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無常.有為.心緣生 : 잡 214, 241
2. 無常.有為.思願緣生 : 잡 306
3. 無常.有為.心所緣生 : 잡 357, 759
4. 無常. 有為. 心因緣生 : 잡 1028, 1169
경의 내용을 정리하면,
잡 214 식(근경), 촉, 수, 상, 사 : 무상 유위 심연생
잡아함214에 대응하는 니까야 SN 35,93 : inconstant, changeable, of a nature to become otherwise
잡 241 근[안이비설신]경식 , 촉, 수: 무상 유위 심연생
잡 306 4무색음[(식,촉), 수,상, 사], 색음[근, 경]: 무상 유위 사원연생
잡 357 법주지: 무상 유위 심소연생
잡 759 세가지 느낌: 무상 유위 심소연생
잡 1028 몸, 세가지 느낌: 무상 유위 심인연생
잡아함 1028에 대응하는 니까야 SN 36.7: inconstant, fabricated, dependently co-arisen.
잡 1169 색, 수, 상, 사, 욕: 무상 유위 심인연생
구체적으로 잡 214의 심연생과 관련된 부분을 보면,
眼.色因緣生眼識。彼無常.有為.心緣生。
안.색인연생안식。피무상.유위.심연생。
色若眼.識。無常.有為.心緣生。
색약안.식。무상.유위.심연생。
此三法和合觸。觸已受。受已思。思已想。
차삼법화합촉。촉이수。수이사。사이상。
此等諸法無常.有為.心緣生。
차등제법무상.유위.심연생
眼과 色을 인연하여 안식(眼識)이 생기나니, 그것은 무상하고 함이 있으며 마음을 인연하여 생긴 것이다.
만일 색과 안과 식이 무상하고 함이 있으며 마음을 인연하여 생긴 것이라면,
이 세 가지 법이 화합하는 觸, 접촉 뒤의 느낌[受], 느낌 뒤의 의도[思], 의도 뒤의 생각[想],
이러한 모든 법도 다 무상하고 함이 있으며 마음을 인연하여 생긴 것이다.
Q1.
여기에서 그것(彼)은,
무엇을 지칭하는 것일까요?
안식 만을 지칭하는 거라면
뒷 문장(만일 색과 안과 식이 무상하고 함이 있으며 마음을 인연하여 생긴 것이라면,) 과의 연결이 어색합니다.
뒷문장과 매끄럽게 연결되려면,
그것(彼)은 안, 색, 안식 모두를 지칭하는 것으로 보아야 하지 않을까요?
그러면 이런 질문이 일어납니다.
[眼과 色을 인연하여 안식(眼識)이 생기나니] 에서
[그것(眼과 色과 眼識) 은 무상하고 함이 있으며 마음을 인연하여 생긴 것이다]란 결론이
어떻게 가능할까요?
Q2.
잡 1028 몸, 세가지 느낌: 무상 유위 심인연생
잡아함 1028에 대응하는 니까야 SN 36.7: inconstant, fabricated, dependently co-arisen.
을 살펴보면,
심인연생 은 dependently co-arisen 에 해당하는 표현입니댜
왜 '심' 이라는 말을 덧붙였을까요?
첫댓글 니까야와 아함의 차이점입니다. 니까야-> 연이생, 아함-> 심연생. 또한 영문이나 팔리 니까야를 해석해서 아함을 만든 것이 아님을 생각하면 '심'을 덧붙힌 것이 아니라 아함경 결집자들은 부처님의 가르침에 대한 이해를 당연히 그렇게 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요? 아함경전의 내용을 통해서 거의 일관적인 흐름이라 생각이 드는데요.
심이 이미 깔려있는 무드라면 연이생은 자연스러운 것일 것입니다.이런것이 문제가 될수 없습니다.차라리 그들은 중요한 12연기 환멸문의 6입처에서 6입멸이 감각기관일때 죽음일수 밖에 없는 부조화를 설명해야 합니다.
또한 환멸문을 실제 죽으면 그만이라는 단멸로 이해하는 것도 큰 문제점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요즘은 그런 시각이 많으신 것 같더군요. 다른 곳에서도요.
