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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인한 달’이 갑니다. 날씨도 제자리로 돌아와 지나갑니다. 그다지 서운하지 않은 것은 더 좋은 달이 오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글쎄, 좋을지 아닐지는 겪어보아야 하겠지만 모르는 바에는 좋게 기대하고 맞는 것이 낫지요. 돈 드는 일도 아닌데 궁상떨며 맞을 필요가 있겠습니까? 여왕을 맞을 준비를 할지어다! 개나리 진달래 벚꽃이 져버린 지도 꽤 되었습니다. 그래도 이런저런 꽃들이 여기저기 줄줄이 피어나고 있습니다. 여왕 맞을 차비를 하는 듯합니다. 기대해볼 만하지 않습니까?
대단한 행사가 기다리고 있기도 합니다. 대통령이 바뀌고 그 거처도 바뀝니다. 나아지려는 것인지 두고 보아야 하겠지만 그러기를 바랍니다. 그나저나 그 앞 도로를 지나다니기가 그리 쉽지는 않을 듯합니다. 전에는 외딴 지역에 있어서 그리 불편함을 느끼지 못했는데 이제는 서울 한복판에 자리했으니 쉽지 않겠지요. 그 길을 지나 약수동이나 한남동으로 갔었는데 말입니다. 이제 혹 갈 일이 생기면 돌아가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하기야 그게 문제이겠습니까? 그냥 걱정 없이 배부르게 살게 해주면 그게 최고지요. 백성이 바라는 것이 뭐 대단합니까?
잔인한 달은 가고 행복한 달이 오고 있습니다. ㅋㅋ 코로나도 견뎌내고 이제는 걸려도 이길 자신이 있을 것 같습니다. 저들은 지지고 볶고 있지만 우리는 지짐과 볶음밥이라도 맛있게 먹으면 됩니다. 건강하게 신나게 계절의 여왕을 맞이합시다. ^)^
2022년 4월의 끝날, 김종우 목사 드림
“너는 내일 일을 자랑하지 말라 하루 동안에 무슨 일이 날는지 네가 알 수 없음이니라” (잠언 27 : 1)
<로스트 시티>
모험 영화라고 하면 금방 떠오르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입니다. 그 시작은 ‘레이더스 - 잃어버린 성궤를 찾아서’였습니다. 벌써 40년 전의 이야기라는 것이 믿어지지 않습니다. 지금도 생생합니다. 한시도 쉴 틈이 없이 전개되는 그 속도감 속에 느껴지는 쾌감은 참으로 대단하였습니다. 모험 영화의 새로운 장을 연 기발한 영화였습니다. 그 후에 정글을 배경으로 한 영화들이 줄지어 나오게 되었습니다. 이야기도 특이했고 전개되는 장면들도 그 때마다 짜릿하게 만들어주었습니다. 진짜 시간이 어떻게 지나가는지 모르게 한 편이 끝납니다. 말 그대로 십년 묵은 체증이 싹 꺼지는 기분을 느끼며 자리에서 일어납니다.
아마도 모험 영화의 표본으로 생각해도 되리라 봅니다. 그 후에 여러 이야기와 특이한 장면들로 만들어진 작품들이 나옵니다. 표본 작품을 딛고 일어서려면 그만한 독창적 이야기나 구성 또는 장면들이 있어야 합니다. 각양의 작품들이 나왔습니다. 그런 기대를 하고 모처럼 모험 영화를 만났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성에 차지 않습니다. 요즘 말로 2% 부족하게 느껴지는 것입니다. 그리 나쁜 것은 아니지만 왠지 허전함을 느낍니다. 물론 이전의 것들과 색다른 점은 있습니다. 일단 남성보다는 여성이 모험의 주역으로 등장합니다. 나서서 모험을 하려 한 것이 아니라 그냥 끌려든 것입니다. 일단 살아서 돌아가야 하니까 모험이 되어버렸습니다. 의도된 것이 아니란 말입니다.
