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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종수 권사 간증 제목:당신은 진정한 크리스천인가?
1. 유년기
나는 충남 연기군에서 딸 셋 가지고 아들을 기다리던 집안에 네 번째 아들로 태어났다. 내가 태어나던 해인 1951년은 6·25 전쟁 중이라 아버지께서는 육군대위로 참전하시고 어머니 혼자 나를 기르셨다. 아버지께서는 전역하신 후에도 사업차 서울에 계시고, 우리는 대전 성남동에 살았다.
내가 4살 때 일이다. 그 무렵은 모두가 구호미로 끼니를 이어가던 때였는데 옆집에서 밀밥을 보내와 누나들과 나는 오랜만에 배부르게 먹었다. 그런데 이것이 소화가 되지 않아 헛배가 차오르면서 통증이 오기 시작했다. 여러 가지 민간요법을 썼으나 효과가 없었다. 병원을 찾았더니 의사가 “장이 꼬였습니다. 빨리 수술하지 않으면 목숨이 위태로우니 수술비를 마련해 오세요.” 의사의 벼락같은 진단에 어머니는 잠시 정신이 나갔다고 한다. 그러나 4살짜리 아들의 몸에 칼을 대면 죽을 것 같은 불안감이 엄습했다. 그래서 나를 들쳐 업고 병원을 돌고 또 돌며 기도했다고 한다. “하나님, 이 애를 살려주시면 주님의 귀한 일꾼으로 만들겠습니다. 제발 목숨만 살려 주세요.”
어머니의 간절한 기도 덕분에 결국 수술을 받지 않고 나았다. 그 대신 어머니는 이 서원을 지켜야 한다는 부담감을 항상 느끼시며 나를 키우셔야 했다. 그래서 어머니는 더욱 나를 위한 기도를 드리셨다. 이 때문에 한때 나는 미국에 가서도 목사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했었다. 지금에야 나를 향한 하나님의 뜻이 어디에 있는가를 알기에 마음의 부담을 덜었지만 내가 자라면서 귀에 못이 박이도록 들었던 그 어머니의 말씀이 지금 생각하면 내 신앙이 형성되고 자라나는 골격이 된 것 같다.
아버지께서는 내가 6살 때 뇌척수막염으로 돌아가셨다. 제 기억으로 아버지는 예수님을 믿지 않으셨고, 감리교회 다니시며 속장으로 봉사하시는 어머니를 핍박하셔서 어머니가 많은 어려움을 겪으셨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 우리 집은 광야생활이 시작되었다. 어머니는 대구에 내려가 사과를 궤짝으로 받아다 길거리에서 소매로 파는 일을 하셨다. 고구마도 쪄다 팔았다. 어린 나이에 나는 엄마가 대구행 기차를 타러 가실 때면 엄마와 떨어지기 싫어서 울었던 기억이 난다.
생활이 점점 어려워지면서 우리는 과부들만 모여 사는 등촌동 과부주택으로 들어갔다. 그때 전쟁미망인들이 삯바느질하면서 살게 해 주었다. 그런데 뒷동네 아이들이 과부주택에 사는 아이들을 무시했다. 그 애들이 잘못하고 우리는 아무 잘못이 없는데도 그 애들 아버지가 나타나면 무조건 우리들을 야단쳤다. 그런 게 참 억울했다. “애비 없는 후레자식”소리를 들을 때 제일 마음 아팠다.
하루 종일 놀고 저녁에 해가 어둑어둑할 때 아이들은 다 집으로 돌아가도 엄마는 삯바느질하느라고 안 들어오셨다. 나는 갈 데가 없었다. 지금도 저녁이 되면 문득 그때 갈 곳 없어 불안했던 마음이 느껴진다.
구슬치기, 땅따먹기 하던 거 저녁에 집으로 돌아갈 때는 다 두고 들어간다. 갖고 있던 것 아무 소용이 없다. 세상 살면서 얼마나 1불이라도 더 벌려고 애쓰나? 갈 데 없는 사람은 불쌍하다. 이 세상은 내가 영원히 살 곳이 아니다. 하나님이 언제고 오라 하실 때 “내가 여기 있습니다.”하고 가고 가서는 “잘했다. 착한 종아.” 이 칭찬을 듣는 것을 목표로 하여 나를 푸시하면서 살아간다.
2. 성령체험
어머니는 저녁마다 우리들을 모아놓고 가정예배를 드리셨다. 어머니는 다른 건 인자하시고 사랑스러우신데 가정예배만큼은 엄하게 하셨다. 옷도 제일 좋은 것 입고, 책상다리 하고 드리게 하셨다. 자세가 흐트러지면 “내가 너희들에게 줄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밖에 없다.” 이러시면서 회초리로 때리셨다. 어머니는 비가오든 눈이 오든 한 시간 번 거리를 걸어 다니시면서 하루도 새벽기도를 빠지지 않았다. 새벽기도에 갔다 오시면 제일 먼저 아들인 나에게 손을 얹고 기도를 하셨는데, 한 겨울이라 바깥에서 돌아오시면 손이 차서 잠이 깨곤 했다. “내 힘으로 이 자녀 어떻게 키우겠습니까. 하나님 아들 되게 해 주세요.” 어머니의 그 기도 소리가 아직도 내 귀를 치고 있다.
그때 어머니가 선교사님 쿡으로 들어가셨는데, 말이 좋아 쿡이지 집안일을 다 하셨다. 그런데 없이 살다보니까 그랬는지 둘째누님이 도벽이 있어서 갈 데도 없이 한겨울에 쫓겨났다. 조그만 집에 사글세로 들어가 대청마루를 빌렸는데 지붕이 내려앉고 대청도 가라앉은 데서 겨울을 나게 되었다. 그때 절망적인 생각이 들었다. ‘내일 아침 먹을 것도 없고 이제 우리는 죽었다. 주님, 주일학교는 열심히 나갔으니 천당 가게 해 주세요. 천당 가면 배 안 고프겠지? 춥지 않고 따뜻하겠지? 다른 사람들이 멸시하지 않겠지?’
그날 밤 윤전도사님이 지나가시다가 우리 집에 들르셨다. 우리 사정을 아시고 예배드리자 하시면서 예배를 드리고 나서는 “하늘나라에 가려면 성령을 받아야 한다”고 하셨다. 나는 주일학교 잘 나가고 엄마 말씀 잘 들으면 천국 가는 줄 알았었다.
“어떻게 하면 천국에 가나요?”
“방언을 해야 한다.”
지금 생각하면 그 말이 맞지 않지만 그때는 그렇게 가르쳐 주니 그런 줄 알고 천국 가기 위해 방언 받게 해 달라고 기도했다. 그런데 전도사님이 안수하는데도 방언이 안 터졌다. ‘춥지 않고 배고프지 않으려면 천당에 가야하는데…’ 싶어 실망하자 전도사님이 내일 저녁 때 어느 곳에서 가정집회하니까 오라고 하셨다. 안타까운 마음에 ‘오늘 얼어 죽으면 안 된다. 내일 방언을 받고 꼭 천당을 가야지.’ 싶어 그다음 날 그곳에 갔다. 추운데 옷도 제대로 못 입고 가서 예배를 드리고 났는데 내가 꼭 방언을 받아야 한다고 말하자 사람들이 둘러앉아서 기도를 해 주었다.
그때 갑자가 눈물, 콧물이 나오기 시작하더니 마음에 내가 알지 못하던 죄들이 다 회개가 되기 시작했다. 16살인데 뭔 죄가 그리 많았겠나? 그러나 어렸을 때부터의 죄들이 생각나면 회개했다. 방언을 하면서 기도할 때 새 기쁨을 느꼈다. 나무들이 “하이~”하는 것 같고, 개들이 멍멍 짓는 것도 “잘 있었니?”하고 인사하는 것 같고, 새들도 “안녕?”하면서 노래하는 것 같았다. 나는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다. 전에는 ‘만약 공산당이 내 목에 칼을 들이대고 너 예수 믿으면 죽인다 그러면 뭐라고 대답하지?’ 하는 생각을 했었는데 방언 받고 성령 체험하고 언덕길을 내려올 때 순교할 각오가 생겼다. 그렇게 달라졌다. 지금 제 나이 40이고, 신학을 배웠지만 제 인생의 턴어라운드 지점은 1967년에 성령체험을 한 때다.
