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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대하 20장 10-11절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승리를 맛보라4-악으로 선을 갚는 대적들에 대한 고소
사람들은 보편적으로 선한 것을 좋아합니다. 그래서 선을 행한 사람을 칭찬합니다. 한 젊은 관원이 예수님을 찾아왔을 때도 예수님이 선한 일을 하고 계신다고 칭찬을 했습니다. 누가복음 18장 18-19절을 보면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어떤 관리가 물어 이르되 선한 선생님이여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어찌하여 나를 선하다 일컫느냐 하나님 한 분 외에는 선한 이가 없느니라” 예수님은 젊은 관원이 가지고 있는 선에 대한 잘못된 생각을 지적하심으로 젊은 관원이 관원 자신을 선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그 인식을 바꾸신 것입니다.
누군가가 여러분들을 보고 “선한 분”이라고 많은 사람들 앞에서 칭찬한다면 어떤 마음이 드시겠습니까? 어쩌면 마음이 하늘을 나는 것처럼 매우 기분 좋아할 것입니다. 반대로 많은 사람들 앞에서 “죄인”이라고 한다면 여러분들은 그 사람에게 화를 낼 것입니다. 설사 그 사람이 말한 대로 여러분들이 죄를 지었다 할지라도 “왜 그것을 많은 사람들 앞에서 이야기하느냐?”고 하면서 화를 낼 것입니다. 이렇듯 사람들은 죄를 지은 것보다는 사람들에게 자신이 좋지 않게 보여지는 것을 싫어합니다. 항상 자신이 좋은 사람으로 비춰지길 원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 젊은 관원에게 나는 선한 선생이 아니다. 선한 분은 오직 하나님 아버지 밖에는 없다고 하신 것입니다. 가장 완전하게 선하신 예수님은 자신은 선하지 않다고 하시는데, 오히려 선하지 않는 죄인들은 자기들이 선한 줄로 착각을 하면서 삽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자기들을 선하게 여겨주기를 원합니다. 이것이 죄인된 인간의 모습들입니다. 이러한 모순이 개인과 개인 사이에도 일어나지만 나라와 나라 사이에도 일어납니다.
이뿐 아니라 개인도 그렇지만 나라와 나라 사이에는 악으로 선을 갚는 일이 많이 일어납니다. 그런데 보편적으로 볼 때 사람들은 “나는 옳다”는 생각과 함께 “우리 나라는 옳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상대방은 옳지 않으며 악하다고 생각하는 일이 일어납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선으로 악을 이기라고 가르치셨습니다. 이는 참고 인내하면서 끝까지 선을 행하라는 말씀입니다. 마치 사울은 다윗을 죽이려고 하는 데 다윗은 사을 왕을 죽일 기회가 왔어도 그 결과를 하나님께 맡기고 스스로 보복하지 않은 것과 같은 유형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이 세상 사람들은 당한 만큼 보복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가르칩니다. 그것을 막아주는 것이 법입니다. 법은 사람들이 당한 억을한 일을 정부 차원에서 해결해줌으로써 나라의 범죄를 막아줍니다. 그래서 보복하는 것을 사법부에 맡기라고 합니다.
사법부는 그 법을 공평과 정의로써 지켜야할 의무가 있습니다. 하지만 공평과 정의를 지켜야할 사법부가 공평과 정의를 잃게 되는 일이 발생합니다. 재판장들이 뇌물을 받고 가진자의 편을 들거나 아니면 권력의 압력에 굴복하여 그릇된 판결을 내릴 때입니다. 또한 친분에 의해서 판결을 굽게 할 수도 있습니다. 이런 일들이 일어나면 국민들은 법을 불신하게 되고 스스로 보복하고자 하는 유혹을 받게 됩니다. 그래서 법은 공명정대해야 합니다.