글을 쓰는 작가는 전혀 허무맹랑한 이야기를 만드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게 나올 수도 없습니다. 아무리 소설이라 해도 자신의 소속한 시대와 환경, 역사가 글 안에 스며있게 마련입니다. 더구나 독자들에게 보다 현실감을 부여해주기 위해서는 현장의 묘사가 좀 더 사실적이어야 합니다. 그래서 직접 현장 답사도 하게 됩니다. 아니면 해당 자료들을 수집하고 연구합니다. 그렇게 해서 글에 표현합니다. 독자는 읽으며 그 분위기를 그대로 느낄 수 있습니다. 그래서 때로는 소설 속에서조차 옛날의 모습을 그려낼 수 있습니다. 자신이 경험했던 사실과 비교하며 더욱 실감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만큼 추억이 되살아나고 감동도 크겠지요.
소위 모험연애소설로 이름을 날리고 있는 작가입니다. 그 소설에 나오는 이야기가 오래 전 전해 내려오는 비밀을 안고 있습니다. 작가 ‘로레타’는 그만큼 자료를 모았고 해독하기 위한 언어도 습득하였습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전해져오는 이야기일 뿐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실제로 믿는 사람이 있습니다. 세상에 숨겨진 보물을 찾고 있는 부자입니다. ‘페어팩스’라는 재벌은 그런 보물을 찾아내려는 사람입니다. 부자가 되어 그런 작업을 하게 되었는지 아니면 그런 보물찾기에 성공해서 재벌이 되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또 한 번의 기회를 맞은 것입니다. 그리고 그 열쇠를 로레타가 쥐고 있다는 말입니다. 찾고 있는 보물에 대한 단편지도를 해독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결국 작품 발표회에서 로레타를 납치합니다. 그리고 작품의 표지 모델로 나오는 남자 ‘앨런’이 함께 동행(?)하게 됩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이미 있어야 할 자리에서 멀리 떠나있습니다. 그리고 소설에 나오는 현지로 가고 있습니다. 원해서 가는 여행이 아닙니다. 더구나 보물에 미친 사람의 탐욕을 채워주기 위한 도구가 되는 것입니다. 전혀 허구라고 생각하고 쓴 소설인데 그것을 사실로 알고 찾고 있다니 너무 황당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억지로 따라가다 보니 허구만은 아니라는 사실이 나타납니다. 예상 밖의 현실에 당황하지만 새삼 알아내고 싶은 욕구도 생깁니다. 하지만 이 위험한 여행을 계속해야 하는가? 하는 의문도 따라붙습니다.
특이한 점들을 생각해봅니다.
1. 진분홍 쫄쫄이, 몸에 착 붙는 옷인데, 온통 반짝이로 찬란하게 빛나는 그런 옷을 입고 정글 속을 도망 다닙니다. 도망인지 과시인지 헷갈립니다.
2. 작가와 책 표지 모델의 썸 타기 이야기입니다. 그래도 과속은 삼가서 다른 할리우드 영화들과는 차별하였습니다.
3. 모험영화 같지 않습니다. 그런 볼거리는 별로 없습니다. 코미디라고나 할까요? 두 사람의 입담 이야기라고 하는 것이 맞겠습니다.
4. 문화적 차이일까요? 그다지 웃기지도 않습니다.
5. 보물찾기 모험이라고 하였는데 그 보물의 정체를 알고 보니 사실 매우 특이하다는 것이 이 이야기의 특이사항이라 할 수 있습니다.
6. 모험영화를 원하신다면 그다지 추천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등장 배우들에 비하면 그다지 재미는 없습니다. 어쩌다 맞는 시간이 이것밖에 없어서 택하였습니다. ‘산드라 블록’ 주연 영화 본 것 중에서는 가장 시간 아까운 작품입니다. 영화 ‘로스트 시티’(The Lost City)를 보았습니다.
질문 8. (종말에 일어날 일)
마지막 때에 엄청난 우주개벽이 일어날 것으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해달별이 어두워지고 하늘에서 떨어진답니다.(마 24 : 29) 그런 일이 정말 생긴다면 이 지구가 온전할까요? 그런데 그런 곳에 예수님이 오신다니, 앞뒤가 맞지 않는 것 같습니다. 설명해주시겠습니까?
