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남한산성.병자호란 丙子湖亂> 남한산성은 서울남동쪽 25km 위치한다. 2014년도인가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도 선정되었고 지금도 있는지 모르겠지만 육군 교도소가 있었고 병자호란의 아픈 역사가 있는곳이다. 한국에서 잘 완비된 산성중에 하나이다. 물론 조선의 왕이 피신했던곳이기에 '행궁'도 있다. 수원의 행궁은 정조대왕, 남한산성 행궁은 인조왕이 사용했다. #1.시대적 배경 인조반정으로 광행군은 아웃되고 인조가 왕이된다.이때 공을 세운 '이괄'이 불만을 품고 '이괄의 난'을 일으키고 이괄의 잔당이 '후금'을 찾아가서 '조선을 칠 것을 부추긴다' 후금은 친명인 인조를 공격한다... 이것이 '정묘호란'이다. 이때 후금은 조선에게 '형제관계'를 요구한다. 후금이 '청'으로 나라이름을 바꾸고 조선에게 '군신관계' 를 요구하며 12만의 병력으로 조선을 침범하게되고 인조는 남한산성으로 피신한다. 이때 남한산성은 50일분 식량,1만3천명의 군사외는 없었다.. #2.삼전도(송파)의 굴욕. 강화도,의주,남한산성,..시대는 다르지만 왕조가 피신한 지역이다. 국가가 힘이 없을 때 겪는 굴욕. 무능한 정부와 각료도 한 몫을 한다. ( 역대 한국 대통령의 역사를 생각) 1637년 1월 1일 태종이 도착하여 남한산성 아래 탄천(炭川)에 20만 청나라 군을 집결시켜 성은 완전히 고립되었다. 결국 삼전도에서 인조는 상복을 입고 3번 큰절을 하고 9번 땅바닥에 머리를 박아 청 태종에게 절하는 소리가 들리도록 '3배9고두'를 하고 소현세자,봉림대군,척화파 신하 등 20만명을 청에게 인질로 보낸다. 이때부터 사대주의가 터를 잡게 된다. 1월 28일 청군은 용골대· 마부태를 보내 다음과 같은 강화조약 조항을 제시하였다. * 청나라에게 군신(君臣)의 예(禮)를 지킬 것, *명나라의 연호를 폐하고 명나라에서 받은 고명(誥命)과 책인(册印)을 내놓을 것, 조선 왕의 장자·제2자 및 여러 대신의 자제를 선양에 인질로 보낼 것 *성절(聖節: 중국황제의 생일)·정조(正朝)·동지(冬至)·천추(千秋: 중국 황후·황태자의 생일)·경조(慶弔) 등의 사절(使節)은 명나라 예에 따를 것, *명나라를 칠 때 출병(出兵)을 요구하면 어기지 말 것, *성(城)을 신축하거나 성벽을 수축하지 말 것, 등등 이와 같은 관계는 1895년 청·일전쟁에서 청나라가 일본에 패할 때까지 계속되었다. #3.현 서울 시장은 4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오늘 개봉된 남한산성을 관람했습니다. 하염없는 눈물과 함께 끝없는 분노가 치밀었습니다”라고 감상평을 남겼다. 인조! 난 조선의 최악의 왕으로 뽑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4이 시각 광해대군이 더 그리워진다. (1) 임진왜란시 전란 수습을 하다. (2) 경제,외교의 탁월한 왕. (3) 폐모살제에 의해 억울하고 비운의 왕. ( 광해군 일기를 쓴 '서인세력'에 의해 폄하 됨
몇십년만에 영화관에 가보신다는 아버지 어머니를 모시고 가서 본 영화입니다.
그동안 무심하고 너무나 불효하는 아들이란 생각에 마음이 무거운 영화이기도 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