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절 육바라밀을 닦는 마음
1 부처님은 어느 날 저녁에 대림강당 앞뜰에서 대중에게 다음과 같이 설법하셨다.
"사리불아, 모든 법은 있는 것도 아니요 없는 것도 아니며, 나는 것도 아니요 없어지는 것도 아니라고 생각해서, 바라밀에 마음을 두어야 한다. 베풀어도 베푼다는 생각이 없이 보시바라밀을 행하라. 참다운보시에는 베푼 사람도 없고, 베푼 물건도 없고, 베풂을 받는 사람도 없는 것이다. 계율로써 마음을 억제할 때에도 계를 지킨다. 마음을 억제한다는 생각 없이 지게바라밀을 행하라. 실제에 있어서는 허물을 범한다, 범하지 않는다는 것이 없는 까닭이다. 다른 사람의 괴롭힘을 참으면서, 다른 사람이 나를 괴롭힌다는 생각이 없이 인욕바라밀을 행하라. 괴롭힘에 의해서 마음이 움직이거나 움직이지 않는 것은, 본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힘을 써도 힘쓴다는 생각이 없이 정진바라밀을 행하라. 힘쓰고 게으르다는 것은 본래 그것은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생각해도 생각한다는 생각이 없이 선정바라밀을 행하라. 선정을 닦고 안 닦는다는 것은 구별이 본래 없기 때문이다. 또 물건에 집착한다는 생각이 없이 반야바라밀을 행하라. 모든 법의 체나 상은 다 잡을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리불아, 일체는 얻을 수 없는 것이다. 이렇다고도 저렇다고도 할 수 없는 것으로 알고 반야바라밀을 행하라. 모든 것은 필경은 잡을 수 없는 것이다.
사리불아, 빨리 일체의 지혜를 얻어, 모든 번뇌를 떠나 다시는 물러서지 않는 지위에 이르려고 하거든, 반야바라밀을 닦지 않으면 아니 된다. 이 반야바라밀을 닦으면, 사견을 가진 사람의 인과를 믿지 않고, 또 그 사람의 가르침도 듣지 않고, 마음의 번거로움을 돌려, 불ㆍ법ㆍ승을 믿어 기뻐게 될 것이다. 이것은 모든 사람을 부모나 형제와 같이 화목하게 만드는 것이다.
2 사리불아, 어떤 사람이 이 반야바라밀을 닦을 때에는, 여러 하늘도 이것을 기뻐하여, 그 사람이 음행을 떠나 처음부터 끝까지 청정행을 닦도록 마음속으로 바라는 것이다. 왜 그러냐 하면, 욕심은 불과 같아서 몸을 태우고 더러워서 자기와 남을 더럽히며, 원수와 같이 틈을 엿보고, 마른 풀에 불붙는 것과 같다. 또 쓴 과일과 같고 칼과 같으며, 불덩이와 같고 독한 그릇과 같으며, 요술쟁이와 같고 어둠 속의 우물과 같으며, 거짓으로 친절히 구는 적과 같기 때문이다. 사리불아, 이 반야바라밀을 닦을 때에는 반야바라밀을 보지도 말고, 반야바라밀의 이름도 보지 말며, 행하고 행하지 않는 구별도 보지 말라. 왜 그러냐 하면, 색은 그 본성이 공했기 때문에 공을 색이라 이름한 것이다. 원래 색의 자성은 공이다. 자성이 공에 의하지 않고 가설로 그것을 색이라고 이름한 것이다. 이런 경우에는 공은 색과 다르다. 그러나 색은 공을 떠나지 않고 공은 색을 떠나지 않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색은 그대로 공이요, 공은 그대로 색인 것이다. 보리라하고 중생이라 하고, 보살이라 하는 것도 다 그 이름뿐이다. 그 자성은 생도 없고 멸도 없으며, 더러운 것도 없고 깨끗한 것도 없다. 이렇게 관해서 반야바라밀을 닦아, 생도 보지 않고 멸도 보지 않으며, 더러움도 깨끗함도 보지 않는 것이다. 세상에서는 가설로 이름하서도, 그 이름에 사로잡혀 분별을 일으키고 말을 일으키며, 집착을 일으키는 것이다. '나'라고 하고 '사람'이라고 하는 것도 다 얻을 수 없는 공이지마는, 세상을 따라 임시로 이름을 지었을 뿐이다. 거기에 무슨 집착을 일으키겠는가?
사리불아, 이 반야바라밀을 닦아 모든 번뇌를 떠나고 위없는 깨달음을 열어 한량없는 사람을 깨우쳐 주겠다고 원하지 않으면 아니 된다. 공ㆍ 무상ㆍ 무원의 법을 따라 일체를 뛰어나, 다시는 물러서지 않는 지위를 얻어 모든 사람을 위한 참다운 복밭이 되지 않아서는 아니 된다. 모든 착한 법은 이 사람으로 말미암아 세상에 나타나고, 이 착한 법으로 말미암아 세상에는 부귀가 있고, 하늘에는 영광이 있으며, 도에는 깨달음이 있는 것이다.
사리불아, 이 사람은 이미 재물을 베푼 사람에게 따로 갚겠다는 생각을 할 필요가 없다. 왜 그러냐 하면, 이 사람은 큰 시주가 되어, 이미 모든 사람에게 여러 가지의 착한 법과 부처의 도를 베풀고 있기 때문이다. 이 사람은 이미 여러 시주의 은혜를 갚은 참다운 복밭이다.
3 사리불아, 그러므로 반야바라밀을 닦을 때에는, 그 견해, 그 수행, 그 지혜가 참 지혜와 부처의 뜻에 계합한가 않는가를 보아서는 아니 된다. 그것은 벌써 일체 지도 보지 않고 부처가 있는 것까지도 보지 않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계합의 여부를 보지 않음으로써 반야바라밀에 계합하는 것이다. 이리하여, 어떤 물건도 마음에 두지 않고 마음을 구속하지도 않으며, 유어나 공에나, 헤매는 데에나, 깨닫는 데에도 마음을 두지 않고 또 마음을 구속하지 않는다. 법의 본래 성품에는 차별이 없음을 알고 있기 때문에, 반야바라밀을 닦는 것은, 신통력을 얻는다든가 사람을 지도한다든가 하는, 무엇 때문에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는 사람을 사랑하고 잘 깨닫는 길에 서게 하며, 악마로 하여금 틈을 얻지 못하게 해서, 그 번뇌를 없애고 항상 부처와 떠나지 않게 하는 것이다. 공과 계합하되 계합한다고 생각하지 않고, 깨달음을 구해도 구한다고 생각하지 않으므로, 그 행의 공덕은 넓고 커서 한없이 불법을 일으키고, 육도의 큰 행은 항상 저절로 나타나 끊임이 없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