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 나에게 씨름을 걸어오실 때 창32:24-30
"야곱은 홀로 남았더니 어떤 사람이 날이 새도록 야곱과 씨름하다가" 창32:24
야곱 그는 형 에서의 장자권을 붉은 팥죽 한 그릇으로 사고,
형에게 돌아갈 축복마저 어머니 리브가와 함께 아버지 이삭을 속여 가로챈 인물이다.
형 에서의 살해 위협을 피해 외삼촌 라반의 집이 있는 하란으로 도망가 거기서 20년간 죽을 고생을 했다.
4명의 아내에게 12남 1녀의 자녀를 둔 것과 많은 재산을 얻은 것은 그나마 다행이었다.
하란에서 돌아오는 길에 형 에서를 만나 그동안 얻은 재산의 대부분을 선물로 주었고, 이제 형 에서와 대면 할 시간 입니다.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가는 여정은 공포와 두려움으로 가득했습니다
에서가 4백인을 거닐고 온다고 하자 야곱의 공포는 극에 달합니다
오죽했으면 에서에게 가축의 떼를 선물로 먼저 보내고 .그것도 모자라서 자식들과 부인들을 앞세웠겠습니까 그러고도 야곱은 강을 건너지 못하고 .밤을 새워 고민을 했습니다.
13 . ∼ 절을 보십시오
야곱이 눈을 들어 보니 에서가 사백 인을 거느리고 오는지라 그 자식들을 나누어 레아와 라헬과 두 여종에게 맡기고 여종과 그 자식들은 앞에 두고 레아와 그 자식들은 다음에 두고라헬과 요셉은 뒤에 두고 자기는 그들 앞에서 나아가되 몸을 일곱 번 땅에 굽히며 그 형 에서에게 가까이 하니 이제는 더이상 피할 수 없는 결전의 시간이 다가왔습니다 야곱은 인생의 기로에 서있었습니다
하나님은 그에게 씨름을 걸어 오십니다. 어떻게 할래....
얍복강 씨름 사건은, 야곱의 전 생애에서 하나의 전환점입니다.
야곱이 정말로 하나님의 사람이 된 것은 바로 이 시점입니다.
그 이전까지 야곱은 종교를 이용하는 사람에 불과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믿었고 곤란에 빠지거나 어려움이 생길 때면
항상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이 시점까지 그는 단지 종교를 가지고 놀았을 뿐입니다.
그에게 있어서 종교는 외적인 것으로
자기에게 편리할 때나 이용하는, 꽤 괜찮은 그런 것이었습니다.
여러분, 그가 맨 처음 자기 집을 떠날 때 하나님과 흥정했던 사실,
"당신이 저를 축복하시면 제가 이것 저것을 하겠습니다" 라는 말을 기억하고 계십니까?
▲그러나 이 얍복강 씨름 시점부터는 모든 것이 달라집니다.
이 사건이 야곱의 파란망장한 인생사에서, 아주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이 시점부터 그는 신앙을 참으로 믿게 되었고, 하나님의 사람이 되는데요..
이 이야기가, 기독교와 하나님을 진정으로 체험하는 것,
즉 “회심”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그 본질을 완전히 나타내 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이야기가 우리에게 보여 주고 있는 대로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이 진짜 체험, 이 중요한 체험을 했느냐 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지금 이 시간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우리도 야곱처럼 이런 중요한 체험을 했습니까?
이 같은 결정적인 중대한 변화에 대해 알고 있습니까?
즉 하나님을 만난 이후로, 사람이 완전히 달라진 그런 변화를 체험한 적이, 나는 확실히 있습니까?
대답이 우물쭈물하고, 그 체험이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없는 것 같기도 하다는 사람은.. 아직 없는 것입니다.
이야기 속에 깔려 있는 가장 핵심적인 질문은 바로 이것입니다.
나는 야곱이 얍복강에서 경험한 변화의 체험,
이 지극히 중요한 체험의 <특징>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1. 첫 번째로, 회심은 항상 강렬한 개인적, 인격적 체험이라는 것입니다.
