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송, 오늘도 그날처럼 눈이 내린다.
누군가가 그리움이라는 소재를 던져 주면 우리는 십중팔구 빙그레 미소 짓게 된다. 뇌에서 어떤 호르몬이 작용하면서 우리를 과거 어느 시점으로 데려다 놓기 때문이다. 누구나 그림동화 같은 이야기 하나쯤은 간직하고 있으니 당연히 미소 짓는 것이다.
약 40여 년 전, 1980년 전후, 열다섯 살 언저리의 중학생 시절이었다. 지금은 거의 사라진 풍습인데 그땐 크리스마스이브의 밤에 교회에서 새벽송 행사가 있었다. 내가 살던 시골엔 크고 작은 여덟 개의 마을을 아우르는 교회가 있었는데 새벽송은 거리와 상관없이 여덟 개의 마을을 한 집 한 집 모두 돌았다.
12월 24일 밤, 성탄전야행사가 끝나고 중고등 학생들은 교회 사랑방에 모였다. 사랑방은 예전에 목사 가족이 살던 초가집이었다. 그땐 목사 사택을 새로 지은 이후라서 이전의 사택을 사랑방으로 사용했던 거다. 방은 모두 세 개여서 고등학생 방과 중학생 방, 교회학교 교사 방으로 나뉘었다. 그날 중학생 방엔 열댓 명의 아이들이 있었다.
우선 먼저 남학생들과 남교사들이 두 개의 아궁이에 장작불을 지폈다. 그 사이에 여학생들과 뺀질이 남학생들은 방에 이불을 펴놓고 놀이에 빠져 시끌벅적했다. 빨간 장작불이 달아오르면 아궁이 한가득 장작을 쑤셔 넣고 남학생들도 방으로 들어갔다. 그러면 의리 있는 선배 여학생이 뺀질이 남학생들을 윗목으로 몰아놓고 아랫목은 고생한 남학생들에게 양보하게 했다. 그 당시‘예배당은 연애당’이라는 말이 있었는데, 아마도 남녀가 한 방에서 놀 수 있는 이런 분위기 때문에 생긴 말인지도 몰랐다. 지금 생각해보면 당시 교회학교 교사들끼리 결혼한 사례가 많았다.
일단 자리가 정리되면 본격적으로 게임에 돌입했다. 잠이 많거나 노는 게 귀찮은 학생들은 아예 방바닥에 누워서 구경만 했다. 요즘 아이들은 프라이팬 놀이, 당근 놀이, 배스킨라빈스31 놀이, 아파트 게임 등을 한다는데, 가끔 아이들이 노는 것을 보면 그 규칙과 속도를 도무지 이해하기도 따라가기도 어렵다. 반면, 그땐 아주 단순했는데 방구석에서 할 수 있는 놀이는 윷놀이나 묵찌빠, 스무고개와 같은 놀이였다. 또 누군가 한 명을 꼭 찍어서 노래를 시키는 경우도 있었다.
그날은 여학생 하나가 스무고개 게임을 제안했는데 그 내용이 이랬다. 짓궂게도 교회 안에서 좋아하는 이성 상대가 누구냐를 놓고 돌아가며 질문하는 것이었다. 한 학생을 놓고 다른 학생들이 한 번씩 질문하면서 그 학생이 좋아하는 이성 상대를 맞추는 것이다. 물론 교회 안에서 이상형에 가장 가까운 이성을 무조건 한 명씩 정해 놓고 하는 게임이었다. 게임을 제안한 여학생이 제일 먼저 남학생 하나를 지목했는데 자기보다 오빠였다. 그러니까 그 여학생은 그 오빠가 자기를 좋아하는지 어떤지를 알아보고 싶었던 모양이었다. 돌이켜보면 진실 게임 같은 것이었는데, 그날 그 여학생이 그 게임에 만족했는지 어떤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내 차례였다. 대여섯 번까지의 질문을 요리조리 잘 피하고 있었는데 내가 이상형으로 콕 찍은 여학생 소녀가 질문하는 순서였다. 소녀는 내 눈을 빤히 바라보며 싱글싱글 웃더니, 장난스러운 표정으로 내게 노래를 불러 달라고 했다. 지난가을 학교에서 소풍 갔을 때 불렀던 그 노래가 듣고 싶다고 했다. 순간 나는 소녀가 뭔가를 질문하면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었는데 노래를 시켜 당황스럽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다행스럽기도 했다.
