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강. 사람의 지혜가 아니라. 오직 성령의 가르치신 것으로
* 설득력 있는 지혜가 아니라, 오직 성령의 나타나심과 능력으로,
“내 말과 내 전도함이 설득력 있는 지혜의 말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나타나심과 능력으로 하여 너희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아니하고
다만 하나님의 능력에 있게 하려 하였노라”(고전2:4-5)
“우리가 세상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온 영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12)
“사람의 지혜가 가르친 말로 아니하고 오직 성령께서 가르치신 것으로 하니
영적인 일은 영적인 것으로 분별하느니라”(13)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들을 받지 아니하나니”(14)
* 사람의 지혜로 가르치면 하나님을 헛되이 경배한다.
“주께서 이르시되 이 백성이 입으로는 나를 가까이 하며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나
그들의 마음은 내게서 멀리 떠났나니
그들이 나를 경외함은 사람의 계명으로 가르침을 받았을 뿐이라”(사29:13)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도다 하였느니라”(마15:9)
* 사람의 전통과 세상의 초등학문(사람의 계명)은 그리스도를 따름이 아니다.
“누가 철학과 헛된 속임수로 너희를 사로잡을까 주의하라
이것은 사람의 전통과 세상의 초등학문을 따름이요 그리스도를 따름이 아니니라”(골2:8)
개혁주의도, 현대교회 사상도 이에 해당한다.
* 장로들 대제사장들 서기관들이 항상 예수를 죽인다.
“이 때로부터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가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삼일에 살아나야 할 것을 제자들에게 비로소 나타내시니”(마16:21)
* 바리새인(목사)과 서기관(신학자)의 의로는 결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마5:20)
* 유대교회, 로마교회, 개혁교회(루터 칼빈의 개혁주의), 현대교회(신정통주의 자유주의)는
나라의 본 자손들이다.
“그 나라의 본 자손들은 바깥 어두운 데 쫓겨나 거기서 울며 이를 갈게 되리라.”(마8:12)
* 모든 이론 모든 생각의 견고한 진들은 무너뜨려야 한다.
-16세기 종교개혁부터 5백년 개혁주의, 현대교회의 신정통주의, 자유주의, 상담학.
“우리의 싸우는 무기는 육신에 속한 것이 아니요 오직 어떤 견고한 진도 무너뜨리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모든 이론을 무너뜨리며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다 무너뜨리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하게 하니”(고후10:4-5)
“우리는 수많은 사람들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하게 하지 아니하고 곧 순전함으로
하나님께 받은 것 같이 하나님 앞에서와 그리스도 안에서 말하노라”(고후2:17)
“누구든지이 교훈을 가지지 않고 너희에게 나아가거든 그를 집에 들이지도 말고 인사도
하지 말라 그에게 인사하는 자는 그 악한 일에 참여하는 자임이라”(요이10-11)
“그들은 세상에 속한 고로 세상에 속한 말을 하매 세상이 그들의 말을 듣느니라 우리는
하나님께 속하였으니 하나님을 아는 자는 우리의 말을 듣고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한 자는 우리의 말을 듣지 아니하나니 진리의 영과 미혹의 영을 이로써 아느니라 ”(요일4:5,6)
권현익, “16세기 종교개혁 이전 참 교회의 역사”(pp 556-571끝)
4. 점으로써 선이 되다
참 교회인 지역 교회들은 ‘카톨릭’이라는 우주적 교회를 이루는 끊어지지 않을 ‘선’으로 연결되어 있다. 그 ‘선’은 결국 각 시대에 ‘점’으로 부름 받은 수많은 택자들의 연결일 뿐이다. 점들이 모여 교회로 세워지고 세대와 세대를 연결하는 선으로 서 있다. 점들로 선 개혁자들이 선을 이루고, 이 선을 따라 선과 후, 또 기저와 토대를 이루며 입체적 역사의 교회가 서 가는 것이 계대이며 계승일 터이다. 이것이 우리를 교회로 부르신 하나님의 뜻이다.
