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사히(?) 다녀 왔습니다

[라호리]

월요일 아침 사무실에 출근하여 정상근무를 한 후 집에 와서 이 글을 쓰고 있습니다. 정말이지 대단히 피곤합니다. 2박3일동안 눈 한번 제대로 붙이지 못했습니다. 낮에는 뒷바라지로 바빴고 밤에는 겁에 질려 잠을 못 잤기 때문입니다. 그 이유는 조금 있다 말씀드릴께요.

현장상황이 어땠냐구요? 설명으로는 전달이 잘 안 될 것 같습니다. 현장에서 찍은 video를 CD로 만들어 서울 본사의 박중환부장 (2222-4160 또는 011-795-4381)에게 보냈으니 19일 아침에 연락하시면 copy 1부를 받으실 수 있으실겁니다. 얘기를 해 놓았으니까 그리 어렵진 않을 거예요. 카페주인 jays에게 부탁드릴까요? 약 75분 분량입니다.

갔던 일은 잘 처리됐냐구요? 나름대론 구석구석 최선을 다 했다 생각합니다. 부족한 게 왜 없었겠습니까만은 제가 떠날 때 그 분들이 진정으로 고마움을 느꼈다는 것을 그 분들의 눈에서 읽을 수 있었으니까요. 숙소(저희 아보타바드터미널의 직원숙소를 사용. 우리 나라 여관정도 수준은 됩니다. 직원들은 텐트에 수용), 일상의 교통편 (Jeep및 van 준비), 통신 (현지용 핸드폰과 국제용 핸드폰 제공), 식사 (라호르 한국인직원 식당을 폐쇄하고 그 곳에서 근무하던 쿡과 쌀, 부식등을 이곳으로 이전), 경비 (경찰보호외에도 회사의 경비직원 4명을 고정배치), 현지조달의료품의 전달 (수액, 식염수등 한국에서부터의 공수가 불가능한 품목들 – 왜 공수가 안 되는지는 저도 잘 모릅니다), 일반용품 지원 (생수, 휴지, 약품보관용 얼음등), 기타 돌발사태에 대비한 조치 (버스 1대 고정대기조치) 등등

장소결정은 잘 됐냐구요? 말씀을 드렸었던가요? 실제 현장에서 근무하고 있는 저희 회사 현장직원들의 보고로는 피해가 가장 심한 무자파라바드엔 의사는 많이 나가 있어도 기존 의료시설이 완전 붕괴돼 일차진료에 그치는 형편이며 대부분 이슬라마바드나 아보타바드등 인근 대도시로 후송시킨답니다. 또 기온도 떨어지고 먹을 것이 부족해지자 구호품수송차량들을 중간에 약탈하고 점차 폭도화해가는 움직임이 있답니다. 이보다 피해가 심한 카시미르지방은 우선 도로가 끊겨 접근자체가 어렵고 워낙이 소규모로 산재해 있어 효과적인 의료활동이 어렵고 더우기 신변안전은 전혀 엄두도 안 난다는 것이었습니다. 반면 아보타바드는 지진 피해는 적었어도 피해집중지역과 30분 내지 한 시간의 거리에 있고 또 대형병원이 있어 전문의들을 가장 필요로 하는 지역이라는 보고였습니다. 실제 직원들이 병원(Ayub Medical College Complex)측을 접촉해 본 결과 그렇게도 간곡히 한국의사들을 원하더랍니다. 대사관 사람들도 대체로 찬동을 해 주었구요. 물론 결정은 의사님들 몫이죠.

의사님들을 만나 거간의 사정을 설명하고 또 이들이 Ayub측 의사들과 직접 만나 상의를 하더니 이곳이야말로 자기들이 있어야 할 곳이라고 결정을 하더군요. 소문은 빠르더군요. 삼미-의사협회팀이 제일 잘 organize되어 있다 소문이 나자 인근에 산재해 있던 한국의사들이 삼삼 오오 이곳으로 오겠다는거예요. 2-3일후 도착예정이라는 연세대의료팀도 이들과 국제전화로 상의를 하더니 이 곳으로 온다는 거예요. 잘 된 것 같아요.