3. 하나님께 지혜를 구함
집에서 자다가 얼어 죽느니 교회서 기도하다 죽자는 생각에 하루도 빠지지 않고 4시 반이면 엄마 따라 새벽기도를 나갔다. 모두 다 돌아가는데 나는 기도할 말이 많았다. 그때 무슨 기도를 그렇게 했는지 모르겠는데 늦게까지 남아 기도하면서 두 달을 기쁨 가운데 지냈다. 나는 소리를 내어 기도를 했는데 얼마나 열심히 기도를 했는지 방석을 깔고 앉아 기도하다 마치고 눈을 떠 보면 내 얼굴이 남의 궁둥이를 향해 있거나 신발장 앞에 가 있거나 하였다.
성경말씀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글씨와 눈이 줄이 맺어진 것처럼 쭉쭉 눈으로 해서 머리에 빨려 들어갔다. 말씀이 정말 달고 오묘했다. 하나님이 나만 사랑하는 것 같아 비밀을 나에게 다 말씀해 주시는 것 같았다. 성경을 읽으며 신앙에 몰입했던 나는 거의 매일 교회에서 철야기도를 하다시피 했다. 고등학생이면 한창 공부하고 이것저것에 관심을 가질 나이인데도 기도하고 성경 읽는 것이 한없이 즐겁고 기뻤다.
67년 초겨울의 어느 날이었다. 새벽기도에 갔는데 사람들 오기 전에 4시쯤에 하나님이 갑자기 찾아오셨다. “종수야, 종수야.” 하고 두 번을 부르셨다.
이건 사람 소리가 아니다. 큰 목소리도 아닌데 지구가 흔들릴 것 같이 우렁차면서도 세미하면서도 분명한 소리였다. 이 음성이 바로 하나님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두리번거리니 아무도 없었다. “네가 기도를 열심히 하는데 네가 무엇을 원하느냐?
깜짝 놀랐다. 일생에 두 번 물어보셨는데 그때가 처음이었다.
그 당시 가정형편이 너무 어려워 배고프고 추우니까 “돈!” 하려다가 주일학교 때 선생님에게 배운 솔로몬 이야기가 생각났다. 솔로몬은 지혜를 구했는데 부귀와 영화도 같이 받았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기왕에 구할 거면 지혜를 구하자’. 그래서 ‘돈’이라는 소리가 목구멍까지 올라오는데 지혜를 원한다고 대답했다. “제게 지혜를 주세요. 하나님, 그렇지만 돈도 잃어버리지 마세요.” 하고 분명히 말씀드렸다.
당시 나는 어린 마음에 하나님의 응답으로 무엇인가 신체적인 변화가 있으리라 기대했지만 전혀 그렇지 않았다. 그런데 얼마 후에 하나님께서 응답을 주셨다는 것을 깨달았다.
4. 첫 번째 할아버지 섬김
그로부터 며칠 후 새벽기도 후 엄마가 어떤 할아버지를 모시고 왔다. 대전역에서 2블록 가면 일제시대 헌병초소가 있는데 거기서 지푸라기 깔아놓고 겨울을 나던 할아버지였다. 엄마가 새벽기도 다녀오시면서 그분을 보고 불쌍한 마음이 들었지만 아무 소리 못하고 지나가시고 했는데 그날 할아버지를 데려 오셨다. 눈이 먼 할아버지라서 엄마가 앞에서 지팡이를 끌고 오시는 대로 저벅저벅 따라오셨다. 어머니가 원망스러웠다. ‘우리 이 처지에 어쩌자고 저런 할아버지를 데려오셨나?’ 그때 어머니 얼굴이 엄해졌다. 그런 때는 무조건 하라는 대로 해야지 안 하면 종아리를 맞는다.
새벽기도 다녀와서 먹지도 못하고 허기진데 어머니가 “할아버지 목욕시켜 드려라.”하셨다. 아궁이도 없고 나무도 없어 밖에 나가 나무를 주워다가 불을 지펴 대야에 물을 데워서 씻기려니 변 보시고 추운데서 그냥 주무시니까 변과 소변과 때가 범벅이 되어 옷이 마치 갑옷 같았다. 도저히 손으로 만지지 못하겠어서 나무때기로 할아버지 옷을 하나하나 벗겨 제쳐놓고 어머니가 하라는 대로 깨끗이 씻어드렸다. 몸에도 때며 변이며 소변이 절어있었다. 할아버지는 목욕을 몇 년 만에 하셨는지 추운데도 연신 “어, 시원하다.”고 하셨다.
목욕 후 옷이 없어 “무슨 옷 입혀드릴까요?” “공주에 있는 외삼촌이 입다가 너 주신 거 그거 입혀드려.” “엄마, 난 어떡하고?”
엄마가 돌아서면서 눈물이 핑 돌았다. “입혀드리라면 입혀 드려.”
엄마한데 대들 수도 없고 해서 내 옷을 입혀드렸다.
“대청마루에 화로 앉혀드려.” 하시기에 재 남은 걸 깡통에 담아 화로 만들어서 대청마루 가운데다 앉혀드리고 우리 온 식구가 덮고 자는 담요 하나를 덮어드렸다.
그때 우리가 먹을 게 떨어졌다. “나가서 할아버지 먹을 거 구해 오라.” 하시기에 밭에 가서 무 배추 시래기를 주워왔다. 시래기에 된장을 풀고 쌀이 없으니 보리를 넣고 푹 끓이면 개밥 비슷하게 된다. 그거를 운 좋으면 하루 두 끼, 아니면 한 끼 먹는다.
끓이고 나니 “할아버지 먼저 갖다 드려.” 하셨다. 할아버지는 “맛있다, 시원하다.” 하시며 더 먹고 싶어 하는 눈치였다. “할아버지 배부를 때까지 드려라.” 우리 먹을 건 점점 떨어져 마음이 불안한데 할아버지는 세 그릇이나 드셨다. 우리는 나머지 남은 한 그릇으로 겨우 허기를 채웠다. 그러면서 겨울 동안 모시고 지났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생겼다. 기도하는데 하나님이 갖다 주라고 한다면서 겨우내 쌀이나 미역, 김치를 갖다 주시는 분들이 생긴 것이다.
그 할아버지를 까마득히 잊어버렸다. 그런데 3년 전에 미시건대에 한국유학생 집회가 있는데 자기들에게 와서 간증을 해 달라는 것이었다. 나 같은 사람 간증할 거 뭐가 있나? 히브리서 11장을 본문으로 학생들에게 믿음으로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 바라보며 신앙지키자는 말을 하려고 교회에 갔다. 교회 오른쪽 구석에 앉아서 예배보기 10분 전에 기도를 드렸다. 이 학생들에게 무슨 말을 전해야 할까요? 기도할 때 환등 슬라이드처럼 5장면이 착착 지나갔다.
첫 장면이 내가 그 할아버지의 몸을 씻어 드리는 장면이었다. 나무때기로 옷을 벗기는 장면이었다. 예수님이 마음 깊은 곳에 영어로 속삭이셨다. “That was me.”
“종수야, 내가 그날 얼마나 추웠는지 몰라. 그날 얼어 죽었을지도 몰라. 내가 얼마나 배가 고팠는지 모른다. 그 많은 사람들이 성경책을 끼고 지나가면서 나를 모르는 척 외면하고 지나갔지만 네 어머니가 나를 불렀다. 내가 배고플 때 네가 먹였지? 내가 추웠을 때 네가 한 벌 있던 네 옷을 입혀주었지? 내가 외로웠을 때 나를 가운데다 놓고 기도해주었지. 네가 나를 먹였으니 내가 너의 먹는 걸 책임져주마. 네가 나를 입혔으니 너의 입는 것을 책임져주마. 나를 데려다 재웠지? 너의 의식주를 책임져주마.”
“예수님 진작 말씀해 주시지. 그럴 줄 알았더라면 나무때기로 이렇게 안 했을 텐데요…. 어떻게 그것까지 보여주세요?” 솔직하게 그렇게 말씀드렸다. 할아버지는 그 이듬해 봄에 다른 곳으로 가셨는데 그렇게 할아버지를 모신 다음에 저에게 놀라운 일이 생겼다.