이러한 점들이 하나의 선이 되어 거룩한 카톨릭 교회를 이루어 가며, 또 친히 이루어 놓으신 그 영광스러운 교회에 들어가 영원하신 하나님을 즐거워하게 되는 것이다. 교회는 이렇게 땅 끝에 이르고, 교회사는 이렇게 세상 끝날에 닿을 것이다. 주께서 항상 함께 하시리라는 말씀이 변함없이 그대로 서 있기 때문이다.
16세기의 종교개혁보다 휠씬 광범위한 영역에서 더 응집된 폭발력을 보여 주었던 13세기 종교개혁은 복음에서 완전히 떠난 로마 교회의 가르침에 항거하여 일어났고, 순교를 통하여 선조들이 계승하여 준 사도적 교회의 믿음과 삶을 자신들의 모본으로 삼았으며, 또한 자신들이 맡은 개혁의 본질로 삼았다. 복음의 생명력을 지속하기 위하여 아무것도 남기지 않고 전부를 걸었던 선조들의 자취는 신 사도행전 그 자체였다.
그 종교개혁 운동의 중심에 발도인들과 알비인들이 있었다. 그들의 시대에는 오늘날과 같은 교통, 통신을 통한 어떤 교류도 가능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상상하기 어려운 박해로 말미암아 그들을 상시적 지하 교회로 존립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들은 그들 사이의 작은 차이들을 넘어 커다란 하나의 교회로 연합하기 위하여 마음을 열고 서로에게 배우며 서로를 섬기고 도왔으며 꾸준히 성경적 관점을 구하며 일치를 이루어 나갔다. 13세기에 그들이 보여 준 강력한 복음 증거 자세와 능력은 적그리스도 세력들의 강력한 박멸 노력에도 불구하고 전혀 훼손 당하지 않았고, 이로써 그리스도의 참 교회는 음부의 권세를 이기고 든든히 서서 흔들리지 아니하고 다음 세대에 동일한 복음을 계승하여 전달하는 은사를 실증해 주었던 것이다.
1) 새로운 후예의 출현
교회는 복음으로 새 생명을 얻는 영적 산부인과와 같은 곳으로 거기에는 늘 다음 세대와의 연결이라는 현상이 상존한다. 건강한 교회는 당연히 동일한 신앙을 가진 영적 후예들을 출현케 하는 것이다.
13세기 종교개혁은 16세기 종교개혁의 기틀이 되고 바탕을 만들어 주었다, 13세기 종교개혁은 모판의 역할을 해서 유럽의 모든 사람들에게 이 복음의 싹을 틔울 수 있도록 만든 것이다.
알비인들의 활동 중심에 있었던 툴루즈는 잿더미 아래에서 새순이 피어나듯, 그 처절한 박멸 수준의 박해 아래에서 1562년, 약 2만명의 위그노들이 일어나는 광경을 역사 위에 이루어 냈다. 1532년 툴루즈 대학 법학 교수였던 장 카오르를 산 채로 화형시킨 사건은 도리어 이곳 알비인들의 영적 잠재력에 불꽃을 입혀준 계기가 되었다.
2) 13세기 종교개혁의 주요 의미인 교회 연합 운동
13세기 종교개혁이 유럽 전체에서 강력한 운동으로 발전할 수 있었던 중요한 이유는 동방 지역에서 박해를 당하면서도 살아남아 더 큰 공동체를 형성한 ‘바울인들의 생존 경험’이 서방 ‘발도인들의 연합 추구’라는 의도를 만났기 때문이다. 동서방을 대표하는 이들 두 교회 공동체는 콘스탄티노플과 보스니아 지역에서 이미 신앙의 동질성을 서로 확인한 바 있었고, 결과적으로 그곳에서는 하나의 교회를 형성하기에 이르렀다. 여기서 얻은 유대로 인하여 바울인들이 서유럽으로 이동하여 왔을 때는 순조롭고 편안하게 형제 교단을 이루어 온전한 한 교회를 세울 수 있었던 것이다.
