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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그늘 아래
이 혜 경
막 파인더* 안으로 들어온 얼굴을 끌어당기느라 서연이 줌 레버를 당겼을 때, 스르르 미끄러져 나오던 렌즈가 탁, 소리를 내며 걸렸다. 고장이었다. 포대경*처럼 내밀어진 렌즈도 셔터도 움쩍 하지 않았다. 서연이 카메라의 저항에 당황하는 새, 곱술머리가 이맛전*에 고술고술한 여인은 파인더를 벗어났다. 여인은 안마당 한가운데 놓인, 담배며 꽃, 향 따위가 쌓여 있는 상 위에 기다란 향을 얹고 등을 보이며 사라졌다.
누구더라……
서연은 기억을 막연히 어루더듬었다.* 동그스름한 얼굴에 광택 나는 가무스름한 피부, 침착하다 못해 단단해 보이는 표정, 푸르스름한 입술에 베어 문 미소. 살 빛깔이 조금 밝을 뿐 그 여인을 닮은 누군가와 인연 닿은 한 시절이 분명히 있었다. 까닭 모를 초조감으로 겨드랑이에 배어난 땀 한 오라기가 선뜩했다.
착란과 같은 기시감*은 자카르타에 도착하면서부터 시작되었다. 바다에 잇단 시가지의, 숙은 볕 아래 초록빛 속에 박힌 빨간 지붕들을 보며 착륙했는데, 좀 오래 걸린다 싶은 통관수속을 마치고 달곰쌉쌀한 공기가 느껴지는 공항 밖으로 나오니 그새 어둠이 밀려와 있었다. 마중 나온 기섭의 차를 타고 시내로 들어가면서, 서연은 밤은 원래 캄캄한 것이었구나, 새삼스럽게 깨달았다. 밀도 높은 어둠 속에 한결 짙은 먹빛으로 분별되는 나무들. 시내가 가까워지는지 점점 빈발하는 불빛에 어둠이 밀려나던 즈음, 서연의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허공에 뜬 커다란 두 눈이 서연을 응시하고 있었다. 기름한 눈초리며 선연한* 눈동자가 영락없는 사람의 눈이었다.
“저게 뭐지요?”
채 가누지 못한 긴장이 돌출해, 자신이 듣기에도 부자연스러운 목소리였다. 앞자리에 앉아 있던 기섭이 돌아보며 뭔데요? 물었다.
“저기 떠 있는 불빛요. 무슨 눈 같은데…….”
“아, 그거요? 아파트예요. 여긴 아파트를 대개 두 동, 많아야 세 동 정도씩 짓거든요. 모양새도 다 다르구요. 저건 아파트 맨 위의 장식 조명일 겁니다. 언젠가 티베트를 거쳐 온 친구 말로는 티베트 불상의 눈매와 닮았다더군요. 아마 설계한 사람이 그쪽에 관심이 있었던가 보지요?”
그 크고 환한 눈 아래, 다른 빛깔의 블록을 넣은 양초처럼 점점이 박힌 여린 불빛들이 그제야 눈에 들어왔다. 그게 시초였다.
자카르타에서 이틀 묵고 족자카르타를 거쳐 발리로 오는 여정에서, 서연은 문득문득 한국에서 알고 지낸 사람들을 연상하게 하는 얼굴들과 마주쳤다. 공항에서, 유적지에서, 호텔에서. 처음엔 착각이었지 싶었는데 그런 일이 거듭되자 서연 자신도 자신을 믿을 수 없는 기분이 피었다. 묵은 빚장부 챙기듯 의욕 없이 가방을 꾸리는 서연에게, 그래도 명색이 해외여행인데 사진은 찍어 와야 할 거 아냐, 하며 동생이 챙겨준 카메라를 꺼낼 마음을 낸 건, 식당 입구에 서서 손님을 맞는 여자를 졸업하고 한 번도 못 만난 고등학교 후배로 착각하고 얼결에 웃어 보인 오늘 아침이었다.
고장 난 카메라를 쥔 채 서연은 문득 열린 문밖, 한길을 내다보았다. 가이드가 나누어준 사릉*을 반바지 위에 두른 관광객의 카메라와 비디오카메라는 볕 때문에 바스라질 것 같은 풍경을 찍느라 분주하게 작동 중이었다. 서연은 그만, 나도 별수 없었네, 하면서 혼자 무안을 탔다. 보이지 않는 세계를 보이는 세계만큼이나 중히 여기는 사람들의 땅에 와 있었다.
“그래도 수도니까 자카르타에서 이틀, 족자카르타에서 이틀, 발리에서 이틀, 그리고 자카르타로 돌아와 비행기를 갈아타고 한국으로…… 이게 여행사의 일반적인 코스라서 저도 이대로 잡아보았습니다. 족자카르타에선 제 후배인 강윤지가 안내해드릴 겁니다. 대학원 진학 준비하느라고 그쪽 대학에서 어학 코스를 밟고 있거든요. 마음 편히 가지셔도 돼요. 저희 마인어과가 조직 같은 분위기라는 건 들으셨죠? 운동하는 학과도 아닌데 줄빠따 맞고 대학 다녔다니까요. 저희 땐 그 정도는 아니었지만요. 서연 씨 후배라고 생각하세요. 발리는 여행사에서 알아서 해드릴 거구요.”
호텔로 가겠다는 서연을, 첫날만큼은 자기 집에서 묵어야 한다며 이끌고 간 기섭은 지도를 펼쳐놓고 가이드처럼 말했다. 서연의 기억과 공교롭게 겹치는 지명들이었다. 기섭은 그 지명의 또 다른 의미에 대해서는 짐짓 묵살하면서, 족자카르타에는 유적지인 힌두사원과 불교사원이 유명하고 발리에 가면 집집마다 집안 형편에 맞춰 사당을 만들어놓았고…… 가이드 식의 설명을 덧붙였다.
“발리는 주술이 성한 곳이에요. 인류학을 공부하는 선배, 들으셨는지 모르겠네요, 지금은 말레이시아의 대학에 가 있는 주철영 교수라고, 그 선배가 여기 있을 땐데 발리에서 주술행사를 구경한 적이 있어요. 외부인에게는 공개하지 않는 건데, 그 선매와 절친한 발리 사람 덕분에 볼 수 있었대요. 워낙 드문 기회라서 필름을 스무 롤이나 준비하고. 그날 열다섯 롤인가 찍고 현상을 맡겼는데 나중에 찾으러 가니 달랑 두 장뿐이더래요. 그나마 그 두 장도 뭐가 뭔지 알아볼 수 없이 형체만 흐릿하고. 그제야, 주술사가 나중에 잘 나오면 한 장 달라며 묘하게 웃던 게 생각나더래요. 그렇다고 그 선배가 사진을 못 찍는 사람이냐 하면 그것도 아니었거든요.”
“아이고, 또 시작이다. 두 번만 더 들으면 백 번째네요, 그 얘기. 이이는 한국에서 손님 만 오시면 꼭 이래요.”