이것은 나라와 나라간의 관게에 있어서도 역시 정의로움이 필요합니다. 서로에 대하여 신뢰관계를 쌓지 않으면 나라 간에 서로를 불신할 수 밖에 없게 됩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유다나라를 침공한 모압과 암몬과 마온 사람들은 모두가 약간 멀기는 하지만 같은 조상을 가지고 있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물론 포괄적으로 보면 모든 민족들이 다 아담과 하와에게서 나왔고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에게서 나왔지만 그래도 족보를 따라 내려가다 보면 어느 정도 가까운 이웃 나라도 있는 법입니다. 혈연관계가 이루어지는 나라들입니다. 이런 관계들은 역사적인 서로를 지켜줄 이유를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모압과 암몬과 에돔은 이런 가까움을 버리고 유다를 대적하여 그 땅에서 몰아내며 하나님이 유다에 주신 모든 것을 빼앗고자 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나와 오랜 광야 생활을 하게 하셨습니다. 무려 40년이라는 긴 세월을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의 메마름과 먼지와 뜨거운 햇볕과 긴 여행에 지쳐 있었습니다. 그들은 도시의 풍요를 전혀 누리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광야생활의 막바지에 이를 무렵에 하나님은 에돔 땅 가까운 곳으로 인도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하나님의 말씀대로 인도했던 모세는 에돔 사람들에게 성 가운데러 지나가면서 필요한 물과 음식을 댓가를 지불하면서 사먹겠다고 요청을 했습니다 하지만 에돔은 이스라엘을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이 죄악된 세상에서 나라와 나라 사이에 서로를 믿는 다는 것은 매우 힘든 일임을 여러분들은 잘 아실 것입니다. 에돔은 단호히 거절했습니다. 그 뿐 아니라 군사들을 성밖으로 이끌고 나와서 이 이상은 들어오면 공격한다고 선을 그어 놓았습니다.
모세가 에돔의 행동을 보면서 이 문제를 하나님께 아뢰었을 때 하나님께서는 형제간에 싸우면 안된다고 하시면서 그 길을 돌아가라고 하셨습니다. 그로인해 쉽게 갈 수 있는 길을 오랫동안 돌아서 가야만 했습니다. 모압도 역시 마찬가지였고 암몬도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약해서 돌아가라고 하신 것은 아닙니다. 후에 모암이나 암몬이나 에돔보다 더 강한 나라인 바산왕 옥과 아모리 왕인 시혼의 군대와는 싸우게 하셨고 이기게 하셨습니다. 그것을 통해 이스라엘 군대가 결코 약해서 에돔과 모압과 암몬과 싸우지 않은 이유가 약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명령 때문이라는 것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하지만 이 삼 개국은 그것이 하나님에게서 나온 명령임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이스라엘과 유다에 대하여 고마워하지도 않았고, 미안해 하지도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런 그들이 오랜 세월이 흘러 유다와 여호사밧때 유다를 그 땅에서 몰아내기 위해 연합하여 공격한 것입니다. 여호사밧은 그것을 하나님께 아뢰고 있습니다. 10-11절입니다.
“옛적에 이스라엘이 애굽 땅에서 나올 때에 암몬 자손과 모압 자손과 세일 산 사람들을 침노하기를 주께서 용납하지 아니하시므로 이에 돌이켜 그들을 떠나고 멸하지 아니하였거늘 이제 그들이 우리에게 갚는 것을 보옵소서 그들이 와서 주께서 우리에게 주신 주의 기업에서 우리를 쫓아내고자 하나이다”
옛적에 자신들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해서 암몬과 모압과 세일 자손은 침노하지 않았고 그들을 떠나고 멸하지 않았다고 이야기합니다. 하나님께서 침노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으셨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하나님의 마음이 잘 나타납니다. 하나님은 택하신 백성들만 사랑하시거나 위하시는 분은 아닙니다. 택하신 백성들과 연관있거나 택하신 백성을 위하는 나라도 역시 지키시고 보호하십니다. 그들이 아직 하나님을 믿지 않는다 할지라도 하나님이 그 백성들을 위하시는 나라나 사람들을 하나님은 소중히 여기십니다. 그래서 그들의 선택 자체도 존중하십니다. 하나님은 그래서 암몬과 모압과 세일자손을 침노하지 못하게 하신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그 은혜를 몰랐습니다. 그들이 지금 존재하는 이유가 하나님이 침노를 막으시는 것때문이었는데도 그들은 그런 하나님을 인정하지도 않았고 믿지도 않았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에 대한 마음 역시 마찬가지로 악했습니다. 여호사밧은 하나님께 “그들이 우리에게 갚는 것을 보옵소서”하면서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주께서 자신들에게 주신 주님의 기업에서 자신들을 쫓아내고자 한다고 아뢰고 있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은혜를 알지 못하고 그것을 악으로 돌리는 사람을 향해 배은망덕하다고 말합니다. 세상에는 그런 일들이 비일비재합니다. 믿고 맡겼던 사람이 어느날 뒷통수를 치고 모든 것을 빼앗고 도망치는 일도 있습니다.