이들 동서 교회의 연합은 교회사적으로 그 어떤 경우보다 바람직한 에큐메니컬 운동의 방향성을 보여 주는 좋은 예이다. 그들은 교세와 주도권의 확보, 또는 영향력의 확장을 위해 연합한 것이 아니다. 그들은 본질적으로 동일한 신앙 고백을 한다면 지엽적인 부분이나 각 교파의 독특성을 서로 인정하면서도 얼마든지 서로를 형제로 존중할 수 있으며, 불변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원칙 앞에서 언제든지 ‘하나(일치)’가 되어 서로가 더 ‘거룩한’ 교회로 세워지기 위해 돕고 격려하며 충고하는 것이 얼마든지 가능함을 웅변적으로 보여 주었다.
대적들은 그들을 바울인들, 발도인들, 알비인들, 카타르인들, 등으로 분리시켰고, 더 분열시키려 획책하였음에도 13세기 개혁 운동은 오히려 하나 됨, 거룩성의 추구와 보전, 보편적이며 사도적인 교회로 함께 서기 위해 서로 헌신하는 것이 얼마든지 가능함을 보여 주었던 것이다.
프린스턴 신학교의 교회사 교수인 사무엘 밀러(1769-1850)는 장폴 페랭의 「고대 그리스도인의 역사」 영어 번역본의 추천사에서 분명히 밝히고 있다. “바울인들과 발도인들은 공통의 기원과 동일한 신앙을 갖고 있었다.” 이들은 사도적 기원에서 비롯하는 동일한 신앙을 갖고 있었기에 진정한 의미의 에큐메니컬 운동의 모범인 교회 일치를 이루어 냈고, 이 일치는 강력한 복음 증거로써 유럽 전역을 복음으로 통일하는 역사를 일구었던 것이다.
동서방의 참 교회들이 지속적으로 개혁 운동을 이끌었던 진정한 동기는 다음과 같은 325년 ‘니케아 신조’의 고백을 지켜 내기 위함이었다. “우리는 하나(One)이고 거룩(Holy)하고, 보편적(catholic)이고, 사도적인 교회(Apostolic Church)를 믿는다.” 교회는 이 네 가지 속성을 간직해야 하며 하나라도 결핍된다면 참 교회가 될 수 없을 것이다.
선구 개혁자들이 순교의 피 흘림으로 이 영예스러운 ‘카톨릭(보편))’을 오늘날 우리에게 넘겨 주었음에도, 참 교회의 역사에 관한 인식 결여 때문에 ‘카톨릭’이란 이름으로 불리는 것을 어색하게 여기는 동안 로마 교회에 이를 넘겨준 꼴이 되고 말았다.
동서방의 대표적 참 교회였던 바울인들과 발도인들은 단 한 번도 그들의 교세를 확장하기 위하여 교단을 조직하거나 기존 교회에 침투하여 세력과 주도권을 획책하지 않았다. 바로 네 가지 속성을 유지하는 참 교회를 세우기 위함이었다. 동일한 신앙을 고백하는 참 신자라면 누구나 하나 됨 안에 한 교회의 지체로 존재함을 확신하였다. 유럽 곳곳에 발도인들을 통하여 교회가 세워지면 발도인들은 그 교회의 권위 아래로 들어가 순복하였다. 이는 에큐메니컬 운동의 진정한 모범이었다.
1) 하나의 교회(One Church)
사도들에 의해 시작된 신약 교회는 유대인의 우월감과 이방인을 향한 적대감을 무너뜨린 후에 하나의 교회로 세워졌다. 남자나 여자, 가난한 자나 부한 자의 차별을 타파하고, 동등함과 평균케 됨을 통하여 하나의 교회로 지어져 갔다.
2세기경 이레나이우스가 프랑스 리옹에 체류한 전후로 동방과 서방의 교회는 이 하나의 교회를 실제적으로 이루어 냈다. 해상로를 이용하여 지중해의 마르세유 항구에 도착한 동방의 복음 증인들은 동일한 배를 타고 곧바로 론강을 통하여 300km 떨어진 리옹으로 이동할 수 있었다. 해상로나 육로를 통하여 리옹과 밀라노에서 동서방 교회의 교류과 활발해졌을 때, 언어나 피부색은 하나의 교회를 형성하는 일에 더 이상 방해가 되지 않았다. 그리고 먼저 복음을 접한 동방의 교사들을 영적 지도자로 받아들여 여러 지역에서 교회 지도자로 활동하게 하였다. 이런 전통은 리옹과 피에몽 계곡만이 아닌 4세기경 네덜란드 지역에서도 열매를 맺었는데, 이들의 첫 주교는 아르메니아 사람 세르바티우스였다. 이 하나된 교회의 전통은 13세기 종교 개혁 운동에 강력한 동력을 부여하는 배경이 되었다.
