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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512 주일말씀/ 엡6:1-3
효도는 하나님의 명령
말씀 : 정삼지 담임목사
지난 주일은 어린이 주일이었고, 오늘은 어버이주일입니다. 비교해 보면 어린이주일 하면 활기참이 있는데, 부모께 효도하고 공경하는 일은 차츰차츰 식어져 가는 것 같습니다. 앙케이트 조사 중에 “엄마가 죽으면 어떻게 하나?”하는 질문에 “안 된다”는 답이 대다수였습니다. 그런데 “아빠가 죽으면?”이란 질문에는 안타깝게도 “괜찮겠다”라는 대답이 나왔다는 것인데요. 아빠는 키울 만큼 키웠으니까 가셔도 좋다는 것일까요. 문신에 넣는 글자에 대한 앙케이트 조사를 세계적으로 조사를 해봤는데, 1위가 M자, 2위가 P자, 3위가 L자입니다. 1위가 Mother, 2위가 Passion, 3위가 Love입니다. 그런데 4위와 5위에도 Father가 없습니다.
그러나 시대와 상관없이 성경말씀은 부모를 공경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을 살펴보면, ‘공경하라’는 말씀은 ‘티아모’입니다. ‘존중하고 존경하고 경의를 표하라’는 말씀입니다. 부모는 구제의 대상이 아닙니다. 아무리 좋은 선물을 하고 돈을 드려도 구제의 대상으로 한다면, 하나님은 기뻐하시지 않습니다. 불쌍한 우리 부모님이라는 의식으로 부모님께 잘해 드린다면, 하나님의 뜻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부모의 가치를 높이기를 원하십니다. 개인과 사회와 세상의 어떤 판단에 상관없이 부모는 높은 분이고, 존경받을 분이라고 높게 평가하고, 존중해야 할 분이라고 말씀합니다. 그래서 “자녀들아 주 안에서 너희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엡6:1). 이것은 부모님께 순종하고 공경하라는 명령입니다. 부모공경은 해도 좋고 안 해도 좋은 선택형이 아닙니다. 하라는 명령입니다. 명령에는 축복이 따릅니다. 그러나 실행하지 않을 경우에는 그에 대한 책임, 즉 벌이 따릅니다. 순종하면 복이 있다고 말씀합니다.
앙케이트 조사를 했을 때, “아버지와 어머니에게 얼마나 만족합니까?”라는 질문에 엄마는 그래도 이해가 가는데, 아빠는 이해가 안가는 부분이 많다고 나왔습니다. 그러나 그것에 상관없이 내가 만족하느냐, 그렇지 않느냐에 상관없이 순종하라는 말씀은 의무이고 명령입니다. 군대는 명령이 떨어지면 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조건이 없습니다. 왜 하나님은 부모에 대해서 내가 싫은데도 불구하고 순종하고 공경하라고 했을까요. 그것은 부모님을 하나님의 대리자로 가정에 파송했기 때문입니다.
부모는 가정에서 하나님의 대리자입니다. 육신의 부모로 끝난다면 윤리 도덕입니다. 그러나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말씀은 윤리 도덕을 넘어서, 하나님이 우리 가정을 위해서 세우신 대리자로서, 하나님을 순종한 만큼 부모에게 순종하라는 것입니다. 그럴 때, 하나님이 축복을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부모가 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가정에서 아버지는 대리자로 세우시고 특히 축복권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사상 때문에 학교 갈 때나 외출할 때나, 문밖에 나갈 때, 아버지께 축복 기도해 달라고 합니다. 그래서 효는 윤리도덕 문제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축복권을 주신 부모 앞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나와 상관없이 대리자로 세우셨기 때문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마치 교회의 대리자로 주의 종을 세웠습니다. 여러분이 만족하고 기뻐하느냐에 상관없이 순종하고 복종해야 합니다. 축복권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순종하고 공경했을 때, 축복은 하나님이 주시겠다고 하십니다. 왜 대리자로 세웠느냐면, 천국이 하나님의 가정이기 때문입니다. 지상의 가정은 그림자입니다. 진짜 실체는 하나님이 아버지이시고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라는 관계입니다. 그 맛을 보는 것이 가정입니다. 그러나 가정은 잠시 있다가 사라지고, 하나님이 아버지가 되시고 우리가 자녀되는 하나님의 가정은 영원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가정을 위해서 부모님을 대리자로 세우셨음을 믿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순종해야 합니다. 나와 상관없이 아버지에게 축복권을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어디를 까든지 아버지의 축복을 갖고 가기를 바라고, 출타할 때 집을 드나들 때, 학교를 가든 직장을 가든 늘 축복을 받고 가야 합니다.