어떤 마음이 착한 늙은 부부의 집에 젊은 식모가 새로 들어왔습니다. 그런데 이 젊은 식모는 행실이 좋지 못해 이웃에 사는 젊은이와 눈이 맞았습니다. 몇 달이 지나자 그녀의 몸에 아이가 생기게 되었습니다. 이것을 안 노부부는 식모를 나무라지도 않고, 다행히 어린애가 없어 애태우던 터라 친절히 식모를 위로하면서, ‘조금도 걱정말아. 어린애를 나면 우리가 양자로 삼을 테니까.’라고 말했습니다.
이윽고 달이 차서 식모는 사내아이를 낳았는데 노부부는 출산 비용을 전부 부담했고, 출생한 아이를 양자로 삼는 수속을 밟았습니다. 그런데 수개월이 지나자 식모는 또 다시 몸이 무거워졌습니다. 이때도 친절한 노부부는,
“어린애가 하나뿐이면 쓸쓸해 할 꺼야. 동생이 있는 편이 좋아.”
하고서, 두 번째 아이도 양자를 삼았습니다.
식모에겐 같은 일이 세 번 있었습니다. 어디까지나 마음 좋은 노부부는 이때도 그다지 화내지 않고 출생한 아이를 또 다시 양자로 삼았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대은(大恩)을 받은 젊은 식모는 산후의 몸이 회복되자마자, 노부부의 집에서 나가겠다고 말했습니다. 깜짝 놀란 노부부가,
“대관절 어떤 불만이 있어서 나간다는 거지?”하고 물으니까, 그 식모는 태연히,
“이렇게 아이 많은 집에서 식모살이 할 수는 없어요”하고는 집을 나갔다고 합니다.
은혜도 모르고 사랑도 없는 배은망덕한 이런 가정부같은 사람들이 있을까요? 이 세상은 천차만별의 사람들이 다 있습니다. 그 가운데 이렇게 선을 악으로 갚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시편 35편 11-16절을 보면 이렇게 자신이 당한 악한 일에 대하여 증언합니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와 매우 흡사한 예언적인 시이기도 합니다.
“불의한 증인들이 일어나서 내가 알지 못하는 일로 내게 질문하며 내게 선을 악으로 갚아 나의 영혼을 외롭게 하나 나는 그들이 병 들었을 때에 굵은 베 옷을 입으며 금식하여 내 영혼을 괴롭게 하였더니 내 기도가 내 품으로 돌아왔도다 내가 나의 친구와 형제에게 행함 같이 그들에게 행하였으며 내가 몸을 굽히고 슬퍼하기를 어머니를 곡함 같이 하였도다 그러나 내가 넘어지매 그들이 기뻐하여 서로 모임이여 불량배가 내가 알지 못하는 중에 모여서 나를 치며 찢기를 마지아니하도다 그들은 연회에서 망령되이 조롱하는 자 같이 나를 향하여 그들의 이를 갈도다”
예수님은 인간 법정에 끌려가 서셨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행하신 일과는 전혀 다른 일들을 꾸며서 거짓 증인을 세우고 질문을 합니다. 전혀 예수님과 상관없는 일들을 예수님이 행했다고 하면서 죄를 만듭니다.
