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의 잠수함 쉬르쿠프는 18세기 놀랄만한 활약을 펼친 사략선장 로베르트 쉬르쿠프를Robert Surcouf 기념하여 명명되었으며, 그의 이름을 가진 함중 3번째로 건조된 함이다. 1927년 기공식을 치르고 29년 10월 18일 진수식을 거행했으며, 34년 5월달에 정식으로 취역하였다.
이 분도 알고보니 본좌급의 포스가 좔좔.....
프랑스 해군의 야심작 - 등장 배경과 스펙
1922년 2월 6일에 체결된 워싱턴 해군 조약은 주요 해군국의 주력 수상함 건조를 엄격하게 제한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 중에서 잠수함은 예외로 인정되었으며, 쉬르쿠프는 이런 조약의 예외를 이용 건조될수 있었다. (원래 동급은 3척이 계획되었으나 쉬르쿠프가 처음이자 마지막이 되었다.) 쉬르쿠프는 수상함을 탐지, 교전할수 있는 잠수 순양함의 개념으로 설계되었다. 함교앞에 고치 모양으로 장착된 격납고에선 정찰용도의 비행정을 운용할수 있었다. 비행정이 탐지, 정찰의 용도라면 본격적인 교전을 위해서는 2연장의 203mm(8인치)포가 격납고 전방에 장착되었다. 수밀 처리된 이포는 60발의 포탄이 장전된 탄창과 연결되었으며, 사격관제 장교는 5m길이의 측거기를 이용 11km내 교전이 가능했다. 하지만, 수상 정찰기의 관제를 받을시에는 이론상 최대 24km까지 교전을 수행할 수 있었다. 그 외 대공포와 기총은 격납고 상부에 장비되었다.
프랑스 해군 박물관에 전시된 쉬르쿠프 내부 모형
또한 5m길이의 모터보트와 화물또는 40명의 포로들을 감금할수있는 별도 구획이 있었다. 이 거대한 잠수함은 그 크기만큼 거대한 연료탱크를 장착함으로써 항행거리는 10,000노티컬 마일에 이르렀으며 90일 동안 재급유없이 초계가 가능했다.
2차 세계 대전 - 프랑스 해군의 비극
1940년 당시 쉬르쿠프는 셀부르Cherbourg를 모항으로 삼고있었지만, 6월 독일이 침공했을땐 브레스트Brest에서 정비중이었다. 결국 정비를 다 마치지도 못한 쉬르쿠프는 오직 한기의 엔진, 그리고 고장난 방향타로 영국 해협을 건너 겨우 플리머스Plymouth로 도망칠수 있었다.
7월 3일 프랑스 해군이 독일 크릭스마리네에게 접수되는 상황에 이르자 영국은 결단을 내려 캐터펄트 작전Operation Catapult을 단행하게 된다. 이 작전의 목적은 프랑스 함대가 크릭스 마리네와 합류하는 것을 저지하는 것이었다. 프랑스의 주요 군항을 봉쇄한 로열 네이비는 최후 통첩을 보냈다. 통첩의 내용을 간단히 줄이면 이런 내용이었다.
- 우리편 될래 아니면 죽을래(격침)? -
북 아프리카 작전엔 HMS 후드도 참가
대부분의 함대가 영국의 다소 거친 제의(?)를 받아들였지만 그 예외도 있었다. 그 중 하나는 메르스-엘-케비르Mers-el-Kebir와 다카르Dakar에 정박해있던 북 아프리카 함대였으며, 로열 네이비는 자신들의 최후 통첩을 성실히 수행하게 되었다. 또 하나의 예외는 바로 쉬르쿠프였다. 쉬르쿠프는 영국군과의 간단한 교전으로 자신들의 의지를 내비친 후 항복하고 말았다. 이 작전으로 1,300여명의 프랑스 장병들이 희생되었으며, 쉬르쿠프 역시 1명의 수병이 돌아올수 없는 곳으로 가고 말았다.
북 아프리카 함대로 저항한 브리타뉴Bretagne 혼자서만 1,000명이 희생자가 발생했다
결과적으론 성공적인 작전이었지만, 이로 인해 영국과 프랑스 해군간엔 뿌리깊은 불신감과 갈등이 배양되고 있었다. 그리고 이런 감정들은 또 하나의 사건으로 더욱 더 곪게 되었다. 프랑스의 미전향병들을 송환하던 영국 해군의 병원선이 그만 독일군의 공격으로 침몰한 것이었다. 프랑스 해군은 이들의 죽음을 영국의 탓으로 돌렸다.
