갸우뚱할 만도 하다. 영남알프스 산군의 맏형 가지산(1,241m) 다음으로 높은 운문산(雲門山·1,195m)은 경북 청도와 경남 밀양의 경계에 서 있다. 천년 고찰 청도 운문사에서 이름이 유래된 덕분에 '청도 운문산'으로 부르는데 익숙해져 있어서 '밀양 운문산'이 생소하게 들리는 것이다.
청도-밀양 경계에 우뚝, 동쪽에 가지산 곳곳에 바위투성이 '너덜겅' 탓에 악산 산자락마다 펼쳐진 사과밭도 볼거리
운문산은 기암괴석과 암봉, 울창한 숲이 많고, 목골과 배넘이골, 큰골, 학심이골 등 크고 작은 계곡이 절경을 이뤄 영남알프스 중 자연 경관이 가장 아름다운 산으로 꼽힌다. 자연히 산길이 많고, 개중에 밀양 쪽에서 오르내리는 코스도 많다. 밀양에서 오르내리면서 청도 운문산으로 부를 수는 없는 법. 이럴 때 조금 낯설지만 밀양 운문산이라고 불러줘야 된다.
이번 산행의 기종점은 밀양 얼음골 사과의 주산지다. 초여름 따사로운 햇살을 받아 탐스럽게 익고 있는 사과밭을 지나면서 문득 고개를 들어보니 '구름의 문'이 산중턱에 걸친 풍경이 아득하기만 했다.
운문산 주변으로는 영남알프스의 적자들이 활달한 기세를 자랑한다. 동쪽으로 가지산, 남쪽으로 천황산과 재약산…. 종주 코스로 어디든지 연결된다는 말이다.
운문산을 오를 때는 밀양시 산내면 원서리의 석골사에서 올라 원점회귀하는 코스 외에는 대부분 일직선 코스가 되어버리기 일쑤다.
산&산 팀은 1973년 얼음골 사과가 시배된 밀양 산내면 남명리와 삼양리를 기·종점으로 삼아 원점회귀하는 코스로 꾸며봤다. 1㏊가 채 안 되던 사과밭이 지금은 660㏊로 늘었다. 산자락 전체가 거대한 사과밭이라 "어마어마하다"는 말이 절로 나온다. 산을 들고나는 어떤 길이라도 영글어 가는 사과나무 숲을 지나칠 수밖에 없다.
온 산자락을 뒤덮고 있는 얼음골 사과밭.
코스를 요약하자면 이렇다. 밀양시외버스터미널에서 접근하면 산내남명초등학교 정문 앞 마전정류소가 기·종점이 된다. 자가용을 이용했다면 산내남명초등 뒤 하양교와 하양마을을 지나 1.4㎞를 올라가서 하양복지회관에 주차하고 발걸음을 떼면 산행이 시작된다.
회관에서 한옥펜션을 지나쳐 입산한 뒤 하양폭포~함화산~운문산 정상은 북쪽으로 치고 오르는 길이다. 정상에서 동쪽으로 틀어서 아랫재 고개까지 가서 내려간 뒤 이곳에서 상양마을 이정표를 보고 남쪽으로 하산해서 복지회관까지 되돌아오면 말풍선 모양의 원점회귀가 완성된다.
15m 암벽에서 쏟아지는 하양폭포.
이날 10㎞를 걸었는데, 평소보다 다소 긴 6시간 30분이 걸렸다. 마른하늘에 날벼락, 즉, 예기치 못한 장맛비를 만나서였다. 비가 오면서 바윗길이 미끄러워진데다 수풀이 무성해서 길이 흐릿한 곳, 이정표가 없는 갈림길까지 연이어 나타났다. 중간에 '알바(길을 잃고 헤맨다는 산꾼들의 은어)'까지 하고 나니 시간이 꽤 늘어났다.
■거친 바윗길에 길 잃기도
구서IC에서 산내남명초등학교 정문까지 1시간. 산뜻한 출발이었다. "오늘 땀 꽤나 흘리겠네~!" 구름이 잔뜩 낀 부산에 비해 밀양은 농밀한 햇빛이 이글거리고 있었다.