이런 모습은 참 교회로서의 개혁 교회가 가진 아름다운 전통이 되었고, 이런 전통은 동일한 신앙 고백을 하는 그리스도인들이라면 아무런 조건 없이 하나의 교회를 이루는 원리가 되었다. 하나의 교회는 하나의 신앙과 교리를 형성하게 되었으므로, 무의미한 교리 논쟁이나 주도권을 쟁취하려는 싸움을 회피할 수 있게 만들었고, 하나가 되어 동일하게 부름받은 목표를 향하여 나아갈 수 있게 되었다.
교회는 머리이신 그리스도께서 그의 지체들로 부르신 신자들의 모임이다. 반석이신 그리스도만이 주춧돌이시며 교회의 머리가 되시므로 다른 누구도 교회를 좌지우지하는 머리가 될 수 없다. 성부와 성자가 하나이시듯, 유대인과 이방인, 남자와 여자의 벽을 허무시고 우리를 동등한 하나님의 자녀로 부르셨다는 이 확신이 하나의 교회를 형성할 주요 원리가 되었다.
발도인들 교회가 역사 속에서 보여 준 ‘한 교회’의 모습을 보면, 가르치는 자와 배우는 자라는 따위의 차별로 구분되지는 않았지만, 질서에 있어서는 아주 명확하였다. 평신도들이 복음을 전하고 설교할 수 있는 기회를 얻기는 했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교회가 없는 곳에서의 임시적 설교권을 의미할 뿐이며, 교회가 세워지게 되면 아무나 가르치는 위치에 설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리고 말씀을 가르치는 설교자를 ‘바르브’라고 불렀고 부모보다도 더 공경하기까지 했다. 발도인들이 사제의 권위를 부정한 것은 무자격자들이 비성경적인 가르침을 하였기 때문이지, 바르게 가르치며 설교하는 지도자들을 철저히 존경하고 순종하였음을 진지하게 확인할 수 있다.
2) 거룩한 교회(Holy Church)
교회의 머리 되신 그리스도께서 거룩하시며 십자가와 말씀으로 우리를 깨끗하게 하심으로써 우리도 그의 거룩한 백성이 되었기 때문에 교회 안에서 악을 제거하는 것은 참 교회를 지키기 위한 중요한 부분이었다. 교회와 성도의 삶에서 거룩함을 지켜 나가는 강력한 힘은 주님의 말씀을 바로 배우고 따르는 데서 나오는 것이므로 그들을 말씀의 원리가 교회를 지배하도록 노력하였다. 이런 이유 때문에 참되고 거룩한 교회와 거짓된 교회를 구분하는 기준은 하나님의 말씀이 바르게 선포되는지 그렇지 아니한지의 여부다.
3) 보편적 교회(Catholic Church)
그리스도교의 초기 신조인 사도신경을 통하여 우리는 “거룩한 공회를 믿습니다”라고 고백한다. 또 다른 많은 신앙고백서들이 동일하게 이를 고백하였다. 여기서 ‘거룩한 공회’란 ‘the holy catholic church’, 또는 ‘the holy universal church’를 말한다. 아담 이후로부터 주님의 재림 때까지 구원에 초대를 받는 모든 이들이 바로 거룩한 공회의 회원이며, 우주적 의미의 카톨릭 교회이다. 로마 교회가 이 단어를 먼저 우겨 썼지만 되찾아야만 한다.
카톨릭 교회는 구약의 광야 교회와 그리스도로 시작된 신약 교회가 전 세계로 퍼져 나가면서 하나의 교회를 이룬 우주적이며 보편적 교회이다. 이 우주적인 교회 안에는 인종도, 교파도, 큰 교회와 작은 교회도, 그리고 그 외에 다른 어떤 인위적 차별도 존재할 수 없다.