자유 프랑스 해군 - 더부살이의 서러움
1940년 8월, 정비를 끝낸 쉬르쿠프는 자유 프랑스 해군(Forces Navales Fran?aises Libres, FNFL)에 배속되어 초계임무를 담당하게 되었다. 유일하게 송환을 거부한 장교인 루이 블레종Louis Blaison이 이 잠수함을 책임지는 함장으로 선임되었다. 하지만 영국은 이 프랑스인 지휘관을 신뢰하지 않았으며 영/불간의 갈등은 고조되어 서로가 비시의 스파이라며 비난하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다. 특히 영국은 서쿠프가 무고한 영국 국적선들을 공격한다고까지 주장했다. 이 결과, 영국군 장교 1명과 수병 2명이 연락병이라는 명목으로 쉬르쿠프에 승선/감시하게 되었다.
쉬르쿠프의 크기가 짐작되는 사진. 격납고 전방의 2연장 터렛에 주의
영국 해군의 입장에서 쉬르쿠프는 불신과 더불어 통상 잠수함의 3배인 110~130명을 잡아먹는 달갑지 않은 손님이었던 것이다.
1941년 12월, 캐나다 퀘벡으로 요인 수송임무를 수행한 쉬르쿠프의 함장은 기자인 이라 울퍼트와Ira Wolfert와 만나게 되었다. 그는 대서양의 작은 섬 생-피에르Saint-Pierre와 미켈론Miquelon을 자유 프랑스 해군이 비시 정권에서 해방시킨다는 소문의 진위에 대해 질문했지만, 그에대한 대답은 바로 대담한 납치였다. 쥐도 새도 모르게 납치된 그는 결국 그 인생 최고의 행운을 잡게된다. 12월 20일 노바 스코티아 Nova Scotia 핼리팩스 Halifax에서 서쿠프는 자유 프랑스 해군의 초계함 미모사Mimosa, 아코니트Aconit, 알리세Alysse와 합류 울퍼트가 질의했던 그 문제의 섬들을 24일 저항없이 해방시켰다. 울퍼츠는 이 장면의 생생한 목격자가 되었다.
이날의 승리를 기념하는 기념 우표. 15분만에 끝냈다고 한다
울퍼츠는 자신이 목격한 생생한 장면들을 기사로 작성했으며 대중들의 큰 호감을 얻어냈다. (센스있게 자신의 납치나 감금에 대해선 기술하지 않았다.) 하지만.....
첫댓글 8인치라.. 게다가 항공기 운용능력까지;; 그 유명한 영국의 M급 잠수함이 생각나는.. -ㅅ-;;;
피셔경의 그놈과 비교되는 놈이지만, 성격은 다릅니다. 쉬르쿠프란 함명에서 알수있듯이 이 놈은 통상교란을 주목적으로 만들어진 놈이죠.^^ 전투상황에서 쓰기엔 좀 문제가 많은 놈이죠.
....저런게 잠수함이 될 수 있구나...
저것보다 크고 공격기 3기를 탑재한 놈도 있답니다.^^
m급 잠수함은 무장이 무려 12인치였죠--;;; 그나저나 이게 상선과 충돌해서 침몰한 그 잠수함인가요???