지난번 어느 분이 니까야는 연이생인데 아함은 심연생이니 아함이 나중에 결집되었다고 무조건 대승적인 '심'을 덧붙힌 것이 아니냐고 하던 그 글이 생각이 나네요. 니까야도 영문을 하나하나 보면 그것이 마음을 전제로 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던데 한국에서 니까야 공부하시는 분들이 특히 그 둘을 다르게 이해하고 계신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질문 1번은 앞문장과 뒷문장이 매끄럽게 연결되려면 안, 색, 안식 모두를 지칭하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하신 것 같은데요.
바로 아래글인 중론글에서 마음은 어디에서 연기 하느냐란 질의와 본문 예는 다르지요. 12연기 명색은 어디에서 연기하느냐 하는 질문을 잘못되었다고 하지 않는 것 처럼요.무슨뜻인지 아시리라 믿습니다.안이라는 마음은 색이라는 마음을 인연합니다. 이것을 안이라는 마음은 색이라는 마음과 연기한다고 합니다. 이런말이 잘못되었을까요? 아닙니다. 하여 본문 경우처럼 글자로 논리를 재단해서는 안된다고 보아집니다.
이런일은 모두 12처가 근경이나 마음이냐 하는 문제에서 발생합니다. 눈과대상 이 인연하여 식이 나오나요? 아닙니다.생물적눈이 물적인 대상을 만나면 식이 생긴다는 것은 깊이 생각하지 않는 경우입니다.12처의 설명은 감각기관과 대상이라는 것은 이미 포함된 이야기 입니다. 생각을 한번 해보지요.감각기관과 대상이 없으면 동물이든 사람이든 성립되는 것이 없습니다.
살아 있을수가 없습니다.살아있지 않는다는 것 식도 없습니다. 이부분도 아시라 믿고요. 12처란 감각기관에 대해서는 이미 접수하고 들어간 것입니다.안은 눈을 통해 봄으서 생긴 마음이야기라고 생각하는 것이 그나마 이치에 맞습니다.그러나 12처는 이곳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12처는 인식이 되기 전의 의식상태인데 본다는 것은 18계상태이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이것도 이상하죠.안,색,6식은 동시생이므로요.결론은 이러한 교리속에서 우리가 생각해야하는 것은 마음에 대한 근접입니다.
지금 옆방에 올려지는 아함경에 안을 눈이라고 보면 발생하는 전문들의 오류를 많이 꼬집고 있습니다.글을 볼때 어느 한문장이 틀린다는 것은 배경에 설명되는 말과 조화를 이루지 않기 때문입니다.안을 눈으로 해석하면 그뒤에 설명되는 문장들이 이상해진다면 무엇을 따르시렵니까? 물론 이런경우는 교리중심이 아닌 글의 논리성 문제 겠지만요.
더욱이 12처가 마음인것은 그외 많은 교리에서도 알수 있습니다. 눈이 대상을 만나면 식이 나타나는 것이 합당하다고 생각하시는 분 계시면 책에 나오니 그렇다고 막연히 말씀하지 마시고 좀 소상히 말씀해 주세요.^^
대단히 예리한 질문같습니다.인연과 연기의 차이점을 알아야 한다고 생각 합니다.경전에도 인연과 연기의 차이점을 나누지 않고 같이 쓰여진곳이 있어 인연과 연기의 구분을 같은 것으로 오해를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인연은 인과연이 결합된말입니다.씨가 인이되고 물과 땅 속의 자양분이 연이 되어 식물의 싹이 틉니다. 이렇게 인과 연에 의해 새로운 사물이 생길 때, 우리는 어떤 것이 인연에 의해서 생겼다고 합니다.
그러나 연기는 이러한 의미와 다르다고생각합니다.연기란 '...때문에 태어 나는 것', '...을 말미암아 생기는 것' 이라는 말임을 알 수있다. 이것을 다른 말로 표현하면, 모든 존재는 그것을 성립시키는 여러 가지 "원인이나 조건 때문에 생기는 것"이고, "원인이나 조건을 말미암아서 형성되는 것"이라는 것이다.라고 배우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그것(彼)은,연생의 뜻을 나타내는 것으로 이해 합니다.
"심인연생 은 dependently co-arisen 에 해당하는 표현입니댜 왜 '심' 이라는 말을 덧붙였을까요?' 는 (眼과 色과 眼識) 말미암아 의지해서 일어난 것이 마음이다 라고 생각하며 이의지 하여 일어난 마음은 ("무상 유위 심인연생")의지한것이 사라지면 마음도 무상하다는 뜻으로 이해하면 허물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