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는 훌륭하다
정선희
그 개는 사나워 길들이기 쉽지 않았다
갑의 말은 듣지 않았으며 화가 나면 갑의 물건을 이빨로 물어뜯었다
조련사는 개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붉은 눈빛이 개의 눈동자를 관통했다 앉아!
바짝 목줄을 잡아당겼다
버틸수록 목줄이 목을 더 강하게 압박했다
조련사는 개의 눈을 응시했다
개는 조련사의 눈을 응시했다
나는 네가 나의 을이 될 때까지 목줄을 잡고 있을 거야
나는 너를 나의 갑으로 인정하지 않을 거야
이빨을 드러내자 조련사는 목줄을 잡아챘다
목줄이 숨통을 바짝 조이는 순간
이빨은 웃음이 되었다
아직 비겁한 본능이 피 속에 흐르고 있었나 손을 내밀면 앞발을 내주었다 손짓에 따라 한 바퀴 굴러줬다 던져주는 간식을 맛있게 먹어줬다 하나 둘 관중들이 눈물을 흘리며 손뼉을 쳤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돌리는데 방구석에서 반짝이는 게 있었다 잃어버린 귀걸이 한 짝을 보자 눈물이 주르르 흘렀다 슬픔 때문에 빛나는 것들이 있었다
채널을 돌렸다 오늘의 날씨는 대충 그렇고 그런 쪽으로 지구를 돌렸다
- 월간 웹진 『님Nim』, 2022, 10월호
모든 생명체는 공격본능과 방어본능을 통하여 자기 자신의 동체성을 확보하며 자기 자신의 삶의 영역을 확보해 나간다. 공격본능은 외부의 적을 물리치고 자기 자신의 영역을 넓혀나갈 수 있는 힘을 말하고, 방어본능은 외부의 침입자와 맞서 싸우며 자기 자신의 영역을 지킬 수 있는 힘을 말한다. 이 공격본능과 방어본능이 잘 발달되어 있는 개체는 먹이사슬의 최상위층에 군림을 하게 되지만, 그렇지 못한 개체는 자기 자신의 영토와 그 모든 것을 다 빼앗기고 먹이사슬의 최하단계에서 가장 비참한 삶을 살게 된다.
늑대는 무리를 짓는 동물이며, 자연의 터전에서는 최상위층의 포식자에 속하지만, 그러나 이 늑대가 우리 인간들에게 길들여져 소위 가축이 된 것이다. 싸움개와 사냥개와 집 지키는 개는 공격성이 뛰어난 개가 그 역할을 담당하고, 소와 양을 몰거나 썰매를 끄는 개는 머리가 좋고 충성심이 강한 개들이 그 역할을 담당하며, 마지막으로 공격성이 거의 없는 개들은 애완용으로 길들여져 주인의 손짓과 표정에 따라 재롱을 떨다가 죽는다. 인간과 개의 관계는 더 이상 뗄래야 뗄 수 없는 아주 밀접한 관계이지만, 나는 ‘반려동물’이라는 말만큼 가증스럽고 위선적인 말도 없다고 생각한다. 아무튼 길들여진다는 것은 동물성을 박탈당하고 자유를 빼앗겼다는 것을 뜻하고, 따지고 보면 사는 것이 죽는 것보다도 못한 노예의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을 뜻한다고 할 수가 있다. ‘반려동물’이라는 말에는 우리 인간들의 더없이 무서운 잔인성이 각인되어 있는데, 왜냐하면 반려동물들은 우리 인간들에게 생식의 권리는 물론, 살아야 할 권리와 죽어야 할 권리마저도 다 빼앗겨 버렸기 때문이다.