성게와 멍게를 합친 것처럼, 불긋한 빛깔의 털 같은 돌기로 뒤덮인 과일을 쟁반에 내오던 기섭의 아내가 타박했다.
“이 사람은 예수귀신밖에 모르는 사람이라서 무속 같은 건 미신으로 치부해요. 혹시…… 서연 씨도 기독교인이신가요?”
“아니에요.”
“다행입니다. 전 제가 실수한 거 아닌가 하고…….”
“귀신 씻나락 까먹는 얘긴* 그만 들으시고 이거나 좀 드셔보세요. 람부딴이라는 과일이에요. 껍질은 이렇게 손톱으로 벗기는 거예요. 한국 사람 입에 잘 맞아요. 영모 씨도…….”
그녀는 흘러나오던 말을 얼른 입 안으로 말아 넣었다. 당황한 손끝에서 껍질이 벗겨지며 우윳빛 알갱이가 나왔다. 기섭 이 무심한 듯 그녀의 무안을 가려주었다.
“참, 영모가 이 과일을 좋아했어요. 한국 사람뿐 아니라 개미들도 좋아하지요. 잘 보시고 드세요. 개미까지 같이 드시는 건 책임 못 집니다.”
“개미는 염려 안 하셔도 돼요. 물로 씻었거든요. 근데 주 교수님이 필름을 그렇게 쓰고도 사진을 두 장밖에 못 건진 건 이상하긴 해요. 그분 사진 솜씨는 거의 프로급이거든요. 저 사진만 해도 그분 작품인데……”
그녀가 가리킨 건 장식장 위에 놓인 아이 사진이었다. 유원지에라도 나갔는가, 한 손에 조그만 플라스틱 물바가지를 든 아이가 입 안에 머금은 물을 뱉어내고 있었다. 까르르, 양미간으로 모여드는 장난기와 신명이, 아이의 부푼 볼에서 뻗쳐 나오는 물줄기의 생생함만큼이나 한눈에 드러나는 사진이었다. 그런데 열다섯 롤에서 두 장이라구?
막 잠으로 미끄러져들던 서연은 전화벨 소리에 깨어났다. 잠들기 전까지 통화를 시도했지만 연결되지 않았던 영모에게서 온 것이라고 짐작하면서도 잠결에 놀란 심장은 떨어져 나갈 것처럼 벌렁거렸다. 서연은 손으로 가슴을 누르며 수화기를 들었다.
“아는 한국 사람네 집이야. 오늘 집들이에 왔다가 지신밟기 하느라고 전화 걸 겨를이 없었어. 실내에선 핸드폰이 안 터져서 마당으로 나와서 거는 거야. 귀신이 붙긴 붙은 집인가 봐.”
영모의 목소리엔 전에 없이 생기가 돋았다. 지신밟기? 귀신? 서연은 아예 몸을 일으켰다. 커튼을 치지 않은 창문 너머로 점점이 떠 있는 빨간 십자가가 도드라졌다.
“귀신? 웬 귀신?”
“여긴 귀신이 많대. 숲이 많고 습기가 많아서 귀신이 살기에 좋은 땅이래나 봐. 전쟁이다 뭐다 해서 억울하게 죽은 사람들도 많고. 이사한 뒤로 그렇게 몸이 안 좋더래. 밤에도 잘 못 자겠고. 그런데 뒤뜰에 안 쓰는 우물이 하나 있는데 그게 영 마음에 걸리더래. 깊기도 엄청 깊고 이끼 낀 게 내가 봐도 음산하긴 했어. 그래서 우리가 작정하고 그놈의 귀신들 작신작신 밟아줬지.”
“어떻게?”
“양기 센 남자들이 떼거리로 몰려와서 우물 옆에서 온갖 소란을 다 피웠지, 불을 환히 켜놓고 고성방가에 우물에 술까지 퍼부었지, 마지막이 하이라이트였어. 다 같이 우물을 빙 둘러싸고 그 우물에 오줌을 눴거든. 아마 귀신도 지금쯤 앗 뜨거라, 도망쳤을 거야. 어차피 자동폄프를 쓰니까 메울 우물이었거든.”
술기운인지 귀신을 축출한 신명 인지가 여울지는* 목소리로 잘 자, 내 꿈 꿔, 평소엔 안 하던 낯간지러운 말까지 남기고 영모는 수화기 너머로 사라져버렸다. 서연은 한동안 수화기에 송송송 뚫린 구멍을 맹하니 들여다보았다. 참내, 귀신이라니. 서연이야말로 잠결에 홀린 듯했다. 영모가 그런 이야기에 쏠린다는 게 뜻밖이었다. 영모는 그 흔한 사주 한 번 보지 않는 성품이었다. 귀신보다는 귀신 이야기를 하는 영모의 몰두 때문에, 서연은 막연한 불안을 느끼며 잠을 설쳤다. 그게 시작이었다.
“2차대전 땐데, 이 도시를 공습한다는 정보가 왕궁으로 들어왔대. 그러자 도시 안의 한다하는 주술사들이 왕궁으로 모여들었대. 그 사람들이 왕궁 마당에 동그랗게 둘러앉아서, 다 같이 하늘에 주술을 걸었대.”
“그랬대? 그래서?”
“어떻게 되었을 것 같아?”
“공습하러 온 비행기가 줄줄이 추락?”
“아니, 그 비행기들은 여기 상공을 빙빙 돌았는데, 바로 위에 있으면서도 공습 목표인 이 도시를 찾아내지 못했다는 거야. 그래서 결국 돌아가고, 오래된 유적들은 안전하게 보존되었대. 여긴 인도네시아의 경주 같은 곳이거든.”
“근데 자긴 그 이야길 믿는 거야?”
“좀 터무니없다는 거 아는데, 믿게 되네. 이리 오게 되면 너도 믿게 될걸?”
앙금이 든 그릇을 흔든 것처럼 미미하게 일어나는 불안을 서연은 가벼운 비아냥으로 털었다. 목이며 혀끝이 꺼끌거렸다.
“사람 망가지는 거 잠깐이다. 그렇게 더워, 거기가? 잘하면 한국인 주술사 한 명 나오겠다. 내 앞날이 어찌 되려는지 좀 물어봐 줄래?”
한밤중에 듣는 주술 이야기는 마음속에 뉘엿뉘엇 그늘을 드리웠다. 영모가 귀신 이야기를 믿다니. 영모와 같이 있었어야 하는 건 아닌가, 하는 불안이 펄럭 스치기도 했다.
족자카루타에서 가죽제품 공장을 하던 선배가 병을 얻자 대신 관리해줄 겸 떠났던 영모는 거기에 눌러앉겠다는 결정을 내리면서 결혼을 서둘렀다. 서연은 미루적거렸다. 그때 나 만날 때, 한국을 뜨겠다고 누구보다도 열심히 회화 공부하던 여자가 누구였더라? 일하는 사람이 있어서 더운데 밥 짓지 않아도 된다, 열대과일이 얼마나 많은데 등등을 내세우며 꼬드기던 영모는 나중엔 그들이 만나던 때를 환기시키며 가볍게 비아냥거렸다. 서연은 직장에서 몸을 빼기가 쉽지 않다는 등의 이유를 들어가며 예정대로 1년 뒤를 고집했다. 날마다 주고받는 메일, 늦은 밤의 긴 통화. 연인에게 1년은, 떨어져 있다는 것 때문에 사랑이 미적지근해지기에도 반대로 더 애틋해지기에도 충분한 시간이었다.
