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 16:7]
제자들이 서로 의논하여 가로되 우리가 떡을 가져오지 아니하였도다 하거늘....."
서로 의논하여 가로되 - 여기서 우리는 다음 두 사실을 알 수 있다. (1) 예수 말씀의 진의를 파악하지 못한 제자들의 어리석음 (2) 예수께서 가르치신 영적 교훈을 제자들이 서로 의논하여 깨달은 것이 아니고 오직 예수께서 다시 설명해 주셔서 깨달았다는 것 등이다. 떡을 가져오지 아니하였도다 -
지금 영의 눈이 어두워진 재자들은 예수께서 가르친 교훈의 참 의미를 깨닫지 못하고 자신들의 실수로 빚어진 현상적인 문제에 집착하여 떡이 없음을 걱정하고 있다. 그런데 그 당시 일반적인 떡의 모양과 크기는 둥글며 지름이 약 15cm, 두께가 약 1.5cm 정도였다고 한다.
이는 보통 밀기울을 빻은 소맥분으로 만들어졌으나, 때로는 보리 가루로 만들어지기도 했다. 한편 이는 6절의 예수의 영적 교훈을 이 땅의 현실적 문제에 대한 지적으로 받아들인 제자들의 무지와 오해를 드러내 주는 구절이다.
그 이유는 단적으로 아직 이들이 예수의 참 정체, 즉 예수께서 신적 메시야이시란 사실을 깨닫지 못했기 때문이다. 특히 이 사건이 예수께서 4천명을 먹이신 사건에 연이어 일어난 것임을 고려할 때 예수의 능력에 대한 제자들의 무지는 아직도 심각한 상태이며,
더 나아가 예수께서 영원과 절대의 구원 문제에까지 권능과 능력을 갖고 계시다는 사실에 대한 무지의 반증이기도 하다. 한편 우리는 이런 어리석음과 오해는 이 당시 제자뿐만 아니라 현대의 신자들 중에도 많음을 발견한다.
즉 예수께 영원한 절대적 구원이 아닌 이 땅의 빵과 권력의 축복만 요구하는 기복주의자들이 바로 이런 어리석음과 오해를 재현시키고 있다.
[마 16:8]
예수께서 아시고 가라사대 믿음이 적은 자들아 어찌 떡이 없음으로 서로 의논하느냐....."
예수께서 아시고 - 여기서 '아시고'는 체험적 앎보다 직관적으로 인식한 상태를 의미한다. 즉 예수는 제자들의 대화를 전해 듣거나 였들은 것이 아니라 그들의 내면에 있는 생각들을 직관적으로 통찰하시고 계셨음을 나타낸다. 믿음이 적은 자들아 - 예수께서 당신의 제자들에게 가끔 사용하신 독특한 표현이다
이는 '믿음이 없는'이라는 표현과는 달리 그들이 예수의 인격과 신분을 믿긴 믿되 그분의 능력 또는 역사(役事)를 온전히 믿지 못하고 의심하거나 잊고서 생각치 않고 있음을 지적한 말이다
그리스도는 당선의 사람들에게 온전하고도 전적인 믿음을 바라고 계신다. 어찌 떡이 없음으로 서로 의논하느냐 - 예수께서는 그들의 물질 중심의 사고를 질타하시고 그들로 하여금 진리에 대한 바른 시각을 지니도록 인도하시려 하셨다. 그러나 믿음이 없이는 그리스도께서 계시하시는 진리를 조금도 파악할 수가 없다
[마 16:9]
너희가 아직도 깨닫지 못하느냐 떡 다섯 개로 오천 명을 먹이고 주운 것이 몇 바구니며....."
