 좋은 영향을 받을 가능성이 있다. 10W60 점도의 이 엔진오일은 고성능, 고출력 차량에 추천한다. BMW의 고성능 브랜드인 M시리즈 운전자들이 많이 선택하는 제품이다. ACEA 등급: A3/B4, API 등급: SL/CF이다.
▶ 대형트럭 & 중장비 등 디젤 상용차: SK루브리컨츠 ZIC X7000 10W40
DPF(매연저감장치) 차량 전용 엔진오일로 대형 상용차에 적합하다. ACEA 등급 : E7, E9, API 디젤 등급 : CJ-4 다.
자, 복잡한 것 같지만 알고 보면 쉽고 재미있는 오일학 개론은 여기까지. 차종·지역·기후·주행 스타일에 딱 맞는 엔진오일이 회춘의 명약임을 알았을 테니, 이제 선택과 실천만 남았다. 엔진오일 교환은 동네 정비소나 공업사, 또는 제조사 지정서비스센터에서 쉽게 가능하다. 폐유처리 문제와 화상 위험 등이 있으므로 자가정비 고수가 아니라면 개인이 직접 교환하는 것은 추천하지 않는다.
기획, 편집 / 송기윤 iamsong@danawa.com
글, 사진 / 이병진 news@dana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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