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내가 올해 어린이집을 졸업하고, 초등학교에 들어가는데
내일 어린이집에서 마지막 발표회를 한단다.
하얀 티를 입히고 보내라는데, 입을 만한 게 없어서
어제 오전에 춘천풍물장(5일장인데, 마침 어제는 장이 서는 날)에 나갔다.
취향이 까다롭지만 않으면, 여기서는 애들 옷을 정말 싸게 살 수가 있다.
그래서.. 내가 자주 가는 아동복 가게에 들어갔는데
안의 분위기가 오늘 따라 무지하게 살벌했다.
평소에는 조용하고 사근사근한 아저씨가
아줌마(부인)한테 마구 욕을 퍼붓고 있는 중이었다.
"이런 썩을년.. 도대체 나를 어떻게 보고 이러는 거야~!"
잔뜩 화가 난 아저씨는, 그래도 손님인 나한테는
"어서오세요" 라고 한 마디 해주고.. 그리고 하던 욕을 계속 한다.
이 아저씨가 무엇 때문에 이렇게 흥분했는지, 나도 궁금하긴 했는데..
남의 부부싸움에 끼어들 수도 없으니.. 몸은 옷을 고른 척을 하면서
온 몸의 신경은 귀에 집중하고.. 아니, 몸체가 하나의 커다랑 귀로 변했다고나 할까..
몸뚱이는 이쪽에 있으면서도 그 보이지 않는 귀는 아저씨의 바로 발밑까지 기어가서
그 이야기를 엿들었다.
그 내용인 즉..
아침 일찍부터 나와서 가게 준비를 하는 아저씨한테
아줌마가 "밥 먹어~" 하고 가져온 것이
밥 한 공기에다가 달랑 김치 하나였다는 것이다.
"김치 하나만 갖고 어떻게 밥을 먹어~!"
"노숙자도 이렇게는 안 먹어~~!!"
"대한민국 남자 중에 달랑 김치 하나로 밥 먹는 사람이 있으면 나와보라 그래~~~ !!"
윽..
나도 여기서 갑자기 가슴이 찔렸다..
울 신랑도.. 밤에 일을 하고 낮에는 집에서 자는 관계로..
엉뚱한 시간에 배가 고프다고.. 일어나서 밥을 찾을 때가 많다.
먹성 좋은 아기돼지들 땜에 우리 집에서는 왠만한 밑반찬은 3일도 안 가고 없어져버리는데..
반찬이 없을 때는 우리 집에서도..
밥 한 공기에 달랑 김치만 내줄 때가 있는디...
"남자를 뭘로 보고 이러는 거야~~~!!!"
(음.. 남자는 김치만 갖고 밥 먹으면 안 되나..?? 진짜 안 되는 거였어..?? )
"남자한테 달랑 김치 하나 갖고 밥 먹으라는 여자가 어디 있어~~!!"
(아.. 여기에도 있는디..ㅡㅡ;;;)
"내가 이 나이 되도록(50대 중반쯤..?) 매일 힘들게 일만 해왔잖아..
이 나이가 되면 이제 먹는 낙밖에 없는데.."
"밥을 먹게끔.. 장조림도 하고, 찌게도 끓여놓고, 밥을 먹으라고 해야 할 것 아냐~~ "
그 동안, 아줌마는 찔리는 구석이 있는지, 아니면 아저씨를 완전히 무시하는지..
한 마디도 말을 안하고 그저 묵묵히 옷 정리만 하고 있다.
아줌마가 말을 안해서 더욱더 화가 났는지, 아저씨 입에서는
"이.. 개년... 썩을년... 망할 년...."
에고.. 별 년들이 다 나온다... ㅡㅡ;;
근데.. 그 아저씨 말도 일이가 있는 것 같았다.
매일 매일 쉴 틈 없이 열심히 일(특히 육체적인 노동을)하는 사람들에게
낙이랑.. 그렇게 많지 않을 거다..
그저 세 끼 밥을 맛있게 먹을 수 있어도, 그것 또한 작은 행복이 아닐까 싶더라.
난.. 그 가게를 나온 다음에.. 나도 모르게 반찬거리를 많이 사게 됐다.
어제 오랜만에.. 우리 집 저녁 밥상은 반찬 가지 수가 많았다오..
아기돼지들은 신이 났지.
방학이 된 다음부터는.. 하루 세 끼 먹이는데 지친 엄마가 별로 맛나는 것을 안해줬으니까..
닭갈비(닭고기를 내가 양념을 하고, 전기오븐으로 구웠다), 뱀어포, 파래무침..
새로 한 반찬들이 순시간에 사라진다.
하나 남은 고기를 향해 날아오는 젖가락들..
우리 집 밥상은 거의 야생의 왕국이다. 하이에나의 무리가 따로 없다.
