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리바바와 40인의 도둑
“아고야!”
딸아이가 사는 오피스텔은 쓰레기장, 딱 그 상태였다. 하긴 그 걸 어찌 딸아이 잘못이라고만 하랴. 딸아이가 대학을 다니는 동안 기거할 집을 구하는 일조차 아이에게 맡겨왔다. 그러고도 자기일 자기가 하는 거라고 큰소리만 쳤으니 공부하랴 청소하랴. 세상 밖으로 내 딛는 첫발에 저도 정신없이 살았을 터다. 믿고 맡겼다고는 하나 그 미안함이 있기에 잔소리할 생각은 없다. 대신 어금니를 꽉 물었다. 어쨌거나 있는대로 속은 상한 터다.
세탁물이 두 광주리, 버려야 할 쓰레기가 50리터. 그런데 이게 뭔가? 남자 구두 한 켤레. 딸아이 둘이 사는 집에 남자 구두라니. 낯빛이 새까맣게 변한 나는 문제의 신발을 문 밖으로 획 집어던졌다. 물론 ‘야’ 라는 외마디 함성이 동반됐다. 이러고도 나에게 말 한마디 안 하고 있었단 말인가. 문 앞에 벗어놓은 신발보다 쓰레기가 먼저 들어온 건 아이에 대한 잘못된 믿음이란 말인가?
“엄마!”
급한 나의 성미를 빼다 박은 듯 닮은 딸애가 나와 똑같은 크기로 고함을 지르며 급하게 뛰어나가 물건을 들고 들어왔다. 나는 또 한 번 “야!‘ 하고 윽박질렀다. 본시 말이 짧아지면 소통은 어렵다는 뜻이다. 어차피 머리끝까지 화가 차오르면 길어질 수가 없는 게 말이다. 그보다, 그때부터 나는 실신 상태로 가고 있었던 것 같다.
“오빠 옷도 있단 말이야”
나는 움찔했다. 이토록 당당한 이유가 뭔가. 단 한 번의 설명도 없이 딸애를 미치게 한 게 누군가. 내 딸이 나를 이렇게 기만할 수 있나. 내가 저에게 무엇을 닦달하고 강요한 적이 없건만 말 한마디 없이 어떻게 이럴 수 있는가. 후들거리던 몸에 힘이 딱 떨어진다. 언짢다는 말로 내 속을 설명할 수 없다. 배신이라는 말로 내 기분을 대신할 수 없다. 그래도 딸을 향해 눈을 부라릴 수 있었던 건 내가 엄마이기 때문일 것이다. 발아래 밟힌 보잘것없는 이성이 엄마라는 이유로 숨을 할딱이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곧, 감정의 전부를 대신하던 외마디의 말도 잦아들고 말았다.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게임에서의 그 '아웃=죽다'라는 말이면 적당할까? 내 머릿속에선 종소리와는 분명 다른, 항아리 울음소리 같은 것이 들렸지만 이내 조용해졌다. 살면서 누구나 한번쯤, 머릿속이 하얗게 비워지는 경험을 해 보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 단계를 지나면 멈춤 상태. 혼이 달아나 버린 무의식. 어이없게도 이걸 해탈이라 해야 하나?
“이거 한 번 보실래요?”
딸애가 죽음으로 치닫고 있는 내 속을 짐작한 듯 현관문 밖으로 나를 끌어당겼다. 나는 일시적 얼음 상태. 신발도 신지 못했고, 손가락 끝에 힘도 한번 쥐어보지 못하고 끌러나갔다. 내게 있던 자존심이 한 방에 털려나갔다. 나를 지탱해 온 삶의 방식. 믿음. 아니 모든 것이 다 흐트러지고 말았다.
[ f2 ]
뾰족한 쇠붙이로 그어낸 낙서처럼, 현관문 문고리 옆에 갈겨쓴 영문자 f2
순간 정신이 확 돈다. ‘이게 뭐야?’라는 말 보다 눈동자가 더 빠르게 반응했다. 물론 그때까지도 내 목은 소리를 낼 수 없는 멈춤 상태다.
“여자 둘이 사는 집이라고 누군가가 표시한 것 같아요. female 2”
눈을 감았다. 아니 눈이 스르륵 감겼다. 그 한 단계가 더 올라가면 죽거나 생으로 돌아오거나 둘 중 하나겠지.
“알리바바와 40인의 도둑!”
내 목소리가 희미하게 꿈틀거렸다. 그제야 현관 정면에 반듯하게 걸어 놓은 남자 정장 한 벌이 눈에 들어왔다. 가슴이 저리다. 얼마나 놀랐을까. 가위에 눌리진 않았나. 그 표식을 읽어낸 후 며칠은 열쇠를 거는 순간도 힘겨웠을 것이다. 그렇게 마련한 남자 구두는 두 딸아이가 살아가는 최소한의 방예였으리라.
우리 아이가 기대며 살아가야 하는 세상. ‘삶은 본시 고단한 것이지’ 속으로 중얼거릴 뿐이다
첫댓글 여성들만의 고뇌가 있군요 ~
그러게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