교회에서도 출타할 때, 목사님께 기도를 받고 가야 합니다. 유대인들에게는 아주 익숙해져 있습니다. 왜 그러셨는가 하면, 가정의 부모의 사랑과 희생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부모가 해야 할 일이 있다면, 내 자식이니까 가르쳐야 하고, 먹여야 한다가 아니라, 하나님은 부모를 세우신 목적이 부모를 통해 하나님을 깨닫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부모의 사랑을 보여주도록 자녀들에게 부모를 세우신 것입니다. 특히 부모는 하나님의 희생적 사랑을 자녀들에게 보여주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너를 이렇게 사랑한단다. 내가 이렇게 너에게 하는 것은 하나님이 너를 사랑하시기 때문이다.’ 하나님과 우리와의 관계를 부모는 보여주어야 하고, 교회 목사님은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줌으로써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도시에 지진이 났습니다. 건물이 무너졌습니다. 26살 된 엄마와 3살 된 딸이 갇혔습니다. 어떻게 할 방법이 없습니다. 시간이 갈수록 어둠과 추위가 몰려옵니다. 목마르기 시작합니다. 그럴 때, 엄마는 칭얼대는 아이를 위해 유리조각을 가져다가 손가락을 찌르고 그 피를 아이의 입에 넣어주었습니다. 아이의 목마름을 해소하기 위해서입니다. 하루가 가고 또 이틀이 가고, 아이가 목마르고 배고플 때, 엄마는 또 다른 손을 찔러서 그 피를 아이에게 먹여주었습니다. 엄마는 점점 기진맥진해져 갑니다. 14일을 그렇게 했습니다. 14일 만에 구조가 되었는데, 엄마는 온 몸은 피투성이었고, 시퍼렇게 변해 있었습니다.
아이는 그 엄마의 피를 먹고 가까스로 살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희생적 사랑이라고 부릅니다. 엄마와 아빠가 이런 희생적인 사랑을 보여줌으로 자녀들이 잘되라고 하는 것일 수 있지만, 그러나 그 이전에 하나님이 너를 이렇게 사랑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너의 모든 죄를 용서하실 수 있어, 아빠가 용서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이 너를 그렇게 용서하시기 때문이야, 아빠가 잘나서가 아니고, 아빠가 돈이 많아서 너를 맛있는 것을 사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은 너에게 더 좋은 것을 해 주실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야’ 그렇게 하기 위해서 세우신 것입니다.
어머님의 마음
양주동 작사 / 이흥렬 작곡
나실제 괴로움 다 잊으시고
기를제 밤낮으로 애쓰는 마음
진자리 마른자리 갈아 뉘시며
손발이 다 닳도록 고생하시네
하늘아래 그 무엇이 넓다 하리오
어머님의 희생은 가이없어라
어려선 안고 업고 얼려 주시고
자라선 문 기대어 기다리는 맘
앓을 사 그릇될 사 자식 생각에
고우시던 이마 위엔 주름이 가득
땅 위에 그 무엇이 높다 하리오
어머니의 정성은 지극하여라
사람의 마음속엔 온 가지 소원
어머님의 마음속엔 오직 한 가지
아낌없이 일생을 자식 위하여
살과 뼈를 깎아서 바치는 마음
이 땅에 그 무엇이 거룩하리오
어머님의 사랑은 그지없어라
세 살 된 딸이 지진으로 갇혔을 때, 캄캄함 속에서 두려워할 때, 엄마는 유리칼로 손을 베서 3살 난 딸을 피방울로 살려내었습니다. 여러분의 엄마와 아빠가 똑같은 상황을 만난다면, 유리칼 찾아서 엄마의 손가락을 베서 14일을 견딜 수 있도록 얼마든지 그렇게 할 것입니다. 그것이 부모의 자식을 향한 사랑입니다. “아낌없이 일생을 자식 위하여 살과 뼈를 깎아서 바치는 마음 이 땅에 그 무엇이 거룩하리오. 어머님의 사랑은 그지없어라” 살과 뼈를 깎아서 내어주는 어머니의 마음은 우리 주님의 사랑과 같은 것입니다. 양주동박사께서 작사를 했습니다.