마지막 하나를 집어든 큰 애가 나한테 예의상 묻는다
"엄마 드실래요..?? "
에궁.. 누구들이 보는 앞에서 어찌 그 고기가 목구멍에 넘어가겠냐..??
"너 먹어라~ 그래.. 먹고 죽은 귀신은 때깔도 좋다니까 니가 많이 먹어라~ "
고기를 입에 넣고 활짝 웃는 큰 애가 하는 말..
"응.. 내가 죽으면 아마도 오색 빛깔이 찬란한 귀신이 될 거야~~ "
고기를 빼앗긴 둘째도 한 마디..
"그래~ 오빠가 나타나면 다른 귀신들은 눈이 부셔서..
아마 눈 뜨고 다닐 수도 없을 거야~~ "
에고야..
먹성 좋은 아기돼지들 땜에.. 우리 집의 대한민국 남자..
오늘부터 또 김치 하나만 놓고 밥 먹게 생겼네..ㅜㅜ
자랄때 생각이 납니다. 오남매포함 일곱식구가 둘러앉은 밥상이 지난후, 양념조차 남아있지 않았던 빈 그릇들..하루세끼..그렇게 먹어대었으니 엄마가 얼마나 등이 휘셨을까...암것도 모르고 그저 좋아라 들뛰기만 했던 그 시절들이 너무 그립습니다.^*^ 재밌는 글 잘 읽었습니다.
조디님 글 보니.. 옛날에 엄마가 부엌에서 일하시던 모습이 생각나요.. 뭔가 만들어놓으면.. 나랑 오빠랑 아버지가(!!) 밤 사이에 부엌을 들락날락.. 맛있는 재료만 쏙쏙 집어서 먹어버려서.. 아침에 보니깐.. 알맹이가 빠진 묘~한 반찬이 되어 있던 것.. 그래도 늘 엄마는 웃고 계셨는데.. 나는 애들이 부엌에 와서 "엄마~ 하나만~" 해도 "안 돼~~ !!" 하고 매정하게 쫓아내니.. ㅡㅡ;;;
첫댓글 차화로는 해 주길 바라지 않고 직접 요리해서 상을 차려 노을님과 같이 듭니다. 그리고 화는 낼 수록 눈덩이 처럼 커지게 마련이니 성나는 마음을 내려놓고'화'를 觀하면 그 '화'도 소멸합니다. 부처님 가운데 토막 이냐구요? 희노애락으로 일희일비 하는 衆生이랍니다.
가끔 자신이 개구맨, 아님 코미디언..이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죠.. 무대 위에 선 사람이 곤궁에 빠지고 힘들어 할 수록.. 관객들은 웃어주니까요.. 내 안에도.. 무대 위에서 힘들어 하는 나와.. 그것을 보고 배꼽 작고 웃는 내가.. 동시에 있는 것 같습니다.. ^^
자랄때 생각이 납니다. 오남매포함 일곱식구가 둘러앉은 밥상이 지난후, 양념조차 남아있지 않았던 빈 그릇들..하루세끼..그렇게 먹어대었으니 엄마가 얼마나 등이 휘셨을까...암것도 모르고 그저 좋아라 들뛰기만 했던 그 시절들이 너무 그립습니다.^*^ 재밌는 글 잘 읽었습니다.
조디님 글 보니.. 옛날에 엄마가 부엌에서 일하시던 모습이 생각나요.. 뭔가 만들어놓으면.. 나랑 오빠랑 아버지가(!!) 밤 사이에 부엌을 들락날락.. 맛있는 재료만 쏙쏙 집어서 먹어버려서.. 아침에 보니깐.. 알맹이가 빠진 묘~한 반찬이 되어 있던 것.. 그래도 늘 엄마는 웃고 계셨는데.. 나는 애들이 부엌에 와서 "엄마~ 하나만~" 해도 "안 돼~~ !!" 하고 매정하게 쫓아내니.. ㅡㅡ;;;
그래도 아기들 밥 잘먹는 것 보면 이쁘죠. 안 먹는 아이보면 마음이 편치 않고요.
우리 아기들.. 비망아입니다.. 그래서 마구 먹는 모습이 보기 안 좋아요~~ 맨날 "먹지 마~~" "그만 먹어~~" 하는 부모의 맴도 편하지는 않습네다.. ㅠㅠ
아이들이 드세요 하면 얼른 받아 먹어야지 맘 변하면 나만 손해 입니다. 맘 변하기 전에 얼른 받아 먹읍시다....ㅎㅎ
말로만 드실래요? 하고... 맴으로는 지가 먹을 생각만 하고 있는 게.. 내 관심법에 선명하게 보이는데.. 우찌 먹을 수가 있겠습니까.. 먹었다가는 원망의 눈빛들 땜에 체할 것 같아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