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반도)
누구나 고향을 생각하면 그리워 집니다. 뒷동산에서 놀던 소나무가 그립고 앞마당 너머 가로 지르는 실개천이 그립습니다. 어릴 적 성난 부살이가 질풍노도처럼 달릴 때 하마터면 밝혀 죽을 것 같은 두려움도 지금은 그리움으로 남습니다.
부살이는 평소에는 말을 잘 듣다가도 자기 입장에 맞지 않으면 누가 뭐래도 듣지 않습니다. 자기가 원하는 그 한 가지를 해 주지 않으면, 아무래 달래도 아무리 때려도 심지어 눈물을 흘릴지언정 따르지 않습니다. 그래도 더 강압적으로 나가면 사정없이 미친듯이 튀쳐 버립니다. 그래서 사람들의 말에 “황소 고집”이라는 말이 나온지 모릅니다.
우리 아버지는 구루마 쟁이라서 부살이를 키웠습니다. 그 부살이가 너무도 그립습니다.
아버지께서 장에 가려면 소에게 집신을 신기는데 앞발을 탁치면서 “들러” 그러면 앞발을 딱 들어서 앞발에 신을 신길 수 있게 하고, 뒷발을 탁 치면서 “들러” 그러면 똑같이 뒷발을 듭니다. 새벽에 25리길 고흥 장으로 가서 밤늦게 동네물건 이웃마을 물건을 사서 배달해 주고 집으로 옵니다.
내 고향은 고흥입니다. 그것도 두원입니다. 세계 속에 한반도가 첫 번째 반도요, 한반도 속에 고흥이 두 번째 반도요, 고흥 속에 두원이 세 번째 반도입니다. 따라서 그것을 다시 풀면 반도 중에 반도, 반도 중에 반도, 반도 중에 반도인 진짜 진짜 반도입니다.
반도라는 것은 세상사람들의 논리로 보면 밀리고 밀리고 밀려서 더 이상 갈 데가 없는 막네 중의 막네, 막장 중의 막장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신앙을 가진 나는 누구보다 더 자부심을 가집니다. 착하디 착하고 평화하기만을 좋아한 우리 조상들이 싸우기 싫고 양보하기 좋아해서 이 곳으로 와서 내가 태어났다고 생각하니 너무나 조상들이 고맙습니다.
우리나라는 한국입니다. 거기서 ‘한’이란 단어를 음미하면 우리 민족의 나아갈 길이 보입니다.
한에는 크다는 뜻이 있습니다. 한 밭은 대전을 말합니다. 한 다리는 대교를 말합니다.
또한 한에는 중앙이라는 뜻이 있습니다. 한 낮은 정오 즈음 태양이 가장 강렬할 때를 말합니다.
또한 한에는 하나라는 뜻이 있습니다. 한 사람, 두 사람 할 때 그 ‘한“ 말입니다.
또한 한에는 오래 오래란 뜻이 있습니다. 긴 기간 한 참이라고 합니다.
또한 한에는 우리라는 뜻이 있습니다. 한겨레, 한민족, 한식구라고 합니다.
또한 한에는 우리 민족의 가슴 속에 누구나 응어리 진 ‘한(恨)’이 있습니다.
저는 여기서 이‘恨’에 대해서 말해 보고 싶습니다. 우리 민족은 수천년 역사동안 크고 작은 외침을 받아왔습니다. (930번 넘게)
그러다 보니 이 나라에는 눈물이 마를 날이 없었습니다. 코무덤, 귀 무덤이 있고 위안부의 한이 있고 징용간 젊은이들의 한이 있고 화냥녀(還鄕女)의 한이 있고 몽고 반점의 한이 있습니다. 스탈린에 의해 황무지에 버려진 고려인의 한이 있고 조선족의 한이 있고 일본 조센징의 한이 있습니다.
그 한이 가장 응어리 진 곳이 제 개인적으로 판단해 보건데 전라도 인 것 같습니다.
삼국 통일을 신라가 하므로 백제 지역은 변방으로 밀려나고 왕건의 훈요십조에 따라 전라도 사람은 관직에 중용하지 않으므로 말미암아 그 한은 끓고 끓었을 것입니다.그러나 역사는 1막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고 봅니다.
제 2막이 남았습니다.
저는 다시 내 고향으로 내려 가 봅니다. 내 고향 고흥 두원을 더 들어가면 성두리 차수가 나옵니다. 여러분도 기회 있으면 한 번 가 보십시오. 우리 나라 역사상 운석이 세 번 떨어졌는데 유일하게 남은 것이 두원석입니다. 일제시대 말엽(1944년)에 떨어진 것입니다. 지금 대전 과학 기술대에 보관되어 있는데 임자는 일본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잠시 우리가 빌린 거지요.(아이러니) 그 두원석이 떨어진 곳이 성두부락과 차수부락의 경계지점인 (하지만 엄밀히 따지면 차수부락) 그 곳에 떨어졌습니다.
