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스티브 잡스가 아이폰을 처음 공개할 당시, 아이폰은 4GB, 8G, 16GB의 내장 메모리를 탑재한 세 종류의 모델을 선보였다. 4GB는 당시에도 조금 적었을지 모르겠지만, 8GB 정도라면 충분히 사용할 만했고, 16GB라면 넉넉한 용량이었다. 그리고 10년이 훌쩍 지난 지금에 와서는 아무리 저가형 스마트폰이라도 적어도 16GB의 내장 메모리는 탑재하고 있다. 프리미엄급 스마트폰이라면 최소 64GB부터 최대 256GB까지의 모델이 일반화되고 있다.
하지만 이 정도 용량도 이제는 넉넉하다고는 할 수 없다. 스마트폰의 성능이 발전하면서 사진 한 장만 찍어도 3~4MB는 차지하고, 동영상이라도 촬영하면 수백 MB는 우습게 잡아먹는다. 앱의 용량도 갈수록 커지기만 한다. 스마트폰이 처음 등장한 초창기에는 어떻게든 용량을 줄이는 것이 미덕이었지만, 요즘은 용량이 늘어도 퀄리티를 우선시한다. 최신 게임은 1GB를 넘는 경우도 흔하다. 이쯤 되면 64GB의 메모리 용량도 부족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이때 필요한 것이 바로 메모리카드다.
외형으로 구분하는 메모리카드의 차이
막상 메모리카드를 구입하려고 쇼핑몰을 둘러보면 당황하게 된다. 종류도 너무 많고, 도대체 알 수 없는 용어들이 가득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메모리카드는 어떻게 구분하고, 무엇을 선택해야 할까? 현재 판매되는 메모리카드의 유형을 알아 두면 제품을 구매할 때 도움이 될 것이다.
▶ CompactFlash
한때 가장 대중적으로 가장 널리 사용됐던 것은 CompactFlash, 보통 CF라고 부르는 메모리카드다. 1994년 샌디스크에서 개발한 CF카드는 42.8mm x 36.4mm의 직사각형 모양에 3.3mm 두께로 SD카드와 비교하면 육중한 덩치를 자랑한다. 디지털카메라와 PDA 등에서 많이 쓰였기 때문에 당시에 디카 좀 만져 본 사람에게는 익숙한 규격의 메모리카드이기도 하다.
시장 경쟁에서는 SD카드에 완전히 밀리긴 했지만, CF카드는 지금도 계속 생산 중이고 기술도 발전 중이다. 그 이유는 성능 면에서는 CF카드가 SD카드를 앞서기 때문이다. 고화질의 전문가용 영상장비로 촬영한 데이터는 용량이 어마어마한데, CF카드의 전송 속도가 SD카드보다 빨라서 작업을 효율적으로 처리할 수 있다. 하이엔드급 DSLR들도 CF카드와 SD카드 슬롯을 모두 제공하거나 CF카드 슬롯만 단독 제공하는 경우가 많다.
▶ Memory Stick
CF카드 외에도 몇몇 회사들에 의해 개발된 다양한 형태의 메모리카드들이 있는데, 대부분 개발한 회사에서만 사용된 독자 규격이라고 볼 수 있다. 대표적으로 소니의 메모리스틱을 꼽을 수 있다. 메모리스틱은 ‘스틱’이라는 이름처럼 길쭉한 직사각형 모양의 메모리카드였지만, 나중에는 길이가 반토막 난 메모리스틱 듀오로 대체되고, 마이크로 사이즈 M2까지 선보이면서 ‘스틱’이라는 이름이 무색해졌다.
메모리스틱은 주로 소니의 디지털카메라와 휴대용 게임기에 사용되어, 소니 전자제품을 사용하려면 어쩔 수 없이 구매해야 했다. 문제는 가격대가 다른 메모리카드보다 비싸서, 소니 소비자들의 원망을 샀다. 다행히 샌디스크가 메모리스틱을 생산하면서 가격 안정화에 혁혁한 공을 세웠다. 근래에는 소니에서도 점차 메모리스틱의 비중을 줄여가는 추세인데, 그동안 깔린 제품이 많다 보니 여전히 메모리스틱을 판매하고 있다.