하양교를 건너면서 길 양편으로 거대한 사과밭이 펼쳐졌다. 초여름 햇살을 듬뿍 받은 어린 사과가 탐스럽게 익어가고 있다. 그 위로 운문산의 산중턱은 운무에 휩싸여 정상이 하늘 위에 두둥실 떠 있는 듯 보였다. 하양복지회관에 차를 대고 '한옥펜션' 표시를 따라 입산. 산길을 걷자마자 갈림길이 나타났다. 오른쪽 1시 방향으로 올라간다. 이 산은 이정표가 없는 갈림길이 많아 리본을 잘 살펴야 한다.
가풀막에서 너덜겅을 만났다. 운문산은 곳곳이 바위투성이다. 가풀막길도 많다. 악산으로 분류되는 까닭이다. 계곡을 따라 걷다가 갑자기 물소리가 요란해졌다. 보이지는 않지만 폭포가 분명해서 등로를 잠시 이탈했다. 높이 15m 정도 되는 거대한 바위에서 떨어지는 상하단 2단 폭포다. 하지만 폭포도, 계곡도 수량이 만족스럽지 못하다. 무명이라 일단 '하양폭포'로 불러주기로 했다.
폭포를 끝으로 계곡에서 벗어나 50분쯤 된비알과 씨름하는데 두 가지 시련이 동시에 닥쳤다. 후두두후두두 하면서 비가 오기 시작한데다 큰 바위 앞에서 길을 잃은 것이다.
바위 위 동굴 쪽에 누군가 리본을 달아놓아 억지로 올라서니 도저히 사람이 다닐 길이 아닌 게 분명해 내려왔다. 이번에는 흐릿한 오른쪽 길을 헤치고 올라섰다. 없는 길을 억지로 만들면서 치고 나아가니 멀쩡한 등로가 나타났다. 틀림없이 어디선가 길을 놓친 것이라 보고 정상적인 길을 따라 내려가 봤더니 아까 그 큰 바위 밑둥치의 왼쪽으로 이어진다. 잡목과 수풀이 길을 가렸던 것이다. 바위를 빙빙 도느라 30분 이상을 허비했다. 오해를 초래한 리본을 뜯어내고 제대로 된 지점에 산&산 리본을 달았다.
그즈음 빗줄기가 더 굵어졌다. 천둥번개까지 쳤다. 운문산을 답사한 지난 18일은 오전까지 강수확률이 30%였다. 지나가는 비라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기상청 앱으로 살펴보니 운문산은 비구름의 가장자리에 걸쳐 있다. 이미 반을 걸었으니 어서 빨리 비가 그치기를 바랄 수밖에.
운문산 정상 200m 남겨두고 함화산 정상 표석을 만났다. 5분 더 걸어 정상에 섰다. 짙은 운무에 휩싸인 세상은 한 치 앞을 분간하기도 어렵다. 늠름한 영남알프스 산줄기를 감상하기란 언감생심이다.
하산을 서둘렀다. 정상에서 '가지산, 상양' 방향 표지를 보고 동쪽으로 내려간다. 1.5㎞ 내려가면 산불감시초소가 있는 아랫재를 만난다. 원래는 아랫재를 지나쳐 동쪽으로 더 걸을 계획이었지만 비가 그치지 않을 것으로 판단하고 코스를 축소했다. 아랫재에서 상양마을 표지를 따라 남쪽으로 꺾어 30분쯤 내려왔을 때 농로를 만났다. 다시 온 산자락에 사과밭이 지천이다. 그제야 비가 그쳤다. 예기치 않은 비를 맞아 사람의 몰골은 말이 아니게 됐지만, 뽀얗고, 촉촉해져서 반짝반짝 윤까지 나는 어린 사과들을 보니 반가웠다.
마을로 접어들면서 산행이 끝났다. 차량 회수나 버스 탑승을 위해서는 발품을 조금만 더 팔면 된다. 산행 문의:라이프레저부 051-461-4095. 전준배 산행대장 010-8803-88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