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순절의 영
성경 말씀: 요엘 2:28-32; 사도행전 2:36-42
요약
성령님은 오순절 날 세상에 오신 하나님의 영이십니다. 그러므로 세상의 영과 구별된 거룩한 영입니다. 사람은 세상의 영에 의해 영적으로 체험됩니다. 그러나 그는 세상에 오신 하나님의 영에 의해 인도됩니다. 그는 하나님과 함께로 인도됩니다. 따라서 성령님으로 영성은 세상에서 체험되지 않고 하나님과 함께로 인도됩니다. 성령님의 인도하심으로 예수님은 그리스도로 고백됩니다.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고백은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따르도록 인도되고, 따라서 하나님과 함께하게 인도됩니다.
오신 성령님
성령님의 강림을 다루는 의미는 성령님이 하나님으로부터 오신 영임을 보이는 것입니다. 세상에 만연한 영 가운데 한 분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세상의 영은 체험적으로 말해질 수 있지만, 성령님은 그분의 세상에 오심이 증거 됩니다.
성경에 성령님은 오순절 날 세상에 임하여 공중에게 목격되었습니다. 성령님은 하나님에 의해 세상에 보내질 것이 약속되어 온 하나님의 영이십니다. 성령님이 임하심으로,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을 주와 그리스도로 고백하게 되었고, 교회가 그들로 이루어졌습니다. 이것들은 사도행전 2장에 보입니다.
사람들이 세상에서 일반적으로 말하는 영은 성령님과 다릅니다. 그들은 육신의 부분과 다른 개인의 정신을 부분을 혼과 영으로 말합니다. 개인의 정신성은 혼과 영의 혼합으로 여겨집니다. 즉 개인은 육신의 몸에 혼과 영의 정신성을 지닙니다.
물론 보통 사람들은 영이 육신에 의해 갇혔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육신은 공간에 위치하지만, 영은 공간에 만연하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영적 체험의 개인 이야기가 자주 떠돕니다. 귀신의 만남은 일종의 영적 체험입니다.
이렇게 보통 사람들은 영을 그들이 정신성으로 지닌 것이나 혹은 그들에 의해 체험되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어떻든 영은, 구체적으로 언급되지 않더라도, 정신 영역에서 다루어집니다. 달리 말하면, 개인의 정신 영역은 영적인 것이 그 안에 내포되면 전적으로 다루어질 수 있습니다.
사람의 육신을 다루는 의학이 향상됨으로, 사람의 정신성은 육신의 근거에서 알게 됩니다. 심리학은 그런 진전의 결과입니다. 사람의 정신성은 그의 육체성이 연구되는 가설과 다른 가설로부터 연구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사람의 정신 영역은 육체성에 근거한 심리학에 의해 정리됩니다.
심리학적 전개의 한계성 때문에, 사람들은 종교적 명상에 몰입됩니다. 종교적 명상은 어떻든 영성으로 길입니다. 종교적 영성은 심리적 얽힘으로부터 자유입니다. 심리학은 어떻든 세상에서 개인의 정신적 얽힘의 설명이기 때문입니다.
개인의 육체성이 조건적으로 반영됨으로, 그의 정신성 또한 조건적으로 반영된다는 것이 기본 가설입니다. 즉 개인의 정신성이 조건적으로 설명되는 한, 그것의 조건적 설정은 피해질 수 없습니다. 이 점에서 종교적 명상은 개인들을 조건적 설정으로부터 자유롭게 합니다.
육체성과 정신성은 구별되게 여겨집니다. 심리학이 육체성으로부터 전개되더라도, 정신 영역을 전적으로 담당할 수 없습니다. 사람은 단지 조건적으로 산다고 말해질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극복의 내용은 심리학적으로 설명될 수 없습니다.
종교성은 어떻든 지성이나 도덕성으로부터 다르게 의식됩니다. 개인들은 지성과 도덕성을 더불어 종교성을 지닙니다. 따라서 개인은 자신의 종교성을 계발합니다. 영성 훈련은 종교성을 향상하기 위함입니다. 종교적 명상이나 수련은 종교성을 향상하기 위함입니다.