그 동안 지구 종말을 이야기하는 영화들이 많이 나왔습니다. 그 이유들도 여러 가지입니다. 처음 3차 대전 곧 핵전쟁으로 시작해서 있을 만한 지구 위기로 인한 종말을 이야기한 것입니다. 환경오염, 기후위기, 전염병, 혜성 충돌 등등 외에도 외계인 침공이나 좀비 등장까지 별난 이야기들도 나왔습니다. 아무튼 사람들은 종말에 대하여 궁금해 합니다. 정말 종말이 올까요? 종말을 여러 가지 용어로 표현합니다. 주로 성경에서 말하는 용어이기도 합니다. 흔히 말세라고 합니다. 그 말 그대로 풀이하면 ‘세상 끝’입니다. 막연히 ‘마지막 날’ 또는 ‘마지막 때’라고도 표현합니다. 공통적으로 알 수 있는 것은 결코 좋은 일로 끝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말 그대로 재앙을 당하는 이야기입니다. 왜 이 종말 이야기에는 ‘해피엔딩’이 없는지 모르겠습니다. 우리가 알 수 없는 미래에 대해서는 좋은 일보다는 안 좋은 일을 당할까 걱정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아마도 우리 일반 사람들의 마음이고 생각인 모양입니다. 그래서 보험업이 장사가 되는 것이기도 합니다.
성경에 보면 우리로 그렇게 생각하게 만드는 말씀이 나옵니다. 예수님이 세상 끝을 이야기하면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마 24 : 7 - 8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겠고 처처에 기근과 지진이 있으리니/ 이 모든 것이 재난의 시작이니라” 세상 곳곳에서 전쟁, 기근, 지진이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게 재난의 시작입니다. 다음 또 말씀합니다. 29절 “그 날 환난 후에 즉시 해가 어두워지며 달이 빛을 내지 아니하며 별들이 하늘에서 떨어지며 하늘의 권능들이 흔들리리라” 환난 후에 더 무서운 사건이 생깁니다. 하늘에 엄청난 변화가 생기는 것입니다. 해와 달이 빛을 잃고 별들이 떨어집니다. 세상에, 우리가 영화에서도 보았듯이 지구보다도 훨씬 작은 혜성 하나만 지구에 떨어져도 지구는 무시무시한 재앙을 당합니다. 그런데 ‘별들’이 떨어진다고요? 무슨 사태가 일어나겠습니까? 살아남을 사람이 있겠습니까? 아니 그보다 이 지구가 남아있겠습니까?
그런데 더욱 이상한 일은 그 뒤에 일어납니다. 30절 “그 때에 인자의 징조가 하늘에서 보이겠고 그 때에 땅의 모든 족속들이 통곡하며 그들이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 예, 우리 신자들이 기다리고(?) 있는 주님의 재림이 실현된다는 것입니다. 이해가 안 됩니다. 그 엄청난 재앙으로 지구는 박살이 났는데 거기에 우리 주님은 뭐하려 오신다는 거죠? 이제 차분하게 정리를 해야 합니다. 우리가 앞에서 이미 배운바 있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 중에서 천국에 대한 것과 장래 일에 대한 부분은 비유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방금 읽은 세상 끝에 대한 이야기는 지금 당장의 이야기가 아니라 장래 일입니다. 그러므로 문자대로 읽어서는 안 됩니다. 마 24장이 그렇습니다. 분명히 이 부분은 장래사입니다. 바로 ‘세상 끝’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예루살렘 성전에서 나와 제자들이 예수님께 묻습니다. 3절 “예수께서 감람산 위에 앉으셨을 때에 제자들이 종용히 와서 가로되 우리에게 이르소서 어느 때에 이런 일이 있겠사오며 또 주의 임하심과 세상 끝에는 무슨 징조가 있사오리이까” 제자들이 세상 끝에 대하여 궁금해 합니다. 그 때에는 도대체 무슨 일이 있을까 하는 것이지요. 오늘 우리도 마찬가지 궁금한 문제입니다.