5. 지혜의 은사를 받다
새벽기도를 하고 나오는 길에 먹지도 못하고 부르짖어 기도하다 보니 피곤해서 교회 벤치에 누웠다. 뭐가 딱 닿아서 보니까 로마서 쪽복음이었다. 그런데 그 말씀이 보고 싶어 집어 들었는데 말씀이 눈에 빨려 들어오기 시작했다. 한 번을 읽었는데 또 읽고 싶어졌다. 그 자리에서 두 번 읽었다. 새 힘이 나서 돌아와 세수하고 학교를 향했다.
그때 대전고등학교 다닐 때 버스비가 없어 성남동에서 대흥동까지 걸어가고 있는데 갑자기 로마서가 눈앞에 펼쳐져 보이는 게 아닌가. 책이 한 권으로 오는데 머리를 흔들어 넘기면 페이지가 넘어가 문단이 보이고 글자가 보이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나는 책이 없는데도 책을 읽을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아하, 성령님이 나하고 함께하시니까 말씀이 머리에 와서 박히나보다.’ 그렇게 생각했다.
그날 학교에 갔는데 담임선생님이 불렀다. “원종수! 너 홀어머니 모시고 외아들인데 성적이 이게 뭐니? 공부 좀 해야 되지 않겠니? ”보니까 488명 중 410등을 했다.
나는 그때 밴드부에 들어가 나팔을 불었다. 겨울에 빨간 줄 친 흰 바지 입고 행사에 나가면 여학생들이 다 쳐다보는 것 같아서 밴드부에 들어갔는데 연습하랴, 선배들에게 불려가 기합 받고 맞느라고 그때부터 공부를 안 했었다. 담임선생님의 안타까워하시는 말씀이 마음에 와 닿아서 ‘아, 이제 공부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나님의 무한한 사랑을 받고 있는 하나님의 자녀가 공부를 잘하는 것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서 집에 와서 국사책을 읽었다. 한번 읽으니까 마음이 안 차 한 번 더 읽었는데 자신이 생겼다. 이튿날 국사 시험을 보는데 국사책이 머릿속에 탁 펼쳐졌다. 문제를 보니까 답은 잘 모르겠는데 이게 어디쯤 나와 있는 내용인지는 알 수 있었다. 그러자 머릿속에서 책 페이지가 넘어가기 시작했다. 그 페이지에 멈추어 보니 답이 나와 있었다. 혹시 다른 사람이 보나 안 보나 하고 둘러보았더니 다른 사람은 못 보는 것 같았다. 국사, 영어, 과학도 그런 식으로 시험을 잘 봐서 410등에서 전교 5등으로 올랐다. 공부를 열심히 하는데도 수학과 물리는 못했다. 책은 눈앞에 펼쳐져 보이는데 아무리 넘겨도 같은 문제가 없고, 책에 답이 안 나와 있고 문제만 있기 때문이었다. 수학은 30~40점 맞았어도 다른 것을 다 100점 맞으니까 대전고등학교를 1등으로 졸업했다. 하나님이 할아버지를 통해서 나를 테스트하신 것 같다. 그 테스트에 합격하니까 하나님께서 기회를 주신 것이다.
6. 서울대 입학 후 자살시도
하나님이 지혜를 주셔서 서울대 의예과에 들어갔다. 국영수가 필수인데 수학을 못해서 수석으로는 못 들어갔다. 어머니 그늘 밑에서 신앙생활하다가 대전 촌놈이 서울 오니까 마음에 도전이 있기 시작했다.
내 친구는 서울시장 아들이라 그때도 자가용을 타고 다녔다. 애들은 양복 입고 다니는데 나는 서울대 교복을 매일 입고 다녔다. 입학한 지 3주 후 서울대 보건소에서 통지가 왔다. 신체검사 하니까 몸에 폐의 반 이상이 썩어 들어가 공동이 크게 뚫려 있었다. 폐결핵이었다. 기침을 하면 피가 나와 먹지 못해 갈수록 몸이 쇠약해졌다.
대학에 들어와 <철학>을 듣다보니까 그럴 듯했다. ‘나는 이런 걸 몰랐기 때문에 종교에 빠졌나 보다. 정말 하나님이 살아계시다면 나를 어떻게 이렇게 병들게 하시나? 예수 안 믿는 내 친구들은 잘 먹고 잘살고 그렇게 재미있게 사는데 나는 하나님이 왜 이렇게 만들었나?’ 정신적으로 너무 혼란하고, 몸도 고단하고, 아르바이트도 해야 하고, 어머니도 서포트해 드려야 되겠고 그런 마음이 드는 가운데 1969년 5월 물리대 4층 실험실에서 화학실험 하다 말고 죽고 싶은 생각이 들어 4층에서 떨어져 자살하려고 나왔다.
이제는 하나님도 계신 것 같지 않고, 몸도 마음도 쇠약해진 상태로 아래로 떨어지려고 발코니에 다리 한 짝을 올려놓았다. 위에서 밑을 내다보니까 사람들 걸어가는 게 무척 우습게 보였다. 다리와 팔만 왔다 갔다 하는 게 낙지 같았다. 문득 내가 죽으면 귀신이 될 텐데 총각 귀신이 되면 외로울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이왕에 죽을 거면 여학생에게 떨어져 같이 죽자는 마음이 들었다. 그때 머리가 긴 여자를 좋아했기 때문에 머리 긴 여자애가 지나가기만을 기다렸다. 한참 후 머리 긴 여자가 지나가 뛰어내리려는 찰나 어머니의 얼굴이 보였다.
그 장면이 지나면서 큰 목소리도 아닌 눈물 어린 목소리로 “종수야!” 하고 부르시는데 땅바닥을 보니까 내가 이미 죽어 가마니로 덮여 있었고, 어머니가 통곡을 하고 계신 모습이 보였다. 이쪽 다리를 지지하고 머리부터 떨어지려고 하는 순간에 그런 어머니 모습이 보였다. 그래서 살기로 마음을 고쳐먹고 다리를 들어올렸다. 마귀가 저를 떨어뜨려 죽이려고 끌어당기는데 어머니의 기도가 싸 주신 것이다. 자녀들이 나쁜 길로 빠질 때 그 기도가 그 길을 막을 수 있다는 것을 아나? 어머니의 기도 때문에 그날 죽지 못했다.
7. 하나님께 폐결핵을 치유 받음
“기왕에 믿는 거 하나님 살아계신 거 보여주세요. 내가 의사가 될 건데 하나님이 나를 고칠 수 있다는 거 보여주셔서 나를 살리시든지, 아니면 내가 기도하다가 하나님 손에 죽겠습니다.”하고는 대전에 내려가 산에 들어갔다. “하나님, 이러실 수가 있습니까? 16살짜리가 방언 받고 하던 그 많은 새벽기도, 철야기도를 잊어버리셨습니까? 살아계신 것처럼 나를 그렇게 속이실 수가 있습니까? 나를 일찍 데려가시든지, 고쳐주셔서 살아계신 것을 보여주시든지 제가 새 사람이 되게 해 주세요.” 일찍 죽자는 생각에 물도 안 먹고 단식을 했다.
하루 지나니까 기운이 다 빠지고 한쪽 폐에서 피가 올라와 다른 폐로 들어가 숨이 차기 시작했다. 점점 죽어가면서 너무 억울했다. 나중에는 “내가 죽으면 하나님 손해봅니다. 내 앞길이 창창한데 내가 하나님이랑 가까웠고 사랑했고 목사님 전도사님 장로님보다 더 오래 앉아서 기도하던 사람인데, 교회에서도 저 애는 하나님이 쓸 사람이다 그랬는데 결핵 걸려서 피 토하다 죽었다고 하면 그게 하나님꼐 영광 되겠어요?” 죽기살기로 따졌다. 기도하는 가운데 ‘내가 따지기는 따지는데 이게 말이 된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그렇게 기도했는데 그렇게 죽어버리면 하나님께 영광이 안 된다. 하나님이 안 고쳐주면 안 된다. 이게 말이 되는구나. 그동안 기도해 놓은 게 있어서 자신이 생겼다.