오늘 이 시대는 이성과 지성은 발달했지만, 마음을 꽁꽁 얼어붙었습니다. 엄마를 위해 아빠를 위해 돈을 드리고 수고하셨다고 합니다. 돈 드리면 됐지 뭐, 그것으로 할 일을 다 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오늘 이런 곡처럼 정말로 엄마 아빠에게 마음을 주는가 하면, 단순히 부모가 나를 사랑하고 희생해 주었기 때문에 감사하는 것입니다. 부모가 나를 위해 무엇을 해주었나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부모님으로 인해 나를 낳게 해 주셨고, 하나님은 보내 주셨습니다. 그래서 조건이 없는 것입니다. 잘 키웠든 못 키웠든 부모는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믿는 가정에 부모로 세워서 하나님의 대리자로,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와 돌봄을 보여줄 수 있는 대리자로 세워주셨어요. 그러므로 조건없이 사랑하고 공경하라는 것입니다. 마치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롬5:8)처럼 말입니다. 이런 어머니의 사랑과 희생은 하나님의 희생과 사랑과 같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우리가 자라서 오늘 여기까지 온 것을 볼 때, 그 값은 무엇으로도 계산할 수 없습니다. 헌신이었고 사랑이었고 눈물이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명령합니다. 그러므로 네가 부모님이 마음에 들든 안 들든 순종하라고 합니다. 높이 평가하라고 합니다. 시대가 어떻게 가든 순종하고 복종할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두 번째는 약속있는 첫 계명이라고 말씀합니다.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은 약속이 있는 첫 계명이니”(엡6:2). 십계명은 모세가 시내산에서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것으로, 두 돌판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한 돌판은 하나님과 관련된 말씀입니다. 그것은 “1.너는 나 외에 신을 두지말라 2.우상을 만들지 마라 3.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 4.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라.”는 하나님과의 관계는 하나님과의 사랑입니다. 하나님을 정말 사랑한다면 4가지를 지키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정말 하나님을 공경하고 높인다면 이것을 행해야 합니다.
그리고 네가 정말 인간답게 살려면 6가지를 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인간다운 삶의 첫 계명이 바로 다섯 번째 계명인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말씀입니다. 인간으로서 해야 할 첫 번째 일이 바로 부모공경입니다. 하나님은 부모를 하나님의 대리자로 세우시고, 인간과의 첫 번째 관계의 열쇠를 부모와의 관계를 통해서 말씀하십니다. 아무리 우리가 잘되고 성공하고 출세하고 대단한 사람이라고 해도, 부모를 공경하지 않는다면 하나님 앞에서는 무가치한 것입니다. 그래서 “5.네 부모를 공경하라 6.살인하지 말라 7.간음하지 말라 8.도둑질하지 말라 9.네 이웃에 대해 거짓 증거 하지 말라 10.네 이웃의 집을 탐내지 말라”는 이 모든 것의 첫 번째 열쇠가 부모를 공경하는 것입니다.
왜 부모를 공경해야 합니까? 하나님이 세워주신 대리자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나를 위해 희생하고 헌신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은 나를 위해 축복할 축복권을 부모님께 주셨습니다. 그리고 부모에게는 하나님 사랑하는 것을 알리도록, 사랑과 희생과 헌신의 놀라운 DNA를 주셨습니다. 자식이 잘해서 사랑하는 것은 사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는 그 DNA가 흘러가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우리가 잘해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의 DNA가 하나님의 사랑의 확증이 예수님께 있어서 십자가에서 희생하신 것입니다. 그것을 보여주는 것이 부모의 할 일입니다. 그리고 자녀는 부모의 됨됨이와 부모의 조건에 상관없이 자녀는 부모를 사랑하고 존경하도록 한 것입니다.