노래 제목은 가수 정태춘의 ‘촛불’이라는 노래였다. 소풍 때 한 번 무대에 섰던 경험이 있어 그렇게 떨리지는 않았으나 그 소녀 코앞에서 노래하려니 심장이 콩닥거렸다. 그래도 노래는 그런대로 잘 불렀던 것 같다.
‘소리 없이 어둠이 내리고, 길손처럼 또 밤이 찾아오면 ......’
새벽 2시쯤 중학생과 고등학생, 교회학교 교사, 그리고 젊은 집사들이 예배당에 모였다. 새벽송을 시작할 시각인데, 우선 먼저 누가 어디로 가야 할지 팀을 나눠야 했다. 팀은 모두 다섯 팀이었다. 1팀은 교회 주변 팔풍정 마을 담당이었고, 2팀은 시나무니와 뒷말, 3팀은 세실과 되제, 4팀은 개티, 5팀은 너금배와 윗개티였다. 그중에 너금배와 윗개티 코스는 가구 수는 적었으나 거리가 총 4킬로미터쯤 됐는데 절반은 산길을 가야 해서 모두가 피하는 곳이었다. 더군다나 그날은 지난밤부터 눈이 계속해서 내렸다.
그런데 순간 소녀가 옆으로 다가오더니 자기는 윗개티로 갈 거라며 귓속말로 말하고는 스쳐 지나갔다. 또다시 심장이 쿵쾅거렸다. 잠시 후 사회자가 5팀 신청자를 받았다. 5팀은 이듬해 봄에 결혼하기로 한 교사 커플이 인솔자로 정해져 있었다. 내가 재빨리 손을 들자 소녀가 따라 손을 들었다. 그리고 내 친구 하나와 후배 여학생 하나가 손을 들었다. 그렇게 5팀은 모두 6명이었다. 그러자 깐족대기 좋아하는 선배 하나가 이렇게 말했다. 어! 저 팀은 짝짜꿍이네!
새벽송은 보통 새벽 3시에서 6시 사이에 한 집 한 집 찾아다니며 아기 예수의 탄생을 찬양하고, 새해 복 많이 받으라며 인사하는 것이 주된 내용이었다. 찬양은 주로 ‘기쁘다 구주 오셨네.’라는 제목의 찬송을 불렀다. 그러면 잠에서 깬 집주인이 밖으로 나와 함께 찬송했다. 찬송이 끝나면 다 같이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며 인사를 나눴다. 그런 다음 집 주인은 미리 준비한 과자류의 선물을 산타클로스 자루에 넣었다. 산타클로스 자루는 남학생이나 남교사가 번갈아 가며 짊어지고 다녔다. 당시 우리 시골에선 교회에 다니지 않는 집에서도 새벽송을 했는데 대부분 집주인은 꼭 과자를 준비했다가 줬다. 때때로 따듯한 음료를 준비했다가 주는 경우도 있었다. 과자는 성탄 예배가 끝난 후에 교회학교 아이들에게 나눠줬다.
그렇게 너금배 마을을 한 바퀴 돌고 이젠 윗개티로 가야 했는데 그곳부터는 산길이었다. 눈이 많이 쌓여서 길과 밭과 도랑의 경계를 제대로 구분하기 어려웠다. 윗개티엔 세 가구가 살았는데 모두 교회에 다니지 않았다. 하지만 해마다 과자를 준비해놓고 기다렸기 때문에 생략할 수는 없었다.