인간의 입장에서 개는 개다워야 하고, 따라서 너무 사납거나 주인의 말을 듣지 않으면 조련사에게 맡겨지고, 조련사는 수많은 전략과 전술을 구사하며 그 개들을 그야말로 충성심이 강한 개들로 길들이게 된다. 조련사는 그야말로 개들의 자유와 주체성을 빼앗는 기술자이며, 그의 손에는 늘, 항상, 당근(상)과 채찍(벌)이 들려 있다. 말을 듣지 않으면 목줄을 잡아당겨 숨통을 조이고, 말을 잘 들으면 맛있는 간식을 주거나 온몸을 쓰다듬어 준다. 조련사의 눈빛은 무섭고 사나운 호랑이의 눈빛보다도 더 강하고, 이 조련사의 눈빛만을 보아도 대부분의 개들은 저항하기를 포기한다. “조련사는 개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붉은 눈빛이 개의 눈동자를 관통했다 앉아!”라는 시구가 그것이고, “이빨을 드러내자 조련사는 목줄을 잡아챘다/ 목줄이 숨통을 바짝 조이는 순간/ 이빨은 웃음이 되었다”라는 시구와 “아직 비겁한 본능이 피 속에 흐르고 있었나 손을 내밀면 앞발을 내주었다 손짓에 따라 한 바퀴 굴러줬다 던져주는 간식을 맛있게 먹어줬다”라는 시구가 그것이다.
부모가 없는 사람은 고아이고, 조국이 없는 사람은 떠돌이--나그네들일 뿐이다. 자기 자신이 태어난 산과 강과 호수를 잃어버리고, 그 모든 자유와 주체성을 잃어버린 개들의 삶은 어떠한 삶일까? 자기 자신의 조상과 부모의 얼굴도 모르고, 자기 짝을 찾을 성년의 나이가 되었어도 자기 짝을 찾을 수가 없다. 하늘도 원망스럽고, 살인마와 식인귀같은 인간의 눈빛만 보아도 무섭고, 개의 피와 땀과 숨소리마저도 인간의 채찍에 길들여져 있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돌리는데 방구석에서 반짝이는 게 있었다 잃어버린 귀걸이 한 짝을 보자 눈물이 주르르 흘렀다 슬픔 때문에 빛나는 것들이 있었다.” 대부분의 귀걸이는 사회적 신분의 표지이지만, 그러나 정선희 시인의 [개는 훌륭하다]에서의 귀걸이는 길들여짐의 표지가 되고, 자유와 주체성을 빼앗긴 가축의 장신구에 지나지 않는다.
귀걸이 한 짝, 길들여진 가축, 앉으나 서나, 죽으나 사나 노예신분의 표지----. 정선희 시인의 [개는 훌륭하다]의 개는 슬픔 때문에 빛나는 개이고, 그 슬픔 때문에 더욱더 훌륭한 개가 되었던 것이다. 원통하고 분하고, 그 어떤 악마보다도 더 악질적인 악마를 만나 모든 주체성과 자유를 다 빼앗긴 채 충성을 맹세하지만, 참된 충성의 길은 더욱더 멀고 험하기만 하다.
개는 개일 뿐, 토사구팽兎死狗烹의 길은 가깝고, 참된 자유의 길을 끝끝내 오지 않는다.
[개는 훌륭하다]. 너무나도 섬뜩한 반어이자 무서운 독설이라고 하지 않을 수가 없다.
하지만, 그러나 인간은 개가 없으면 살 수 없기 때문에, 그 어떠한 동물학대와 위선마저도 ‘동물사랑’으로 포장하며, 개로 하여금 개의 정체성을 영원히 찾지 못하도록 함정을 파두고 전면적으로 관리하고 통제할 것이다.
이 세계의 모든 개들은 다 가격이 매겨져 있고, 이 ‘개들의 사육시장’은 황금알을 낳는 최고의 시장이라고 할 수가 있다. 반려동물----, 더 이상 웃기는 헛소리 좀 하지 마라! 모든 개들은 이익을 낳고, 또 이익을 낳는 자본주의 시장의 노예상품일 뿐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개가 이익을 낳고, 또 이익을 낳는 상품이 아니라면 그 어떠한 개도 존재할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