“어린 마음에 친구들한테 전도한 거, 새벽기도한 거, 철야기도한 거 잊지마세요.”기도를 했는데도 응답이 없었다. 둘째날 밤이 되니까 숨이 차 혼미해지고 손가락도 움직일 수가 없었다. 그런데 하나님이 말씀을 주셨다.
“그런데 내가 앞으로 가도 그가 아니 계시고 뒤로 가도 보이지 아니하며 그가 왼쪽에서 일하시나 내가 만날 수 없고 그가 오른쪽으로 돌이키시나 뵈올 수 없구나“
욥23장의 8-9절 말씀만 읽고 다음 구절인 10절은 안 읽었다. 그때 “나의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같이 나오리라”는 10절을 읽었더라면 힘을 얻었을 텐데 그것을 안 읽고 9절까지만 읽어서 ‘하나님이 안 계시구나. 이제 죽어야지.’ 생각하는데 새벽에 4시 반에 하나님이 나를 찾아오셨다.
정신이 들어 ‘내가 이제 하늘나라에 왔나보다’ 하고 보니 아직도 육이 있었다. 참 이상했다. 갑자기 머리에서부터 시원한 얼음 같은 게 목에까지 내려오더니 “종수야, 네 머리는 이제 새것이다.”라는 음성이 들려왔다. 머리에서 목까지 내려오니까 “종수야, 네 목은 이제 새 거다.” 가슴까지 내려오니까 “네 가슴은 새 거다.” “네 배는 새 거다” “네 다리는 새 거다” 그게 엄지발가락 끝까지 오더니 엄지발가락에서 무언가 탁 떨어져 나갔는데 그때 갑자기 내 몸이 오뚝이같이 벌떡 일어섰다. 어디서 그런 새 힘이 솟아나는지 어디라도 갈 것 같아 새로운 기쁨이 솟아나기 시작했다.
“아버지, 감사합니다. 하나님 살아계신 거 감사합니다.” 그래서 산꼭대기로 올라갔는데 밥 잘 먹고도 두 시간 걸린 데를 5초 안에 뛰어올라갔다. 영으로 올라갔는지 지금도 이해가 안 간다. 하나님에게 있는 목소리를 다 해 힘을 다해 “하나님, 감사합니다.”하고 외쳤더니 “다… 다… 다… 다…” 하고 메아리가 쳤다. 아직도 그 소리가 들린다. 어려움 당할 때 죽고 싶을 때 그 소리가 들린다. 그러면 주님께서 “네 목숨보다 중요한 게 세상에 있느냐? 내가 네 목숨을 살려주지 않았느냐? 감사합니다. 그 소리 한번 하고 일어나라.” 그러신다.
주파수를 알 것 같다. 하나님이 왜 새벽 4시 반에 찾아오셨을까? 제가 늘 새벽기도하는 그 시간, 하나님과 약속된 시간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소름이 끼친다. 만약 내가 새벽마다 기도하지 않았다면, 하나님이 30분만 늦게 오셨으면 나는 죽었을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 만나는 새벽시간이 너무 떨려가지고 하나님 실망시켜 드리지 않으려고 그 시간을 꼭 지킨다. 기도 열심히 하고 하나님과 매일 만나는 시간을 지키라. 하나님이 그시간 응답을 갖고 오실 것이다.
나는 하나님이 좋아서 새벽기도 간다. 자동차 엔진이 돌 굴러가는 소리가 나는데도 눈 치워가면서 새벽기도 간다. 한번은 교회에 아무도 안 와서 옆문을 열고 들어갔는데 갑자기 실내가 훈훈해졌다. 아무도 없는데 하나님과 나만 있었다.
기도할 때 “종수야, 너 왔니?”하셔서 깜짝 놀랐다. “아버지, 제가 왔습니다.” “왜 왔니?” “저는 하나님이 좋아요. 아버지가 좋아요. 그래서 왔어요.” 이것을 다른 말로 표현할 수가 없다. “종수야, 나도 네가 좋다. 네가 나를 좋아하는 것보다 내가 너를 좋아하는 것이 얼마나 큰지 너는 알 수가 없어.” “제가 매일 나올게요. 절대로 주님 실망시켜 드리지 않을게요.”
주님은 미리 나와 기다리신다. 하나님 허트하신다. “대체 뭐가 그렇게 좋으세요?”하고 하늘나라 가면 물어볼 거다. 분명한 것은 하나님이 나를 좋아하신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세상에서 가장 귀한 분이시다. 무조건 사랑하신다고 무시하고 우습게 보면 안 된다.
나는 새벽기도 때문에 살았다. “네가 나를 만나는 이 시간에 내가 너를 만나주겠다. 내가 너를 만나는 이 시간에 대답을 갖고 오겠다. 네가 나를 만나는 새벽시간에 기적을 갖고 너를 찾아오겠다. 내가 너를 만나는 이 시간에 축복을 가지고 찾아오겠다.”
그래서 내가 새사람이 되어가지고 서울로 올라왔다. 저는 의학을 하는 사람인데 병원에 가서 사진을 또 찍어보았다. 그랬더니 그 큰 동공이 이만한 돌덩어리가 되어 뼈 뒤에 박혀버렸다. 지금도 그 사진을 갖고 다닌다. 하나님이 나를 고치셨다는 증거다.
8. 크리스천의 학습방법
서울에 와서 공부를 열심히 하기 시작했다. 아르바이트를 두 탕 뛰고 9-12시까지 자고, 12시에 일어나면 눈이 잘 안 떠져서 한겨울에도 냉수마찰하고 정신을 차려서 공부한다. 찬물을 끼얹으면 손가락 끝에서 고드름이 열릴 정도다. “낙제하지 않게 해 주세요” 기도하면서 ‘내가 세상 공부하기 전에 성경을 먼저 봐야지. 하나님 말씀으로 내 머리를 씻어야지. 머리에 세상 지식 들어가기 전에 먼저 하나님 지식을 넣어야지.’ 하고 구약 1장 신약 1장 읽고 해부학 공부를 열심히 한다. 하나님이 내게 방언 글씨 쓰는 은사를 주셔서 새 종이 나오면 가운데 쓰고 옆으로 써서 십자가 모양이 되게 써 놓고 “하나님 이 종이에 연습하는 지식은 하나님만을 위해 쓰게 해 주세요.”하고 기도하고 열심히 공부한다.
생리학 공부를 시작하면 또 신구약 한 장씩 읽고 기도하고 공부하고, 그런 식으로 과목이 바뀔 때마다 신구약 한 장씩 읽고, “이 공부가 하나님보다 우선되지 않게 해 주세요. 새벽에 일어나면 세상 것 생각하기 전에 하나님 생각 먼저 하게 해 주세요. 이 공부한 거 하나님 지식 되게 해 주세요. 지금 공부하는 이 과목이 머리에서 지식이 되기 전에 하나님의 말씀을 더 사모하게 해 주세요. 이 공부가 나의 인간적인 유익을 추구하는 것이 아닌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게 쓰이는 도구가 되길 원합니다.” 그렇게 기도하고 나서 공부를 시작하곤 했다.
새벽 5시가 되면 새벽기도 가서 기도하고, 6시가 되어 돌아오면 7시까지 잠을 잤다 하루 4시간 잔 셈이다. 기숙사에서 밥 먹고 학교 가는 게 일이었다.
9. 두 번째 할아버지 섬김
본과 1학년 때 아르바이트를 하고 첫 월급을 탔다. 3만원을 손에 딱 쥐었는데 너무 마음이 기뻤다. 그렇게 큰돈을 만져본 적이 없다. 어머니가 생각났다. 대전에 그 추운 방에서 계신 어머니, 연락하지 말고 몰래 밤에 가서 밥도 김치도 먹지 말고 고기로 엄마 배를 한번 채워드리자 그 마음으로 내려갔다. 서울-대전 고속도로가 갓 생겼을 때 버스를 타고 신나게 내려갔다. ‘엄마가 얼마나 기뻐하실까? 엄마가 고기를 드시면 처음으로 이빨을 쑤실 거야.’ 생각만 해도 기분이 너무 좋았다. 돈을 꼭 쥐고 가는데 손에서 땀이 났다. 고속버스가 터미널을 막 돌아오는데 어떤 할아버지가 보였다. 얼굴도 몸도 안 보이고 무릎만 보이는데 무릎이 딱딱 닿을 정도로 추위에 덜덜 떨고 있었다. 왜 하필이면 이 늦은 토요일 밤에 내가 돌아오는 고속버스 앞에 주책없이 할아버지가 있담? 뼈가 부스러질 것 같이 돈을 쥐고 있는 주먹이 쥐어졌다. 미적거리며 맨 뒤에 내렸지만 할아버지는 그때까지 안 가고 있었다. 그 할아버지한테 3만원을 탁 쥐어주고 “할아버지, 왜 주책맞게 이 늦은 밤에 나와 있습니까?” 그 말 한 마디 하고 돌아섰다.
