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심과 함께하는 4월
文 熙 鳳
봄 햇살이 노랗게 영그는 날, 하얀 민들레 홀씨처럼 두둥실 날아 임 계신 곳까지 달려가고 싶은 4월이다.
강변의 논밭에서 출렁이는 붓끝 같은 보리의 무희를 볼 수 있는 4월은 아지랑이 자욱한 야산 기슭의 풀 뜯는 송아지와 염소의 울음소리로부터 온다. 흐르는 강물에 봄빛이 목욕을 하고 푸른 하늘로 차고 오르면 강남 갔던 제비가 찾아온다. 무논에서는 개구리들이 춘정을 이기지 못하고 요란스레 목소리를 돋운다. 새벽공기가 향수처럼 달콤한 달이다. 풀 냄새 가득한 초록바람을 실컷 마실 수 있는 달이기도 하다.
먼 산의 아지랑이가 그 희부연 장막을 걷고 새로 장만한 초록빛 봄옷으로 갈아 입고 자랑스러운 얼굴로 환히 웃는다. 따뜻한 봄볕에 시냇물이 즐거이 노래하고, 맑은 바람에 나비도 흥겹게 춤을 춘다. 벅찬 생명의 희열감에 젖어 있는 4월은 확실히 축복의 계절이다.
흙 냄새를 맡으면 생기가 돈다. 정신이 맑아진다. 평화로워지고 안정된다. 동토의 인고를 겪어내면서 키워온 4월의 흙이기에 그렇다.
새봄의 흙 냄새를 맡으면 생명의 환희 같은 것이 가슴 가득 주입된다. 맨발로 밟는 흙의 촉감, 그것은 푸근한 모성이다. 거름을 묻으려고 흙을 파다가 문득 살아있음을 의식하고는 기쁨의 호수에 빠진다. 봄에 씨 뿌리는 사람은 가을에 풍성한 열매를 거둔다는 믿음을 주는 달이다.
3월에 비해 하루가 다르게 바람의 숨결이 부드러워진다. 마늘, 보리, 갓 등이 초록빛 융단을 펼친 채 감미로운 봄볕을 즐기고 있다. 탐스런 동백들이 미소를 머금고 있다. 그 예쁜 모습이 카메라에 잡힌다.
야산에만 가더라도 대낮인데도 불을 환히 켜놓은 것같이 밝게 웃는 진달래들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산이 입덧을 시작한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에게 핑크빛 볼거리를 제공하는 것이다.
진달래의 뒤를 이은 개나리들이 노란 리본 달고 나와 재잘거린다. 유치원 아이들 같다. 샛노란 물감을 엎지른 듯 흐드러진 개나리가 우리를 유혹하는 4월이다.
열아홉 처녀 같은 철쭉은 어떤가. 사랑을 쟁취하기 위해 몸부림치다 혼자 지쳐 얼룩이 진 철쭉이다. “사랑하는 임이 빨리 나타나야 할 텐데.”하는 쓸데없는 걱정을 한다. 그렇게 야산의 곳곳에 얼룩처럼 철쭉 무더기가 눈에 뜨이는가 싶으면 어느덧 백목련이 난숙한 꽃잎을 벌리고 화사한 기품을 내뿜는다. 이런 꽃들이 만산을 물들이게 되면 천지는 원색으로 색칠해 놓은 수채화가 된다. 이것들보다 더 아름다운 광경은 연출할 수가 없을 것만 같다.
눈을 들어보면 어느새 제비가 찾아와서 논어를 읽어준다. 까치는 찾아와서 맹자를 읽어주고, 꾀꼬리는 문 앞 버들가지를 오르내리며 ‘머리 곱게 빗고, 담배밭에 김매러 가라’고 일러준다. 뒷문을 열면 진달래와 개나리가 창으로 들어오고, 발을 걷으면 복사꽃 살구꽃 등 가지각색 꽃들이 날아들고, 뜰 앞의 괴석에는 푸른 이끼가 이슬을 머금고 멋진 자태를 자랑한다.
4월은 이와 같이 모든 사람들에게 무한한 가능성을 향해 자신을 채색하게 하는 신비의 계절이다. 싱그러운 향훈(香薰)이 눈 닿는 곳마다 가득하여 우리의 후각을 유괘하게 한다.
사방을 둘러본다. 개나리는 노랑 말로, 진달래는 분홍 말로, 백목련은 흰 말로, 귀가 멍멍하게 유세하고 있는 광경을 볼 수 있다. 다들 대통령 후보들이다. 누구를 대통령으로 뽑을 것인가 유권자들은 고민하게 된다.
자연은 죽은 땅에서 꽃을 피워낸다. 잠든 뿌리를 봄비가 깨워준다. 가장 아름다운 희망의 달 4월, 그곳에는 메아리가 살아있다. 동심이 살아있다.
주택가 어느 담장을 넘어온 담백한 목련향이 바람에 섞여 와서 나의 잠든 의식을 깨운다.
이 사월의 봄밤, 바람결 속에 별빛과 달빛이 꽃나무 속으로 흘러드는 이 아름다운 세상 얼마나 감사한 계절인가. 얼마나 축복스러운 달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