여자가 말야, 바람이 살랑살랑 불면 잔물결도 치고, 누가 물수제비 뜨느라 짱돌 던지면 물두 튀기고 그래야지, 그렇게 쇳덩이마냥 단단해서야 어디 남자들이 무서워서 접근을 하겠냐?
어느 선배의 말이 아니더라도, 대학 시절 내내, 서연은 지나치게 이성적이라는 말을 들으며 지냈다. 연애 말고도 할 일이 많았던 그때,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서연은 다짐했었다. 나중에 난 아주 열정적인 사랑을 할 거야, 라고. 졸업하자마자 서연은 연애에 돌입했다. 이미 서연 쪽에서 사랑할 만반의 준비가 되어 있었으므로, 상대방이 어떤 사람인가는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았다. 대학 시절 내내 속에서 가꾸고 키워온 사랑을 퍼붓기만 하면 되었으니까. 쇳덩이를 밝고 발갛게 달구던 열정. 그 열기가 식으며 검푸른 쇳덩이로 되돌아가는 데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발갛게 달궈져 불꽃 튀던 기억을 잊을 수 없던 서연은 또 다른 꽃불에 몸을 던졌다. 이 사람이 처음이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싶은 아쉬움에 서연은 사랑하는 일에 전력을 다했다. 마라톤 코스를 단거리경주의 속도로 치달은 사랑은 쉬 종말을 맞곤 했다. 맨 나중에 만난 남자는 최악이었다. 처음 본 사람들과도 쉽게 어울리는 서연의 기질에 대해 그 남자는 말했다. 사람들이 네가 좋아서 그러는 줄 알아? 워낙 네가 속없이 구니까 그냥 봐주는 거지. 반듯한 쇄골뼈가 훤히 드러나는 블라우스를 입은 서연을 보면, 그건 가슴이 받쳐주는 룸쌀롱 아가씨들이나 그렇게 입지. 광대뼈가 도드라지고 윤곽이 짙어서 자칫 억세 보이는 인상을 가진 서연에게, 저 여자 좀 봐. 얼마나 오목조목 정감 있는 얼굴이냐. 얼굴이 안 되면 화장이라도 좀 여자답게 해야지…… 그렇게 비참하게 만드는 그 남자 곁을 서연은 떠나지 못했다. 지나치게 이성적 이라는 말을 듣던 서연이, 대학을 졸업한 지 6년쯤 지난 그때, 그러고 있었다. 푸른 옷을 좋아하는 서연은 그 남자가 좋아하는 분홍 계통의 옷을 참으며 입어냈고, 개성 있는 광대뼈를 죽이는 화장법을 익혔고, 사람들과 만날 때면 적당히 막을 쳤다. 그리하여 서연이 애써 노력하지 않아도 그 남자가 바라던 여자와 비슷해졌다고 생각할 즈음 그 남자는 결별을 선언했다. 넌 변했어. 이젠 그전만큼 매력이 없어.
자기를 꺾고 비틀어 그의 눈에 맞추려 애쓴 여자에게 그 남자가 마지막 남긴 말은 공황을 일으켰다. 기름때 묻은 헌 티셔츠처럼 버려진 여자. 그때 나타난 게 영모였다. 기억으로부터 자유로워지겠다고, 이 나라를 뜨겠다고 퇴근 후에 영어회화를 배우러 다니던 학원에서, 영모가 처음부터 눈에 띈 건 아니었다. 영모는 오히려 가장 눈에 안 띄는 사람이었다. 어느 날 보니까 영모가, 자기 자신조차 사랑할 수 없는 불모(不毛)의 날들을 살아내는 서연 곁에 와 있었다. 두 손 모두고* 선 성당의 복사*처럼 그렇게 조용히 서연을 지켜보면서. 영모는 딱딱하게 굳어버린 땅을 파헤쳐 공기가 통하게 하고, 무성하게 벋어서 볕을 가리는 넝쿨들을 걷어내고, 그리고 조심조심 씨앗을 심고 흙을 북돋웠다. 서연은 회복기 환자처럼 조심스럽게 자기를 추슬렀다. 굳어버린 흙 속에서 조심스럽게 발아하는, 세상에 대한 그리고 사람에 대한 신뢰. 하지만 배신으로 제 안에 생성된 독을 짜내려면 시간이 필요했다. 영모의 사랑은 뭉근했으나* 서연은 거기 섞여 있을 열정의 변덕이 두려웠다. 어린 싹이 애벌레의 식욕, 무심한 호밋날, 가뭄과 홍수…… 그 모든 것을 견뎌내야만 열매를 맺듯, 사랑의 완성을 위해선 자칫하면 사랑을 부식하려 드는 일상과 시간의 독성을 견뎌내야 했다. 서연은 영모를 혼자 보냈다. 함께하고 싶은 마음이 하도 커서, 그에 대한 사랑이 너무 커서 섣불리 함께할 수 없었다는 걸 영모에게 말하지 않은 채. 그가 없다는 것 때문에 텅 비어버린 도시에서, 다 팽개치고 달려가고 싶은 그리움이 훅 끼쳐오는 나날을, 서연은 쐐기풀로 옷을 잣는* 여자처럼 꼼짝도 않고 견뎌냈다. 담금질과 단근질*의 나날. 그날들이 어떤 바람에도 흔들리지 않고 어떤 물결에도 쓸리지 않으며 걸핏하면 녹을 만들어 부스러뜨리려는 시간에도 견딜 수 있도록 그들의 사랑을 연단하리라고* 믿으면서.
예년 같으면 와와 피어났을 산수유 꽃망울이 늦추위로 팽팽히 응축한 치악산에서 서연은 영모의 급작스러운 죽음과 맞닥뜨렸다. 친구와 함께한 가벼운 산행길이었다. 약초원으로 막 들어설 때 핸드폰이 울렸다. 영무의 대학 동창인 기섭이었다. 주말, 발리에 있는 친구를 만나러, 바다낚시, 익사…… 지나가는 등산복의 원색이 만개한 모란꽃 덤불처럼 흔들렸다. 결혼식을 두 달 앞둔, 4월 1일이었다. 머시멜로처럼 부드러운 미소를 띠며 목을 조르는 사람을 볼 때의 공포. 지독한 농담 같은 소식에 응어리지는 뱃속. 그럴 줄 알았다, 그럴 줄 알았다고, 허공에서 누군가가 커다랗고 붉은 혀를 끌끌 찼다.