▶ Secure Digital
보통 SD카드로 불리는 이 메모리 규격은 1999년에 샌디스크, 도시바, 파나소닉이 공동으로 개발했다. SD카드는 처음부터 메모리스틱보다 작았는데, 2000년에 소니가 메모리스틱을 뚝 잘라 SD카드와 비슷한 크기의 메모리스틱 듀오를 출시하자, 2003년에 기존의 2/3 크기인 미니SD카드를 내놓았다. 그리고 2005년에는 다시 초소형의 마이크로SD카드를 선보이며 앞서 나갔다.
작고 가벼운 마이크로SD카드는 휴대전화 같은 소형 전자기기들의 외장 메모리로 인기가 높았고, 폭발적으로 성장한 스마트폰 시장을 등에 업고 메모리카드 시장을 평정하게 된다. 이제는 사실상 표준 규격이라도 봐도 무방할 정도가 됐다. 참고로 SD카드는 메모리스틱 듀오, 마이크로SD카드는 M2와 크기 및 형태가 비슷해 주의해야 한다. 메모리카드 상단에 제품명이 새겨져 있으므로 알파벳만 읽을 줄 알면 구분이 어렵지는 않다.
성능에 따른 메모리카드 선택 가이드
메모리카드를 구매할 때 가장 먼저 살펴봐야 하는 것은 당연히 규격이다. 내가 사용하는 기기의 메모리 슬롯이 CF카드인지, 메모리스틱인지, SD카드인지를 알아야 그에 맞는 제품을 구매할 수 있다. 하지만 지금에 와서는 스마트폰을 비롯한 대부분의 전자 기기들이 마이크로SD카드를 사용하고 있다. 그래서 아래의 가이드는 SD카드를 기준으로 작성해 보았다.
▶ 용량
▲ SD, SDHC, SDXC의 세 버전을 모두 지원하는 샌디스크의 SD카드 어댑터
메모리 용량이야 크면 클수록 좋겠지만 필요 이상의 제품을 구매하면 그만큼 지출도 늘어나므로 적절한 선에서 타협할 필요가 있다. 판매 중인 SD카드의 제품명을 보면 SDHC와 SDXC가 있는데, 이것만으로도 용량을 가늠할 수 있다. 가장 초기의 제품인 SD는 공식적으로 2GB까지만 지원한다. 그다음 버전인 SDHC는 최대 32GB까지, 최신 버전인 SDXC는 최대 2TB까지 지원한다. 고용량의 제품을 원하면 SDXC를 구매하면 된다.
▶ 속도
용량을 결정했으면, 이번에는 전송 속도를 살펴볼 차례다. 용량과 달리 전송 속도는 가능한 한 빠른 것을 선택하는 것이 좋다. 전송 속도는 Class라는 단위로 표시를 하는데, 최근에 출시된 SD카드라면 대부분 최고 등급인 Class 10이다. Class 10은 초당 10MB 이상의 전송 속도를 보장한다는 의미다.
기술이 발전하면서 메모리카드의 전송 속도도 더 빨라지게 됐고, 이에 맞춰 UHS라는 새로운 규격이 만들어졌다. UHS는 인터페이스와 속도를 나누어서 표기한다. UHS-I과 UHS-II는 인터페이스 규격으로 UHS-II의 최대 보장 속도가 세 배 빠르다. 하지만 실제 속도는 아직 그에 미치지 못하는데, 속도의 빠르기를 나타내는 U1은 Class 10과 같은 10MB/s를, U3는 최소 30MB/s 이상을 보장한다.
최근에는 여기에 한술 더 떠서 V 클래스까지 등장했다. V 클래스는 비디오 스피드 클래스로, 초고화질 영상 매체에 적합한 속도 구분이다. V10은 Class 10, V30은 U3에 대응하며, 최소 60MB/s를 보장하는 V60와 90MB/s를 보장하는 V90 등급까지 출시되어 있다. V 등급의 SD카드는 아직 국내에 정식으로 출시되지는 않았지만, 해외 구매 대행을 통해 구할 수 있다.
▶ 메모리 유형
어쩌면 메모리카드를 구매하는데 가장 중요할 수도 있는 부분이다. 메모리카드의 수명과도 관계되기 때문이다. SD카드는 플래시 메모리를 사용하는데, 설계 방식에 따라 SLC, MLC, TLC로 구분된다. 플래시 메모리는 셀(Cell)이라는 공간 안에 데이터를 저장하는데, 하나의 셀에 몇 비트의 데이터를 저장하느냐에 따라 싱글(Single Level Cell, SLC), 멀티(MLC), 트리플(TLC)로 구분을 한다.