발도인들의 교회들은 성도들에게 이 영광스러운 교회에 소속되었다는 자부심을 가르쳤기 때문에 그들은 죽음의 위협 앞에서도 이 권리를 포기하지 않았다. 그리고 거짓 교회에 속한 영혼들이 이 카톨릭 교회로 돌아오도록 복음으로 설득하였고, 증언할 필요가 있는 곳이라면 그곳으로 나아가 생업을 포기하면서까지 그 일에 목숨을 걸고 충성하였다.
4) 사도적 교회(Apostolic Church)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엡2:20)는 말씀처럼 참 교회의 생명력은 사도들의 가르침에서 나온다. 어떤 교회도 사도적 교회의 가르침과 일치하기 위해 노력하지 않는다면 참 교회가 될 수는 없는 것이다.
13세기 개혁 교회는 로마 교회에 의해 만들어진 인위적 가르침과 사상, 세속적 가치의 최고봉을 자랑하는 화려한 건물을 가진 거짓 교회가 되기보다 가난하지만 영적으로 부요한 사도들의 적통을 잇기를 원했다.
13세기의 하나 된 교회 운동으로 이루어진 복음의 영역과 16세기 개혁 운동이 일어났던 지역들이 아주 정확하게 일치함을 볼 수 있다. 복음의 씨앗은 반드시 싹을 틔워 그 열매로 드러난다는 생명의 선순환을 보여 주는 것이다. 16세기 종교개혁은 결코 루터의 탁월함이나 인새술이라는 문명의 발전 따위가 내놓은 열매가 아니다. 루터 이전 이미 수 세기 동안 선구 개혁자들이 수고와 순교까지 각오한 헌신과 복음 증거가 있었기 때문에 루터 시대에 뚜렷한 열매가 드러난 것뿐이다.
13세기의 개혁 교회들은 동서에서 박해를 받아 계곡에 숨어 지내면서도 주님께서 세우신 참 교회인 “하늘에 기록된 장자들의 모임과 교회와 만민의 심판자이신 하나님과 및 온전하게 된 의인의 영들”(히12:23)에 속할 수 있게 된 영광스러움을 결코 포기할 수 없었다. 하나님께서 숨겨 두신 각 시대의 남은 자들이 세상 관점에서는 무가치하고 무기력해 보였겠지만, 그들은 겨자씨 한 알이 나무가 되듯 무성한 역사를 이루었다.
5. 개신 교회, 곧 저항하는 자들(Protestants)
개신교를 의미하는 ‘프로테스탄트’는 ‘protest’ 곧 거짓과 가짜에 ‘항거’하는 자들이다. 프랑스 교회사에는 순교하지 못한 순교자 마리 뒤랑(1711-1776)이 있다. 그녀는 부모님과 남편과 오빠 모두가 순교한 상황에서 에그모르트의 콩스탕스 감옥에 갇혔다. 그때 그녀의 나이 18세였다. 그녀는 믿음을 포기하지 않고 개종을 거부하였기 때문에 38년 동안 투옥되었다. 그러나 그녀는 30여 명의 여성 죄수 동료들에게 죄와 개종의 유혹들에 저항하여 견딜 것을 권면하면서 감옥의 한 돌 위에 이렇게 새겨 놓았다. ‘레지스테’(REGISTER)! 그녀가 거기 새겨 놓은 단 한 마디 “저항하십시오!”는 개신교회의 정신이 무엇이어야 하는지를 후손들이 우리들에게 지금 외치고 있다! 우리는 무엇에, 어떻게, 언제까지, 얼마만큼 저항할 것인가?
** 요약자의 추가 첨언
“하나님이 처음부터 너희를 택하사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과 진리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게 하심이니 이를 위하여 우리의 복음으로 너희를 부르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그러므로 형제들아 굳건하게 서서 말로나 우리의 편지로 가르침을 받은 전통을 지키라”(살후2:113-15)
“너희에 대하여는 우리가 명한 것을 너희가 행하고 또 행할 줄을 우리가 주 안에서 확신하노니 ---형제들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너희를 명하노니 게으르게 행하고
우리에게서 받은 전통대로 행하지 아니하는 모든 형제에게서 떠나라”(살후3:4,6)
과연, 16세기 종교개혁 이후 개신교, 개혁주의는 사도들에게서 받은 전통대로 행한 것인가?