악한 인간들은 악을 만들며 꾸미는 일을 너무나 쉽게 합니다. 그들은 거짓을 일삼으면서도 전혀 양심의 가책을 받지 않습니다. 하지만 당하는 사람은 억울한데 아무도 자신의 편에 서주는 사람이 없습니다. 예수님도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예수님의 반대편에 선 증인들은 많은데 아무도 예수님의 편에서서 그 거짓 증언들에 대하여 바로 잡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이 병들었을 때에 그들을 위하여 굵은 베를 입으셨고 금식도 하셨습니다. 또한 사탄의 시험으로 인해 영혼의 괴롭힘도 당하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기도가 예수님께로 돌아왔습니다. 그들이 받을 만한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들이 아무리 예수님의 이름으로 복을 빌어도 그 복이 임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들은 악으로 선을 갚는 사람들로써 마음에 악함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은 그들을 위해 우시면서 기도하셨지만 그들은 악하고 완고함으로 대했습니다. “그러나 내가 넘어지매 그들이 기뻐하여 서로 모임이여 불량배가 내가 알지 못하는 중에 모여서 나를 치며 찢기를 마지아니하도다 그들은 연회에서 망령되이 조롱하는 자 같이 나를 향하여 그들의 이를 갈도다”
예수님이 잡히시자 그들이 서로 기뻐하며 모여들었습니다. 마치 불량배들이 모여서 서로 모의하고 주먹과 손바닥과 채찍으로 치며 찢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연회에서 망령되이 조롱하는 자 같이 예수님을 향하여 이를 갈았습니다. 그것을 사도들은 다윗왕이 지은 시를 인용하여 이렇게 말씀합니다. 사도행전 4장 25절입니다. “또 주의 종 우리 조상 다윗의 입을 통하여 성령으로 말씀하시기를 어찌하여 열방이 분노하며 족속들이 허사를 경영하였는고” 어찌하여 열방이 분노합니까? 아무 잘못도 하지 않았는데 말입니다. 어찌하여 족속들이 헛된 일을 경영합니까? 그들은 선한 일을 행하신 예수님을 거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세상에는 예수님 안에서 선을 행하는 그리스도인들을 싫어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왜냐하면 자신들의 불의가 너무나 명확하게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마치 어두움 가운데 빛이 비취면 어두움은 소멸되는 것처럼 진리의 빛 앞에 선 사람들의 모든 죄는 순식간에 다 드러납니다. 그리고 그들이 자기들의 죄를 하나님 앞에 솔직히 고백하고 회개하면 하나님의 은혜의 빛이 모든 어둠의 죄를 완전하게 몰아내십니다.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의 은혜와 진리의 빛이 비취면 은밀한 곳으로 들어가 숨습니다. 아침 햇살에 빛이 창문으로 들어와 방안을 비췰 때 장롱의 뒷 부분이 그늘지듯이 어두운 부분에 들어가 숨는 것입니다. 그들은 은혜를 얻지 못합니다. 요한복음 3장 19절에 말씀하신 것처럼 말입니다. “그 정죄는 이것이니 곧 빛이 세상에 왔으되 사람들이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한 것이니라”
하나님의 은혜는 마치 아침 햇살이 선인과 악인을 구별하고 비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 앞에 공평하게 비치는 것처럼 모든 사람들에게 공평하게 임합니다. 복음도 그렇습니다. 복음은 선인과 악인을 구별하지 않고 전해집니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사람들이 복음을 듣게 되고 복음에 반응하게 됩니다. 하지만 복음에 대한 반응이 사로 다릅니다. 어떤 사람들은 복음을 듣고 예수님께 나오지만 어떤 사람들은 복음을 듣고 찔리기는 하지만 도리어 그것을 감추기 위해 복음을 전하는 사람을 공격합니다.
베드로가 전한 복음에는 삼천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었지만, 스데반이 전하는 복음에는 사람들이 스데반을 돌로 쳐서 죽였던 것처럼 말입니다. 그 둘이 전한 복음은 모두 똑같은 예수님이었습니다. 그런데 한 사람의 설교는 큰 회개와 회심을 낳았고, 한 사람의 설교는 자신을 죽음으로 몰아 넣었습나다.