일단 이것부터 알아야 합니다. 제자들이 질문한 내용에서 먼저 궁금한 문제가 있습니다. ‘어느 때에 이런 일이 있겠사오며’ 여기서 이런 일이 일어날 것을 걱정하며 물은 것입니다. 그런데 그 일이 세상 끝에 일어나는 일들과 연관이 있는 것입니다. 도대체 ‘이런 일’의 이 일은 무엇입니까? 그 앞에 예수님과의 대화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예루살렘 성전에서 탄식하고 나옵니다.(마 23 : 37 - 39) 그것도 깨닫지 못하고 제자들은 성전에서 나와 그 성전의 위용에 감탄합니다. 마 24 : 1 “예수께서 성전에서 나와서 가실 때에 제자들이 성전 건물들을 가리켜 보이려고 나아오니” 그랬더니 예수님은 그 성전의 어떻게 될 것을 말씀하십니다. 2절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이 모든 것을 보지 못하느냐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리우리라” 그러자 제자들이 깜짝 놀라 묻습니다. 3절 “예수께서 감람산 위에 앉으셨을 때에 제자들이 종용히 와서 가로되 우리에게 이르소서 어느 때에 이런 일이 있겠사오며 또 주의 임하심과 세상 끝에는 무슨 징조가 있사오리이까”
하나님의 성전이 무너지다니, 이건 보통일이 아닙니다. 그런 무서운 일은 마지막 때나 일어날 일이지요. 대단한 변화가 일어나리라 짐작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느 때에 이런 일이 있겠사오며’ 말한 ‘이런 일’은 바로 하나님의 성전이 무너지는 일입니다. 그 때는 주님의 재림 때이고 세상 끝이기도 하다는 말입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성전이 무너진다는 사실이지요. 물론 역사적으로 이미 두 번이나 경험했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솔로몬 성전은 온갖 보석으로 치장된 그야말로 대단한 성전이었으리라 짐작합니다. 그런데 바벨론 나라에 의해 무너졌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이었습니다. 하나님 백성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숭배를 했기에 하나님이 당신의 성전을 버리신 것입니다. 예언하신 대로 70년의 포로생활을 끝내고 돌아와 성전 재건을 합니다. 당시 총독의 이름을 빌어 ‘스룹바벨 성전’이라고 말합니다. 솔로몬 성전에 비하면 매우 초라했을 것입니다. 그것마저 마게도냐 제국에 의해 무너집니다.
예수님 당시에 헤롯이 유대인들의 환심을 사려고 어마어마한 성전을 지어줍니다. 그만큼 건축기간도 오래 걸렸습니다. 요 2 : 20 “유대인들이 가로되 이 성전은 사십육 년 동안에 지었거늘 네가 삼 일 동안에 일으키겠느뇨 하더라” 그런데 다시 무너진다 말씀하신 것입니다. 처음 솔로몬 성전이 무너진 때를 상기할 수 있을 것입니다. 나라가 망하는 엄청난 재난이 또 일어난다는 말인가? 그래서 우려하는 마음으로 질문한 것입니다. 일단 이것부터 말할 수 있습니다. 지금 이야기의 주제는 사실 하나님의 성전이 무너지는 내용입니다. 그것은 곧 하나님 백성에게 닥치는 재앙이기 때문입니다. 솔로몬 성전이 무너진 것은 곧 이스라엘의 멸망이기도 했습니다. 또 그런 일을 당해야 한다니 얼마나 두렵고 떨리는 일입니까? 그러니 예수님이 말씀하는 세상 끝, 말세 또는 종말의 이야기는 세상에서 말하는 그런 종말이 아닙니다. 그것은 곧 하나님 백성에 관한 일이고 하나님 성전에 관한 이야기라는 것입니다.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세상 이야기로 확장하는 것은 잘못입니다. 하나님 백성인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성전의 파괴는 세상이 끝나는 일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제 그런 시각에서 이 문제를 풀어나가도록 해봅니다. 세상 끝에 일어나는 전쟁, 기근 그리고 지진 나아가 해와 달이 어두워지고 별들이 떨어진다는 사건을 생각해봅니다. 이런 일들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그런 재앙이 아니라 바로 하나님의 성전, 오늘날로 이야기한다면 교회에서 발생하는 사건들이라는 것이지요. 쉬운 예로 교회 안에 일어나는 전쟁이라면 총칼을 들고 싸우는 전쟁이 아닙니다. 엡 6 : 12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함이라” 그렇습니다. 교회에서의 싸움은 영적인 전쟁입니다. 곧 하나님 편과 마귀 편의 전쟁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갖추어야 하는 무기도 총이나 칼, 대포가 아니라 다른 것들입니다. 이어서 설명하는 말씀이 바로 그것을 이야기합니다. 13 - 17절 “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취하라 이는 악한 날에 너희가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함이라/ 그런즉 서서 진리로 너희 허리띠를 띠고 의의 흉배를 붙이고/ 평안의 복음의 예비한 것으로 신을 신고/ 모든 것 위에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이로써 능히 악한 자의 모든 화전을 소멸하고/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 하나님의 전신갑주로 무장해야 합니다.