누가 만든 M2인데요.^^ 로열네이비 피셔경 작품이니까요. 그리고 이런 스포일러성 테러를 가하시다니 ㅠㅠ (사실 후편 주내용은 쉬르쿠프의 미스터리한 최후니까 별 상관은 없습니다,)
ㅎㅎ 스포일러성 댓글은 죄송합니다^^
2차대전 당시 일본의 잠수항모가 생각나는군요 ㅡ_ㅡ;;; 일본의 잠수항모도 톤수가 3천톤급 ㅡ0ㅡ;;;;
센토쿠급 I-400 수중 배수량이 무려 6,000톤이 넘어가는 괴물. 현재까지도 통상 동력형 최대를 자랑하는 무식한 체구 (현재 통상 동력형 최대는 3,000톤급의 호주 콜린스 클래스) 이걸 나포한 미군도 그 거구에 무지 놀랐다는 이야기가 있었죠. (왠만한 경순양함과 맞먹는 놈이었으니....ㅎㄷㄷ)
프랑스가 워싱턴 군축에서 워낙소외되었기에(사실 국력을 생각해보면 프랑스는 무진장 열받는 일이었죠 최소한 일본하고 동급으로는 배정받을걸로 생각했는데 겨우 이탈리아하고 같이 놀라니...이건 뭐 마른하늘에 날벼락;;)그래서 런던군축에선 아예 생까버리고 제한받지 않는 순양함과 잠수함전력을 ㅋㅋㄸ 찍어내게 되죠
워싱턴에서 정말 소외된건 일본이었죠. 그야말로 왕따. 해군과 극우파가 극렬하게 반대하지만 민간 정부에 의해 결국 수락되고 말았죠. 그 당시 일본 정부의 입장에서 보더라도 지나친 해군력의 확장은 무리라는 판단에서였죠. 물론, 프랑스도 적잖이 딴지를 놓습니다만, 이건 우리도 좀 많이줘!라기 보다는 이탈리아애들 좀 적게줘!라는 성격이 강합니다. 똑같은 쿼터를 할당받는다면 지중해 함대만을 운용하는 이탈리아가 지중해와 대서양 함대를 운용하는 프랑스를 지중해에서 압도할 가능성을 우려했던거죠. 뭐, 결국은 이탈리아와 같은 쿼터를 배정받지만요. 설령, 프랑스가 일본과 동등한 쿼터를 부여받더라고 과연 그걸 건조할
역량이 되는지는 좀 의문입니다. 프랑스는 더 이상 1차대전이전의 프랑스가 아니니까요. 또한 해양국가와 다른 대륙국가인 프랑스의 입장에서는 독일과 러시아를 동시에 대비해야하는 부담도 있죠.
사실 일본입장에선 워싱턴군축이 오히려 도움이 된것이었죠 미국의 사기스러운 생산력을 제한할 수 있었으니...오히려 일본의 외교적 승리로 평가해야한다고 생각하는..(물론 개인적생각입니다) 후일 워싱턴군축 탈퇴는 정말 자살행위였죠
그리고 그당시 산업력이나 국가역량으로 평가했을때 프랑스는 충분히 그정도의 해군력을 유지할 능력이 되는국가였습니다 아무리 1차대전에서의 인력손실이 크긴 했지만 경제력이면 경제력, 국력이면 국력 프랑스는 당시 미,소,영,독을 제외한 열강중에는 가장 강한 경제기반을 가진 국가였습니다(일본의 경제력보다는 꽤나 우위에 있었죠)
프랑스가 러시아를 대비할 이유가 대체 뭔가요? 달라디에내각이전의 인민정부와 소비에트의 우호관계를 생각해보면 그럴필요는 전혀 없었다 생각되는데 말입니다.(사실 스페인내전의 경우에서도 프랑스는 소련과 같이 인민전선을 지원하려고 했지만 독,이와의 마찰을 피하기 위해서 발을 빼죠)사실 일본입장에서보면 크게 소외됐다고 주장하지만 미,영,일=10:10:7목표를 달성하지 못한것이 아쉬울뿐이지 6.95는 달성했으니 최소한의 전력은 보장받은셈이었죠
음...프랑스판 진주만이었던 메르스 엘 케비어 해전...(이라 쓰고 학살이라;;퍽!)사촌형한테 들은얘기지만 전후 프랑스정부의 항의로 인해 영국정부에서 배상을 했다고 하더군요
그나저나 다를랑은 프랑스해군에 도움이 되질 않네요...메르스 엘 케비어나 툴롱에서일어난 대참극을 보자면 ㅡㅡ 헌데 민호님 혹시 프랑스 현대사 전공하셨나요? 프랑스현대사가 포함되는 게시글에는 빠짐없이 출현하시고 리플다시는걸보니 예사롭지가 않은데...