직접 간 것이 도움이 됐냐구요? 그런 것 같아요. 예를 들면 숙소만 하더라도 이 난리통에 여유가 있을리 없죠. 텐트밖에 안 된다는 겁니다. 출발전 아보타바드 소장을 전화로 불렀습니다. “숙소잡기가 어렵다며?” “예” “어쩔 수 없지. 텐트라도 칠 수 밖에. 그런데 이번에 나도 같이 아보타바드로 간다네” “아니, 직접 오십니까?” “그럼” “----“
조금 있다 전화가 왔습니다. “직원숙소를 전부 비워 놓았습니다” 그 숙소는 저도 아는데 그래도 우리 나라 여관정도 수준은 됩니다. 방도 다섯개에 거실, 주방까지 다 갖춰져 있습니다. 방 하나에 댓명은 그럭저럭 묵을 수가 있습니다.
“아니, 니들은 어떡하고?” 짐짓 능청을 떨었습니다. “최대한 알아 보고 정 안 되면 저희들이 텐트에 들어가겠습니다. 그분들이야말로 우리나라 사람들을 도우러 오시는데 우리가 그 정도도 감수못하겠습니까?” “고맙네” 여우(소장)와 너구리(저)는 함께 속으로 배시시 웃었습니다. 나중 직원들을 따로 불러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적절한 정도의 금일봉을 주었습니다. “당연한 일을 했을 뿐인데요, 뭘” 더 이상의 불만은 없을 것 같습니다.

왜 잠을 못 잤냐구요? 의료진들이 토요일 새벽 4시에 이슬라마바드로 도착할 예정이었기 때문에 금요일 늦게 라호르를 떠났는데 상황도 그렇고 해서 허름한 호텔을 잡으라고 했습니다. 11시쯤 도착해서 기자들이다 뭐다 사람들에게 시달리다 12시쯤 자리에 들었는데 정확히
12시 45분. 우르릉, 우르릉. 자다 말고 정말 가는 줄 알았습니다. 여길 내가 왜 왔나? 허옇게 후회가 되더군요. 라호르에서 일주일전 처음 겪을 때는 뭐가 뭔지도 모르고 넘어 갔는데 두번째가 되니까 정말 겁나더군요. 5.7도 짜리 여진이랍니다. 7초라던가 계속된 진동은 차라리 낫습니다. 바지만 웅켜 잡은 채 구르다시피 아래층 로비로 내려 왔는데 도저히 다시 방으로 돌아 갈 엄두가 안 나는 거예요. 정말 공포는 지진 직후 이 난리가 어떻게 진행될지 전혀 알 수가 없다는데 있더군요. 운전수놈이 오더니 바로 지척에 이번 지진의 가장 상징적인 장면으로 많이 쓰였던 마르갈라 타워가 있다더군요. 10층 짜리 아파트로 순식간에 시루떡처럼 납작해진 바로 그 건물말입니다. 날 샜죠. 의료진이 4시에 오는게 오히려 다행이더군요.

다음날 아보타바드로 가는 길엔 버스속에서 또 비슷한 규모의 지진을 만났습니다. 버스 속이고 또 도로상이기 때문에 그 순간은 어느 정도 안심이 되었지만 가면 갈수록 언제 또 어느 규모의 지진이 올지 몰라 불안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아보타바드에서의 밤. 밤기온은 차고, 비까지 오는데 정전까지 되더군요. 직원들이 기쓰고 구해준 여관이기도 하고 다른 사람들 눈도 있어 방에 들어가긴 했지만 문 앞 가까이에 의자를 갖다 놓고 줄창 담배만 피워댔습니다. 문이란 문은 다 열어 놓고 (혹시 지진이 나 문이 안 열리면 큰일이다싶어) 유리창 옆에는 여차하면 쓰려고 나무의자를 갖다 놨습니다. 옷이야 입은 채로죠. 새벽이 그렇게 반갑더군요. 양추질만 하고 면도는 생략했습니다. 도대체가 한 시라도 건물안에 있는게 싫더라구요. 보내 드리는 CD를 보시면 조금은 이해가 가실 겁니다.

