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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환 선교사님 간증
내 어머니께서는 주님을 영접한 후 첫 아이인 나를 주님께 바치기로 서원하셨다. 나도 중3때 수돗가에서 “나의 종이 되라”는 주님의 음성을 들었지만 절대로 그 길을 가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살다가 큰병이 나서 중환자실에서 지내는데, 한 집사님이 찾아오셔서 “왜 주님의 부르심에 불순종해서 매를 맞느냐?”고 하셨다. 그 말씀을 듣고 눈물로 회개했는데 입원 10개월 만에 막혀 있는 튜브가 뻥 뚫리는 것 같이 그날로 나아버렸다.
순종하기로 하고 기도할 때 주님이 어렸을 때의 죄들-문방구에서 학용품 훔치고, 빵 훔친 것 심지어 내가 예수 믿기 전에 지은 죄까지도 다 보여주셨다. 그래서 문방구에 찾아가 수백 배 되는 돈 갖고 가 사과했더니 “어린애들이 다 그렇지.”라면서 안 받는다기에 제발 받아달라고 통사정해서 갚았다. 공짜로 기차 탔던 것도 철도청에 수표를 보냈다. 그리고 청계산에 올라가 기도했다. “주님, 아무래도 저는 훌륭한 목사는 못될 것 같습니다.” 주님께서 응답하셨다. “맞다. 네 의를 갖고는 좋은 목사 못 된다. 그러나 너는 율법 아래 있지 않고 은혜 아래 있다. 네 의를 갖고는 하나님 앞에 못 나간다. 그러나 예수의 의로 나아간다.”
그 후 신학을 했다. 신학교 다닐 때 학비를 못내 7일을 금식하며 기도하던 중, 주님이 환상 중에 한 개의 봉투를 주셨는데 동전이 들어있었다. 그래서 흔들어보면서 이걸로 어떻게 학비를 하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또 하나의 봉투를 내미셨다. 만져보니 두둑했다. 환경은 하나도 바뀌지 않았지만 나는 춤을 추면서 내려왔다.
얼마 후 신기하게도 동전이 든 봉투와 지폐가 든 두 개의 봉투를 받아 학비를 냈던 경험도 있다. 신학하면서 전도사로 사역할 때였다. 너무 어려워서 월급 잘 주는 큰 교회로 사역지를 옮길까 고민하면서 신학교 길을 내려오는데 100미터도 더 앞서 가던 두 사람이 하는 대화가 바로 내 앞에서 하는 것처럼 선명하게 들려왔다.
“다른 교회로 옮긴다고 더 나을 거라고 생각하는 것은 유혹이다.”
그래서 주님의 음성으로 알아듣고 포기한 적도 있다.
극심한 디프레션에 빠져 손가락 하나 까딱하기 싫을 정도가 되었던 적도 있다. 그때 주님의 음성이 들려왔다. “너 이러면 죽는다.” “그럼 어떡해요?” “말씀을 먹어라.”
보니 발밑에 성경이 있었다. 일어나 앉아 읽을 힘도 없어서 발로 그것을 끌어다가 누운 채 읽었다. 그때 그 말씀이 에너지요 능력임을 알았다. 말씀으로 거반 죽었던 내 몸과 영혼이 소생되었다.
감비아로 선교사가 되어 가려고 하는데 아내의 머리속에 2.7센티의 혹이 발견되었다. 뇌분야의 세계적인 권위자인 영국 옥스퍼드대 교수가 수술을 권했다. 그 혹이 시신경을 눌러 장님이 될 거고 그 영향으로 아기도 안 생길 테니 아기는 포기하라고 했다. “주님이 고쳐주시면 고쳐주시는 거지요. 그리고 주님이 아기를 주시면 주시는 거지요.” 그랬더니 “전문가의 의술도 믿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래서 수술을 하려고 정밀검사를 했다. 마지막 검사 날 의사가 말했다. “하나님이 의술을 이기셨네요.” 아내가 아기를 가졌다는 것이다. 그러니 수술을 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1년치의 약 처방을 받아 갖고 감비아로 떠났다. 감비아행 비행기를 타고 보니 아시아인은 우리 내외뿐이었다. 가서 1년 만에 아이가 태어난 후 아내의 뇌를 검사해 보니 혹이 없어졌다. 주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실 때 병도 갖고 가셨다.