자꾸 댓글이 지워지는 바람에ㅠㅠ. 러시아는 제가 오버한건 인정하겠습니다. (하지만, 아예 없다고는 좀 그렇죠. 러시아의 남하를 막는건 유럽 열강들의 기본 정책이었으니까요...) 일단 이건 패스하도록 하고요. 1차대전의 프랑스와 영국은 800만 이상을 동원합니다. 그런데 중요한건 주요 전장이 프랑스였다는 것이죠. 전쟁후 인력만 투입한 영국에 비해 프랑스는 국토의 재건과 국가의 재정비라는 큰 부담이 생겨버린겁니다. 이런 상황에서 무리한 군비확충은 정권을 잃기 딱 좋은 구실이 됩니다. 그리고 군사전략또한 그동안의 공세적인 입장에서
수세적인 입장으로 바뀌게 됩니다. 그걸 잘 보여는게 희대의 삽질인 마지노선이고요. 더구나 전쟁중 식민지를 가혹하게 수탈하는 바람에 식민지에서 벌어진 반 프랑스투쟁에 하루도 쉴틈이 없던 프랑스입니다. 이에 비해 일본은 1차대전서 한게 거의 없죠. 칭타오 따먹은 정도외에는요. (덕분에 영국의 눈밖에 나는 결과를 초래하죠.) 하지만 이 당시 대만과 조선에 대한 식민지 경영이 안정화되면서 과실을 따먹을땝니다. 여기저기 돈 쓸때많은 프랑스와는 입장이 다르죠. 또한 정치적인 면에서 보자면 프랑스가 여론에 민감할수 밖에 없는 체제인데 반해, 일본은 본격적으로 군국주의시대에 접어들던 때입니다.
프랑스가 내각의 운명을 걸고 추진해야 하는 업무(건함)인 반면, 일본의 경우 별다른 어려움 없이(경제적인 어려움은 제외. 일본도 엄청 무리합니다.) 정부차원에서 추진이 가능했습니다. 더구나 기본적으로 이 둘은 육군국과 해군국이라는 차이가 있죠. 그리고, 전략 개념상 해군력에 있어 프랑스는 영국과의 동맹관계에 있다는 점을 간과하시면 안됩니다. 그 반면 일본의 제일 두려운 상대는 미국이었고, 미국을 견제하기 위한 전력을 구축하게 됩니다. 1vs1 대결입니다. 그 미국하고 말입니다. 아까 이야기 했지만, 1차대전때 영국은 일본에 전함을 파견해줄것을 요구합니다. 하지만, 일본은 정중히 거절하죠.
그 이유는 바로 미국이 두려웠기 때문입니다. 언뜻 일본의 호들갑으로 볼수도 있지만 실제로 그렇게 행동한게 일본입니다. 그동안 최대 동맹국의 요청을 거부할 정도로요. 너무 이야기가 길어졌는데, 프랑스로서는 그럴 여유가(영국에 기대는) 없었다는 것이고, 일본은 무리해서라도 그렇게 해야 할 이유가 있었다는 겁니다. * 다음이 좀 이상하네요. 자꾸 리플 지워지고ㅠㅠ 아 그리고 저 프랑스 근대사 전공 아닙니다. 러시아 근대사는 학교 다닐때 좀 봤지만요.
사실 3공화국당시의 내각 평균수명을 보면 6개월정도밖에 안된다는건 감안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달라디에내각의 경우는 꽤나 길게 갔지만...이런상황에서 내각에서 굳이 건함을 피할이유가 없죠(어차피 길게 못갈거 굵게 아무 정책이나 싸질러놓자 대략 이거심? ㅡㅡ)그리고 마지노선에대해선 아직도 이견이 많습니다, 결과론적으로 마지노를 쳤음에도 독일에게 패전한 이유때문에 삽질이었다는 평가를 받긴하지만 말씀하신대로 1차대전에서 벌어졌던 "미친짓의 연속"에서 엄청난 피해를 입었기에 프랑스가 선택할수 밖에 없었던게 바로 마지노선이었구요
가장 중요한건 프랑스가 마지노선을 너무 신뢰했기 때문에 무너진게 아니라 마지노선을 믿지 못하고 병력운용을 했기 때문에 패배한것입니다 만약 마지노선을 전적으로 신뢰하고 군사작전을 벌였다면 승전은 장담하지 못했더라도 최소한 아르덴돌파에 이은 6주만의 붕괴는 없었을거라는거죠
그리고 이탈리아해군과 지중해/대서양으로 갈라진 프랑스해군의 입장을 비교해주셨는데요 후일 이탈리아의 해군력이 정점에 올랐을때도 그 전력은 프랑스 지중해함대에 미치지 못했다는게 사실아닌가요?