호르르, 갑자기 조그만 회오리바람이 일어서 산수유나무 발치를 덮고 있던 마른 잎들을 허공으로 둥글게 말아 올렸다. 그러면서 옆으로 움직였다. 천천히, 그러나 영원히 흩어지지 않을 것 같은 장력(張力)을 지니고. 어질머리*에 휘둘리는 서연의 눈엔 그 작은 회오리바람이 말아 올린 마른 잎 안에 영혼이 들어 있는 것으로 보였다. 영모 씨야? 대답 좀 해봐. 당신인 걸 알게 해줘, 제발. 회오리바람은 대답도 없이, 그러나 떠나지도 않은 채 빙글거리면서 서연의 주위를 감싸고 돌았다. 서연이 그쪽으로 몇 발짝 다가서는 순간, 회오리는 민박집의 토방을 휩쓸면서 하늘 쪽으로 올라갔다. 작은 회오리의 기류에서 벗어난, 찢기고 바스라진 낙엽이 팔랑거리면서 내려앉았다. 영혼의 전언(傳言)이었을까. 서연은 입을 틀어막고 주저앉았다. 언젠가 이맘때, 영모와 같이 왔을 때, 꿈결처럼 노랗게 떠 있는 산수유꽃을 바라보다 서연을 부르던 목소리. 서연아. 왜? 돌아보자 그는 꿈에서 깨어난 얼굴로 말했다. 아니, 그냥. 그냥 불러봤어. 그때, 봄 햇살 아래 담박하게 빛나던 그의 얼굴. 및 닿지 않는 물속으로 빨려들어가며 공포에 지질렸을* 그 얼굴. 속이 꺽꺽 막혔다. 눈물 흐르지 않는 마른 울음.
그가 회오리 같은 기운에 휘말려 심해로 끌려들어 가던 그때, 그 소름 돋게 외롭던 때에 곁에 있지 못했다는 자책, 사랑이 왔을 때 일부러 거리를 두려 했던 오만이 어김없는 일상을 이어가는 서연의 살을 내리게 했다. 잠들기 전에 일부러 그의 사진을 오래오래 들여다보고, 그리고 베개 밑에 넣고 잠들기도 했다. 꿈속에서라도 그를 만나,함께 떠나지 못한 것을, 감히 사랑을 시험대에 올린 것을 사죄하고싶었다. 그러나 그는 서연의 생에서 매몰차게 빠져나가기로 결심한것 같았다. 그를 찾아 헤매다, 그인 듯한 사람의 모습을 확인하려다 안타까운 순간에 잠에서 깨어나면, 커다란 갈고리에 꼼짝없이 쥐어 잡힌 그녀의 심장은 아주 작은 기억에만 닿아도 쫘악 금이 갔다. 그였을까. 그가 꿈에 나타난 것일까. 그는 왜 한 번도 온전한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 걸까. 그렇게 온전히 멸한 것일까. 깨어질 듯 아픈 머리를 유리창에 대고 식히다 보면 밤 풍경은 적막했고 마른 울음이 속을 쥐어뜯었다. 크렇게 건조한 봄이 가고 여름에 들어설 무렵, 기섭의 이메일을 받았다.
이 말을 전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참 망설였는데요, 아무래도 서연 씨가 알고 계셔야 할 것 같군요. 영모가 살던 집에 영모로 보이는 사람이 자꾸만 나타난다는 거예요. 지금 살고 있는 후배도 그러고 이웃에 사는 이들도 어스름에 누가 들어가는 걸 보았는데 영모 같더라며, 형제가 왔냐고 물어오더래요. 그런데 그날 집은 비어 있었거든요. 이런저런 이야기들로 미루어보건대, 아무래도 영모가 못 떠나고 있는 거 아닌가 싶어요.
기섭은 떠듬떠듬, 액정화면으로도 느껴질 만큼 조심스럽게 말을 풀어가고 있었다. 올해 들어 처음으로 민소매 옷을 입은 서연의 팔에 대번에 소름이 돋았다. 소름을 쓸어내는 손바닥이 차디찼다. 십자말풀이, 더 이상 풀어나가지 못하게 만들던 막힌 단어, 바로 그 한 단어인 셈이었다. 어쩌면 그는 그 땅을 못 떠나서 내게 오지 않는 건지도 몰라. 내 사랑이 모자라서가 아니었는지도 몰라…… 그렇게 읊조리자 이상하게도 위로가 되었다. 서연은 여름휴가를 그쪽으로 가겠노라고 답신을 보냈다.
바람이 불었는가. 보랏빛 꽃잎이 우수수, 서연의 머리와 어깨에 쏟아져 내렸다. 바로 곁에서 걷던 윤지가 갑자기 쪼그리고 앉았을 때였다. 몇 걸음 앞선 꼴이 된 서연을 겨눈 듯 꽃이 쏟아져 덤불을 이룬 것이다. 영모가 살던 집에서 채 한 블록도 되지 않는 곳이었다.
그 집은 그냥 보아도 어둑하고 스산했다. 오래된 암녹색 타일 바닥에서 냉기가 뻗쳐왔다. 옆집 담벼락과 붙은 틈새의 좁다란 안뜰 벽면엔 노루 뿔 같은 관엽식물*이 아무 의욕 없이 치렁치렁 늘어지고 있었다. 침대에 눕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아질 것 같은 곳이었다. 천장에서 탈탈탈탈 돌아가는 구식 팬이 무력하게 공기를 휘젓고 있었다.
이 집의 무엇이, 이 땅의 무엇이 그의 영혼을 붙들고 있는가. 말소리가 울릴 것처럼 휑하고 삭막한 이 거실에서 영모는 재빠르게 대지를 덮어버리며 기습해오는 열대의 밤을 맞았을 것이다. 그가 서연에게 메일을 쓰는 동안 밤은 얼마나 정밀하게 깊어갔을지, 키 큰 나뭇가지와 정 원의 풀덤불 속에 몸을 숨긴 곤충들이 자기의 존재를 알리느라 어떤 소리를 냈을지, 서연은 느껴보고 살었다. 그러나 서연의 머릿속은 회반죽을 개어 이긴 무덤 내벽처럼 굳어 아무것도 감지되지 않았다. 서연은 대나무를 엮어 만든 의자에 앉아, 벅차오는 숨을 가늘게 뽑았다.
가정부가 유리컵에 마실 것을 담아 내왔다. 마흔 살쯤 되었을까, 서늘하게 넓은 이마에 품이 넉넉한 양미간, 짙은 눈썹 아래 수줍음이 남아 있었다. 가정부는 서연 앞에 찻잔을 내려놓으며 미소를 지었다. 속으로 번지는 미소였다. 그 미소에서 서연은 자기가 누구인지 그리고 왜 왔는지 알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종이꽃을 만들기 위해 접은 습자지 끝동을 물감 푼 물에 담근 것처럼 진분홍빛 서러움이 번졌다.. 들큰한 공기와 서늘한 타일바닥, 피부에 느껴지는 낯섦에도 불구하고 서연은 자기가 이곳에 실재하지 않는 것만 같았다.