아프리카에서 풍토병과 말라리아로 사경을 헤맬 때도 구급차에 실려가 혈관 주사를 맞으며 그 링거가 한 방울 떨어지는 순간 손끝에서부터 에너지가 생겨나 쥐어지지 않던 손이 쥐어졌다. 하나님이 나를 소생시켜 주셨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사53:5)”
어려운 만딩고 언어를 배워 감비아에서 15년간 사역했다. 100% 무슬림 국가, 전기, 전화, 신문이 없는 곳이다. 그곳 사람들은 대부분 순수하고 착하다. 아프리카에서는 깨끗한 물을 한번도 본 적이 없는 사람도 많다. 물 한잔 갖고도 일평생 감사하라. 4계절 있는 것으로 일평생 감사하라. 따뜻한 물로 샤워할 수 있는 사람은 전 세계 인구의 5%밖에 안 된다. 감사하라. 그곳은 50도가 넘는다. 갖고 간 미국산 온도계가 더 이상 못 올라갈 정도였다. 선풍기 하나 없이 그 더위를 견딜 때 시원한 코크 한잔 너무나 그립다. 미니 냉장고가 있어서 우리는 시원한 물과 코크를 마시며 더위를 달랠 수 있었다. 그러나 그 작은 냉장고로는 사람들에게 다 나눠줄 수가 없었다. 우리만 그런 것 마시면서 제자를 키울 수 있는가? 시원한 코크도, 시원한 물 한잔도 선교를 위해 끊었다. 우리의 간식인 라면이 그들에게는 보약이다. 1000원이면 말라리아 약 사는데 그 돈이 없어 죽는다. 아프리카 전체 평균수명은 20세를 못 넘고 감비아는 40세가 채 못 된다. 이름 모를 병으로 많이 죽는다.
감비아로 떠난 후 파송한 교회가 분열되는 바람에 아무런 후원을 받지 못하였다.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았다. 주님께서 전도자들에게는 두 켤레의 신발도, 두 벌 옷도 가지지 말라 하셨다. 하나님이 다 공급해주셨다. 감비아 선교를 위해 학교가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주님. 선교비는 없지만 이렇게 지어주세요. 주님의 뜻이면 공급해 주세요. 하면서 종이에 연필로 그린 후 종이에 손을 얹고 기도한 후 대우 아키텍트에 청사진을 그려 달라고 부탁해 그걸 받아 갖고 무작정 도지사에게 찾아갔다. 100% 무슬림 국가인데도 기독교 학교를 세워는 걸 허용해 줄까? 그런데 기적적으로 도지사가 지시했다. “이분이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땅 얼마든지 주어라.” 그 종이에 그렸던 대로 땅에 학교와 부속건물들이 그대로 다 들어섰다.
존 스토트 목사는 말년의 저서 <The radical disciple>에서 “그리스도인은 단순히 크리스천이 아니라 래디컬한 제자가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래디컬한 제자란 절대제자, 세상을 거스르는 사람(롬12:2)이다. 선교 역시 래디컬해야 한다. 권능이란 의미는 ‘두나미스’, 즉 ‘다이너마이트’의 원조 헬라어로 ‘폭탄’과 같다. 선교란 이 폭탄을 안고 유대와 사마리아, 땅 끝까지 가서 증인되는 것, 곧 죽는 것에 있다.
‘그리스도인’은 안 믿는 사람들이 부른 말이다. 성경이 지어준 이름은 ‘제자’다. 장로교에서는 한번 구원은 영원한 것이라고 가르치나 이것은 구원의 충분조건이 아니다. 주일 지키고, 세례를 받고, 교회 직분을 받고, 십일조를 드리고, 성경을 읽고, 새벽기도 다니고, 교회에서 봉사를 해도 그것으로 천당 갈 수 있는 게 아니다. 구원의 확신이 주관적인 가짜 확신일 수 있다. 교회에 다녔는데도 구원받지 못하는 사람이 가장 불쌍한 사람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로 십자가에서 내 죄를 지고 죽어 그 분의 보혈의 공로로 죄사함을 받아 구원받은 감격이 있나? 길 가다가도 눈물 흘리고 기뻐서 춤 출 만큼의 구원의 감격이 있어야 한다. 예수 믿고 구원의 기쁨 때문에 춤 춰 본 적이 있는가? 복권 당첨, 대입성공에 비교할 수 없는 구원의 기쁨이 있다.
