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루미늄 역사서 외 1편
조옥엽
떠난다는 건 돌아온다는 다른 말
출발점과 귀착점은 언제나 집이다
지금 나는 화살머리고지가 쓴 역사서를 읽는 중이다
금단의 땅에서 사력을 다해 버텨온
녹슨 인식표와 누더기 수통 하나
끝내 눈감을 수 없었던 몸들에겐
나름 중대한 사유가 있다
미친 듯 쏟아지는 포화 속에
마음의 준비도, 슬퍼할 겨를도 없이
무로 돌아간 병사의 귀향을 위해
명패 끌어안고 견뎌온 65년
언어의 클라이맥스는 침묵이다
숱한 총알을 삼켜
지구상 모든 문자를 깡그리 지워버린 유품
오늘을 예견했을까
뺨과 뺨을 포개 곁 지켜오던 가랑잎들
참아왔던 울음 터트리며 뒷걸음질 친다
壽
숟가락에 글자 하나 걸려 있다
꽃 모가지 허공에 걸리듯 대롱대롱 걸려있다
해서체의 목숨 壽
숟가락이 곧 목숨이란 말인가
숟가락에 목숨이 달려있단 말인가
이승에 와서 맨 처음 만나
뜨거운 입맞춤 거듭하다
죽음의 문턱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갈라서는
수시로 긴밀히 접촉하면서도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 거의 없는
허나 가만히 되짚어보면
생사를 가리는 척도가 된 지 오래인
이 세상 누구보다
큰일을 하고 있는, 큰 말을 하고 있는
우리들 역사가 진행 중인 숟가락 하나
우리들 역사에 종지부를 찍을 숟가락 하나
지나온 생 돌아다보듯 오래도록 들여다본다
----애지사화집 {도레미파, 파, 파}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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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지의시인들
조옥엽의 알루미늄 역사서 외 1편
애지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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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4.02 0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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