"야곱은 홀로 남았더니.."
이 체험에 관한 첫 번째 사항은 그것이 항상 우리를 격리시킨다는 사실입니다.
"야곱은 홀로 남았더니."
*누가 가르쳐줘서 되는 것도 아닙니다.
가르침도 필요하지만, 결국은 자기가 직접 터득해야 하는 것입니다.
야곱은, 하나님과 단둘이 남게 되었고, 하나님과 씨름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씨름을 위해서, 먼저 하나님은 그를 격리시키셔야만 했습니다.
종종 사람들은, 자기 자신도 잃어버릴 정도로,
자기가 빠져 있는 모든 세상 것들로부터
단절된 가운데서, 즉 고독한 가운데서, 하나님을 독대하게 됩니다.
그들은 그렇게 격리된 후에야 비로소
자신은 개인이라는 것,
자기 혼자서,
하나님을 독대하고,
직면해야 한다는 것, 이런 사실들을 깨닫게 됩니다.
만약 그런 시간이 찾아온다면.. 자신이 <회심>하는 시간인줄 아시면 됩니다. *마음을 돌이켜 먹음. 바르고 착한 길로 들어서는 마음
그래서 회심은 항상 우리를 하나님과 <인격적인 관계>를 맺도록 인도해 주는 체험입니다.
이 지극히 중요한 체험의 본질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그것은 한 개인이 하나님과 인격적으로 만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 전에는, 하나님을, 평소에 늘 잊어버리고 살다가
자기가 필요한 순간에만, 하나님께 구조를 요청하며,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그러나 회심이 체험을 한 이후로는, 하나님과 상시적인(늘) 인격적 관계,
다시 말하면 친밀한 관계 속에서 신앙생활 하게 되는 것입니다.
기독교는 - 한 인간이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인격이시오, 하나님은 참이시며,
하나님은 우리가 매일 말하고 들을 수 있는 분이요,
우리가 매순간 관계해야 할 분입니다.
하나님과 우리는 서로 대화를 나눌 수 가 있습니다.
브니엘 체험을 하기 전에 야곱은,저 멀리 떨어져 있는 비인격적인 하나님을 믿었습니다.그러나 브니엘에서 그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났습니다.
회심이 축복인 것은,그 후로 하나님과 인격적인 관계가 맺어진다는 것입니다.
그 친밀한 만남이 맺어지면, 그것은 평생 헤어지지 않습니다.
약간 관계가 멀어질 때도 있지만, 곧 돌이켜지고, 회복되어 집니다.
▲2. 회심 체험의 두 번째 특징은 이 체험을 한 사람은, 항상 그것을 <자기 인생전체에서 가장 중요한 것>으로 인식합니다.
장차 무슨 일이 닥칠지 궁금해 하며,
에서에 대해 그리고 자기 소유물에 닥칠 위험을 생각하며 불길한 예감에 가득 차서, 걱정 근심에 싸여 왔다 갔다 하고 있는 야곱이 그러나 이 체험을 하기 시작하고, 그 체험을 한 후에,
야곱은 에서에 대해 새까맣게 잊어버립니다.
자신의 가축들,
소떼와 양떼들,
그 많은 재산,
심지어 처자식들에 대해서도 다 잊어버립니다.
옛날처럼 그게 그렇게 중요하지 않게 되어버린 것입니다.
그래서 그 체험을 한 결과, 회심한 성도는, 성령의 역사를 통해
우리에게 우리의 진짜 문제점이 무엇인지, 계시를 통해 깨닫습니다.
인간의 진짜 문제는, 그 사람이 하나님과 어떤 관계에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복음은 인간에게 찾아와 이렇게 묻습니다.
"네가 지금 살고 있는 그 인생이 하나님이 본래 의도하셨던 네 모습에 합당한 삶이냐?"
회심한 사람이 깨닫게 되는 것은
‘내 인생의 진짜 위험이 무엇이냐?’ 하는 것입니다. (영생입니다)
우리가 문제로 삼고 있는 것은 에서가 문제가 아니라
실은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입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을 것입니다.