성두 어떤 사람이 그 논에서 일하는데 갑자기 엄청난 유리 창 깨지는 소리와 함께 하늘에 섬광이 번쩍하면서 그 근방에 운석이 떨어진 것입니다. 그러므로 말미암아 나라에서 과학 기지를 고흥 나로도로 선정할 때 이것이 크게 작용했습니다.
저는 앞서 삼반도 출신이라고 햇습니다. 쫒기고 쫒기고 쫒긴 사람들에게 한은 누구보다 많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이 기득권을 향해서 쏟아야 할 분노와 원한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 분노를 승화해야 합니다. 우리는 그 원한을 더 큰 차원의 에너지로 만들어야 합니다. 분노를 승화하지 못하면 복수를 합니다. 혹자는 말합니다 하나 맞았으면 하나 때리는 것을 정의라고 합니다. 눈은 눈으로, 코는 코로 앙갚음 하는 것을 정의라고 합니다. 이차원적 입장에서는 맞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시행해 보십시오. 거기에는 그 만큼 갈등은 심해지고 그 만큼 반목은 커지는 것입니다.
저는 박정희 전두환 정권이 싫어셔 빨리 민주 인사가 정권을 잡기를 소원했습니다.
드디어 내가 밀었던 김대중씨가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모든 정치가 정상적으로 회복되는구나 햇습니다. 참 좋앗습니다. 하지만 정권을 쥐고 있을 때는 보이지 않았던, 하나님을 반역하는 열매들이 노무현 정권을 통해서 서서히 나타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 하나가 우리나라도 공산당이 있어야 한다, 나는 모택동과 호치민을 존경한다. 저는 그러한 내용을 보면서 더 이상 민주당을 지지해서는 안되겠다 판단했습니다.
제가 김 대중이나 노무현을 찍은 것은 이 땅의 한으로 얼룩진 이 나라를 잘 아울러서 한을 가진 전라도 사람들이 기득권층의 약점을 자신의 것으로 여기면서, 함께 치유하고 함께 고쳐 나가는 승화된 모습을 보이길 바랬는데 보복하고 판단하고 정죄해서 더욱 더 이 나라를 갈등과 분열로 몰고 나가면서 한편으로는 모든 질서가 파괴 되고 권위가 추락하여 애비도 없고 선생도 없는 혼란의 세대로 가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것보다 보안법을 패지하고 주한미군을 철수 하고 고려 연방제 통일을 주장하는 다시 말해 하나님 제일 주의자 보다 민족주의자들이 나라를 이끌어 간다면 결국의 끝은 월남과 똑같지 않느냐 하는 결론에 이른 것입니다. 혹자는 노무현씨를 좋은 사람으로 평가하겠지만 나는 개인적으로 별로 입니다.
그 이유를 설명하겠습니다. 제가 들은 어떤 국회의원의 이야기로 예를 먼저 들겠습니다.
그는 국회의원으로서 국민들에게 인기가 있었습니다. 양로원 고아원 찾아 다니며 선행도 많이 했습니다. 사람들은 좋아했습니다. 그러나 그를 아는 친구들은 “그 놈 개 새끼” 그랬습니다. 왜 일까요. 그렇게 혼자서 좋은 일 다한다 하면서 인기를 누리면서도 정작 살아계신 아바지께는 10년 넘도록 찾아 뵙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노무현씨가 아무리 인간적으로 정의롭게 하고 선하게 한다 해도 하나님을 두려워 하지 않고 하나님을 무시한 인본주의적 정치는 하나님 앞에 가장 큰 반역이 되는 것입니다. 그는 민족주의 우상에 싸여서 종교와 이념을 떠나서 우리 민족끼리 서로 얼싸안고 나아가면 통일이 된다는 환상에 젖은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나라 통일의 문제는 이스라엘과 함께 세계의 모든 고민과 세계의 모든 욕심과 세계의 모든 이념과 사상과 종교가 얼킨 그야말로 세계의 화약고를 슬기롭게 극복해야만이 해결될 일인 것입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할 우리나라 어떻게 해결 할 수 있을 까요. 하나님을 전심으로 의지하는데 있습니다.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겠습니다. 배수진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것은 적과 싸우는데 숫적으로 장비적으로 부족할 때 죽기를 각오할 수 밖에 없는 환경으로 자신을 몰아넣고 적과 싸우는 것입니다. 사람이 죽기를 각오하고 싸우는 사람과 자기몸을 살리기 위해서 사우는 사람의 공격력은 천양지차의 차이가 있음은 당연한 것입니다.
