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갈량 죽고 난 뒤,
세 나라는 오랜 기간동안 전쟁을 멈추었다.
사마소가 위나라의 실질적인 권력자가 되었다.
263년,
위나라는 촉을 정벌하기 위해
등애와 종회, 제갈서는 각각 군대를 세 개로 나뉘어 침공한다.
이때 당시 등애의 계략은
자신이 답중에서 촉의 대장군 강유를 묶으면
제갈서가 강유의 퇴로와 한중 구원군을 차단하며
종회가 그 틈을 타 한중으로 정면 돌파하여
촉나라를 진입한다는 것인데,
등애의 계략은 놀랍도록 적중했다.
강유가 등애와 제갈서에게 묶여있는 사이에
종회의 군대는 성공적으로 한중을 접수하고
촉나라 최후의 관문 검각까지 진격한다.
그렇게 등애의 전략은 완벽하게 성공하는 듯 했으나
제갈서가 강유를 끝내 놓쳐버리는 실수를 범한다.
제갈서의 포위망을 빠져나온 강유는 제갈서의 관할 지역인 옹주로 향하는 척을 했다.
놀란 제갈서는 급히 북상했고 헐레벌떡 옹주로 향하는 사이에
강유는 몰래 뒤돌아 검각으로 재진격 하며
제갈서를 완벽하게 따돌린다.
자신이 강유의 계략이 빠진 것을 알고 뒤늦게 강유를 잡으러 갔을때는
이미 사라진 뒤였다.
그렇게 답중을 무사히 탈출한 강유는 검각으로 돌아와
종회의 본대에 맞서 무한 수성을 펼치게 되는데,
이때부터 위나라의 상황은 급격히 안좋아진다.
강유에게 실컷 놀아난 제갈서에겐 두 가지의 선택이 생겼는데,
첫째, 등애와 함께 음평의 샛길로 우회해 촉 진입을 시도하자는 것,
둘째, 종회의 본대에 합류하여 함께 검각의 뚫고 촉을 진입하자는 것이었다.
자신의 인생을 결정 지을 수도 있는
운명의 두 가지 선택 앞에 고민하는 제갈서였지만
음평의 샛길 280km 등산은 아무리 봐도 무모한 도박처럼 보였는지
등애의 제안을 거절하고
종회의 본대에 합류하기 위해 검각으로 향한다.
검각에 도착한 제갈서에게 돌아온 것은
종회의 모함으로 인한 전권 실각 및 낙양으로 압송이었다.
하루 아침에 나라 대군의 일각을 담당하는 사령관에서
낙양으로 압송되는 죄인으로 신세가 바뀌는 순간이었다.
그렇게 낙양으로 끌려가는 제갈서에게 들려오는 믿겨지지 않는 소식,
그토록 무모하게만 보였던
등애의 음평 공략이 성공해 서촉을 점령했다는 것이었다.
자신이 종회가 아닌 등애를 선택했더라면
서촉 정벌의 주인공이 되었을테지만
이는 곧 상황이 반전된다.
종회의 반란으로 성도 일대에 살인과 배신의 피바람이 불게 되었고
이에 사마소도 그간 거슬렸던 것들을 치우고자 숙청이 시작된다.
등애와 종회는 몰론이고 서촉 정벌에 관련된 장군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대부분 살해 당하거나 참수형을 당했고
촉나라의 대신들도 이와 연관되어 수많은 목숨이 사라졌다.
하지만 제갈서는 중간에 촉나라 정벌에서 강제로 강판 되었기 때문에
피비린내 나는 숙청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이어 제갈서는 위나라에서 진으로 왕조가 교체되고,
자신은 태상까지 오르며 온갖 명예를 누리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그 밑 대대손손까지 부귀영화를 누리며
가문을 무탈히 이어 나갔다고 한다.
출처 - 이글루 디시버님 글 참조.
출처 - 펨코 손하나님
인류 역사상 최강의 정복자 몽골의 개국공신 수부타이
중국 최강,최고,최후라 불리는 불세출의 명장 진경지
중국 전한시대 불세출의 명장 국사무쌍 한신
중국 전국시대 진나라 명장 이신
중국 전국시대 왕을 만든 장사꾼 여불위
중국 전국시대 조국에서 죽지 못한 비운의 명장 염파.
중국 역사상 최연소 명장 기린아 곽거병
중국 전국시대 조나라의 마지막 등불 이목.
첫댓글 이런 시리즈가! 잘 읽었습니다! 다만, 내용 중 수부타이가 서유럽으로 진군하지 못한걸 서유럽의 천운이었다는데엔 갠적으로 동의하지 못함.
대학교 교양수업 시절 조별발표때매 칭기즈칸 전술을 공부한 적 있었는데 칭기즈칸 몽골군의 주전술은 주력인 대규모 경궁기병의 히트 앤 런 식 빠른 속사입니다. 이거에 익숙하지 않던 당시 애들이 몽골군의 전투에서 다 지고 나라가 무너진건데 여기의 카운터전술은 중갑기병 or 대형화포죠.
마침 산악지대 위주라 경기병 위주였던 동유럽과 달리 평야지대 위주라 중갑기병들이 우글거렸던 서유럽으로 몽골군이 진군했더라면, 거꾸로 몽골군이 참패를 겪었을 거라고 보는 학계의 의견도 많습니다.
키예프 루스는 완전히 분열이 되서 몽골이 (상대적으로) 쉽게 상대한면도 있지요.
폴란드는 아예 공작령 단위로 분열되있었고요.
반면에 정치적으로 안정적이었던 헝가리군한테는 몽골군도 고생했고요
거기에 신성로마제국은 요새화가 잘되서(성들이 대부분 돌로 만들어졌다!) 공성전 난이도가 급상승했죠.
키예프 루스나 헝가리,폴란드는 석조성채가 별로 없어서요
몽골군도 마지막 일격은 중장기병이 담당했고, 경장기병 스웜전술은 몽골군 이전에도 쓰는 국가들이 많았습니다. 중장기병과 화포만 있다고 카운터 안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