한국 교회는 예배는 있는데 하나님나라와 복음과 이혼했다. 오늘날 성도들은 예배하러 가는 게 아니라 목사의 설교를 들으러 간다. 설교 듣는 것 갖고는 안 된다. 설교를 듣고 신앙생활하려고 하지 말고 성경 말씀을 갖고 신앙생활을 하라. 한국 교회는 너무 세속화되어 있다. 많이 공부하고 좋은 대학 가야만 하나님 잘 믿나? 다 이 땅에 소망을 두고 잘먹고 잘살려고 하는 것이다. 자기가 하고 싶은 것 하게 하라. 공부 못 해도 하나님의 인격 닮으면 된다. 하나님을 잘 만나면 좋은 아이가 된다. 하나님을 잘 만나면 좋은 부모가 된다.
예수님은 아브라함의 언약을 성취하러 오셨다. 예수를 믿으면 아브라함의 자손이 된다. 생물학적 가족은 의미가 없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어야 구원을 받는다. “네 아들 독자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 이것이 기독교의 시작이다. 부모는 자식 위해 죽을 수 있어도 자식을 죽일 부모는 없다. 그런데 하나님이 계신 것을 믿으면 그게 가능해진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아들보다 하나님을 더 사랑한다는 것을 보여드리자 그것을 확인하시고 크게 감동하셨고 그에게 하늘의 별 같고 바다의 모래 같은 자손을 약속하셨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명에 순종해 이삭을 번제로 드리려던 것은 자기부인의 절정이다. 누구든지 자기잘못으로 인해 받게 되는 고통 말고, 예수를 믿음으로 지게 되는 자기십자가가 있어야 제자다. “가족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나에게 합당치 않다”고 주님이 말씀하셨다. 하나님 외에 중요한 게 누가 있나? 자식인가?
주께서 “죽은 자는 죽은 자로 장사 지내게 하고 너는 천국복음을 전하라”고 말씀하셨다. 복음은 산 자의 것이다. 주께서 “손에 쟁기를 들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내게 합당치 아니하다”고 말씀하셨다. 앞으로 가는 게 제자다.
주님을 찾아와 영생의 길을 묻던 부자청년에게 주께서 “네 재물을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눠주라”하셨다. 재물신과 주님을 겸하여 섬길 수 없다는 말이다. 청년은 재물이 아까워 제자가 되지 못하고 돌아섰다. 재물이 구원의 장애가 되었다. 가난한 자들을 자신의 재물로 섬겨 그 재물을 하늘에 쌓아두면 아무도 손 못 댄다. 하늘에 저축할 수 있는 게 제자다. “너희 몸을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고 로마서에서 말씀한다. 몸을 드리면 지갑도 같이 가는 거다. 예수는 우리의 전부다. 예수를 깊이 알면 세상의 가치에 마음을 두지 않고 육신의 소욕을 좇아 살지 않게 된다. 예수를 깊이 아는 사람은 제자로 산다. 기도, 전도, 헌금 하란다고 하는 게 아니다. 아직 은혜를 몰라서 못하는 것이다. 은혜를 알면 하게 되어 있다.
좋아서 해야 한다. 거룩한 부담감? 아니다. 부담 느끼면 안 된다. 주님이 말씀하신다. “나는 네게 내 몸을 주었는데 너는 네 몸 내게 안 주겠니?” 적당히 믿는 건 믿는 게 아니다. 예수 믿으면 당연히 헌신이다. 주님이 피값으로 나를 사셨으니 당연히 나는 하나님의 것이다. 99.9%의 헌신도 가짜다. 그건 내가 살아있는 거다.