유대인들의 자녀교육을 보면 그들은 자녀들과 끊임없이 대화를 합니다. 그래서 앙케이트 조사를 하면 부모와 자식과의 사이, 부모와의 관계에서 가장 남는 것이 무엇인가를 질문하면 자녀들은 ‘부모와의 대화’라고 대답합니다. 대화가 그들에게 남아 있습니다. 밥 먹으면서 자녀와 계속 대화합니다. “학교에서는 어땠니?, 오늘 어려운 일은 없었니?” 그래서 밥상머리에서 대화가 없으면, 유대인이 아니라고까지 말합니다. 최소한 유대인들은 안식일 날 하루 한 끼는 온 식구가 모여서 식사를 하며 대화한다고 합니다. 그것이 없다면 유대인이 아니라고 합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의 마음속에 가장 남는 것이 대화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 대화하는 법을 배우지를 못했어요. 지난날의 아버지를 돌이켜 보면 남는 것이 별로 없어요. 그런데 아버지의 사랑은 많이 받았어요. 저는 위에 형들과 누나들이 있었는데, 그 때 아버지와 겸상을 했던 아들은 바로 저였습니다. 나머지는 옆상에서 먹습니다. 아버지와 함께 밥상을 마주앉아서 식사를 했지만, 대화는 없었어요. 그래서 아버지의 음성에 대한 기억이 안 납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면, 너무 무뚝뚝했어요. 속에 정은 가득했지만, 표현을 못하셨습니다. 표현을 배운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 부모시대는 안타깝게도 사랑한다는 표현을 배운 적이 없습니다.
지금 와서 생각할 때, 아버지의 사랑이라고 생각되는 것은, 그 때 당시 초등학생들은 가방이 아니라, 보자기에 책을 싸서 허리에 두르고 다녔습니다. 그런데 아버지는 시내에 가셔서 가방을 사서 주셨습니다. 그리고 다 고무신 신고 다닐 때, 아버지께서 운동화를 사다 주셨어요. 그래서 아마 저만 흰 운동화를 신고 다녔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아버지가 너무 엄하셨어요. 아버지가 집에 계시면 다 숨을 죽이고 살았습니다. 지금 돌아보니까, 아버지 시대는 표현하는 법을 배운 적이 없습니다. 그렇다고 사랑이 모자랐는가 하면 그렇지 않습니다. 어쩌면 현대 아버지들 보다 훨씬 사랑이 깊었습니다. 사랑에 계산적이지 않았습니다. 그냥 자식들이 필요하다면 다 내어 주는 사랑이 있었습니다. 오직 자식을 위해서 말입니다.
서울여대 김창옥 교수님의 강의를 들었습니다. “내 엄마, 내 아버지”라는 YTN에서 대담한 영상입니다. 그의 어머니가 18세 때 결혼을 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결혼을 했는가 하면, 동네 아저씨하고 만나서 술을 거나하게 잡수시더니, “자네 딸이 있지”, “응”, “우리 아들이 있는데 결혼시키세”, “그러세” 하고 난 뒤에 결혼을 했답니다. 그래서 김창옥교수는 자기에게 가장 비극적인 새가 ‘그러새’라고 합니다. 딱 결혼해서 보니, 남편은 청각장애인입니다. 제주도에서 채석장에 가서 일하다가 돌에 맞아서 귀가 안 들립니다. 가보니까, 시어머니가 둘입니다. 또 시집식구가 12명이고, 제사가 12번이었습니다.