그러니 기근도 우리가 땅에서 당하는 그런 기근이 아닙니다. 정말 먹을 양식이 없어서 굶어죽을 그런 기근이 아니지요. 암 8 : 11 “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보라 날이 이를찌라 내가 기근을 땅에 보내리니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 육신의 양식이 없어서 주리는 것이 아니라 말씀합니다. 이 기근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이 없어서 당하는 일이라 합니다. 분명한 것은 ‘아모스’ 역시 예언서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이 말씀, 구약의 예언이 언제 이루어집니까? 예수님 초림 때 이루어진 것입니다. 예수님이 오셔서 백성에게 하늘 복음을 전합니다. 하나님 백성이라 한 유대인들이 여태 말씀을 먹었지만 그것은 하늘 양식이 아니었습니다. 제대로 먹지 못한 백성에게 하늘 양식을 주었습니다. 백성이 맛나게 먹으며 예수님을 따라다닙니다. 종교지도자들이 가만 놔두겠습니까? 가지 말라고 막습니다. 그리고 하늘 양식을 공급해주는 예수님을 핍박하고 쫓아냅니다. 그러면서도 자기들만이 아버지 하나님의 백성이랍니다. 예수님이 그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 아비는 마귀라고.(요 8 :44)
당시 종교지도자들 대표적으로 서기관 바리새인들이 백성에게 먹인 양식은 하늘의 것이 아니었습니다. 먹으면 피가 되고 살이 되는 것이 아니라 생명을 해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선지자 이사야의 글을 인용하여 말씀하셨습니다. 마 15 : 7 - 9 “외식하는 자들아 이사야가 너희에게 대하여 잘 예언하였도다 일렀으되/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존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도다 하였느니라 하시고” 그렇습니다. 그들이 전한 말은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 ‘사람의 계명’ 곧 땅의 말이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말씀 곧 하늘 복음을 전하셨습니다. 잘은 몰라도 백성은 느꼈습니다. 이전에 듣던 말씀과 달랐기 때문입니다. 마 7 : 28 - 29 “예수께서 이 말씀을 마치시매 무리들이 그 가르치심에 놀래니/ 이는 그 가르치시는 것이 권세 있는 자와 같고 저희 서기관들과 같지 아니함일러라” 성경은 같은데 전하는 말은 다릅니다. 오늘날은 어떤가요? 교회에서 기근, 지진, 전쟁을 이야기해도 세상에서 일어나는 전쟁, 기근, 지진을 이야기한다면 그게 바로 ‘사람의 계명’이라는 뜻입니다. 그것은 성경을 가지고 전하고 있지만 하나님 말씀이 아니라 마귀의 말입니다. 전하는 사람은 하나님 말씀을 전한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그게 아닙니다. 자신은 깨닫지 못하고 있지만 마귀의 말을 전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제 짐작할 수 있습니다. 해가 어두워지고 달이 빛을 잃고 별들이 떨어진다, 이게 눈에 보이는 저 하늘에서 일어나는 일이 아니라 바로 교회에서 일어나는 일이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그러니 여기 말하는 ‘해, 달, 별’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아야 합니다. 이 모두가 하늘에 있는 것들입니다. 먼저 ‘하늘’부터 알아야 하겠지요. 우리가 늘 기도하는 기도문이 있습니다. 마 6 : 9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우리 아버지 하나님이 어디 계신답니까? 예, 하늘에 계십니다. 그런데 저 하늘을 아무리 쳐다보아도 하나님이 보입니까? 과연 그 하늘에 하나님이 계시는 겁니까? 물론 영이신 하나님은 당연히 영계에 계십니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하나님이 계신 곳’을 가리켜 ‘하늘’이라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야 하늘이든 땅이든 어디에든 계십니다. 우리가 흔히 말하듯 ‘무소부재’하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어디에든 계시는 그 ‘하나님 계신 곳’을 가리켜 ‘하늘’이라 표현합니다. 하나님 백성은 그 하나님이 성전에 계시는 것을 믿고 제사를 드리고 오늘날 예배를 드립니다. 그러니 성전이 곧 하늘입니다.