우리 살 곳은 따로 구했어. 우리 식으로 하면 연립주택인데, 손바닥만 하지만 수영장도 있어. 저 멀리 야자나무가 죽 늘어선 게 벌판 같은 기분도 나고, 해질 무렵이면 그 벌판에 놀이 좌악 펼쳐질 거야…… 영모가 말한 그 집은 어디쯤일까. 지금은 누가 살고 있을까. 곁에 앉은 윤지에게 묻고 싶었지만 서연은 묻지 못했다.
시골 역사(驛舍) 같은 족자카르타의 공항에서 한국 사람으로 보이는 여자는 쉬 눈에 띄지 않았다. 검은 피부색·때문에 얼핏 표정을 짐작하기 어려운 사람들에게 눈을 주구 두리번거리는데 왼쪽 살쩍*이 당겨왔다. 거기, 작은 기념품가게 옆, 외진 곳에서 얼굴 하나가 떠올랐다. 상대적으로 흰 피부와 도드라진 눈망울, 짙은 눈썹. 어디에서라도 눈에 띌, 그러나 쉽사리 말 붙일 수 없는 얼굴이었다. 서연과 눈이 마주치자 여자는 빠른 걸음으로 다가왔다. 한서연 씨죠? 저는 영모 오빠 후배 강윤지예요. 호텔에 가서 짐을 풀고 난 뒤, 음료수를 마실 때에도 윤지는 책을 읽을 때처럼 억양 없이 말했다. 우선 저랑 같이 영모 오빠 살던 집에 가보시구요, 저녁은 이곳의 명물인 중국식당에서 드시는 게 어떨까요? 껍질째 튀긴 게 요리가 일품이거든요. 괜찮으시죠? 과목 자체는 흥미롭지만 하필 지금 해야 하는 게 숙제라서 몸을 비틀며 책상 앞에 앉는 아이 같았다. 맡은 구역의 관광지는 빠짐없이 탐방하고 유적지에 대한 설명은 충실하지만 예상하지 못한 질문에는 대답을 건너뛸 것 같은 가이드. 다음 코스는 영모가 쓰던 방이었다.
“지금 사시는 분께 양해를 구했으니까 천천히 구경하셔도 돼요. 저 방이 영모 오빠가 쓰던 방이에요. 한번 보시겠어요?”
방까지? 싶었지만 서연은 말없이 일어섰다. 유난히 기다란 방은 장롱과 침 대가 놓여 있을 뿐 휑했다. 사용하는 흔적이 없는 빈방인데도 창문은 열려 있었다. 아침이면 영모가 열었을 창문이었다. 그 창문 너머, 진열장을 덧붙인 자전거를 탄 빵장수가 지나가고 있었다.
빵장수들의 로고송이라는 「람바다」의 경쾌한 곡조에 맞춰서 페달을 밟으며. 한때 여기서 내다보았을 한 목숨의 부재(不在)를 밟으며. 그 방과 가정부의 살림채*가 붙어 있는 안뜰까지 두루 돌아보면서 서연은 온몸의 세포를 다 열어놓으려 애썼다. 밤에 오면 좀 나았을까. 가정부의 배웅을 받으며 그 집에서 나올 때까지도 영모는 느껴지지 않았다. 몇 발짝 나서다 서연이 뒤돌아보았을 때, 가정부는 그때까지도 문간에 서서 서연을 바래고 있었다.
돌이 들어갔는지, 벗어서 탈탈 턴 운동화를 발에 꿰며 일어서던 윤지가 꽃 덤불이 되어버린 서연을 보더니 얼먹은* 얼굴이 되었다. 때맞춰, 이술람사원에서 기도소리가 울려 퍼졌다. 뱃속 저 깊은 곳에서 이끌어낸 낮은 소리가 길게 끌리고, 그 소리가 갈고리로 낚아채는 것처럼 한 소절 끊긴 뒤에야 윤지는 스르르 표정을 풀었다.
“어머, 꼭 화관 쓰신 것 같아요.”
명랑하게 튀는 목소리와 달리 윤지의 눈 안에 꽃그늘인지, 그늘이 어른거렸다. 서연은 어깨 위에 얹힌 꽃을 집어 들었다. 절반쯤 말라 바스라진 꽃은 초롱 모양이었다. 사람 키의 네다섯 배는 될 나무에서 피어난 꽃치고는 작고 섬 세 했다.
“이게 무슨 꽃이에요?”
“많이 본 꽃인데 이름은 몰라요. 아무튼 너무 멋져요, 언니.”
윤지는 손바닥까지 쳐가며 말했다. 윤지에게서 처음으로 듣는 언니, 소리였다. 꼭 불러야 할 때면 윤지는 저기요, 라며 말끝을 흐렸었다.
“그거 아세요? 여기 아이들은요, 어떤 사람이 자기를 사랑하게 해달라고 기도할 때에 꽃을 바치면서 기도한대요.”
“그래요?”
윤지가 서연의 어깨를 쓸어 꽃을 제 손바닥에 움켰다. 종 모양의 꽃잎이 윤지의 손바닥에서 바스락거렸다. 짙고 긴 속눈썹 아래 윤지의 눈동자가 아득하게 흔들렸다. 윤지는 마르며 탈색하는 꽃에 겨우 남은 보랏빛 같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리고요, 여긴 흑마술도 성행하는데요, 누군가에게 저주를 퍼부을 때도 꽃이 쓰인대요. 재미있지요? 똑같은 꽃이 그렇게 달리 ‘쓰일 수 있다니.”
윤지는 꽃을 움킨 양손을 이마 높이까지 쳐들었다가 운동회 때 종이를 붙여 만든 커다란 공을 터뜨리듯 확 열어버렸다. 끼드드려진* 꽃 잎이 하르르 떨며 지상으로 내려앉았다.
죽은 이를 태우고 갈 수레는 한낮의 볕 아래 화려하다 못해 요기(妖氣)스럽다. 얼기설기 엮은 대나무 위에 얹힌 상여는 높다란 누각 모양이다. 세상에 존재하는 빛깔이란 빛깔은 모두 끌어 모은 것처럼 난만한* 상여. 금박으로 무늬를 놓은 색색의 종이를 바른 상여 지붕 네 귀엔 종이를 오려 만든 등릉*이 하늘거렸다. 상여 귀퉁이마다 꽂아놓은 노랑, 보라, 파랑, 분홍…… 종이꽃, 죽은 이를 위해 만든 꽃의 화려한 채색이 오히려 적막했다.
“조금 있으면 장례식장으로 출발할 겁니다. 사당에 잠깐 들러서 제사도 지내구요.”
가이드가 설명했다. 사람의 힘으로는 어찌해볼 길 없이 닥치는 재앙을 막고 행복을 빌기 위해 집집마다 모신 조상신들. 그들의 영혼은 형편에 따라 더러는 풀로 더러는 기와로 지붕을 인 조그만 사당에서 머무른다고 했다. 머지않아, 오늘 장례의 주인공을 위한 사당이 저 틈에 다시 세워질 것이다. 비디오 촬영에 몰두해 있던 서양 남자가 가이드에게 물었다.
“언제 죽었나요?”
“사흘 전이랍니다. 죽은 사람 나이는 여든 살이구요.”