그야말로 온통 하얀 겨울왕국의 밤이었는데 소녀의 정수리보다 높은 하늘은 까맣고 나머지는 하얀 세상이었다. 교사 커플이 먼저 앞장섰다. 그 뒤에 후배 여학생이 따라붙었고 내가 친구의 등을 떠밀자 친구가 그 후배여학생을 따라갔다. 그리고 소녀가 내 앞에서 걸었고 내가 맨 뒤에서 소녀를 쫓아갔다. 한 발 한 발 내디딜 때마다 눈 속에 무릎까지 푹푹 빠졌다. 얼마쯤 가다가 교사 커플이 길을 잘못 들었는지 여교사가 짧게 비명을 질렀다. 도랑에 빠진 모양이었다. 교사 커플은 다시 길을 잡았으나 이번엔 소녀가 미끄러져 넘어졌다. 쫓아가 팔뚝을 붙잡고 일으켜 주자 소녀가 내 손을 덥석 잡았다. 그러고는 내 점퍼 주머니에 맞잡은 손을 쑥 집어넣었다. 장갑을 끼고 있었지만, 소녀의 작고 하얀 손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그 이후 소녀는 아무런 말이 없었다. 언제나 명랑하고 쾌활한 친구였는데 조용했다. 그래서 그랬는지 주머니 속에서 느껴지는 떨림은 아주 오랫동안 지속됐다. 40여 년이나 지난 지금도 눈이 이렇게 많이 오는 날엔 가끔 그 떨림이 그립다.
윗개티 마을 입구에 도착하자 웬일인지 눈길이 뻥 뚫려있었다. 마을 사람들이 그 밤중에 밤새도록 눈을 치운 것이었다. 그리고 세 가구 중 가운데 집 굴뚝엔 연기가 펑펑 피어오르고 있었다. 마을 사람들이 가마솥에 물을 끓이고 있었던 거다. 새벽송이 끝나자 마을 사람들은 이런 산속까지 오느라고 수고했다며 정말 고맙다고 거듭 인사했다.
잠시 후 마을 사람들은 가마솥에서 펄펄 끓는 라면을 한 사발씩 곱빼기로 퍼담아 상을 차렸다. 우리는 뜨끈뜨끈한 아랫목에서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라면을 후루룩후루룩 먹었다. 지금까지 먹어 본 라면 중에서 가장 맛있는, 세상 맛있는 라면이었다. 또한, 라면과 함께 먹은 총각무의 아삭함과 얼음 동동 동치미의 맛은 결코 잊을 수 없다. 그 이후로도 수없이 많은 라면을 먹어봤지만, 그날 먹은 라면 맛은 두 번 다시 느낄 수 없었다. 사실 지금은 그 라면 맛이 어땠었는지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그날의 기억은 지금까지 조금도 지워지지 않았다. 어쩌면 그날 분위기가 내게 지독한 그리움으로 각인된 모양이었다.
내려오는 길에도 내 점퍼 주머니 속에는 소녀의 손이 들어 있었다. 이번엔 소녀의 손이 맨손이었는데 아랫목에 장갑을 놓고 왔다고 했다. 안타깝게도 나는 장갑을 벗을까 말까 고민만 하다가 시간을 다 보냈다. 그렇게 겨울왕국 이야기는 꿈처럼 끝났다. 그런데 나는 소녀의 첫사랑이 되지 못했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그날 이후 소녀는 나를 차갑게 대했다. 내가 좀 더 적극적인 자세를 취했다면 어땠을지 가끔 궁금할 뿐이었다. 어쨌거나 이렇게 눈이 많이 오는 날엔 그날 그 소녀와 겨울왕국과 세상 맛있었던 라면 맛이 그립다.
작년 성탄절은 오랜만에 시골에서 지냈다. 안타깝게도 그 시골 교회는 예전과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사랑방은 아예 없어졌고 예배당도 새로 지었다. 또한, 학생들도 없었고 그때처럼 새벽송도 돌지 않았다. 그냥 성탄 예배를 드리는 것이 전부였다. 시골에 아이들이 없어 성탄전야행사도 하지 않았다. 게다가 코로나19 바이러스 확산과 관련하여 성탄절 점심도 함께 먹지 않았다.
새벽송은 천사들로부터 아기 예수의 탄생 소식을 들은 목자들이 아기 예수를 찾아가 찬양으로 경배한 것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당시 목자들은 사랑과 평화를 찬송하지 않았을까? 그날 우리도 분명 사랑과 평화를 찬송했다. 그런데 최근 코로나 시대에 대중을 올바른 세상으로 인도해야 할 일부 목자(목사)들이 오히려 세상을 어지럽히고 있어 참으로 안타깝다. 왜 그들은 사랑과 평화를 찬송하지 않는 걸까? 새벽송의 풍습이 거의 사라진 지금, 우리는 언제 어떻게 사랑과 평화의 소식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할 수 있을까? 사랑과 평화의 소식을 노래하는 일! 코로나 시대에 꼭 필요한 일이 아닐까?
