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장 구속사 강해
홍해 사건의 구속사적 의미
1. 하나님의 이름을 알린 사건
출애굽기 14장에서 홍해 사건의 의미를 몇 가지 살펴볼 수 있다.
첫째, 홍해 사건은 하나님께서 여호와이심을 만방에 알리는 사건이다.
내가 바로의 마음을 강퍅케 한 즉 바로가 그들의 뒤를 따르리니 내가 그와 그 온 군대를 인하여 영광을 얻어 애굽 사람으로 나를 여호와인줄 알게 하리라 (출 14:4)는 말씀과 같이, 마음이 강포해진 바로가 열 가지의 재앙으로 말미암아 애굽이 초토화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대적하여 또 다시 이스라엘을 자기의 종으로 만들기 위하여 군대를 동원하여 이스라엘을 쫓아 홍해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그러나 당시 세계사에 있어서 최강을 자랑했던 바로의 막강한 군대가 하나님의 입김으로 한 순간에 홍해 속에 수장되고 말았다. 당시의 바로의 세력은 전 세계를 대표할 만큼 크고 웅대하였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적수가 되지 못하였다. 따라서 이 사건을 통하여 전 세계는 아무도 하나님을 대적할 수 없음을 알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은 이 사건을 통하여 하나님이 여호와이심 을 만방에 알리셨다. '여호와'라는 성호는 특별히 구속과 연관지어 구속받은 하나님의 언약의 백성들을 상대하여 하나님께서 자신을 계시하실 때에 사용하시는 성호이다. 곧 하나님은 언약의 성취자 라는 의미가 담겨있는 이름이다. 따라서 하나님은 그 이름과 같이 언약을 성취하시는 분이심을 출애굽 사건을 통하여 만방에 알리신 것이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불러내실 것에 대하여 이미 400년 전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바 있다. 내가 너의 후손들을 애굽에서 큰 민족을 이루게 한 뒤에 이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인도하겠다 (창 15:13-16 참고)는 약속을 마침내 홍해 사건을 통하여 성취하신 것이다. 이렇게 하심으로써 하나님은 언약의 하나님이심을 이스라엘과 만방에 선포하셨다.
둘째, 홍해 사건은 하나님이 절대 주권의 행사자이심을 보여준 사건이다.
너희는 두려워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날 너희를 위해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너희가 오늘 본 애굽 사람을 또 다시는 영원히 보지 못하리라 (출 14:13)는 말씀 속에서 보듯이 홍해 사건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구원하시는 구원의 실제적인 사건이었다. 즉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구원하시는 행위가 역사 안에서 실제로 등장하는 사건이다. 따라서 홍해 사건 속에는 하나님께서 역사를 경영하시는 실제적인 모습이 담겨 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역사를 경영하시되 직접 역사 속에 개입하시어 당신의 권능을 행사하시는 사건으로서 하나님의 절대 주권이 강력하게 나타나는 순간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처럼 하나님의 경륜이 어느 특정한 순간에 강하게 나타나는 경우라 할지라도, 그 사건의 의미를 명확하게 파악하지 않으면 그 안에서 하나님의 주권의 행사와 구원 사역을 발견하여 자신이 그 능력에 참여하는 특권을 누릴 수 없다. 이스라엘을 구원에 이르게 하는 하나님의 경륜이 역사 속에서 강하게 행사되어지는 홍해 사건이라 할지라도 그것으로 이스라엘을 구원에 이르게 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이 자리에서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구원에 이르기 위해선 먼저 이스라엘에게는 하나님의 전 역사를 볼 수 있는 안목이 있어야만 한다. 하나님께서 어떻게 그의 나라를 역사해 나가시는가 그리고 운영해 나가시는가에 대한 지식이 있어서 하나님의 경륜에 대한 인식이 있지 아니하면 여호와께서 오늘날 너희를 위해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는 말씀의 의미를 알 수 없는 것이다.
2. 하나님께서 행하신 구원의 의미
지금 이스라엘은 자기들을 진멸하기 위하여 달려오는 애굽 군대와 앞으로 더 나가고 싶어도 나갈 수 없게 버티고 있는 홍해 앞에 서 있다. 그래서 살기 위하여 홍해를 건너고 싶어도 도무지 건널 수 없는 심각한 위기 가운데 빠져 있다. 따라서 그들이 홍해를 건널 수 없다는 것은 애굽 군대의 손에 죽음을 당해야 하는 절대절명의 순간에 처해 있음을 의미합니다. 때문에 홍해 앞에서 발이 묶여 있는 이스라엘은 자기들의 운명이 위태하다는 위기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그러나 자기들의 운명에 대하여는 누구나가 그 정도는 느낄 수 있다. 누구나 죽음에 직면하면 상당한 위기감을 느끼기 마련이다. 여기에서 이스라엘이 진정한 하나님의 백성이라면 그것과는 다른 면에서 심각한 위기감을 느껴야 한다.