호상(好喪)이라서 그런가, 아니면 죽음 이후의 또 다른 삶을 믿는 이들이라서 그런가. 집 안팎 어디에서도 우는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마침내 상여가 움직이고, 친척과 문상객들은 느릿느릿 그 뒤를 따르기 시작했다. 부서지는 볕 아래 홀로 화려하게 솟아 우줄우줄 떠가는 상여, 그 뒤를 따르는 무리가 입은 윗도리의 어두운 빛깔. 그 속에 섞여 열심히 사진을 찍는 관광객들. 왠지 몸을 허공으로 밀어 올리는 이상한 부력이 느껴져서, 서연은 샌들 신은 발에 꾹꾹 힘을 주어 땅을 디뎠다. 윤지는 지금 무얼 하고 있을까.
“전 전에도 보았거든요. 그리고 제 오랜 꿈은요, 누사두아 해변에 혼자 누워 오가는 사람들 구경만 하면서 한나절을 보내는 것이랍니다. 차가운 콜라나 마셔가면서요. 친구들하고 오면 늘 같이 몰려다니느라고 그럴 수가 없거든요. 오늘 그 꿈을 이뤄보려고요.”
가이드답게 딱딱 끊어가며, 그러나 싹싹한 표정으로 말한 윤지는 호텔 앞에서 기다리던 여행사의 차에 서연을 혼자 태웠다. 서연은 굳이 권하지 않고 혼자 차에 올랐다. 차문을 닫아주며 윤지는 덧붙였다. 끝나고 돌아오시면 절 못 알아보실 거예요. 전 탱자탱자 놀면서 탱글탱글 태우고 있겠습니다. 차가 호텔 마당을 빙 돌 때, 로비로 올라가는 계단에 서서 윤지는 반듯하게 편 손바닥을 아이처럼 흔들었다. 서연은 영모의 눈으로 그런 윤지를 보았다. 사랑스러웠다. 동그란 원통에 말린 채 포장을 뜯지 않은. 은박지처럼 구겨져본 적 없는 영혼, 제 비밀을 가두고 있는 게 버거워서 끝내 그걸 부려놓은 순진한 영혼에겐 혼자서 바다를 내다볼 시간도 필요할 것이다.
언니가 괜찮다면 저도 발리에 같이 가고 싶은데요. 윤지가 운을 뗀 건 족자카르타 시내의 사원과 궁전을 돌아다니고, 영모가 자주 갔다는 커피집에서 커피를 마시면서였다. 윤지가 드러내지 않으려 애쓰는데도 서연에겐 윤지의 감정이 높은 파고(波高)를 오르내리는 게 감지되었다. 그게 윤지의 천성인지 아니면 낯가림 인지 몰라서 조금 버겁긴 했지만 윤지의 동행을 굳이 마다할 이유는 없었다.
발리에 도착해서 호텔 로비에 비치된 관광 리플릿을 뒤적이던 윤지는 리플릿 한 장을 서연 앞에 밀어놓았다. 퍼런 단색 인쇄가 초라하면서도 원색으로 치장된 다른 리플릿 틈에서 오히려 그 초라함으로 도드라지는 리플릿이었다. 날이면 날마다 있는 기회가 아니랍니다. 운이 좋으신가 봐요. 발리에서 이루어지는 화장 장례식이에요. 내일이네요. 장례식? 짧게 되묻고 리플릿을 보는 서연의 눈꺼풀 속이 시큰해졌다. 네, 이겉 보려고 다른 나라에서 비행기 타고 오는 사람들도 있으니까요. 다른 건 안 보시더라도 이건 보셔야 해요. 보실 거죠? 윤지는 제 마음대로 결정을 내렸다. 예정된 일정을 취소하고, 여행사에 연락해서 화장 장례 참가신청을 하고…… 분주한 윤지를 보며 서연은, 충동적인 것으로 보이던 이 동행이 어쩌면 충동만은 아닐지도 모른다는 걸 깨달았다. 마음대로 결정을 내리고 서연이 알아들을 수 없는 말로 통화하는 윤지에게서 느껴지는 활기는 왠지 아슬했다.
“나, 영모 오빠 참 많이 좋아했어요. 좋아한단 말로는 부족할 정도로. 그렇게 누군가를 바란 건 처음이었어요. 그때, 오빠가 주말에 발리에 간다고 했을 때, 전 정말로 따라오고 싶었어요. 언니가 있다는 거 알면서도, 그런데도 그랬어요. 영모 오빠가 조금이라도 여지를 보여주었다면 냉큼 나섰을 거예요. 가끔 그런 생각해요. 그때 내가 따라왔더라면 뭔가가 달라지지 않았을까. 어쩌면 영모 오빠가 내 사람이 되었을지도 모르고, 그게 아니더라도, 최악의 경우 오빠를 보지 못하게 된다 하더라도, 최소한 오빠가 세상 어딘가에서 숨쉬고 있게 했을지는 모른다고요.”
그날 밤, 두꺼운 철판으로 만든 커다란 드럼통을 울리는 것처럼 억센 파도소리가 들리는 바닷가에서, 윤지는 기어이 말했다. 달의 숨결 따라 밀려오고 밀려가는 물결. 파도소리가 철썩, 이 아니라 텅, 터엉 들려왔다. 목숨을 삼켜 무정한 무정물로 토해내는 바다. 검은 바다를 바라보며, 뜻밖에 술이 세다 싶게 많이 마신 윤지가 또박또박 토해내는 회한. 서연은 바다로 향했던 눈을 거두지 않았다. 그럴 수 있었으리라. 영모는 굳은 땅에서 말라가는 초목을 보면 그게 누구네 나무든 우선 물을 떠다 적셔주기부터 할 사람이었으니. 물을 빨아들이는 뿌리의 강렬한 흡인력으로 윤지는 영모에게 쏠렸을 것이다. 텅, 터엉. 무서웠겠구나, 그냥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무서운데…… 그 물속에 끌려들어 가던 순간의 영모에겐지 아니면 영모를 열망하던 나날의 윤지에겐지 모르게, 서연은 속으로 말하고 있었다. 아득한 수평선에 아주 작은 불빛 한 점이 떠 있었다. 지나가는 배일까. 저 배에선 이 바닷가의 불빛들이 어떤 모양으로 비칠까.
끝없이 이어질 듯 흐르던 대열이 주춤 밀리는 기색이더니, 무슨 일인가, 서연이 고개를 들어 저만큼 앞서 있는 상여를 보는 순간, 평지에서 홱 솟구친 돌개바람처럼, 평온해 보이는 못 깊은 곳에서 사람을 빨아들이는 음험한 소용돌이처럼, 상여꾼들이 상여를 메고 휘돌았다. 이제까지 느릿느릿 움직이던 속도에서 매몰차게 솟구쳐, 악착같다 싶은 빠르기로. 한 바퀴, 두 바퀴, 세 바퀴. 서연은 그만 아찔, 다리에 힘이 풀렸다. 영모의 부음(訃흡)을 받던 날 마른 잎 말아 올리던 회오리가 서연의 머리를 흔든다. 팔십 년을 살아낸, 한 번도 만나지 못한 오늘 장례의 주인공에겐지 아니면 못다 한 마음 때문에 가슴에 옹이진 영모에겐지 모르는 채, 서연은 엄지발가락이 뻐근해질 정도로 힙을 주고 서서 웅얼거렸다. 가는구나, 가려 하는구나, 이제 정녕 떠나가는구나. 문득, 윤지가 이 장면을 보여주려 발리에 동행한 게 아닌가, 그리고 이 장면을 피하느라 호텔에 남은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빠르게 스쳤다. 그만 가세요. 윤지의 젖은 목소리가 발목을 감았다.