집으로 가는 길에 정육점이 하나 있었다. 엄마한테 가서 “엄마, 내가 왔어.” 하고 고기를 탁 내놓을까? 아니면 내가 삶아가지고 들어갈까? 이런 저런 생각을 했는데 그 돈을 할아버지한테 주고 정육점 앞을 지나가려니 가슴이 찢어질 것만 같았다. ‘할아버지 1000원만 주고 29000원 갖고 올걸, 아니, 만원만 주고 2만원 갖고 오면 고기를 살 수 있었을 텐데 돌아갈까?’ 그래봤자 할아버지는 가셨을 것 같아 집에까지 터덜터덜 걸어갔다. 어머니가 반가워하시면서 속옷 바람에 나오셔서 “너 왜 왔니?” 하는데 눈물이 나와서 “엄마, 그냥 왔어.” “그냥 오다니?” “그냥 왔어.” 그날 밤에 이불 속에서 어머니가 너무 안 되어서 막 울었다. “하나님 때가 오겠죠. 제게 지혜는 주신 것 같은데 돈은 아직 안 주셨네요. 하나님 혹시 잊어버리셨습니까?” 그때 참 마음이 아팠는데 미국에 간증하러 가서 저 뒤에 앉아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두 번째로 그 장면을 보여주셨다.
“That was me. 저게 바로 나였어. 그때 내가 얼마나 추웠는지 모른다. 그때 내가 얼마나 배고팠는지 모른다. 그때 얼마나 고기가 먹고 싶었는지 모른다. 사람들이 단돈 백 원이라도 내게 주고 갈 줄 알았는데 아무도 내게 주지 않고 그냥 가는데 네가 돈을 주었지. 보니까 큰돈이더구나. 3만원이나 주었어. 근데 너만 3만원 못 만져본 게 아니야. 나도 그때까지 3만원 만져본 적이 없어. 네가 가진 전부를 내게 주었지? 네가 나를 배고프지 않게 해 주었지? 내가 너를 축복하겠다.”
그때 돈을 드리면서 할아버지한테 던진 말이 마음에 걸리고 아팠다. “그때 그게 예수님이라고 진작 말씀하셨더라면 내가 그렇게 말하지 않았을 텐데….”
나는 그 두 번째 할아버지를 섬기고 난 다음에 다 잊어버렸는데 하나님은 다 기억하고 계셨다. 그 이후로 사실 낙제할 줄 알았는데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을 1등으로 졸업했다. 1등 2등 차이가 굉장히 크게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했다. 머릿속에서 책장을 팔랑팔랑 넘기니 나를 따라올 사람이 없었다. 다른 학생은 노트 보는데 저는 책을 꼭 두 번씩 읽었다. 그게 보통 힘든 게 아니다. 하나님이 은혜를 주시더라도 여러분의 베스트를 기대하신다. 여러분이 할 일을 다 해야 한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나는 부지중에 예수님을 대접하고 그때 돈 3만원으로 서울대 수석졸업의 영예를 산 것이다.
10. 위장하고 찾아오시는 예수님
그 두 장면을 하나님께서 보여주실 때 제 마음에 울리는 게 있었다. “예수님께서 위장하시고 내 곁에 있을 때 성령님께서 나를 쿡쿡 찔러서 그 예수님을 그냥 지나치지 않고 잘 섬기게 해 주세요.” 여러분 주위에 예수님 안 계신가? 예배당에서 “I love you LORD” 하고 찬송하고 집에 돌아가면 가정에서 친척 중에 여러분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 외롭고 배고프고 힘든 사람이 있지 않나? 진정으로 예수님 사랑하면 그 예수님을 멸시하지 마라. 하나님이 테스트하신다. 여러분이 모시는 시어머니, 암에 걸려서 죽어가는 사람, 중풍병에 걸려 외로운 골방에서 홀로 누워 있는 그가 바로 예수다. 입술로 사랑한다고 외치는 그 소리에 하나님 안 속는다. 예수님이 여러분의 삶을 풍족하게 하시고 축복해 주시기 위해 여러분의 삶에 위장하고 나타날 때, 얼마나 많은 시간, 얼마나 많은 때에 예수님을 차버리고, 구박했던가.
암에 걸리면 앓다가 바짝 말라서 고생하다가 죽는다. 중풍환자는 똥오줌 받아내야 한다. 그런 사람들 보면서 ‘왜 빨리 안 데려가시나?’ 하는 생각이 들어 여쭤보았다. 그때 주님이 응답하셨다. “내가 그런 사람들을 너희 주변에 두는 이유는 너희를 축복하기 위해서이다.” 예수님께서 그 사람들의 몸을 입고 와 계신 것이다. 예수께서 2000년 전에 왕으로 오셨나? 마구간에 오셨다. 그를 몰라보는 과오를 여러분이 지금 범하는 것이다. 그 예수님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지 마라. 예수님을 교회에서 찾지 마라. 여러분 주변에서 여러분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시부모님, 부모님을 통해서 예수님이 여러분을 축복하기를 원하신다.
그 수많은 예수님들, 여러분이 발길로 차고, 침 뱉고, 멸시했던 그 장면들이 여러분 앞에 보일 때가 올 것이다. 어떻게 하겠느냐? 저는 나뭇가지로 할아버지의 옷을 벗기고, 터미널의 할아버지에게 말은 그렇게 했어도 대접은 해 드렸다. 죽어가는 예수님이 여러분의 따뜻한 밥 한 그릇, 여러분에게 흔한 5불 10불을 기다린다. 그러기 전에는 진정한 축복을 맛 볼 수 없다.
11. 졸업 후의 영광
서울대 졸업 후 영광을 주시기 시작했다. 정신이 없었다. 재벌들, 정치인들이 찾아오기 시작했다. 대학병원에서 가운 들고 복도를 걸어 들어가면 교수님들도 “원종수, 1등한 사람”이라고 하시고, 주위에서 나만 지나가면 수군거렸다. ‘저 사람이 서울의대 수석졸업하고 의사고시 일등한 사람인데 아직 총각이래’하는 이야기였다. 별실에 가면 선 보러 오는 사람이 줄을 서 있었다. 교만이 싹트기 시작했다.
대학병원 인턴 첫 월급을 타다 봉투에 담아 어머니에게 갖다 드렸다. “이거 첫 열매지?” 하시더니 그 다음날 새벽기도 가서 하나님께 고스란히 바치셨다.
인턴 두 달째 학장님한테 전화가 왔다. “기쁜 소식이 있다. 전국의사고시에서 1등 했다. 상금이 10만원 나왔다. 세금 떼면 7만원이다. 와서 나하고 사진도 찍고 가져가라.”하셨다. 하나님은 계산도 정확하시다. 첫 월급 바친 후 다음 달 월급 타기 전에 바친 만큼 고스란히 돌려주셨다. 그것도 어머니한테 갖다 드렸더니 “종수야, 너 옛날에 상금 타 본 적 있나?” “없지요.” “그럼 이거 첫 열매네? 하나님 거는 오래 갖고 있지 않을수록 좋아.” 어머니는 그것도 그 다음날 새벽기도 때 그대로 남의 교회에 갖다 바치셨다.
12. 세 번째 할아버지를 섬김
대학병원에서 인턴생활하면서 영등포 시립병원 레지던트 파견 나갔을 때 월급을 어머니께 드리고 3만원 용돈으로 받아 갖고 있었다. 응급실에 영등포 역전에서 구걸하다가 떨어져 머리가 깨져 뚜껑이 열린 아이가 왔는데 돈이 없다고 치료를 안 해주었다. 고민고민 하면서 앉아있는데 밖에서 싸우는 소리가 들렸다.