루터와 칼빈은 그 전통을 찾지도 않았고 겨우 찾은 것이 4세기의 어거스틴이었다.
어거스틴은 로마교회 소속이요 초대교회의 전통과는 아무 상관이 없었다.
그들은 참 교회의 역사를 부인하고 로마교회 역사관을 따라 이단시 하였다.
오직 자기들의 초대교회 역사를 회복한 것처럼 미혹한 것 뿐이었다.
그 두꺼운 교리책들, 긴긴 신조들은 사람의 지혜와 세상의 초등학문의 산물이지
초대교회의 전통을 찾아 지킨 것이 아니었다.
그 많은 교리책들과 긴 신조들은 성경을 멀리하게 만들고, 사도들의 전통을 잊게 만들고
입으로만 하나님을 가까이 하고 입술로만 하나님을 공경하게 하고, 마음은 하나님에게서 멀게 만들어 왔다. 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판에 쓰는 전통으로 돌아가야 한다.
마음과 생각에 하나님의 말씀을 기록하여 행하는 새 언약으로 돌아가야 한다.
예수님이 자기 피로 세운 새 언약이다.
먹으로 돌판에 쓰는 서기관과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의 의와 누룩에서 벗어나야 한다.
복음의 순수성과 단순성으로 돌아가자.
가르쳐 지키게 하신 주님의 분부한 모든 것은 이해하기 어려워서는 행할 수 없다.
개혁주의 청교도주의 이론들은 회색 이론이지 푸르른 생명 나무가 아니다.
이 회색 이론들은 늪과 같아서 한 번 빠지면 헤어 나오기가 쉽지 않다.
지성은 절대 필요하지만, 필요 이상으로 나아가는 것은 지식 자랑의 위선이다.
지식의 높은 수준을 자랑하는 자들이 그것으로 자리를 차지하고서는
온갖 이익 위주의 삶을 살고 파당 행위로 세상을 어지럽히고 불공정과 불평등을 조장한다.
행함이 없고 머리만 채우는 지성들은 죄악의 주범들이다.
양심의 소리를 듣지 않는 지성은 독재와 폭군과 교만의 극치를 이룬다.
어린아이도, 못 배운 사람도 알 수 있는 원칙들을 그들은 헌신짝처럼 내버리고
자기식의 주의 주장을 펴며 자기 의를 하나님의 의로 둔갑시킨다.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에 복종하지 않다가 멸망을 당하였다.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 왕이 없으므로
각각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다가 그 땅을 암흑의 땅 암흑의 시대로 만들었다.
밟히는 길 가에서는, 습기가 없는 바위 위에서는, 가시가 기운을 막는 가시떨기 속에서는,
진리의 말씀은 자랄 수 없고 열매를 맺을 수 없다.
길가에서는, 마귀가 그 마음에서 진리를 빼앗아 가버리고,
바위 위에서는, 기쁨으로 말씀을 받았다가도 시련이 오면 배반하고,
가시떨기에서는, 말씀을 들었어도 이생의 염려와 재물과 향락에 기운이 막혀 결실치 못한다.
오직 좋은 땅에 있어야 착하고 좋은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 지키어 인내로 결실하는 법이다.
지식 수준만 높여 도둑질하는 무리들과 전통에서 벗어나자.
장사하는 집과 강도의 소굴이 되어버린 교회 아닌 교회에서 속히 나오라.
인사도 하지 말고 집에 들이지도 말라.
그에게 인사하는 자는 그 악한 일에 참여하는 자임이라.
높은 지식 수준만을 자랑하는 견고한 진을 하나님의 능력으로 무너뜨리고
인간의 모든 이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 예수께 복종하게 하자.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하나님을 헛되이 경배하는도다.