그 하늘에 해와 달과 별들이 있습니다. 그 해, 달, 별을 보도록 합니다. 어느 날 요셉이 꿈을 꿉니다. 내용인즉 하늘의 해와 달과 열 한 별이 자기에게 절을 하더랍니다. 그것을 아비인 야곱이 어떻게 알아듣습니까? 창 37 : 9 - 10 “요셉이 다시 꿈을 꾸고 그 형들에게 고하여 가로되 내가 또 꿈을 꾼즉 해와 달과 열 한 별이 내게 절하더이다 하니라/ 그가 그 꿈으로 부형에게 고하매 아비가 그를 꾸짖고 그에게 이르되 너의 꾼 꿈이 무엇이냐 나와 네 모와 네 형제들이 참으로 가서 땅에 엎드려 네게 절하겠느냐” 아주 간단합니다. 해는 아버지, 달은 어머니 그리고 별들은 형제를 가리킵니다. 쉽게 말하면 야곱(이스라엘)의 가족입니다. 즉 하나님 백성의 가족, 보다 넓게 보아서 하나님 백성의 교회가 하늘이고 그 안에 있는 성도들이 해달별입니다. 해는 목자요, 달은 그 돕는 자이고 별들은 일반 성도입니다. 그 해달별이 빛을 잃고 어두워지며 하늘에서 떨어진다는 말입니다. 즉 하나님 백성이 제 구실을 못하여 달리 표현하면 빛을 잃어서 망하는 것입니다. 심판을 받는 것이지요.
빛을 잃고 어두워졌다는 것은 말씀을 잃은 것입니다. 왜요? 다른 말이 들어왔기 때문이지요. 아담에게서 생기가 나가고 뱀의 말이 들어간 것처럼 말입니다. 하나님은 그 말씀을 떠난 백성을 심판하여 버립니다. 말씀을 떠났다는 것은 하나님과의 언약(약속)을 깼다는 뜻입니다. 역사 속에서 예가 다 나옵니다. 호세아 선지자를 통해서도 이스라엘의 끝을 말씀합니다. 호 6 : 7 “저희는 아담처럼 언약을 어기고 거기서 내게 패역을 행하였느니라” 이 말씀은 구약 이스라엘 백성의 역사를 요약한 결론입니다. 잘 아는 대로 이스라엘은 멸망당하고 끝납니다. 그렇게 구약의 역사가 종결됩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아들을 보내어 새 시대를 엽니다. 이제 혈통으로 하나님 백성이 되는 시대는 끝난 것입니다. 요 1 : 11 - 13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지 아니하였으나/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니라” 그렇게 신약의 시대가 열린 것입니다. 하나님은 말씀(언약)을 버린 자 또는 다른 말을 가진 자들을 당신 백성이라 칭하지 않습니다. 심판하여 버리십니다. 그리고 새롭게 시작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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