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외줄 낚시
2.봉 낚시
3.단지 방식
봉화산에 진달래가 피기 시작하면 미역 대신 ‘꽃바라지 문어’가 바위 곳곳에 나타난다.
하늬 바람이 부는 이때가 문어의 산란기이기 때문에 연안으로 나와 바위 틈 곳곳에 알을 낳았다.
대진 바다는 동해안 어느 곳보다 문어가 서식하기 좋은 바위 환경이었다.
그래서 어느 항 보다 문어바리 배가 많았다.
형제끼리도 문어 잡는 비법 때문에 사이가 나빠질 정도였다.
비법이라는 것은, 욕심 많은 문어의 생리를 이용하는 거였다. 문어 눈에 잘 띄게끔 납추에 하얀 비닐과 붉은 비닐을 감싸고 미끼를 번들거리는 도루묵을 쓰고 조류를 잘 이용해 까딱까딱 낚시줄을 당겼다가 놨다 하면서 약을 올려 덥썩 물게 하는 거였다.
문어 잡는 방식은 외줄낚시 봉낚시 단지 방식이 있다.
단지는 어둡고 구석진 곳을 좋아하는 문어의 습성을 이용하는 것이다.
긴 모릿줄에 대나무 질그릇 플라스틱 통을 매달아 일정한 간격으로 바다에 던졌다가 다음 날 건져 올리는 방식이다.
이것이 발전하여 그물과 철사로 만든 통발이 탄생했다.
통발 안에 돼지비계 정어리 도루묵 미끼를 넣어 문어 서식지에 던져놓으면, 새끼까지 싹쓸이 한다하여 불법어획으로 엄격하게 통제했다.
배 한척당 통발을 2000개 정도 싣고 다녔으니 씨가 마를 수 밖에 없었다.
대진항도 한 때 통발을 사용했으나 지금은 사라지고 없다.
대진항은 옛날부터 한 손으로 노를 젓고 한 손으로 낚시줄을 잡아당기는 외줄낚시를 주로 사용했다.
그 후 발달한 어구가 ‘지가리’였다.
납이나 납작한 돌 같은 추에다가 낚시를 부착해 문어가 찔리거나 걸리면 낚시줄을 채올리는 방식이다.
처음에는 돼지비계 노가리 꽁치 등 미끼를 달았으나 후에는 흰색 붉은색 비닐을 감아 문어를 유혹했다. 지금은 더 반짝이는 은박지가 보편화 되었다.
요즘 대진항 문어바리 어부들은 ‘지가리’를 부표에 연결해 30에서 50개씩 달아 새벽 4시쯤 출항해 조류에 흘러가게 놓았다가 오전 10까지 작업을 했다. 부표를 보면서 낚시줄을 들었다 풀었다 하는 작업을 하다 보면 쉴틈이 없다.
스티로폼이 보온재 어구용품으로 처음 나왔을 때, 아무도 그것을 다른 용도로 쓸 생각을 못했다.
그러나 대진항 사람들은 부두에 나뒹구는 스티로폼을 보고 기발한 생각을 냈다.
힘주면 뜯겨 나가지만 가벼운 성질을 살리기 위해, 시루떡 썰듯이 직사각형으로 잘라 양쪽으로 나무 중 제일 가벼운 오동나무를 대고 부표를 만들었다.
이 부표에다 ‘지가리’를 연결해 남쪽 장호나 북쪽의 고성 앞바다까지 남발이를 가면 그곳의 어민들이 부러워했다.
남발이란, 돌아올 항구를 정하고 연안 바다에 나가는 것을 말한다.
‘지가리’와 부표를 이용해 문어를 잡는 방식은 일반적이지만, 문어 잡는 기술 하나만큼은 대진항을 따라 올 수 없었다.
대진항 일대서 잡히는 참문어는 갈수록 귀해져서 수요를 감당하기 어렵다.
울진 영덕 등 남쪽 바다에서 잡히는 돌문어는 육질이 단단하고 작지만 참문어는 부드럽고 언해 씹을수록 단맛이 났다.
문어는 주로 연안바다 즉, 육지에서 100 미터 이내에 서식한다.
알을 낳거나 쉴 때는 바위틈을 이용하지만 평소는 수심 70미터 내외의 자갈밭이나 모래밭에서 먹이 사냥을 한다.
보통 동해안 문어를 참문어 돌문어라고 하는데 가끔 이상한 인간들은 피문어라고 사기를 친다.
피문어는 문어의 피부색이 수시로 변하다가 빨간색이 될 때를 말하는데 그런 말은 상인들이 일부러 지어낸 말이다.
묵호, 대진, 어달리, 금진, 심곡 일대에서 잡은 문어가 참문어이고 문어 중에 최고로 맛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