그리움은 두뇌의 기억능력에 따른 의식작용으로 기억이 적으면 그리움도 적어진다고 한다. 또 그리움은 좋은 느낌의 잔상이라고 한다. 지금 내게 새벽송이란 그리움이다. 하지만 새벽송과 그리움의 관계를 논리적으로 설명할 방법은 없다. 또 제대로 표현할 자신도 없다. 그리움이란 본래 지극히 주관적이어서 그 대상도 그 본질도 모두 다를 것이기에 과학적으로 설명할 필요가 없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옥시토신이라고 하는 사랑 호르몬은 ‘그리움의 호르몬’이라는 별칭이 있단다. 그것은 상대를 그리워할 때 발생하는 호르몬이기 때문이란다. 결국, 그리움이 사랑을 유지하는 힘인 것이다. 그래서 첫사랑은 그리 오래도록 잊히지 않는 모양이다. 이처럼 내게 있어 그리움이란 분명히 어떤 호르몬 작용을 유발한다. 그 작용은 눈물을, 미소를, 술을, 그리고 때로는 이렇게 글을 쓰게 한다. 그날 새벽송은 오늘 그리움의 담장을 넘어 글이 된다.
누군가가 당신에게 옛이야기를 들려준다면, 그 사람은 지금 그리움 속에 빠진 것이다. 또한, 그리움의 호르몬 작용으로 인해 행복에 빠진 것이다. 그러니 그 사람에 곁에 머물러 당신도 행복해지시길.
2021년 1월, 눈이 많이 오는 새벽에.
첫댓글 나도 장갑을 벗을까 말까 망설이다가 소녀의 손을 놓쳤어요.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아직도 아른 거리는 그녀....
아른거릴 때마다 좋은 호르몬이 작용해서 건강에도 도움될 듯합니다
정감 있는 여운이 잔잔히 흐르는 시절이었군요. 그 날은 통행금지가 없어 밤새 돌아다녔지요. 점심 때인데 라면을 끓여야겠네요, ㅎㅎ ^^
네 ㆍ지금 생각해보면 논밭에서 일하느라 고생하기도 했으나 시골에서 자란 것이 행운이었습니다
주머니 속의 그 떨림이 그리움이군요.. 첫사랑이 아니되었으니 아쉬움 가득 느껴집니다.
옛 그리운 얘기를 들으니 저도 방금 행복해졌답니다.
옛이야기는 누구의 이야기든 미소짓게 합니다ㆍ그래서 자꾸 옛날 이야기를 하나 봅니다
이 글을 읽으며 나도 옛추억 하나 끄집어 내 봅니다.
추억은 지금의 나를 살게 하는 힘이 있는 것 같습니다ㆍ
그 사랑의 호르몬이 작가님을 만들었겠지요. 그런데 그 소녀는 지금 기억하고 있을까요?
아마도 지금의 저는 그랬을 것 같습니다ㆍ그리고 나중에 그러니까 30년쯤 후에 물었을 때 딱 잡아뗐는데 기억을 못했나 봅니다 ㆍㅋㆍㅋ
저도 가끔 새벽송 돌던 그시절 크리스마스를 떠올릴 때가 있어요.
무엔지 모르고 이리저리 떠돌면서 무척 즐거웠던 기억이 있네요.
네 ㆍ그땐 모든 것이 다 즐거웠어요ㆍ지금보다 오히려 마음은 더 풍요로웠어요
지나간 시절의 따뜻한 이야기를 읽으니 마음이 절로 훈훈해집니다.
새벽송은 이제 찾아볼 수 없는 아련한 과거의 풍속이 되었습니다.
네 ㆍ과거의 풍속입니다 ㆍ아쉬운 일입니다 ㆍ요즘학생들은 어떤 기억을 쌓아가고 있는지 역시 아쉬운 일입니다ㆍ
눈 내리는 날의 그리움이 가슴을 뭉클하게 합니다. 잠시 추억 여행을 해봅니다.
아름답고 진솔한 이야기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리움은 좋았던 기억의 잔상이랍니다ㆍ그 시절은 다 좋았던 것 같습니다ㆍ
누구나 어린시절 비슷한 체험의 동질감 얻으며 잘 읽습니다.^^
네ㆍ그시절엔 누구나 다 그랬던 것 같습니다ㆍ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