따라서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말하는 영성은 종교성을 뜻합니다. 영성이 개인으로 누린다고 여겨지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개인은 육체성, 지성, 도덕성, 그리고 종교성 혹은 영성으로 완전히 다루어진다고 여겨집니다. 세상에서 육체성, 지성, 도덕성, 혹은 종교성이나 영성이 두드러진 개인이 보입니다. 이것은 각 개인이 그런 속성을 지닌다는 것을 뜻합니다. 특정한 개인에게 특정한 속성이 단지 두드러지게 보입니다.
구별된 성령님
그렇지만 성경에서 다루어지는 영은 성령님이십니다. 그분은 세상에서 다루어지는 영으로부터 구별되는 점에서 성령님이십니다. 따라서 그분은 일반적 영의 통념으로부터 이해되게 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개인은 그분에게 접근하려고 시도할 수 없습니다.
성령님은 구별된 거룩한 영이시니, 세상으로부터 접근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세상에 속한 개인들은 그분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분의 구별됨은 세상에 어떤 범주도 그분에게 적용될 수 없다는 것을 뜻합니다. 범주가 그분에게 적용되게 되지 못하니, 그분은 이해될 수 없습니다. 따라서 성령님으로 영성은 한 종류의 종교적 영성으로 여겨질 수 없습니다.
성령님은 하나님께서 보내신 하나님의 영이십니다. 예수님이 하나님께서 보내신 하나님의 아들로 구별되듯, 성령님 또한 하나님께서 보내신 하나님의 영으로 구별됩니다. 예수님이 세상으로부터 따라지게 되지 않듯, 성령님 또한 세상으로부터 접근되게 되지 않습니다.
성령님이 하나님이 영이심으로, 개인의 영성으로 다루어질 수 없습니다. 그분은 개인의 계발이나 체험으로 말해질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영은 그분의 세상에 임하셔서 역사하심으로 서사됩니다. 세상에 오신 예수님의 역사 같이 성령님의 역사는 바라보아져야 합니다. 사도행전은 성령님의 역사를 서사합니다.
물론 사도행전은 사도들의 활동을 명시적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사도행전은 사도들의 활동을 그들 개인적 영적 체험이나 은사로 서사하지 않습니다. 즉 사도행전에 담아진 것은 그들 개인의 영적 활동이 아닙니다. 그보다 성령님의 인도하심으로 그들의 활동입니다.
사도들의 활동이 성령님에 의해 인도됨으로, 사도행전에 서사된 내용은 총체적으로 성령님의 역사입니다. 이 점에서 사도행전은 사도들의 개인 활동의 모음이 아닙니다. 복음서가 예수님의 사역이듯, 사도행전은 성령님의 사역입니다.
예수님이 세상 사람들과 구별되게 보이듯, 성령님 또한 세상의 영과 구별되게 보입니다. 그러면 그분의 내용은 하나님으로부터 오신 영으로 말해지게 됩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내용이 말해짐으로, 성령님의 인도하심이 서사됩니다.
예수님을 믿는 믿음은 예수님을 세상에 보내신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것입니다. 그와 같이 성령님에 의해 인도되는 것은 하나님의 약속을 따라 이루어지는 삶을 사는 것을 뜻합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어떻든 하나님과 함께하는 언약으로 이루어집니다.
하나님은 하나님께서 그분 영을 세상에 보내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영의 임함은 언약의 설정에서 서사됩니다. 하나님의 영의 역사는 세상에서 구별되지만, 언약의 이루어짐입니다. 즉 구별됨의 이루어짐은 언약으로 서사됩니다.
따라서 성령님은 세상에서 다루어질 수 없지만, 언약에서 다루어집니다. 성령님의 역사는 언약의 삶의 이루어짐으로 서사됩니다. 사도들의 사역으로 교회의 이루어짐은 언약의 삶의 이루어짐입니다. 즉 교회는 구별된 삶으로 드러납니다.