무리한 요구는 없었냐구요? 있었죠. 출발전에 평소 몇 번 뵌 적이 있는 이 나라의 전 수상이자 집권여당의 현 총재인 쵸드리씨 (한국 명예영사시기도 합니다)에게 전화를 해 의료진들의 출발전 격려라도 한 번 해주십사고 부탁을 했더니 흔쾌히 들어주시더군요. 30여명 전부를 아침 9시에 자기 집에 불러 다과도 대접하고 배석한 연방 보건장관등 3명의 각료들에게도 도울 것이 있다면 최대한 도와 주라는 따뜻한 말씀이 계셨습니다. 하더니 느닷없이 의료행위를 좀 다른 곳에서 하면 안 되겠냐는거예요. 누구도 안 가는 카시미르인 것이 너무나 뻔한 얘기죠. ‘이크!’싶어 이미 Ayub대학과 선약이 되어 있고 이분들은 specialist들이기 때문에 (사실이 그렇습니다. 대부분 정형외과의 중심입니다) 큰 규모의 병원에서 일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고 말씀을 드렸지만 갑자기 막무가내로 고집을 피우기 시작하더라구요. 진땀이 다 납디다. 의사들도 분위기를 알아내곤 아연 긴장하기 시작하고. 총재가 지진구난본부장 (현역 3성장군)을 전화로 찾더니 당장 오라는 거예요. 간곡히 다시 말씀드렸습니다. 선약도 됐으니 일단 아보타바드로 갔다가 2~3일 후에라도 다시 협의를 하면 되지 않겠습니까? 아보타바드 의사들이 절실히 이들을 필요로 한답니다. 소용이 없어요. 하다 못해 의사들이 새벽 4시에 도착해 빨리 버스로 돌아 가 눈이라도 좀 붙여야 한다고 했더니 자기 집에서 그냥 자라는 겁니다. 천만다행히도 구난본부장의 도착이 늦어져 분위기가 어색해 지기 시작하자 눈치 빠른 보건장관이 총재에게 Mr. Lee말마따나 일단 아보타바드에 base camp를 설치한 후 추후로 협의를 하자고 건의하자 그제서야 마지못한 듯 승락을 하더군요. 정말 진땀 뺐습니다. 이왕 간 김에 어려운 지역일수록 더 보람있지 않겠냐구요? 이 분들은 구조대가 아녜요. 수술실에서 집도하는 것이 전문인 정형외과중심의 의료단입니다. 또 외딴 곳으로 자리잡을 때 이들의 안전은 누가 보장해주죠? 총재가요? 천만의 말씀입니다.

꼴불견도 있던가요? 왜 없어요? 아보타바드에 도착하자 요란한 구조복을 입고 거리를 누비는 일단의 한국인들이 있었습니다. 모 관변단체 사람들인데 우리가 어느 회사에서 나온 것을 알고는 뭔가 태도들이 변하는 것 같더라구요. 저희 계열사에 꽤 많은 발주를 주고 있는 기관이거든요. 의사는 물론 아니죠. 관리직들이더라구요. 아. 이 사람들, 어느 순간인가 아무도 모르게 의료진 대표와 총무를 어디론가 데려 갔는데 남아 있던 사람들은 이들을 잃어버린 줄 알고 근 30분이나 이리 뛰고 저리 뛰고 난리가 났었습니다. 나중에 들으니 자기들이 이곳 높은 사람들에게 인사도 시키고 했다나요. 어처구니가 없더라구요. 갔다 온 대표와 총무도 불쾌해 하는 표정들이 역력하더라구요. 이때 까지는 허허 웃었죠, 생색이 그렇게 중요한 사람들한테 거 뭐 어떻게 하겠어요? 그러고 나서 서로들 한참 바삐 돌아가는데 느닷없이 저녁때쯤 전화를 하더니 불문곡직하고 방을 얻어 내라는 거예요. 그때 까지만 해도 저도 텐트에서 자기로 돼 있었기 때문에 사정을 얘기했더니 “당신회사 회장에게 전화를 하면 되겠어요?” 그러더라구요. 저도 욱하면 가잖아요? 그래도 참아 집디다. 그놈의 비지네슨가 뭔가 때문에. 10분도 안 돼 건설사 사장이 전화를 걸어 와 통사정을 하더군요. 직원들이 동네 방네 뛰어 운좋게(?) 방 몇개를 잡아 왔습니다. 신기하게도 아주 깨끗한 장급여관 수준이었어요. 예약을 마친후 key까지 공손히 전해 드린 후 돌아 서면서 실실 웃었어요. 요놈들, 너희들 이제 밥은 다 먹었다. 그 곳에서는 취사도 엄금이고 부엌도 없답니다. 자체취사가 안 되면 라마단 기간인데 저희들이 어딜 가서 밥을 해 먹어요? 또 저희에게 오겠죠? 그리고 뭐라고 말할까요? “밥 좀 주세요. 네!” 히히.