어떤 할아버지가 팔에 큰 종기가 나서 몸에 퍼져 열이 있는데 돈이 없다고 들여보내 주지 않자 수납하는 사람과 언쟁을 하고 있었다. 수납하는 애한테 가서 “내가 책임질 테니 들여보내라. 고지서 나오면 내가 낸다.”하고는 할아버지 데려다가 고름을 깨끗이 짜서 심 박아서 주사를 양쪽에 놓아 드리고 3만원 쥐어 드리면서 “가서 고기 사 잡수세요. 몸이 이럴 때는 잘 먹어야 합니다. 예수 믿으세요.” 그러고 돌려보냈다. 그때는 정성을 다해서 모셔드렸다.
이게 미국에 간증하러 가서 교회 뒤쪽에서 기도할 때 하나님이 보여주신 세 번째 장면이었다. 예수님께서 “그게 나였다. 그때 너무 아팠는데 네가 정성 다해 치료해 주어서 잘 나았어. 네가 정성스럽게 대접한 거 잊지 않겠다. 내가 너를 훌륭한 의사, 영혼을 사랑하는 의사로 키워주겠다.”하고 약속하셨다.
세 번째 장면에서는 내가 잘 섬겼다. 그때부터는 예수님 얼굴도 밝으셨다. 내가 3만원 주고 그 불쌍한 예수님, 천대받는 예수님 섬기지 않았더라면 훌륭한 의사가 되었을지는 몰라도 예수님 지나쳤을지 모른다.
내가 입으로 사랑한다고 고백하는 것이 행동으로 나오기 전에는 믿음으로 받아들인 게 아니다. 성경말씀이 내 머리에 부닥쳤을 때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사람만이 행동으로 나갈 수 있는 사람이다.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사람만이 하나님께서 억셉트할 수 있는, 진정한 말씀을 받아들이는 사림이다. 믿음 생활이 교회에서 끝나면 하나님이 속지 않으신다. 그런 사람에게 복 주면 잘못된다. 아무리 복 달라고 해도 복을 주실 수가 없다.
말씀을 믿음으로 받아들여 행동으로 보여주는 사람 진정으로 예수님을 봉사할 수 있는 사람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기대하지 않는 축복을 주신다. 훌륭한 의사, 미국에서 암전문의를 3만원 주고 살 수 있겠는가?
13. 미국행 결심
나의 학력과 성적만 보고 중매하려는 사람도 많았다. 결혼을 흥정처럼 생각하는 이들을 보면 안타까웠다. 배우자는 하나님이 주시는 선물이라는 생각을 갖고 이를 위해 끊임없이 기도해야 한다고 믿는다. 한번은 서울대 병원에 출근하려고 아침에 나왔는데 우리나라에 새나라 차 있을 때 벤츠 2대, 리무진 한 대 해서 모두 세 대가 서 있다. 한 사람은 ○성사 마나님이, 한 사람은 ○그룹 회장 마나님이, 한 사람은 경제기획원 담당관이 보냈는데 다 자기 차를 타야 한다고 우겼다. 한 사람이 어떻게 3차를 타냐니까 얼굴이 새파래지면서 “선생님을 안 모셔다 드리면 저 목이 잘립니다.”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하는수없이 흥은동 누님 댁에서 병원까지 한 대씩 나누어 중간에 갈아타고 갔다. 외제차 세 대가 가니까 헌병들이 경례하고, 리무진이 좌회전이 안 되는 데도 무시하고 돌았다. 마음이 편치가 않았다. 결혼만은 팔려가는 당나귀가 되고 싶지 않았다. 나는 가난해도 성령 충만한 아내,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우리 모든 가족을 친형제 이상으로 대해줄 수 있는 배우자를 만나게 해달라고 기도했는데 이 기도 응답은 서른 살이 넘은 82년 미국생활에서야 이루어졌다.
나는 예수님 때문에 나랑 같이 살 수 있는 아내, 방언하는 아내를 달라고 기도했다. 예수 믿는다 하면서도 50% 이상은 가짜다. 성령의 은사는 믿는 사람에게 오기 때문에 하나님의 자녀인 게 확실해서 방언하는 사람을 좋아한다. 방언하는 사람은 기도하는 사람이라 새벽기도, 철야기도, 금식기도를 할 수 있는 사람이다.
서울에서 계속 살면 나보다 서울대 1등졸업, 전국의사고시 1등이라는 경력만 내 이름 위에 뜨고 예수님은 사라질 것만 같았다. 그러면 예수님이 내게 주신 지혜와 건강을 다시 가져가실 것만 같았다. 너무나 주위 사람들이 떠받들어 나를 교만케 만들자 하나님께서 내게 명령을 내리셨다. “갈대아 우르를 떠나 내게 지시하는 곳으로 가라.”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떠나라 하실 적에 갈 바를 알지 못하고 갔다. 그게 믿음이다. 하나님이 하라고 하면 실천으로 옮기는 그게 믿음이고 옮기기 전까지는 지식이다.
하나님이 믿음을 같이 주셔서 미국으로 가기로 작정했다. 서울대에 그냥 있었으면 인턴 레지던트 멋있게 끝나고 서울대 교수 되어 재벌딸과 결혼해서 한국에서 잘 살 거다. 그랬으면 지금 간증 안 하고 있을 거다. 나의 계획은 미국 의사시험을 거쳐 내과의가 되는 것이었다.
14. 군복무
그때 갑자기 영장이 나왔다. 그때는 군의관요원이라 트레이닝 다 끝나면 가기로 했는데, 4학년때 일반병력으로 가면 아버지가 군인으로 돌아가신 혜택을 주겠다고 해서 그걸 바꿔 놓았다. 그게 나중에 나올 줄 알았는데 6월에 방위로 영장이 나왔다. 예비군복 입고 계급도 작대기 하나였다. 대학병원에서 4개월 동안 한국에서 제일가는 사람처럼 하고 있다가 그곳에 갔더니 서울대 1등, 의사고시 1등이 어디 있나? 이름이 “이 새끼, 임마, 원일병”이다. 수도사단에 가서 훈련받으며 인간 이하 대접을 받았다. 몸 맞는 건 괜찮은데 머리를 왜 그렇게 때리는지 알 수 없었다. 1주일을 병무청에서 보내고 사무를 보라는데 사무가 아니라 재떨이 닦고 바닥 청소하고 책상 닦는 일이었다. 5급 공무원 패스한 여학생들이 나를 “야, 임마, 이 새끼, 원일병”으로 불렀다. 점심시간 되면 가서 또 훈련 받는다. 고교 갓 졸업한 후 1주일 더 일찍 들어왔다고 기합주고, 기가 빠졌다면서 기합 주고, 헌병들이 방위병들을 괴롭혀 출근하려고 하면 토기뜀을 20분 뛰고 나서야 들여보냈다.
마음이 뒤숭숭해서 하나님께 기도할 때 하나님이 응답하셨다. “종수야, 그거 하면 얼마나 하겠니? 6개월인데 3년 반 군의관보다 낫지 않니? 네가 언제 의사가 되어가지고 다른 사람 섬기는 거 배우겠냐? 사회 밑바닥에서 다른 사람 섬기는 거 이해하고, 가서 6개월 동안 해라.” 성령님이 그런 마음을 주셨다. 그래서 기쁜 마음으로 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더욱 더 인생을 배우게 하시고 교만 깨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다른 사람이 저를 1등한 사람이라고 불러주지 않게 되어 감사합니다. 다시 하나님이 나에게 말씀하기 시작하시고 나로 겸손하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그래서 열심히 일했다. 그런데도 구박이 점점 세졌다. 특히 계장이 하나님에게 원종수 트레이닝 사명을 주셨는지 나만 보면 이유 없이 머리를 때리고, “이 쌔끼”하면서 저주를 한다. 뭐라고 해도 늘 웃으니까 그게 싫었던 모양이다.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에 웃는다고 때린다. 우리 마음에 어려움이 있을 때 기뻐하고 기도하면 사단이 더 우리를 공격한다. ‘6개월만 지나라. 너는 여기서 평생 계장하는 동안 나는 미국 가서 의사가 될 거야. 나는 하나님이 알아주는 사람이야.’ 그렇게 생각했다. 예수 믿는다고 해서 기쁨과 순탄함만 있지 않다. 불신자들이 당하는 것보다 때로 더 많이 당한다. 그때 이렇게 생각하라. “사단아, 때만 돼라. 하나님이 나를 데리러 오시는 날 보자. 일생, 영원 중에 얼마 안 된다. 평생 불치병도 잠깐이다. 가면 얼마나 가겠나. 내가 육체를 벗는 날 승리하기로 약속받은 하나님의 딸이다. 두고 보라. 육을 벗는 날 보자. 내가 네 머리를 짓밟으리라.” 한 달 동안 열심히 청소하고 있는데 하루는 웬 대령이 나타났다. 병무청은 군대식이라 대령이 들어오니까 전체가 긴장했다. 대령이 과장에게 가더니 “여기 원종수 선생 찾아내시오!”하였다.