여기서 여러분들이 기억할 것은 그리스도인들이 선을 행하는 것은 선하신 하나님의 명령때문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암몬과 모압과 에돔을 침략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더 어렵고 고단한 길을 가야만 했습니다. 하나님은 때때로 직접 갈수 있는 길도 하나님의 선하심 아래 빙 돌아서 가게 하실 때가 있습니다. 그러면 순종해야 합니다.
여러분들을 거스리며 대적하는 사람들이 여러분들의 길을 막고 서 있을 수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진급을 막는다든지 아니면 여러분의 논으로 들어오는 물을 자기 논으로 먼저 대려고 할 수도 있습니다. 한 평생의 진로를 막거나, 한 해의 농사를 막을 때 하나님께 기도했는데 하나님께서 다투지 말라고 하실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순종하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믿고 신뢰하면 하나님의 놀라운 능력을 경함할 수도 있습니다.
때로는 여러분들이 그렇게 참고 오랜 시간이 흘렀다거나 다른 사람에게 선을 행했는데도 대적하다가 미안하다는 한 마디도 없이 오랜 시간이 흘렀을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것을 다 잊어버리고 여러분들을 공격하며 곤경에 처하게 할 때 여러분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예전에도 참았는데 어떻게 이럴 수가 있느냐고 항변해야 할까요? 여러분들이 할 일은 기도하는 것입니다. 사실 맞서 싸우는 것이 기도하는 것보다 훨씬 싑습니다. 맞서 싸우면 여러분들이 이길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영광을 볼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은 여호사밧에게 그들이 있는 곳으로 가라고 하셨고 하나님이 직접 싸우시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니 너희는 구경만 하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선을 악으로 갚는 세상에서 살고 있는 그리스도인이 온전하고 굳센 믿음을 가지고 세상을 이기길 원하십니다. 세상을 이기는 것은 여러분들의 믿음입니다. 하나님은 시편 37절 3절을 통해 성도가 이 악한 세상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 지에 대하여 말씀하십니다. “여호와를 의뢰하고 선을 행하라 땅에 머무는 동안 그의 성실을 먹을 거리로 삼을지어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이 너무나 멀게 느껴져서 하나님을 의뢰하기보다는 세상을 더 의지하고 세상의 방식을 더 선호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런 성도들을 향하여 말씀하십니다. “나를 의뢰하고 선을 행하라 땅에 머무는 동안 그의 성실을 먹을거리로 삼을지어다”
하나님은 자신을 의뢰하고 자신으로 인해 선을 행하며 성실하게 사는 성도를 외면하거나 그냥 내버려두지 않으십니다. 여리고로 찾아가셔서 하나님을 신뢰했던 기생 라합을 찾아내시고 구원하신 하나님은 오늘날에도 죄악 세상 가운데서 자신을 의뢰하는 사람들을 찾아 구원하십니다.
여러분! 하나님을 의뢰하십시오, 하나님의 아름다움과 영광을 보게될 것입니다. 비록 이땅에 은혜를 모르는 사람이 많아 여러분들을 배반하고 땅에서 끊으며 직장에서 쫓아내고 여러분들이 가지고 있는 것과 가지고 있는 자리를 빼앗으려고 덤벼드는 선을 악으로 갚는 암몬과 모압과 에돔의 무리들이 있을 지라도 여호사밧같이 하나님을 의뢰하고 신뢰하며 도우심을 구하는 기도를 할 때 하나님은 들으시고 내려오셔서 친히 자신의 살아계심과 여러분들을 얼마나 사랑하시는 지를 보여주실 것입니다. 그래서 여호사밧에게 승리를 주신 하나님께서는 여러분들에게도 역시 승리를 주실 것입니다.
여러분! 땅에서 누군가를 고소하려고 하지 마십시오.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땅에 여러분들의 보물을 쌓아 놓으려고 하지 마십시오, 다른 사람들이 여러분들을 고소한다면 여러분들은 그에 맞서서 세상 법정에 그들을 고소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을 신뢰하고 하나님께 구하십시오. 승리는 하나님을 믿고 구하는 사람들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인내의 시간이 지난 후에 여러분들에게 승리의 면류관을 씌워주실 것입니다. 이 복이 여러분들 모두에게 넘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