"야곱아 너는 너의 가장 큰 위험이 무엇인지 깨닫지 못하고 있다.
너의 가장 큰 위험은 네 영혼을 잃어버릴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네가 지금 걱정하고 있는 것들은 조만간에 모두 다 잃어버릴 수밖에 없는 것들이다.
네가 죽는 날에는 그 가축들을 다 두고 죽어야 한다.
그대는 처자식이고 재산이고 모두 두고 죽어야 한다.
죽음을 기다리며 침상에 누워 있게 될 날이 올 거다.
그때 너는 그것들 중 하나도 가져 갈 수 없을 거다.
그렇지만 그 순간에도 네 영혼만은 여전히 갖고 있을 것이다.
그 영혼을 가지고 네가 무엇을 했는지 나한테 결산 보고를 해야 한다.
야곱아, 그 영혼은 내가 네게 준 것이다.
이 순간 너의 가장 큰 위험이 무엇인지 아느냐?
바로 그 영혼을 잃어버리는 것이다.”
▲3. 회심의 세 번째 특징은 <씨름>입니다.
영어로는 레슬링입니다. 결코 쉽지 않은 체험입니다.
땀이 비 오듯 흐르고, 뒹굴어야 하고, 아주 고통스런 시간을 지나야 합니다.
한 가지 다행스런 일은, 우리는 그런 일을 다 회피하지만,
주님이 찾아오셔서, 씨름을 걸어오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씨름을 하게 되지만,
결국은 그게 내게 유익한 일이지요.
이 씨름은, 야곱이 하나님께 회개하는 시간입니다.
이 씨름은, 야곱이 자기 자아가 부서지는 시간입니다.
그리고 자기가 흙이요, 티끌이며, 죄인 중의 괴수 임을 고백하는 시간입니다.
이 씨름은, 하나님이 은혜로 찾아와 주시고, 허락해 주시는 시간입니다.
유대인들에게는 일종의 피해의식이 있습니다.
그 피해의식은 모든 민족들이 자신들을 미워한다는 것입니다.
랍비 아론 패리(R' Aaron Parry)는,
그때 그는 이스라엘은 숙명적으로 시기질투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습니다.
출애굽 이후에 이스라엘이 하나님으로부터 시내산에서 토라를 받았는데,
그 산의 이름인 시내(Sinai)의 본래 뜻 속에 시기질투라는 뜻이 포함돼 있다고 합니다.
창세기 미드라시에 따르면,
하나님이 토라를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고 싶은데, 어느 산에서 줄까?라고 고민할 때 수많은 산들이 그에게 나아왔다고 합니다.
크고 웅장한 산, 아름다운 산 등등.
그러나 하나님은 최종 시내산을 선택하셨는데,
그 이유는 시내산이 가장 볼품 없고 초라했으나 겸손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이는 고린도전서의 말씀과 일치합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고전 1:27).
하나님이 은혜로, 나에게 씨름을 걸어오실 때가 있습니다.
회개를 요청하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이때 우리는 도망가면 안 됩니다.
하나님 앞에서 철저히 자신을 회개해야 합니다.
자신의 죄악됨을 고백하고,
자신의 무능함을 고백하고,
사람에게 해악을 끼치기 이전에,
하나님과 그 나라에 해악을 끼친 점을 토설해야 합니다.
다만 한 가지, 야곱이 잘한 점을 굳이 찾으라면,
그는 하나님 앞에서 씨름하는 시간에,
도망가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자기 환도뼈가 부러지기까지, 간절히 하나님을 붙잡았다는 점입니다.
그렇게 씨름하다 보면.. 이건 씨름에 시간이 걸린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성령의 감화 감동 으로, 자기 마음에, 사죄의 확신이 신비하게 찾아옵니다.
그때 에서가 무섭지 않은 것입니다.
자기를 에워싼 문제가 전혀 두렵지 않은 것입니다.
그는 그 회심의 은총으로
남은 인생을, 정말 하나님 나라로, 천국으로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