그래서 틈만 나면 도망 나오려고 하다가 덜컥 첫째를 낳고서, 이 아이만 낳고 도망가자 했는데, 그런데 둘째가 들어섰습니다. 그렇게 아이를 키우다 보니 셋째, 넷째, 다섯째까지 낳았습니다. 1남 4녀를 낳은 것입니다. 그런데 제사가 12이니까, 엄마 생각에 제사를 아들 혼자 지내면 너무 힘들 것 같으니까, 제사를 지낼 때 돕는 아들 하나를 더 낳자 해서 낳은 아들이 바로 김창옥 교수랍니다.
자기는 아무 의미도 없이 태어났습니다. 그런데 태어나자마자 아버지는 말을 못하시니까, 아버지하고는 대화를 해 본 적이 없습니다. 전화를 해본 적도 없습니다. 고등학교는 공고를 나오고, 재수를 해서 전문학교를 갔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뭐 공부가 되겠습니까? 그러다가 경희대 성악과를 졸업하고 난 후, 성악하고는 관련이 없는 커뮤니케이션을 전공해 가지고 서울여대 교수와 장신대 외래 교수가 되어서, 지금 우리나라 최고 특급 강사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치과에서 전화가 왔습니다. 치과의사가 아버지가 여기 계시는데 전화로 아드님을 바꿔달라고 한다 해서, 아니 아버지가 전화를 못하신다고 했더니. 그래도 아버지가 전화를 바꿔달라고 하신다고 합니다. 그래서 전화를 받았습니다. 아버지가 청각에 장애가 있으니까, 큰 소리를 지르며 “창옥아! 나 치과에서 치료받고 있는데, 치료비 좀 내줘라. 미안하다” 그러고 전화를 끊더랍니다. 그래서 다시 전화를 해서 “아버지, 왜 미안해요. 돈 좀 네가 내라. 나를 키웠으니까 아버지가 그렇게 말씀하실 수 있잖아요. 왜 미안하다고 그러세요. 당당하게 내달라고 하세요.” 이렇게 말하고 싶었는데, 하지 못했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임플란트도 최고 좋은 것으로, 씌우는 것도 제일 좋은 것으로 끊었답니다. 그리고 미안하다고 아들에게 전화로 말한 것입니다. 김교수는 ‘아버지, 왜 미안해요. 당당하게 네가 돈을 내라 하시지요. 왜 못하세요.’ 그렇게 하려다가 못했답니다. 아버지는 늘 세 가지 말씀만 하십니다. “밥 먹었냐, 건강하냐, 전화 끊자, 돈 많이 나오니까.” 이런 아빠이기 때문에 아버지께 용돈을 한 번도 드려본 적이 없었답니다. 아빠는 용돈이 필요 없는 분인 줄 알았대요. 그러다가 결정적으로 아버지를 알게 된 적이 있었습니다. 어느 날 월급을 받아서 아버지께 용돈을 드리니까, 그렇게 좋아하더랍니다. 아~ 아버지도 돈을 좋아하시는구나. 그 때 처음 알게 된 것입니다.
어느 날, 아버지가 공항에 배웅하러 나오셨습니다. 항상 어머니가 나오셨는데, 그 날은 어머니 대신 아버지가 나오셨습니다. 엄마를 못 나오게 하고, 아버지가 나오신 것입니다. 그 때, 아버지가 고마우니까, 새 돈으로 봉투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출국하려고 출국장으로 들어갑니다. 아버지와 인사를 한 번 더 하기 위해 뒤를 돌아다 봐야 하는데, 자기 생각에 아버지가 아들이 떠나는 것이 아쉬워 눈물을 글썽 거리지 않을까, 차마 뒤 돌아볼 수가 없는 거예요. 자기도 눈물이 쏟아질 것 같으니까, 혹시 아버지는 땅바닥에 앉아 울고 계시지는 않을까 생각이 되어 자신도 뒤를 못 돌아보다가, 그런데 딱 돌아보는 순간, 아버지가 돈을 세고 계시더랍니다. 그러더니 뒤도 안돌아보고 가시더래요.