이스라엘을 진멸하기 위해 맹렬하게 돌진해 오는 애굽이라는 세력은 약소 국가를 침략자의 도탄에서 건져내기 위한 정의의 군대도 아니고 그렇다고 세상을 정복하여 지배하기 위해 꿈꾸는 독재자의 허황된 침략군도 아니다. 이 애굽 군대는 하나님께서 자기 소유로 삼으신 이스라엘을 또다시 자기의 손아귀에 집어넣고 종으로 삼기 위해 달려오는 반신국적인 세력이다. 하나님의 경륜에 정면 대적하는 바로의 군대는 따라서 단순한 세속 국가의 세력이라기 보다는 하나님의 나라를 반역하는 사탄의 세력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은 자기들을 잡기 위해 달려오는 애굽 군대를 보고 무서워하고 어떻게든지 살아보겠다고 수단과 방법을 찾기보다는, 하나님께서 경영하시는 하나님의 나라가 저들의 손에 의하여 유린당하게 된다는 심각한 위기 의식을 느껴야 한다. 이러한 위기 의식을 느낄 때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하나님의 경영 안에 참여시킨다는 증거로서 애굽의 군대에서 구원하신다. 이처럼 하나님의 구원의 경륜에 대하여 바르게 인식하고 있는 사람에게는 홍해 사건이 하나님의 구원의 사역으로 받아들여지게 되는 것이다.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기적같이 애굽의 군대에게서 죽음은 면했을지라도 그것이 하나님의 구원의 사건과는 전혀 무관한 일이 되고 마는 것이다.
똑같이 홍해 앞에서 살아났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경영 속에서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구원과 권능의 손을 체험하고 자신의 존재 위치와 의미를 깨닫는 사건이 되며, 어떤 사람은 기적적인 사건으로만 받아들여지게 됩니다. 그래서 구원을 체험한 사람들은 그 경험을 바탕으로 하여 하나님께 대하여 정당한 신앙을 표명함으로써 구원의 신앙으로 나아가게 되고, 반면에 하나의 기적으로만 체험한 사람들은 항시 기적적인 요소만을 강조하는 기적 신앙을 추구하다가 마침내 하나님의 구원과는 전혀 다른 차원에서 자기들의 인생을 경영하다가 죽고 마는 결과를 초래할 뿐이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홍해에서 구원하신 것은 이 땅에 하나님의 힘을 과시하기 위함이 아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무언가 특별한 것을 바라시는 것이 있으셔서 그들을 절대절명의 순간에 죽음에서 건져내신 것이다. 따라서 이스라엘은 이러한 하나님의 의도를 알아야 한다. 그것은 그들이 역사 속에서 성취하여야 할 역사적인 사명이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구원하신 하나님의 백성에게는 특별히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요구하시는 사명이 있기 마련이다.
이 세상에는 하나님의 나라를 대적하고 방해하는 적대 세력이 많이 있는데, 하나님께서 그들의 세력으로부터 하나님의 백성을 구원하시고 보호하시고 인도하시는 것은 하나님께서 역사를 경영해 나가시는 일에 그들이 직접 참여하여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하나님의 백성은 죽음 앞에서 구원을 받았다는 사실에 만족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거룩하신 역사의 경영에 직접 참여하여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나가야 합니다. 이 과정에 있어서 하나님은 각 사람을 개인적으로 부르시되 한 무리를 부르시어 함께 협력하고 격려하며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 가도록 하셨는데 그들의 공동체가 바로 교회이다.
마찬가지로 이스라엘이 애굽이라는 세속 세력으로부터 구원을 받았다면 그것으로 만족하고 죽지 않은 것을 가지고 위안으로 삼을 것이 아니라 그들이 하나님의 거룩한 경영 속에 참여되어 있다는 사실 때문에, 그리고 그들이 하나님의 뜻을 역사 속에서 성취해 나간다는 역사적인 사명 때문에 기뻐하여야 할 것이다. 때문에 구원에 참여할 이스라엘에게 하나님은 특별한 시대적인 사명을 주셨는데 그것은 나의 애굽 사람에게 어떻게 행하였음과 내가 어떻게 독수리 날개로 너희를 업어 내게로 인도하였음을 너희가 보았느니라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열국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출 19:4-6)는 말씀 속에 잘 나타나 있다.
출처: 기독신학공동체 원문보기 글쓴이: 송영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