입술로는 하나님과 가까워도 마음은 하나님에게서 먼 자들에게서 벗어나라.
이 땅에 무섭고 놀라운 일이 있도다
선지자들은 거짓을 예언하고 제사장들은 자기 권력으로 다스리고
내 백성들은 그것을 좋게 여기니 너희가 마지막에는 어찌하려느냐
성경도 아카데미 독서목록(2023)
(2023-11-03)
새언약교회//afamily.ijesus.net
성경도아카데미//cafe.daum.net/psc-k
성경도의길//blog.tistory.com
저 자 | 책 명 | 저자 | 책 명 | ||
1 | 로이드 존스 | 청교도신앙그기원과계승자들 교리강좌1,2,3 로마서강해1~14권 에베소서강해1~8권 | 26 | 권현익 | 참 교회의 역사(종교개혁이전) 발도인, 피에몽 |
27 | 조지 레드 | 하나님 나라 | |||
2 | 존 라일 | 거룩 18세기영국의영적거성들 옛길,한길 | 28 | 라이트푸트 | 속사도 교부들 |
3 | 기욤 파렐 | P와종교개혁/권현익 P의생애/윌리엄블랙번 | 29 | 존 번연 | 천로역정 죄인괴수에게넘치는은혜 |
4 | 조나단에드워즈 | 신앙감정론/전집1 부흥론/7구속사/4 영적분별, 브레이너드 | 30 | 매튜 미드 | 유사 그리스도인 |
5 | 제임스 뷰캐넌 | 성령의사역회심과부흥 | 31 | 호라티우스 보나르 | 거룩한길로나아가라 고난을주시는하나님 영원한 의 |
6 | 프란시스 쉐퍼 | 이성에서의도피 기독교와현대사상 | 32 | 데이비드클락슨 | 구원얻는,살아역사하는 믿음 |
7 | 그레샴 메이첸 | 기독교와자유주의 M생애사상/스톤하우스 | 33 | 윌리엄 플리머 | 그리스도인 |
8 | 올리버크롬웰 | 영국혁명과올리버크롬웰 /주연종 | 34 | 엔드루 보나 | 로버트멕체인회고록 |
9 | 윌리암 틴달 | (전기) | 35 | 행크 헤네그라프 | 바벨탑에갇힌복음 빈야드와신사도의가짜부흥운동 |
10 | 윌리암 테넌트 | T의영적유산/존 한센 | 36 | 김응국 | 십자가/부활 |
11 | 워필드 | 워필드신학 /프레드제스펠 | 37 | 옥성호 | 심리학에물든부족한기독교 마켓팅에물든부족한기독교 엔터체인먼트에불든 |
12 | 윌리암 카닝함 | 역사신학1 | 38 | 매튜 풀 | 성경주석(1~6) |
13 | 마이클 호튼 | 세상의 포로된교회 그리스도 없는 기독교 미국제영성을경계하라 | 39 | 매튜 헨리 | 성경주석(1~21) |
14 | 존 오웬 | 내안의 죄죽이기 그리스도의 영광 영의생각,육신의생각 | 40 | 김승학 | 떨기나무1,2 |
15 | 존 플라벨 | 하나님의섭리 은혜의방식 | 41 | 방선기,신광은 | 미션디모데 |
16 | 윌리엄 퍼킨스 | 설교기술,목사의소명 | 42 | ||
17 | 윌리엄 에임스 | 신학의 정수 | 43 | ||
18 | 루이스 베일리 | 경건의 연습 | 44 | ||
19 | 존 낙스 | 생애와 사상/리이드 | 45 | ||
20 | 마르틴 부처 | 참된목회학 잊혀진개혁자부처/최윤배 | 46 | ||
21 | 존 폭스 | 기독교 순교사화 | 47 | ||
22 | 김영희 | 초대교회 순교록 | 48 | ||
23 | 스위니 (에드워즈핵심5) | 참된 기독교 좋은 삶 천국과 지옥 | 49 | ||
24 | 이안 머리 | 마틴로이드 존스 부흥관, 부흥주의 | 50 | ||
25 | 레이 윤겐 | 신비주의와손잡은기독교 | 5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