영적 고백
세상에 임하신 하나님의 영은 예수님을 주와 그리스도라는 고백으로 인도하십니다. 그 고백에 인도된 이들은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그 고백에 인도된 하나님의 자녀로 교회가 이루어집니다. 이 경우 하나님의 자녀는 하나님의 백성이고, 교회는 언약의 삶입니다.
예수님을 주와 그리스도로 고백하는 것은 예수님을 따르는 것을 뜻합니다. 따라서 예수님을 따름은 성령님에 의해 인도됩니다. 그것은 세상 기준으로 명시될 수 없습니다. 세상 기준은 육적지만, 예수님은 육적으로 따라질 수 없습니다.
성령님에 의해 인도된 예수님을 따름은 하나님에 의해 약속된 것의 이루어짐입니다. 하나님은 메시아를 보내실 것을 약속하셨고, 또 하나님의 영을 보내실 것 또한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주와 그리스도로 고백하며 예수님을 영적으로 따르는 이들로 이루어진 교회는 하나님의 약속의 이루어짐입니다.
이렇게 언약의 예수님과 언약의 성령님으로 언약의 자녀로 이루어지는 언약의 교회가 세상에 드러납니다. 예수님과 성령님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은 옛 언약에서 나옵니다. 하나님의 약속이 옛 언약의 삶 가운데 주신 새로운 약속이라는 점에서, 그 이루어짐은 새 언약입니다.
구약은 율법에 의한 육신의 언약입니다. 그러나 신약은 예수님과 성령님으로 영적 언약입니다. 구약의 육신의 삶은 하나님과 함께하는 한계를 보입니다. 달리 말하면 육신을 지닌 이는 영이신 하나님과 온전히 함께할 수 없습니다.
옛 언약은 분명히 아브라함의 후손의 육신으로 맺어졌습니다. 그것이 하나님과 육신의 아브라함의 후손 사이의 언약이라는 점에서, 제한적이고 제외적입니다. 그러나 언약의 하나님은 제한적이거나 제외적일 수 없습니다. 언약 자체가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려는 것입니다.
영이신 하나님의 함께는 사람의 육신에 의해 제한되거나 제외적일 수 없습니다. 영이신 하나님의 택하심은 육신의 조건에 의해 가두어질 수 없습니다. 육신의 사람들은 자신들 육신의 시각에서 하나님의 함께를 제한하려 합니다. 하나님보다 자신들을 먼저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영이신 하나님의 백성은 육적이지 않고 영적입니다. 여기 구약의 문제점이 있습니다. 아브라함의 후손으로 육적 정체성을 주장하는 이스라엘 백성은 영이신 하나님과 온전히 함께할 수 없습니다. 육적 정체성은 함께에 반합니다. 그것은 제외적인 독자성을 보이기 때문입니다.
영적으로 인도됨이 없이 육적 제한성은 해소될 수 없습니다. 즉 성령님의 인도하심이 없이 개인이나 종족의 육체성 제한은 해소될 수 없습니다. 육신의 제한성은 원천적으로 하나님의 언약에 반합니다. 언약의 하나님은 종족의 수호신이 되게 되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성령님에 의해 인도됨이 없이, 예수님을 주와 그리스도로 고백하는 하나님의 자녀로 살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영적으로 인도됨으로, 육신의 제한성에서 나오게 됩니다. 여기 예수님을 주와 그리스도로 고백하며 예수님을 따르는 의미가 있습니다. 그들은 더 이상 그들의 육신에 고착되지 않고 영적으로 인도됩니다.
하나님 아버지,
세상에 오신 아버지의 영에 의해
세상에 오신 아버지의 독생자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따르게 하옵소서.
세상에 갇힌 저희 속성으로 세상에 안주하지 말게 하옵소서.
세상에 오신 아버지의 영으로 저희가 인도되길 기도하게 하옵소서.
세상에 오신 아버지의 영이 우선 저희 기도를 인도하옵소서.
그렇게 저희 의식이 아버지의 영에 의해 인도되게 하옵소서.
그렇게 아버지의 영이 저희 의식에 임하옵소서.
저희 의식이 아버지와 함께하는 의식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하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