전공을 안하셨는데 이정도로 상황을 분석해 내실수 있다니 ㅡㅡ;; 저도 불빠라 나름대로 프랑스사 열심히 공부했다고 자부하는편인데 말입니다. 근데 리플은 저도 자주 지워지더라구요 ㅜㅜ 도대체 왜이런지;;
프랑스의 지중해 함대를 능가하지 못했다는건 아닌데요. 이탈리아는 2차대전 개전시 4대 해군국에 꼽힐정도 였습니다. 2차대전에서 이탈리아 해군이 로열네이비와 벌인 분전을 생각한다면 다르게 볼수도 있는 문제입니다. 사실, 이탈리아 해군은 욕하는 사람들은 별로 없어요. 그만큼 인정을 해준다는 뜻이죠. 그리고, 이런말도 있긴 합니다. '이탈리아 해군의 용기는 배수량에 반비례한다.'는... http://en.wikipedia.org/wiki/Regia_Marina 이걸 읽어보신면 좀더 이해가 빠르실듯 합니다. 상대가 로열 네이비인데도 분전한 이렇게 이탈리아 해군이 프랑스 해군과 붙는다면 어떨까요? 정답은 모른다는 겁니다. 더구나 레지아 마리나의
글쎄요...로열네이비와의 분전은 인정해야하겠지만 그 4대 해군국이라는게 프랑스의 몰락을 가정했을때가 아닌가요? 프랑스의 지중해함대에 배치된 함선과 승조원들의 능력을 생각해보면 분명 이탈리아함대를 최소한 동등한 전력으로 묶어두는건 분명 가능하고도 남았을텐데 말이죠
그리고 이탈리아해군을 욕하는분들 거의 없는것도 사실이지만 그것도 어쩔수가 없는게 유럽에서 그 막강한 연합군해군력에 맞설만한 국가는 이탈리아 뿐이었고 실제로 예상외의 분전도 있었고...가장 중요한건 육군과 공군의 삽질에 가려졌기때문에 해군의 성과가 더 두드러진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프랑스의 경우엔 전쟁이 임박해갈수록 해군보단 육군에 투자하는 경향이 더 심화되었지요. 그 예로 막상 전전까지 작전투입가능한 신조함은 없었다는 겁니다. (장 바르나 리셸리외나 미성함이었지요.) 반면 이탈리아는 뭇솔리니이후 해군력 건설에 박차를 가하게되죠. 나중에 프릿츠-X의 밥이 되는 로마의 경우 대전중 빅-5에 낄정도로 완성도가 높은 전함이었습니다. 물론 결과는 싸워봐야 아는거겠지만 분명한 건 프랑스가 단독으로 압도할만한 전력은 아니었다는 겁니다. 예를 들어, 롬멜에게 물자가 부족한건 절대아니었습니다. 이를 수행한게 레지아 마리나고요. 로열 네이비와 싸워도
이정도의 활약을 보여주는 레지아 마리나를 프랑스가 단독으로 압도한다는 것은 말이 안되죠. 주력함만 보더라도 거의 동등인데요. 물론 견제는 할수있겠지만요.
결론은 프랑스 지중해함대 단독전력으로 레지아 마리나를 압도하는건 불가능하다. 이거군요 ^^;; 하지만 로열네이비에 대서양을 맡기고 전력을 투입한다면 지중해의 제해권은 라 마린 라씨오나르에 넘어갈수 있지 않을까요?
결국 올때까지 왔군요.^^ (If 놀이) 그럼 잠시 서로간의 주력함(전함만)을 초단순하게 비교해보겠습니다. 리셸리외 클래스(리셸리외만 완성) 380MM*8문 30노트 만재 46,000톤 던커크 클래스(던커크와 스트라스부르) 330mm*8문 31노트 36,000톤 브리타뉴 클래스 (브리타뉴, 로랑, 프로방스) 340mm*10문 20노트 23,320톤 쿠르베 클래스 (쿠르베, 장 바르, 파리) 305mm*12문 20노트 22,000톤 이상입니다. 총 9척이며 이중에 현대식(당시 기준)신형함은 리셀리외와 던커크 클래스뿐입니다. 그리고 던커크 클래스의 주목적은 독일의 포켓전함을 잡기위한 용도이죠. 그 외 나머지들은 시대에 뒤쳐진 함들이죠. 이제 이탈리아를 보겠습니다.
안드레아 도리오 클래스 (도리아, 둘리오) 320mm * 8문, 27노트, 24,000톤 쥴리오 체사레 클래스 (체사레, 카보르) 320mm*10문, 27노트, 26,000톤 리토리오 클래스 (리토리오, 로마, 베네토) 381mm * 8문, 31노트, 41,400톤 이렇게 7척입니다.