그만 가세요. 나직한 윤지의 목소리에 서연은 비로소 밤바다에서 눈을 돌렸다. 모레면 떠날 참이었다. 윤지도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그러나 윤지의 도도록한* 눈망울은 서연을 향하고 있지 않았다. 그만, 그만 떠나가세요. 윤지는 바다를 향해, 어둠을 향해 말하고 있었다.
“열쇠가 없네요. 아마 친구 분들이 방에 있나 봐요.”
프런트 데스크의 여자는 생긋 미소를 띠었다. 윤지가 벌써 돌아온 것일까. 서연은 선뜻 방으로 향할 수가 없었다.
관목이 무성한 그늘을 드리운 호텔 식당엔 머리카락이 빈틈없이 하얗게 바랜 서양 남녀가 관광사의 리플릿을 들여다보며 뭐라고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해로(偕老)하다, 함께 늙는다·…·그런 단어에 걸맞은 노부부. 시간 속에 숨겨진 숱한 복병을 견뎌낸 부부에게 수여된 훈장 같은 흰 머리카락. 서연이 지키고 가꿔내고 싶었던 사랑은, 일상과 시간의 부식을 겪기도 전에 가뭇없어졌다. 차가운 레모네이드를 마시던 서연은 다시 뜨겁고 진한 발리 커피를 주문했다. 지루한 일상을 혼자 견딜힘이 없는 서연은 언젠가 제 스스로 저를 일구어, 거기 또 다른 사랑의 씨앗을 하나 뿌리게 되리라. 서연은 숨을 들이켜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커튼을 드리운 방 안은 침침했다. 두어 번 노크해도 기척 없어 손잡이를 비틀었더니 문은 쉬 열렸다. 방 안에 비릿한 냄새가 배어 있었다. 조금 전 화장터에서 맡아지던, 비릿하고 노르스름한, 구리고 젖은 꽃의 향기. 급히 움직이면 흩어져버릴 것만 같은 냄새. 서연은 공기를 휘젓지 않으려 천천히, 떠도는 영혼이 있다 하더라도 그 움직임을 눈치 채지 못할 정도로 천천히 고개를 돌려보았다. 또다시 맡아지는 냄새. 서연은 팔을 들어 티셔츠 소매에 코를 묻었다. 생나무와 향과 그리고 꽃이 타는 냄새. 불티가 날아와 고요히 가라앉은 재의 냄새도 섞여 있다. 냄새는 자신의 몸에서 나는 것도 같고 아닌 것 같기도 했다.
윤지는 침대 위에 누워 있었다. 벽 쪽으로 몸을 돌린 채 모로 누운 등판에서 구겼다 편 은박지의 어석거림이 느껴졌다. 짧은 티셔츠가 말려 올라가 드러난 민틋하고* 하약 허리가 겨울밤의 그믐달처럼 쓸쓸하고 애처로웠다. 그 순간, 서연은 영모가 더 이상 세상에 없다는 데에 허전한 안도를 느꼈다. 영모가 있었더라면 윤지는, 아주 예쁜 상자에 담겨 배달된, 어찌해볼 길 없는 폭발물로 느껴졌을 것이다.
서연이 소파에 몸을 부리자 윤지가 벌떡 몸을 일으켰다. 그렇게 긴장하면서 어떻게 문 잠그는 겉 잊었나 궁금해질 정도로 민첩했다. 오셨어요? 꽉 잠긴 목소리였다. 오랜만에 외출해서 전철 속에서 고단하게 자던 아이, 내리자, 라는 한마디에 잠투정 한 번 없이 대번에 잠을 털고 일어서는 아이를 볼 때의 대견한 안타까움이 서연의 마음에서 일렁였다. 짙은 속눈썹으로 선명하던 눈매가 부숭부숭했다.* 서연은 윤지가 선텐은커녕 해변 가까이에도 안 나간 것을 알아차렸다. 그러고 보니, 아까부터 걸리던 냄새 속에는 발효된 홉의 향기도 감돌았다. 휴지통 안에 든, 우그러뜨린 맥주캔이 그제야 눈에 들어왔다.
“좀 더 자요. 나도 씻고 잘까 봐. 한숨 자고 나서 저녁 먹자.”
서연은 짐짓 여동생을 대하듯 말을 놓았다. 말이 떨어지자마자 윤지는 다시 침대 위에 몸을 구겨뜨리며 웅얼거렸다. 목욕탕에 있는 물로 닦아보세요. 꽃물이에요.
냄새는 습습한 화장실에 더 짙게 배어 있었다. 욕조 옆의 조그만 플라스틱 대야에 고인 물에서 피어오른 향기. 물에 담가놓은 붉은 장미꽃잎이었다. 꽃잎인지 나뭇잎인지 모를, 언월도*처럼 길쭉하게 휘어진 담녹색 잎도 섞여 있었다. 어느 결에 우러났는지, 물빛엔 붉은 잉크를 한두 방울 푼 것처럼 투명하게 붉은 기가 비쳤다. 장미향과 거기 어우러진 풋내 같은 향기. 윤지라면, 영모를 위해 꽃물로 몸을 씻어본 적이 있으리라. 사랑에 상처 입은 적이 없다면, 사랑하는 사람에게 잘 보이고 싶은 단순한 열망으로 무언들 못하겠는가. 여기 아이들은 그리고 꽃으로 목욕도 한답니다. 특히 사랑하는 사람과 데이트할 때요. 피부가 고와진대요. 떨어져 내린 꽃을 밟으며 꽃의 다양한 쓰임새를 설명하던 윤지의 목소리가 새삼스러웠다. 그때 윤지의 아득하던 눈빛에서 왜 영모를 느끼지 못했을까. 마음속에 품은 영모가 밖으로 나오는 걸 단속하느라 그랬는지 윤지는 수다스러웠다. 근데요, 싱싱한 꽃보다는 적당히 시든 꽃에서 향기가 더 진하게 우러난대요. 왜 그럴까요?
샤워를 마친 서연은 꽃잎을 건져내고 그 물을 움켜서 몸에 조금씩 끼얹어보았다. 여느 물보다 매끈거리는 물에서 우련하게* 번지는 향기. 영모를 위해 몸단장하던 기억이 새삼 명치에 치받쳤다. 그의 손길이 주던 환희의 기억은 폭죽처럼 터지고, 밤하늘에서 스러지는 불티의 서러움으로 서연을 적시곤 했다. 서연은 팽팽한 몸을 제 손으로 쓸다가 도리질 쳤다. 한 겹 가죽 속에서 맹렬히 진행되던 부패. 몸은 서러워할 겨를도 없이 제 기억을 빠른 속도로 잃고 있었다.