아직도 깨닫지 못하느냐 - 여기에서 깨달음이란 이성적 깨달음 또는 지적 인지를 가리킨다. 이는 곧 제자들이 예수께서 베푸신 교훈과 각종 이적을 접하고서도 아직 이성적 지식으로 완전히 수납하지 못하고 있었음을 반영한 말이다
이는 곧 이적을 경험하는 그 자체가 전인적인 지식에 이르게 할 수 없음을 가르친다. 진정 성령의 내적 조명없이는 진리가 진리로 받아들여질 수 없는 것이다(
몇 바구니 - 여기 '바구니'에 해당하는 헬라어 '코피노스'는 여행자들이 지니고 다녔던 조그마한 손바구니를 가리킨다. 이는 오병이어의 기적적 급식 사건 뒤에 제자들이
그 남은 떡 조각을 거둬들일 때 사용했던 용기이다. 이는 뒤이어 나오는 '광주리'란 말과 대조되어 오병이어 사건과 칠병이어 사건이 본질적으로 다른 각각의 두 이적이었음을 확연히 보여준다.
[마 16:10]
떡 일곱 개로 사천 명을 먹이고 주운 것이 몇 광주리이던 것을 기억지 못하느냐....."
몇 광주리 - '광주리'에 해당하는 원어 '스퓌리스'는 장년이 그 속에 들어가 웅크릴 수 있을 만큼의 큰 바구니이다. 이는 9절에서 말하는 '바구니'보다 훨씬 더 큰 것으로 칠병이어 사건 때 사용되었던 것이다
기억지 못하느냐 - 예수께서 제자들을 질책하신 또 하나의 이유는 그들이 '기억'해야만 했던 그 순간에 과거의 이적적 체험을 망각하고 있었다는 데 있다. 즉 그들은 예수의 두 이적 사건 흘러간 과거의 일로 간과해버렸지 그것을 산 경험, 산 지식으로 수용하여 현실 성활에 재현, 재생시키지 못했던 것이다.
한편 이스라엘 백성들은 일찍부터 과거 하나님이 베푸신 은혜와 기적 사건들을 대대 후손에게 전하고 기억하도록 하는 종교 교육을 시행했었다
[마 16:11]
어찌 내 말한 것이 떡에 관함이 아닌 줄을 깨닫지 못하느냐 오직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의 누룩을 주의하라 하시니...."
어찌 내 말한 것...깨닫지 못하느냐 - 예수께서는 거듭해서 제자들의 잘못된 인식과 무지를 책망하고 계신다. 사실 예수께서는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이 이미 주어진 수많은 증거들을 믿으려 하지 않고,
인위적인 표적만을 구했기 때문에 그들의 '교훈'을 질타하셨다. 그런데 제자들이 지금 예수와 그가 베푸신 이적을 믿지 않는 바로 그러한 불신앙적 태도에 접근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예수께서 베푸신 이적들은 믿음을 강요하지 않는다.
그러나 믿음이 있는 자는 그 이적들이 지닌 중요한 의미들을 확실히 인식하게 될 것이다. 이런 이유로 예수께서는 두 급식 사건이 주는 상징적인 의미를 다시 기억토록 촉구하셨뎐 것이다.
[마 16:12]
그제야 제자들이 떡의 누룩이 아니요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의 교훈을 삼가라고 말씀하신 줄을 깨달으니라......"
그제야 제자들이...깨달으니라 - 예수께서는 자신의 제가들에게 마치 어린아이와 같이 하나하나 설명하며 진리를 깨치도록 하시지 않으셨다. 대신 당신이 주신 계시를 그들이 깊이 생각하여 스스로 깨닫도록 하는 영적 훈련을 통해 성슥한 제자로 자라게 하셨다.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의 교훈 - 이는 위로부터 내려온 참계시와는 반대되는 인본주의적 교훈을 가리킨다. 이를 좀더 세분하면 바리새인들은 형식적 율법주시자요 전통주의자들로서 자기 힘으로 얻는 의를 강조하였다.
특히 그들의 의식과 유전은 위선적이며, 이율 배반적인 것으로 마침내 영적인 무지와 전인적인 죽음을 초래하게 만든다. 이에 비해 사두개인들은 모세 5경시 권위만 인정하고
부활과 영생과 사후의 영원 세계 및 귀신의 실재를 거부하는 현세주의, 이성주의, 자유주의, 기복주의적 이론가들이었다 특히 그들은 실친적인 면에서 언행이 불일치한 위선자들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이스라엘 제사장 계급의 주류를 형성하고 있으면서, 교묘한 합리주의적 교훈을 통해 백성들을 미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