자 이제 찬찬히 보자면 프랑스가 숫적인 우세라고 하지만, 저기서 정작쓸만한건 리셸리외와 던커트 두척만이고 나머지는 근대화 개장도 미진한 녀석들이라는 겁니다. 그 반면 이탈리아 도리아와 체사레 클래스는 근대화 개장을 받은 놈들이고 리토리오들은 최신형이라는 거죠. 화력에 있어선 프랑스가 우세해 보이지만 이탈리아의 함포들은 구경은 작아도 그 이상의 화력을 발휘하게 설계된 녀석들입니다. 속도에 있어서는 이탈리아의 압승! 즉, 이탈리아는 빠른 속도를 이용해 자신들이 원하는 위치에서 교전을 벌일수 있다는 잇점이 생기는겁니다. 프랑스에서 이들을 따를 함은 단 3척뿐이거든요. 하지만, 멋대로 추격하단 결국 7:3의 싸움
이 되고 말죠. 이탈리아가 4개 해군국이라는 말이 달리 나온게 아닙니다. 제가 하고 싶은 말은 이탈리아 킹왕짱이 아니라 프랑스 해군이 이탈리아 해군을 압도하지 못한다는 것이죠. 설령 님의 말대로 프랑스가 나머지 포기하고 올인한다고 해도 말입니다. 숫자가 많지 않느냐?라고 반문하신다면 그게 아니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쫓아오지도 못하는 놈들과는 자기 맘대로 교전을 벌일수 있고, 쫓아오는 놈들과는 숫적인 우세로 교전을 벌일수 있거든요. 물론 이 가정은 그냥 단순하게 전함만을 비교한것입니다. 그것도 아주 단순한 스펙만으로요. 그럼에도 이탈리아의 우세죠. 뭐, 나머지 전력을 더하면 틀릴수도 있겠지만, 지중해라는 전역에서
에서는 이탈리아의 우세를 점쳐봅니다. 뭐니뭐니해도 지중해는 이탈리아의 홈이지 프랑스의 홈이 아니죠. 뭐, 로열네이비야 전세계가 홈이었던 애들이니....프랑스 입장에선 이탈리아의 견제가 최우선이지. 이탈리아를 격파하는건 로열네이비와의 연합이 있어야 가능한 이야기죠. 이건 육군국이라는 프랑스의 한계와도 같은겁니다.
물론 저렇게 따졌을땐 프랑스가 불리하게 되겠군요, 헌데 보통 전함의 맷집은 배수량을 가장 기본으로 놓고 평가하게 되죠? 여기에 IF를 달아서 프랑스의 항복이 늦어졌을경 뽑혀져나올 장바르까지 더한상황에 리슐리외+장바르+덩케르크+스트라스부르면 4만톤을 넘거나 근접하는 전함이 4척이죠...그에반해 이탈리아의 전함이 비교적 신형전함이라곤 하지만 기본맷집을 판단하는 잣대인 배수량이 작은 함정이 많죠 도리아나 둘리오, 체사레,카보우르 같은 경우엔 맷집이 약한편이기 때문에 속도가 느린편인 브르타뉴나 로레인, 프로방스로/아니면 구식인 쿠르베급으로도 충분히 견제가 가능했으리라 생각합니다만;;;
말씀하신대로 비교적 해군쪽에 많은 신경을 써줄 수 있던 이탈리아와 근본자체가 육군국인 프랑스간의 비교가 무리긴 하지만요.뭐...사족을 달다보니 원래의 취지와는 어긋ㄱ난 토론이 되버렸군요 애초에 워싱턴군축에서 프랑스가 소외되었냐 아니냐의 문제였는데 이렇게 흘러와버린 ㅡㅡ;;(난 왜 항상 삼첨포로 빠지는걸까)
전함은 대개 지함방어라는 방어사상을 기반으로 설계됩니다. 즉, 자신이 장비한 포의 거공격력을 유효사거리에서 방어한다는 개념이죠. 프랑스의 저 구형전함으로 이탈리아의 신조함이나 개장함들을 잡는건 거의 불가능합니다. 그냥 뭐 방어에 투입되던가 매복외에는 쓸데가 없어요. 유효사거리안에 들어가야 공격을 하죠. 이탈리아가 바보가 아닌 이상에는 그 안으로 들어갈리가 없죠. 적당히 때려주다가 속도를 이용해 도망가면 그 뿐인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