하나님의 나라에 모두가 다 필요하다. 있는 그 자리에서 부족한 대로 연약한 대로 주님을 위해 그분만을 위해 최선을 다해 살면 된다. 그게 헌신이다. 축복의 통로가 되어 다른 이의 영혼을 윤택하게 하라. 주님의 음성이 분명히 실제로 있다. 주님의 음성을 사모하며 성경을 읽어라. 기도하라. 결심하지 마라. 실제로 행할 것을 결정하라. 액션이 있어야 한다. 움직여 행함으로 내것이 된다. 행위가 따르지 않으면 죽은 믿음이다. 한국 교인들 많이 듣고 많이 알고 성경공부 너무 많이 한다. 로마 교회 부흥했지만 제자들 시대에 성경 없었다. 조각복음 갖고도 부흥했다. 뭔가 해라. 부흥하는 곳은 다 이유가 있다. 똑같은 일 하고 살면 똑같은 일밖에 안 일어난다. 이 세상 사는 동안 한번이라도 더 “주님 사랑합니다.” 고백하라. 이 세상에서 생명을 갖고 살 기회는 지금밖에 없다. 휴지 하나라도 주워라. 아프리카는 쓰레기가 널려 있다. 사람들이 치울 줄을 모른다. 하루는 새벽기도를 마치고 나오다가 한 청년이 휴지를 줍는 모습을 뒤에서 우연히 보았다. 그래서 그를 데려다가 학교에 보내주고 주님의 일꾼으로 키웠다.
구약에서는 특별한 사람을 불러 음성을 들려주시고 소명을 주셨지만 신약에서는 예수를 믿는 누구에게나 제자로서의 사명을 주셨다. 나도 환상, 꿈, 예언, 계시, 음성 아무 것도 없었지만 성경이 가라고 해서 순종함으로 갔다. 기뻤다. 땅에서 시간이 제한이 있다는 것, 영원한 하나님 나라에서 보상이 있다는 것을 믿었다. 그래서 갔다. 시간을 아는 사람은 지혜로운 사람이다.
예수님 다음 가는 모델인 바울은 어떤 고난을 당했나? 그는 세 차례의 선교여행을 하면서 옥에 여러 번 갇히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하고, 40에 하나 감한 매를 5번 맞고, 3번 태장으로 맞고, 한번은 돌로 맞고, 3번 파선하고 7일을 깊은 바다에서 지냈으며, 강과 강도, 동족과 이방인의 위험, 시내와 광야와 바다의 위험, 거짓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수고하며 애쓰고 자지 못하고 굶주리며 목마르고 춥고 헐벗었다(고후11장)
40에 하나 감한 매를 5번 맞았으면 195대를 맞은 것이다. 한 번에 많이 맞으면 절명하기 때문에 한 대 맞고 기다렸다가 나으면 또 맞는 그런 무서운 매다. 그가 3번이나 맞은 태장은 가죽 끈 끝에 납덩어리를 매달아 매질을 하는 형벌인데 채찍질을 하면 납덩어리가 살을 파고 들어가 살이 찢기고 피투성이가 되어 고통이 극심해 맞다가 혼절하여 죽는 매다. 하지만 바울은 그런 박해 속에서도 한 번도 후회하거나 포기하거나 낙망하거나 원망하거나 걱정 근심하지 않았다. 그는 고난 가운데서도 믿음을 지키며 오히려 고난을 기뻐하고 영광스러워하고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운 재판장이 그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라면서 끝까지 그 사명을 감당하였다. 예언자들이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면 결박과 환난이 기다린다며 가지 말라고 만류했지만 바울은 “나의 달려갈 길과 주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않는다”면서 기꺼이 순교의 길로 떠났다.
그는 터키의 다소 출신으로 예루살렘에 유학을 갔을 때 더러 예수를 만날 기회가 있었겠지만 예수님에게 전혀 관심을 두지 않을 정도로 강퍅한 마음의 소유자였다. 그는 율법에 충실한 바리새인으로 예수쟁이들을 잡아 옥에 가두는 데 열심이었으며 스데반이 순교하는 데 앞장선 살인자다.
그런 그가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 회심하고 그 숱한 고난을 당하면서 선교에 온 생을 바친다. 대체 그 길을 왜, 어떻게 갔을까? 그 동기가 뭘까?
