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는 1981년 10월 24일태어났다. 진주 출산예정일 을 앞두고 해주 때 처럼 분만시 같이 있어 주지 못할까, 나는 빠짝 긴장했다
출산예정일이 지나자 의사가 유도분만을 권했다. 그때 해운대산부인과는 부산에서 이름난 병원이었다. 출산시 고통은 함께 못했으나 분만 후 면회가 되어
입원실에 들어가니 진주를 안고 웃었다. 나도 "고생 많았다" 하며 웃었다.
80년대는 나라의 경제가 점차 안정되어 갔다.
기업들은 외국으로 수출을 늘렸고,그에 따라 국민들의 소득도 늘어났다. 도시에 사는 사람들의 생활 모습도 집집마다 텔레비전이나 냉장고를 갖추고, 자동차를 가진 사람들도 점차 늘어났다
우리 집도 칼러TV,비디오,오디오,냉장고,
전기밥통 믹서기 등 그리고 내가 갖고 싶었던 니콘 카메라도 구입했다.
출산 3~4일 후 머리 혹이 사그라지지 않았다.
의사는 아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했으나 마누라는 "대학병원에 입원 시키자"고 하여 대학병원에서 "이상없다"하여 월례로 데리고 왔다.
마누라는 해주 진주에게 이쁜 옷도 입히고 처갓집 식구 등 찾아오는 손님들에게 칠암 횟집에 모시고 가서 생선회로 대접했다.
자주 배달해 먹었던 "월례반점" 에서는 명절 때 설탕 한 포대를 선물로 보내 주기도 하고 삼겹살 집 주인은 소를 잡았다며 좋은 부위의 고기를 보내 주기도 했다. 업체에서는 과일 상자를 보내 주었다.
한편으로는 정부가 미국, 중국 등 다른 나라에서 농산물을 지나치게 많이 수입해 농산물의 가격이 떨어지는 바람에 농민들의 어려움은 커져 갔다.
나는 그 당시 업무를 처리하는데에 담백한 협상과 교활한 흥정 사이에 처진 줄타기를 소신있게 했다
원자력 2호기 공정도 "돌관작업"을 해야할 만큼
바빳고, 개인적으로는 진주출산,해주 유치원,
간부시험 등 여러 가지 일도 많았고 어려움이나 탈도 많았다.
역사에 "~ 이라면"이라는 가정은 청개구리가 부모 묘를 무너지는 제방에 쓰고 울부짓는 꼴이다.
내가 그 당시 돈에 욕심이 있었다면 내 모습은 현재와 전혀 딴 판으로 전개되었을 것이다.
마누라에게 생활비를 주는 것 말고는 집안 일에
전혀 신경을 쓰지 않았다.
진주에게 "거버" 라는 이유식을 깡통 시장에서 사주었고
술 너무 많이 마신다고 마누라와 다툰 후 아이들에게 싸우는 꼴을 보여서 미안한 마음에 "해주와 진주 데리고 택시타고 장안사 계곡에 물놀이 간 것"도 사진보고 알았다.두서 없는 헝클어진 생활이었다.
그러나 지금 생각해보니 그 때가 "내 인생의 전성기" 였다.
초등학교에 다닐 때 진주가 옆 집 애와 싸웠다고
마누라가 이야기했다.
나는 걱정은 했으나 " 마누라의 심성"을 가지고 태어 난 진주가 막연히
"잘 되겠지 "하는 정도로 끝냈다. 중학교 때도 달리 생각나는 것이 없다.
물어 보는 게 "해주 진주 학교 성적은 어떻노?"였다.
진주에 대한 느낌은 " 진주는 목표를 달성하려는 집념이 강하고 모질고
당찬 구석이 있구나"하는 거였다.
입학시험에 "과학 우수학생 가점제도"란 것도 몰랐다 기숙사에 데려다 준 것
하고 방학 때 오면 "하고 싶은 대로 해주라"말고는 그 이후 학교생활, 졸업식, 서울생활, 구직활동,배우자 구하기, 등 일체 관여를 안 했다.
진주가 우면동에 있는 무슨 회사에 근무할 때 그기에 엄마와 함께 만나러 갔다.
잠시 고기집 밖에서 담배 피우고 오니
엄마가 "아빠는 휴대폰도 없는데" 걱정하며 나를 찾어러 갔다고 한다
"진주 참 효녀다."고 하며
서울에 있을 때 초등학교 1학년이 육교 너머 있는 치과에 혼자서 치료하러
다녔고 한 날은 학교에서 일찍 집에 와서
"진주야! 빨리 마쳤구나"하니
입을 앙 다물고 말이없다.
뒤에 알아보니 수업시간에 늦어서 학교를 안 가고 주변에서 뺑뺑 돌다가 왔단다
엄마와 진주가 싸워 서로 말 안 하고 지날때면 "진주가 먼저 말 붙일 때가 없었다"고 하며
진주와 함께 있었던 일들을 이야기해 준다
마누라는 "진주가 방학 때 집에 오지않고 친구 집에서 보낸다,"고 이야기 했다, 진주는 친화력,자립성,자부심,담백함이 강했고 그기에 끈기라고 할 수 있는
고집 까지 있어 금상첨화다 .
그런데 초등학교를 여러 학교를 전전했다는게 마음에 걸렸다.
어느 날 마누라가 양운고등학교를 가리키며
"진주가 고등학교 3학년 말때 만큼 공부했으면 서울대학도 어렵사리 라도 들어갔다"고 한다.
그 때야 진주의 고등학교 생활에 대하여 이야기 해주었다
."학교 보내기 위해 싸웠던 일~, 담임선생에게 불려간 일~, H.O.T 공연에 따라가야 했던 일"
여고생으로 주변 사람들에게 별로 환영받지 못할 일들이다.
양운고등학교는 집에서 걸어서 5분 거리다
나와 함께 주변을 산책할 때
" 아빠! 저 학교 다닐 때 등굣길이 왜 그렇게 멀어었는지 ~"라고 했다.
양운고등학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