셀 당 저장하는 데이터의 양이 많을수록 가격이 저렴해지지만, 그만큼 안정성이 떨어지고, 전송 속도도 느려진다. 더 큰 문제는 비트 집적률이 높을수록 수명도 급격히 짧아진다는 점이다. 저장매체의 수명은 읽기 쓰기의 횟수로 결정되는데, SLC 메모리는 10만 회, MLC는 1만 회, TLC는 1천 회의 평균 수명을 갖고 있다.
SLC는 성능 면에서 매우 우수하지만, 가격이 그만큼 비싸고, 제품도 거의 출시되어 있지 않다. 그래서 실질적으로 소비자의 선택은 MLC와 TLC로 좁혀지는데, 데이터의 안정성이나 수명을 고려했을 때 TLC는 가급적 제외하는 것이 좋다. 또한, 제품 정보에서 메모리 유형이 빠진 경우가 많은데 구매 전에 검색을 통해 반드시 확인하고 구매해야 한다.
활용에 따른 메모리카드 선택 가이드
앞서 성능에 대해 장황하게 늘어놓았는데, 간단히 축약하면 SDXC 제품 중 Class 10/ U3 속도를 보장하는 MLC 메모리를 사면 된다. 나머지는 제조사와 용량의 선택이다. 사실 소비자가 더 중요하게 고려해야 하는 것은 메모리카드의 사용처다. 최근의 메모리카드는 기본 성능 외에 다양한 부가 기능을 탑재하고 있는데, 이를 통해 전자 기기의 활용도를 끌어 올릴 수 있다.
▶ 스마트폰용이라면 ‘A1’을 체크
메모리카드는 보통 제품명에 성능과 관련된 정보가 담겨 있고, 이를 제품 표면에도 그대로 표기해 놓는다. 이 표기 중에 ‘A1’을 발견했다면 스마트폰에 특화된 메모리카드임을 의미한다. A1은 스마트폰 앱 구동에 최적화된 메모리카드로 샌디스크 제품군에서 찾아볼 수 있다. 보통 A1을 지원하는 메모리카드는 생활방수와 충격보호 등의 부가 기능도 함께 지원해 전반적으로 스마트폰과의 궁합이 좋다.
▶ 블랙박스용이라면 데이터 안전성을 우선
블랙박스용 메모리카드는 지속적으로 기록하고 지우는 과정을 반복하기 때문에 수명이 가장 중요하다. 무조건 MLC 이상의 제품을 선택해야 한다. 그 다음으로는 데이터의 보호가 중요한데, 렉사의 제품이 이런 조건에 딱 맞는다. 렉사의 메모리카드는 데이터 보호 기능뿐 아니라 복구 프로그램까지 지원한다.
▶ 초고화질 카메라에는 U3
하이엔드급 고성능 카메라는 사진 한 장의 용량이 수십 MB에 이른다. 셔터를 한 번 누를 때마다 수십MB의 파일이 하나씩 생성되는 셈인데, 만약 메모리카드의 전송속도가 느리다면 연사에 지장을 초래하게 된다. 카메라가 CF카드를 지원한다면 고성능 CF카드가 가장 좋은 선택이지만, SD카드만 지원한다면 U3 이상의 속도를 갖춘 메모리카드를 선택하자. 여유가 된다면 V90을 구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 일반 디카를 스마트 디카로?
메모리카드 중에는 자체 와이파이 기능을 탑재한 제품들이 있다. 대표적으로 도시바의 플래시에어 시리즈가 여기에 속한다. 이 메모리카드를 와이파이 기능이 없는 카메라에 장착한 후 사진을 찍으면, 스마트폰 앱을 통해 메모리카드에서 직접 사진을 전송받을 수 있다. 성능은 충분한데 데이터 전송이 불편했던 카메라가 있다면 와이파이 메모리카드로 새 생명을 불어넣어 보자.
기획, 편집 / 홍석표 hongdev@danawa.com
글, 사진 / 석주원 news@danawa.com
원문보기:
http://news.danawa.com/view?boardSeq=64&listSeq=3561196&page=1#csidx5ae1a3a063e08b0a22643c844be95d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