김교수는 그 때 아버지가 돈을 좋아하신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나이가 들면 돈이 커뮤니케이션이라는 것을 깨달은 것입니다. 그렇게 아버지가 좋아하시더랍니다. 그래서 소통학 전문가가 아버지의 사랑 표현과 자신의 사랑 표현이 다르다는 것을 그 때 깨달은 것입니다. 나이 드신 분들의 사랑은 깊은데, 표현을 못합니다. 배운 적이 없습니다. 사랑한다는 말을 못하고, 자식을 안아 주지를 못합니다. 그래서 “잘 있냐, 밥 먹었냐, 잘 지내라” 이런 말밖에 없지만, 그 속에는 사랑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김교수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아바타의 나바족들이 사랑한다는 표현을 사랑한다로 말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I see you”가 사랑표현이랍니다. 볼 수 있다는 것이 사랑이라고 합니다.
사람마다 사랑표현이 다릅니다. 그 사람이 잘못한 것도 아니고, 그 사람이 못된 것도 아닙니다. 아버지의 사랑 표현이 나의 표현과 다를 뿐입니다. 그것을 읽을 때 소통이 가능해집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기 위해서 예수님을 보내셨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아는 것이지, 예수님이 십자가에 돌아가시기까지는 우리가 하나님을 그런 사랑의 하나님으로 알 수 없는 것입니다. 부부간에 왜 오해가 생깁니까? 부부간의 사랑의 표현을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사람마다 다릅니다. 남자와 여자가 다르고, 사람마다 사랑 표현이 다릅니다. 지혜로운 자녀는 부모의 사랑을 읽어냅니다. 아버지가 나를 이렇게 사랑하는구나. 우리가 아버지의 마음을 읽는 것이 낫습니다.
자녀들은 사랑의 표현을 배웠잖아요. 아버지는 배운 적이 없습니다. 학교가면 얻어맞지, 친구들한테 가면 싸우다가 맞지, 집에 오면 일해야 하고, 지치고 피곤하게 살았던 것이 부모님 세대입니다. 어디서 사랑을 받았겠어요. 그러니까 사랑을 표현할 줄 모릅니다. 그러니까, 할 말을 모르고 “밥 먹었냐. 건강하냐. 전화세 많이 나오니까 끊자”는 말로 사랑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가가야 할 쪽은 자식들 세대입니다. 이해해야 할 사람은 자식세대입니다. 그래서 깨닫고 나면 부모는 더 이상 안계십니다.
그래서 효도는 지금 해야 합니다. 그래서 주자는 ‘10가지 후회’에서 부모에게 효도하지 않으면, 세상을 떠나신 후에 그 때 알고 후회한다고 말했습니다. “아빠 제가 잘못했어요. 아빠의 마음을 읽지 못했어요.”하면, 엄마 아빠는 너무 고마워하고 감동합니다. 부모님은 자녀를 너무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부모님께 효도할 때, 하나님은 보상해 주신다고 말씀하십니다. 이유 없이 조건 없이 순종하고 공경하면 상은 하나님이 주십니다.
“이로써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엡6:3). 그 순종과 공경이 세상에 나가서도 너를 잘 되고 장수하도록 축복해 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회사가 잘되고 축복이 길어지도록 하나님이 만들어 주시겠다고 말씀합니다. “그의 부모를 경홀히 여기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할 것이요 모든 백성은 아멘 할지니라”(신27:16). 하나님을 정말 순종한다면, 네 부모에게 순종하라. 그러나 그의 말씀을 순종하지 않으면, 저주를 할 것이라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아비를 조롱하며 어미 순종하기를 싫어하는 자의 눈은 골짜기의 까마귀에게 쪼이고 독수리 새끼에게 먹히리라”(잠30:17).고 말씀합니다. 너무 무섭습니다. 독수리가 눈을 뽑아 버리겠다니, 얼마나 무섭습니까? 부모를 거역하고 순종하지 않는 사람은 인간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세상의 풍조가 어떠하든 부모를 사랑하고 순종하라고 말씀합니다. 부모님을 하나님이 대리자로 세웠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순종하면 하나님이 축복하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부모공경은 하나님의 뜻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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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주여~~
부모님을 공경하는 약속 있는 첫 계명을
잘 지키는 신앙인이 되도록 도와 주시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