죽은 이는 생나무를 잘라 만든 동물 모양의 대 위에 안치되어 있었다. 잘린 나무의 단면은 초승달을 어슷나게 빼곡히 겹 쳐놓은 모양이었다. 사계절이 없는 지역에서 자란 나무의 나이테는 아름답고 무미했다.* 벌어지기 전의 꽃봉오리처럼 어슷하게* 겹 쳐 있었다. 시신의 크기에 꼭 맞춘 대의 머리 부분엔 좀 굵기가 가는 나무로 목과 두 귀가 완연한 동물 머리 모양을 만들었고, 반대편에 꽂은 가느다란 나뭇가지는 치켜든 꼬리 형상이었다. 꼬리 아랫부분에 가스관을 연결해 놓았다. 자른 지 얼마 안 되어 보이는 나무의 단면에서 나는 냄새는 꽃병에 오래 꽂아두었던 꽃다발 밑동에서 나는 물비린내처럼 상큼하면서도 비릿했다.
종교 지도자로 보이는 사람이 시신에 물을 뿌려 축복한 뒤, 사람들은 시신에 향이며 꽃을 얹는 걸로 마지막 작별인사를 했다. 고장 난 카메라를 멘 채 사람들 뒷전에 서 있는 서연에게, 친족으로 보이는 사내가 사진을 찍으라는 시늉을 하며 자리를 내어주었다. 터번* 같은 전통 모자를 두르고 이마에 꽃을 얹은 시신은 양손을 배 위에 얌전히 모두고 있었다. 겸손하고도 기품 있는 자세였다. 하지만 살가죽 한 겹 아래는 이미 부패되어 쿨렁쿨렁 했다. 단백질 많은 식품에 알록달록 피는 검은빛과 붉은빛의 곰팡이들. 얌전히 모둔 손가락의 한 부분은 부패한 다른 부분과 달리 아직 생생한 살빛을 간직한 채 퉁퉁 부어올라 있었다. 거믓거믓 썩어버린 손가락에 팽팽하게 부푼 그 살빛이 서연에게는 왜 한세상의 고단함을 증거하는 것으로 비쳤을까.
시신을 말끄러미 바라보는 서연에게 아까부터 서연의 눈길을 끌던, 카메라가 고장 나는 순간 파인더를 벗어났던 그 여자가 다가왔다. 여자는 손에 꽃을 들고 있었다. 꽃을 손바닥에 받아 들고 죽은 이에게 다가가던 서연은 잠깐 뒤로 물러났다. 가방 속, 호텔 편지봉투 속에 든 보랏빛 꽃 한 줌. 영모의 영혼이 뗘도는 어름*에서 서연의 머리 위로 쏟아져 내린 그 꽃잎. 서연은 봉투에서 그 꽃잎을 쏟아 여자가 준 붉은 꽃과 섞었다. 꽃을 양손으로 받쳐 들고 조심스럽게 얹다가 서연은 그 여자와 눈이 마주쳤다. 깊이를 어림할 수 없는 그 눈은 모든 걸 다 알고 있는 것 같았다. 누구였을까. 습관처럼 떠올리다 말고 서연은 지워낸다. 스쳐간 한 시기의 어느 인연. 아니 어쩌면 전생의. 어쩌면 다음 생에 자매로 인연 맺을지도 모르는. 한순간, 사람들이 뒤쪽으로 물러났다. 곧 펑, 소리와 함께 불이 붙여졌다. 아낙네 중의 하나,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손으로 입을 막았다. 비로소 죽음이, 소멸이 실감 나는 것일까. 열기가 확 치솟았다. 시신 안치대 위에 그만큼의 크기로 쳤던 엷은 헝겊 차일이 열기를 받아 부풀어 금방이라도 허공으로 떠오를 것만 같았다. 몸이 불더미에 갇혀 있을 때, 그 몸 안에 있던 영혼은 어디에서 그걸 지켜보는 것일까.
여기 귀신들이 얼마나 다양하냐면, 사람을 부자로 만들어주는 아기 귀신도 있대. 일단 어떤 사람에게 그 귀신이 붙으면 그 사람은 부자가 된다는 거야. 아는 사람이 해준 이야긴데, 그 사람 형이 가전제품 대리점을 한대. 그런데 가게 문을 닫고 은행 마감시간 뒤의 수입을 금고에 집어넣고 갔다가 다음 날 와보면 꼭 지폐 한 장이 모자라더래. 다음 날에도 그 다음 날에도. 그 마누라가 어디 가서 물어보니까 귀신의 소행이라고 하더래. 그래서 어느 날은 금고 주변에 밀가루를 아주 흐릿하게 뿌려놓고 갔는데, 다음 날 와보니까 사람 발자국, 아주 작은 발자국이 나 있더라는 거야. 그러니까 그 집에서 돈을 빼내서, 자기가 붙은 사람에게 가져다주는 거였지.
보이지 않는 세계에 느닷없이 골똘해진 영모의 목소리에 스멀거리는 불안을 눅이며 서연은 대꾸했다. 이왕 부자 만들어줄 거, 한꺼번에 가져다주지 왜 꼭 하루에 한 장이래? 자기도 한 번 만나보고 싶겠네? 아니. 문제는 그 귀신을 만나는 게 꼭 좋은 것만은 아니라는 거야. 세상에 공짜는 없다는 교훈! 한 사람을 부자로 만들어주는 대신, 그 사람이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것을 하나 빼앗아간대. 영모의 말에 서연은 숭굴숭굴 웃으며 대꾸했다. 그게 뭐 대수겠어. 부자도 되고 했으니 다시 사면 되지. 그땐, 귀신이 빼앗아가는 게 돈으로는 살 수 없는 무엇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미처 못했다. 윤지는 알고 있었을까.
벌 받을 마음인 줄 알면서도, 언니에게 무슨 일이 생기기를, 그래서 영모 오빠를 제가 차지할 수 있게 되기를 빌었어요. 오빠를 차지할 수만 있다면, 벌 받는 것쯤은 무섭지 않았어요. 제가 받았어야 할 벌인데…… 서연은 남은 꽃물을 한꺼번에 몸에 쏟아 부어 윤지의 말을 지워냈다. 명부*노 빨려들어 가는 영혼처럼 하수구로 빨려들어 가는 물. 물은 한국에서와 반대방향으로 소용돌이쳤다. 적도 아래쪽이라서 그렇다고 했다. 채 건져내지 못한 꽃잎 몇 장이 흘러내렸다.
물이 빠지는 바람에 욕조 안쪽 네 면에 점점이 붙은 그것은 발자국, 아주 작은 발자국 같았다.
『문예중앙』 (2001 년 겨울호); 『꽃그늘 아래』 (창비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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