내고향 삼반도는 더 이상 갈 곳이 없습니다. 뒤로 물러서자니 바다요 앞으로 나아가자니 적군들입니다. 이판 사판 공사판입니다. 세계를 상대로 해서 싸워야 하는데 완전히 당랑거철이요 계란으로 바위치기입니다.
암담합니다. 캄캄합니다. 아무 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눈물만 나옵니다. 어떻게 해야 하나, 어떻게 해야 하나 정치적으로 경제적으로 밀려오는데, 곳곳에서 항복하는 소리가 들려오고 항복해야 만이 너희가 산다고 적군은 방송으로 외치는데...‘
항복하느냐 마느냐. 항복이란 그말은 우리에겐 ‘잠깐 무릎꿇고 살래, 아니면 서서 죽을래’ 그랳게 들리는 것이지요.
우리들은 자유파다 훌라 훌라 우리들은 자유파다 훌라 훌라
무릎꿇고 살기보다 서서 죽기 원한단다. 우리들은 자유파다.
아무리 우리가 배수진을 친다하여도 중과 부적 계백 장군의 5000명 결사대는 이길 수 없다는 사실에 우리는 난감합니다. 그 때 크게 들려오는 구원의 소리가 잇습니다.
그 소리는
“눈을 들어 하늘 보라”
멀리 하늘에 나로도에서 쏘아올린 인공위성 아리랑호의 연기 구름이 자욱합니다.
바로 이것이다. 하늘 만이 우리의 소망이다.
우리 다른 일행 즉믿음은 있으나 연약해서 예수를 부인하지 않지만 싸울만한 힘이 없는 자 는 대전해수욕장이 있는 대전항으로 나아갑니다. 거기서 10km 떨어진 나로도까지 항해하여, 우주항공기지에 도착합니다. 이전까지의 모든 지식. 모든 가치 버리고 하늘에 소망을 가지고 나아갑니다.
누가 잘사느니 못사느니, 누가 많이 받았느니 누가 적게 받았느니, 누가 이끄는지 누기 따라 가는지 상관이 없습니다. 그냥 하늘의 산 소망이 충만하기에 그런 것은 생각꺼리도 안되었습니다. 조금 기다리자. 소망하였던 아리랑 호가 그들를 태우러 내려옵니다. 그들은 전쟁의 참회 속에 피난처로 아리랑호를 타고 하늘로 떠난 것입니다.
한편 나로도로 가지 않고 적과 맞서기로 결의한 사람들은 기도하면서 찬송하면서 나아갔습니다. 적들이 점점 다가옵니다. 가장 먼저 저들과 대항하기로 결단한 나는 말씀의 검을 휘둘러 봅니다. 적들이 그 말씀의 검에 서너 명 쓰러짐니다.
또한 말씀의 검에 위세를 안 사람들은 우리 편으로 전향하는 삶도 생깁니다. 치열한 전투가 벌어집니다. 하지만 그들의 엄청난 인해 전술에 말씀으로 죽이고 죽이다가 자신도 전사합니다. 그러나 그 전사는 결코 개죽음은 아니었습니다.
나에게 나온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피와 다른 성도들의 피가 뭉치고 뭉쳐 시내를 이루자 적들은 그 피가 무서워 시내 바깥으로 도망가서 싸움니다 점점 더 싸움을 커지자 피는 강을 이룹니다. 적들은 또 피가 강을 이루자 미쳐서 더멀리 도망가며 싸움을 함니다. 게속 치열한 싸움이 진행되니 주님을 증거하는 피는 계속 넘쳐 바다를 이룹니다.
결국 하나님께서 원하는 분량이 되자
주님은 말씀 하십니다.
됐다. 싸움끝.
마귀는 더 이상 전의를 잃고 주님 앞에 무릎을 꿇습니다다. 역사적인 마지막 전쟁은 이로써 진리가 승리 하므로 끝이 났습니다. 대한민국은 세계 인본주의 세력에 맞서서 죽음으로 싸우도록 부름받은 민족이다.
한을 한으로 터뜨리지 말고 그것을 잘 승화하여 선으로 악을 갚으며 진리로 비진리를 이기며 의로 불의를 이기는 거룩한 민족으로 서되 오직 비폭력과 불복종과 무저항의 예수임금의 명을 따라 승리했으면 합니다.
소설이다 보니 성경적이 아닌 것이 있습니다.
첫댓글 그래서 지금 무당정치는 지지할 만 하신가요?
우리나라에선 우파라고 하지만, 우도 아니지요. 좌,우문제도 복잡하게
만들어, 선택해서 지지 할 판인데, 기독사상까지 더해 혼란입니다.
[ 추천 ] 누르고 갑니다 장로님
근데 혹시 삼반도 아니고 삼전도 아닌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