별 하나짜리 군의감이 와서 원종수를 찾는데 아무도 원종수라는 이름을 들은 적이 없어 찾지 못하자 대령이 화가 더 났다. 나를 괴롭히는 계장이 인상을 팍 쓰면서 “야, 너 혹시 원종수 아나?”하자 대령이 “원종수가 뭐야? 원 선생이야.” 계장이 다시 “원이병, 원종수라는 사람 알아?” “전데요.” 계장의 얼굴이 새파래졌다. 대령이 나에게 오더니 어깨를 안고 손을 탁 잡고 악수하면서 “원 선생, 이런 데 있으면 나한테 말을 해야지. 꼴이 이게 뭔가.” 서울시 지방병무과 동원과에 근무하는 50명의 얼굴이 다 새파래졌다.
작대기 하나 단 대령이 지나가면 문 열어주고 신발까지 닦아야 하는데, 대령이 문을 열어주면서 나더러 먼저 나가라고 하니 어색하기 이를 데 없었다. 대령이 “내 방에 와서 근무해.”하더니 나를 데리고 올라갔다. 제일 편한 데가 거기인데 나를 그렇게 괴롭히던 최고참 방위병이 그 방에서 비서로 일하고 있었다. 대령이 그 사람에게 나를 딱 데려가더니 “원 선생 잘 모셔.” 하였다. 그래서 거기 근무하면서 머리 기르고 사복 입고 나머지 시간 다 채우고서 제대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강 대령님은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을 나오셨는데 서울대학교 동창회에 갔다가 학장님한테 원종수가 병무청에 있다는데 군의감이라고 국방부에 있으면서 후배들 돌봐주지 않는다고, 선후배 관계가 이게 뭐냐고 꾸지람을 들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다음 날로 강 대령님이 내려오신 것이다.
거기 갔더니 오비맥주 사장 박용현 소령이 군의관으로 근무하고 있었다. 사복입고 머리 기르고 자기 차를 운전하고 다녔다. 갈 때 소령이 운전하고 내가 옆에 앉아 있으니까 내가 더 높은 사람인 줄 알고 나를 보고 토끼뜀을 뛰게 하던 헌병이 경례를 붙였다.
어려움이 있을 때 믿음으로 이긴다. “왜 이런 데서 고생하나? 내 방에 가.”하고 천사장이 사단의 머리를 박을 때가 있다.
15. 또 한 번의 기적
방위병 근무를 마치고 미국으로 가는 수속을 밟으면서 마음이 들떠 있었다. 그런데 미국 대사관에서 건강진단서를 요청해 검진을 받고 보니 예전에 폐를 앓았던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이 사진으로는 미국에 가기 힘들다고 했다. 하늘이 노래지는 것 같았다. 즉시 어머니에게 이 사실을 알리고 큰일 났다고 했더니 어머니는 일주일 기도하고 다시 X레이를 찍어 보자고 말씀하셨다. 누나들에게도 이 사실을 알리고 온 식구가 3일 금식기도를 하기로 했다.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에 세밀히 그리고 정확하게 응답하시는 분이시다. 어머니 말씀대로 일주일 뒤 세브란스병원에서 다시 X레이를 찍었더니 시꺼먼 흔적이 있던 부위가 사라져 있었다. 예수님을 모르면 이런 사건이 신기하고 기적적인 일이라고 하지만 예수를 믿는 우리에겐 이것을 당연한 섭리로 받아들일 수 있다.
16. 미국행
미국에 오는데도 돈이 없었다. 월급을 어머니 드리면 모을 게 없었다. 어머님은 친척들 중에 어려운 사람이 있으면 우리 먹을 게 없어도 도와주신다. 십일조 떼고 어머니를 위해서는 안 쓰고 남 주신다. 미국 가는 경비를 아끼느라 입양아를 데리고 나가는 일을 자청했다. 그러면 의사는 비행기표를 제공받았다. 800불을 손에 들고 홀트아동복지회의 12명의 아이들을 돌보면서 갔다. 애들이 불쌍하고 안타까웠다. 자꾸 울고 우유를 먹어서 설사를 하면 기저귀를 갈아주었다. 함께 그 일을 하는 사람은 12시간 내내 애 하나 안 보고 영화를 보고 있었다. 기가 막혔다. 12명을 나 혼자서 다 돌보면서 왔다. 그때 만일 한가했으면 앉아서 ‘갈 데가 없는데 어쩌나?’하고 고민했을 텐데 애기들이 울어서 우유먹이고 기저귀 갈아주고 정신이 없었다. 다른 사람들 주스, 커피, 밥도 먹는데 나는 먹을 걸 안 주었다. 스튜디어스가 와서 뭐라고 뭐라고 하기에 “댕큐” 하면 그냥 가 버렸다. 목도 마르고 해서 나중에는 화장실의 물을 따라 마셨다. 와서 뭐 먹을 거냐 물어보았는데 댕큐 하니까 거절의사로 알고 그냥 가 버린 것이다.
비행기 안에서 12명의 아이들을 하나하나 안고 이들 입양아가 예수 믿는 부모를 만나 훌륭하게 성장하고 어디 가더라도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구원을 얻게 해 달라고 간구했다. 뉴욕공항에 도착해 애기들 하나하나 부모들에게 맡겨주고 나니 막막했다.
밤이 늦었는데 갈 데가 없었다. 밤이 늦고고 흑인들이 왔다갔다 하니까 무서웠다. 큰 가방 하나 빌려왔는데 들은 게 없어 이리저리 쏠렸다. 그 가방을 들고 뉴욕 공항에 섰는데 그 농땡이치던 사람이 비자 문제로 걸려서 뒤에 나왔다.
“왜 거기 있느냐? 갈 데는 있느냐?” 하기에 “갈 데가 없다.”하니 20불 있냐고 하기에 화장실에 가서 스타킹 속에 꽁꽁 싸서 갖고 온 돈에서 20불을 꺼내서 갖다 주었다. 가슴이 철렁했다. 이제 780불밖에 안 남았다. 필라델피아에 왔는데 주유소에서 내려주었다. 데려갈 거라고 생각했던 목사님이 전화연결이 안 되자 욕을 그렇게 해댔다. 집에 전화를 하니 부인이 왔다. 부인이 나를 보더니 “왜 저런 사람 데려왔냐?”고 하면서 화를 냈다. 그는 집에 도착해서 2층의 방 하나에 나를 넣어놓고는 내려가 버렸다. 1층에서 부부가 나 때문에 싸우기 시작했다. 몸 둘 바를 몰랐다. 밤에 가스 난방을 안 틀어줘서 춥게 잤다. 눈물도 나고 “하나님, 이러려고 미국 보냈나요?” 하고 말했다.