그는 “복음의 빚진 자(롬1장)”라고 말한다. 우리는 복음의 빚진 자다. 한국에 왔던 2200명의 선교사에게 우리가 복음을 전수받았다. 호주의 스코틀랜드 장로교의 선교사 조셉은 공부를 많이 한 선생이었는데 40일간 배타고 한국에 와서 풍토병으로 84일 만에 죽었다. 그런 선교사들과 가족의 묘역이 양화진에 555개가 있다. 70번이나 중국의 침략을 받은 나라, 가난하고, 우리말로 된 내일이라는 단어도 없던 이 나라에 복음이 들어와 천지가 개벽하여 잘살게 되고, 260개국이 출전하는 올림픽에서 10위권 내에 들 정도가 된 것이다. 워싱턴 백악관 링컨상 앞에 있는 6․25 참전용사비에 이렇게 쓰여 있다. “자유는 공짜가 아니다.” 한 번도 못 들어 본 나라, 한 번도 못 만나본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한국땅에 와서 죽은 미군병사가 58,000명이다. 행방불명된 사람도 부지기수다. 우리가 예수 믿은 것은 순교자, 전도자가 있었기 때문이다. 복음의 빚진 자로서 전파하는 것이 마땅한 의무라고 바울은 생각했지만 그 책임의식 때문만은 아니다. 바울은 “복음을 전하지 않으면 내가 화가 미칠 것”이라고 말했지만 율법적 태도로 무서워서 전한 게 아니다. 바울은 하나님 나라의 비밀, 말씀의 비밀, 선교의 비밀을 깨달았던 것이다. 바울이 선교한 동기는 ‘비밀, 미스터리’에 있다. 헬라어의 ‘무수테리온’에서 파생된 말로 신약에 27번 구약에 5번 나온다. 다니엘서에 “은밀한 중에 은밀한 것을 깨닫게 하셨다”고 나온다. 바울은 “너희가 이 비밀을 모르기를 원치 않는다”고 말했다. 너무나 아름다운 하나님의 나라, 인간의 언어로 뭐라 표현하기 어려워 예수님도 “천국의 비밀”이라고 하셨다. 바울은 3층천에 다녀와 말로 형용할 수 없다고 말했다. 천국은 인간이 도무지 이해할 수도 상상할 수도 없는 곳이다. (세광교회 집회에서의 간증을 요약정리한 것)
*감사 10 계명*
01. 생각이 곧 감사다.
생각(think)과 감사(thank)는 어원이 같다. 깊은 생각이 감사를 불러 일으킨다.
02. 작은것 부터 감사하라.
바다도 작은 물방울부터 시작되었다. 아주 사소하고 작아 보이는 것에 먼저 감사하라.
그러면 큰 감사거리를 만나게 된다.
03. 자신에게 감사하라.
"성 어거스틴"은 이런 말을 남겼다. "인간은 높은 산과 태양과 별들을 보고 감탄하면서 정작 자신에 대해서는 감탄하지 않는다." 자신에게 감사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04. 일상을 감사하라.
숨을 쉬거나 맑은 하늘을 보는것처럼 관심을 가지지 않으면
절대 할 수 없는 감사가 어려운 감사이다.
05. 문제를 감사하라.
문제에는 항상 해결책도 있게 마련이다. 해답없는 문제는 없다.
06. 더불어 감사하라.
장작도 함께 쌓여 있을 때 더 잘 타는 법이다.
가족끼리 감사를 나누면 30배, 60배, 100배의 결실로 돌아온다.
07.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사하라.
결과를 보고 감사하지 말라. 문제 앞에서 드리는 감사가 아름답다.
08. 잠들기 전 시간에 감사하라.
대부분의 사람들이 짜증과 걱정을 안고 잠자리에 든다.
잠들기 전의 감사는 영혼의 청소가 된다.
09. 감사의 능력을 믿고 감사하라.
감사에는 메아리 효과가 있다. 감사하면 감사한 대로 이루어진다.
10. 모든 것에 감사하라.
당신의 삶에서 은혜와 감사가 아닌 것은 단 한가지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