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평등과 평등
비구니 스님들이 조계종 선거제도의 불합리함과 직선제 실현, 성불평등에 대해 조계사 앞에서 시위를 하고 있다.
사실, 조계종은 94년 계혁회의 때, 도법 스님의 주도로 이미 비구 비구니 직선제에 의한 총무원장 선출이라는 종헌종법을 만들었다.
그러나 원로회의에서 의장이었던 혜암스님이 거부권을 행사해서 무산되었다.
그때 혜암스님의 주장은
"그럼 비구가 비구니에게 고개를 숙이고 표를 구걸해야 한다는 말인가?"
였다.
그때 권력을 빼앗기지 않으려고 발버둥치던 자들이 이를 계기로 체육관 선거라는 기괴한 선거제도를 만들어 그들만의 리그로 총무원장을 뽑는 종헌종법을 통과시켰다.
그때의 잘못이 지금 조계종을 혼탁하게 하고 있다.
선거제도는 넘어가기로 하고,
성평등에 대한 붓다의 생각은 어땠을까?
사실 붓다는 성불평등자이다.
비구니 팔경계를 보면 알 수 있다.
"80안거를 지낸 비구니라도 갓 출가한 비구에게 절을 해야 한다."
이건 진리의 절대평등성과는 매우 큰 괴리가 있는 규칙이다.
그러나 붓다는 지극히 현실주의자이기 때문이라는 설도 있다.
그 당시 인도 사회가 여인을 소유물 취급하던 시기이기도 하고, 강간 겁탈에 쉽게 노출되는 사회적 약자이기도 해서 비구니들을 보호하기 위해서 팔경계법을 만들었다는 설도 있다.
그래서 현대 사회와 맞지 않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는다.
각설하고,
붓다는 계급타파를 부르짓고, 사회적 평등을 주장했다는 설이 자꾸 등장하는데, 전에도 이야기했다시피 붓다께서 말씀하시는 평등이라는 단어는 깨달음, 진리라는 본질에서의 평등이다.
"바라문, 크샤뜨리야, 바이샤, 수드라, 누구든지 이 법과 율에 의해 출가하면 이전의 이름과 성을 버리고 사문(Sāmaṇera)라는 이름을 갖는다.(A8.19)"
그러나 사실 사문이라는 이름은 불교의 출가자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고, 바라문이 아닌 다른 교단들, 그 당시 육사외도들을 포함한 모든 교단의 출가자들을 일컫는 말이다.
이게 무슨 말이냐하면,
인도의 관습 자체가 그때나 지금이나 모든 교단, 힌두교이든 다른 교단이든 출가 수행자들을 보면, 모두가 존경과 경의를 표한다는 뜻이다.
법구경이야기에도 빠세나디 국왕이 지나가는 다른 교단의 수행자들에게 "저는 빠세나디입니다. 저는 빠세나디입니다. 저는 빠세나디입니다."라고 외치며 경의를 표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러므로 붓다만이 교단 안에서는 계급타파, 모두가 평등이라고, 그 당시 혁명적인 선언을 했다는 이야기가 아니고, 그것은 인도의 오래된 관습이다.
그럼 왜 불교 교단안에서 성에 있어서는 불평등 규칙을 만들었을까?
본질과 현실 사이에는 괴리가 있기 때문이라고 얼버무리고 넘어가기로 하자.
각설하고,
진리의 절대평등성에 대해 이야기 해보자.
"진리에서는 절대평등하다."
누구나 깨달을 수 있다.
누구나 깨달으면 부처가 된다.
"비구들이여, 여래는 오온을 싫어하여 벗어나고, 탐욕이 소멸하여 집착없이 해탈하였으므로 '정등각자'라고 불린다.
비구들이여, 통찰지로 해탈한 비구 역시 오온을 싫어하여 벗어나고 탐욕이 소멸하여 해탈하였으므로 '통찰지로 해탈한 자'라고 불린다.
그렇다면 비구들이여, 정등각자와 통찰지로 해탈한 비구 사이에 무슨 차이가 있는가?
비구들이여, 정등각자는 길을 아는 자, 길을 발견한 자, 길에 숙달한 자이고, 나의 제자들은 그 길을 따라 나중에 성취할 자들이다.(S22.58)"
붓다는 자신은 '먼저 길을 발견하고 그 길을 간자이며, 제자들은 뒤따라 오는 자이다.'라고 말씀하셨다.이것이 진리의 보편성과 평등성에 대한 절대적인 선언이다.
초기불교에서 붓다와 아라한을 구분하는 것은 깨달음의 차이가 아니고, 능력(이건 양면해탈자들에게서 나타남)에서의 차이를 말한다.
깨달음, 해탈에 있어서는 부처와 아라한 사이에 아무런 차이가 없다고 붓다께서 선언하셨다.
초기불교에서 깨달음의 본질적 평등이 대승에 와서 어떻게 깨달음에서 계급을 만들었는가?
부처, 보살, 아라한, 보살십지, 등각, 묘각....
아라한을 아래로 내리고, 중간에 보살이라는 계급을 만들고, 보살의 이타행과 중생구제라는 수행체계를 집어넣어 부처가되는 정교한 스케줄표를 만들었다.
"일체중생 실유불성"
표제는 아릅답고 거룩하지만, 불성을 찾는데 너무 힘들다.
부처가 되는 일승 법계도를 만들었지만, 가는 길이 나무 지난하다.
물론 이건 붓다의 말씀이 아니라는, 후대의 어리석은 중생들이, 책상에서 작성한 ppt라는 사실을 이해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