난처한 일은 없었나요? 오늘(월요일) 일찍 사무실에 정상 출근해 “구호품의 무료운송은 계속하되 회사의 구호품전달업무는 가급적 빨리 끝내라. 또한 주말의 사흘로 우리의 의료단지원활동은 사실상 끝났다. 전원 업무에만 전념해라. 우리가 결연한 의료팀에 관한 것은 돌발상황이 아닌 한 현지 터미널 소장만이 처리해라” 일응 그럴듯 했습니다. 30분도 안 돼서 한국직원 하나가 오더니 서울 연세대에서 연락이 왔는데 버스하고 트럭만이라도 꼭 지원해 달라는 겁니다. 우리 직원은 안 붙이는 조건으로 (한번 붙으면 끝까지 책임을 져야지 어쩔 수 없잖아요?) 버스 1대와 트럭을 지원하고 앞으로도 유사한 부탁이 있으면 동일한 기준으로 처리하라고 지시했습니다. 그정도 여유는 있거던요.
10분도 안 돼서 서울 모처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귀사의 활동은 익히 알고 있다. 이번 주말 국회의원 세 분과 의료협회 회장, 부회장이 방문하실 예정이니 직접 영접도 좀 하고, 지원도 하고 또 꼭 초드리총재와의 면담도 주선해 달라는 부탁이었습니다. 정중히 대답했습니다. 다른 일은 다 하겠으나 총재면담주선은 좀 곤란합니다. 그런 일은 체면상 대사께서 하실 일입니다.------- 큰 일 났습니다. Brake가 갑자기 고장났나 봅니다. 폼 잡고 직원들한테 ‘본연의 임무로 복귀’하라고 엄숙히 말한지 불과 한 시간도 채 안 됐는데. 어떻하죠?

[jays]

무슨 어디 연인인가 하는 드라마 보다 훨씬 재밌다. CD는 물론 얻어다가 여기 올려 소개를 해야지. 라호리가 명실공히 우리 범속한 인간들보다 계단 열개쯤 높은데 있는 것 같다.

[jslee]

애 많이 썼구나. 시사회를 한번 해야지. 주연 남우상, 감독상, 작품상 모두 라호리 단독 후보일세.

[verdad]

정말 생생한 현지 활동 상황을 알게 해 주어 고맙네. 몸 조심 잘 하게.

[amadeus]

좋았어! 역시 호박이야. 야! 근데 갑자기 제병이 친구라는 사실이 그렇게 으쓱해 지는 기분이냐? 계속 건투 바라며,몸 조심 잘 하고...

[normun]

공포를 극복하고 진정한 용기를 발휘하여 인류애를 몸소 실천하는 이제병군을 2006년도 노벨평화상후보로 추천합니다.(뭬야?! 몇년전에 모한국인에게 사취당한 적이 있다고 오슬로애들이 화가 나있는 상태라고? 애이 x1*#) 상은 비록 물건너 가도 積善之家에 必有餘慶이라하니 기대하게나(나도 덕 좀 보자)

[amadeus]

그런 진부한 변색 된 賞보다,정치색이 완전히 배제된 순수한 행동하는 지성賞, 행동하는 양심賞이 어떨까 생각하는디요.

[BKC47]

라호리 仁兄! 수고 많이 하셨고, Mission 마치고 무사히 회사에 복귀하였다니 천만 다행이오. 어딜가나 그놈의 높으신 나리들, 어려울 때 도와 주지는 못할 망정 민간인들 괴롭히는 건 공통적이구먼.

[jays]

구케으원 그눔들 참 구더기같은 넘들 오거덩 여진이 좀 심한 곳에 가도록 해 주면 고맙겠는데. 물론 라호리는 "行動하는 知性과 良心賞" 受賞 관계로 동행은 못한다고 해두고 하는 말이지만도..

[자유인]

라호리의 중개보도(?) 흥미율율하다. 다음 보도가 기다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