그다음 날 아침 6시쯤 되었는데 그 사람이 막 깨워서 차에 태워 필라델피아 그레이하운드 버스 앞에다 내려놓고 가 버렸다. 보니 너무 일러 카운터도 문을 안 열었다. 하나님이 기도시간을 2시간 주셨다. “어딜 가야 됩니까?”기도하는데 “옛날에 대전에서 네 어머니 계셨던 선교사님 댁 기억나지?” 주님이 그 생각을 주셨다. 그 아들이 편지를 한번 낸 적이 있는데 그 도시 이름이 넥키스 포트였다. 발음을 못 알아들어 글씨를 써 주니까 “오, 넥키스 폴트”하더니 완행표를 한 장 주었다. 아침 9시에 떠나 저녁 9시까지 12시간을 갔는데 완행이라 가다가 서는 데도 많았다. 9시가 되자 주유소에 내려주었다. 터벅터벅 걸어 들어가니까 “나가라”고 하였다. “혹시 하지스 목사님 아느냐?”물으면서 글씨를 써 줬다. 그래도 “모른다. 나가라” 하였다. “하나님, 어떻게 합니까?” 옆에 모텔의 불이 깜빡 깜빡거렸다. 내가 미국에 올 때 하나님께서 “모텔에 가서 자지 마라. 모텔에 가서 자지 않음으로 내가 너와 함께하는 것을 보여주겠다.”라고 응답하셨다. 그런데 모텔에서 자야 하나? 하고 있는데 그때 어떤 할아버지가 걸어 들어왔다. 흰 모자를 쓴 경찰이었다. 미국 순경들은 잘해준다고 들어 반가워서 써 놓은 글자를 보여주었다. 그 할아버지 경찰은 자기가 하지스 목사를 안다면서 전화를 걸어 주고 갔다. 하지스 선교사는 한국선교사를 마치고 이곳에서 목회를 하고 있었다.
그게 그 미국의 교회에서 하나님이 보여주신 네 번째 장면이었다. 보여주시고 나서 주님께서는 장난스럽게도 “그게 나였다. 몰랐지?”그러셨다. 부지중에 예수님이 도와주셨다. 부지중에 십 몇 년 전을 예수님이 기억하시고 도와주셨다. 예수님이다 생각하면 열심히 도우라. 부지중에 예수님이 여러분을 도우실 것이다.
17. "Are you a real christian?"
목사님 대신 딘이란 분이 나를 픽업하러 왔다. 그분은 하지스 목사님이 지금 집회를 인도중이니 오늘밤은 자기 집에서 자고 내일 목사님을 만나라고 했다. 차를 타고 가는데 그가 천천히 물었다. "Are you a christian?" "Are you a real christian?"
그 당시는 별로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그렇다고 대답했지만 이 질문은 후일 내 삶에서 수시로 대두되었다. 지금 내가 진정한 기독교인으로 살고 있는지 질문을 던지고 나를 반성했던 것이다. 우리 주변에는 교회만 왔다 갔다 하는 거듭나지 못한 기독교인이 참으로 많다. 종교를 윤리적 지침으로, 삶을 정화하는 수단으로만 여기는 이들은 하나님의 심오한 진리를 알지 못한 채 영적방황을 계속하고 있다.
하나님은 살아계시며 지금 이 시간에도 우리에게 역사하신다. 이 사실을 확신하고 자신 있는 믿음의 기도를 드리지 못한다면 이는 진정한 그리스도인이 아니다. 척하는 가증스러운 크리스천이 아니라 리얼 크리스천인가?
교회 와서는 크리스천인 척할 수 있다. 거룩한 척할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이 그 시간만 보는 게 아니다. 가정에서 특히 여러분이 크리스천인가를 보신다. 사람들이 나를 통해 예수그리스도를 볼 수 있는가? 그 기준을 이렇게 삼으라. 내 아내가, 내 자녀가, 나를 볼 때 나를 정말 크리스천이라고 대답할 수 있겠나? 가정에서 배우자로부터 과연 크리스천이라는 소리를 들을 수 있어야 한다.
아버지가 이 세상에 존재하는 하나의 이유는 여러분의 자녀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주기 위해서이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을 배워주기 위하여 한국교회의 아버지들이 영적 권위를 잃었다. 우리가 하나님을 만나면 하나님이 반드시 물으실 것이다. “너는 세상에서 무엇을 했느냐? 너의 자녀는 어디 있느냐?” 다른 사람 구하기 전에 자기 자녀를 구원해야 한다.
아이들에게 권위를 얻으려면 소리 지른다고 되는 게 아니다. 자녀양육의 넘버 원, 하나님으로부터 자녀를 다스릴 수 있는 권위를 얻어야 한다. 그 방법은 자녀를 위해서 기도하는 길밖에 없다. 그거 없이 성공적인 아버지가 될 수 없다. 한국의 아들들은 아버지들에게 불만이 많다.
자녀들이 아버지에게 "I love you" 소리를 못 들어보았다. 만약 예수님이 하늘에 앉아서 “아이 러브 유” 했더라면 우리는 다 죽었다. 그분이 그 사랑을 나타내기 위해 이 땅에 오시지 않았는가. 자녀들을 볼 때마다 꼭 껴안고 “아이러브유” 해 주어야 한다.
사랑을 나타내라. 가정에서 제사장으로서 예배를 드려야 한다. 영적인 권위를 가지고 기도해 주는 사람이 될 때 그 가정이 여러분의 손에 들어온다.
저는 병원 다녀와 집에 와서 아이들 이름을 부른다. 달려오면 꼭 껴안아 주고 “아이 러브 유” 그러면 아이가 “아이 러브 유 투” 확인한다. 저녁때는 예배를 드린다. 교회에서 드리는 예배처럼 진지하다. 내가 해야 될 일은 하나님 살아계신 것, 예수님을 보여주는 것이다.
“나의 입술의 모든 말과 나의 마음의 묵상이 주께 열납되기를 원하네.” 가족이 손잡고 이 찬송을 하고 하나님이 주신 말씀을 본다. 매일 매일 하나님의 구원이 확실한 것을 확인시켜 준다. “하나님이 어디 계시나?” “우리는 누구 이름으로 구원받았지?” “우리는 무엇으로 죄사함 받았지?” 애들이 답변한다. 그러면 머리에 손 얹고 기도한다. 애들 돈 벌게 해 주세요. 하버드 가게 해 주세요. 기도 안 한다. 예수 모르고 돈 벌면 저주다. 예수 모르고 하버드 나오면 지옥 간다. “온유하게 해 주세요. 겸손하게 해 주세요. 순종하게 해 주세요. 하나님 섬기는 자 되게 해 주세요.”라고 기도한다. 아이들이 순종한다. 하나님이 주신 아버지의 권위가 있다. 아이들에게 일일이 기도해 주고 부인과도 손잡고 기도한다. 자기 전에 아이들이 달려들어 내게, 엄마에게 “아이 러브 유”하고 입 맞추고 저희들끼리도 허그하며 “아이 러브 유” 한다. 그때 성령의 충만함이 이루어진다. 사랑이 있는 곳에 하나님이 계시다.
부부끼리 서로 기도해 본 적이 있나? 손잡고 서로를 위해 기도하고 기도하면 육적인 사랑이 영적인 사랑으로 넘어간다. 기도 간절하게 하면 우리가 상대방에게 원하는 것을 기도하게 된다. 영적으로 무엇을 원하는지 서로 이야기하고 기도 후 부인을 안고 “아이 러브 유” 한다.
하나님께서 “사랑이 있는 곳에 내가 있다. 나를 따른다면서 사랑하지 않으면 거짓말하는 자니”라고 말씀하신다.
미국에 와서 저를 픽업하러 온 딘은 성령충만하고 피츠버그챕터에서 자기들끼기 그룹을 만들어 훌륭한 목사님들 모셔와 집회하는 사람들 중의 하나였다.“You are my brother” 하면서 자기 안방을 내주었다. 딘의 집에서 하룻밤을 자고 다음날 미국인집회에 참석했다. 이곳에서 나는 다시 한 번 하나님의 놀라운 기적을 체험했다.
18. 영어 간증
3천명 모이는 집회인데 찬송도 은혜스럽게 하고 설교를 하는데 말은 못 알아들어도 은혜가 되었다. 한국에서 신앙생활을 어떻게 했는지 간증하라고 하였다. 저는 영어 못한다고 극구 사양했지만 그래도 자꾸 하라고 했다. 거듭 사양해서 당연히 딘이 나의 거절의사를 확인한 줄 알았는데 예배가 끝난 뒤 딘이 나가서 “한국인 친구인 미스터원의 간증이 있겠다”고 광고를 하는 것이었다. 영어를 못하는데 어떻게 나가나? 놀라서 머뭇거리는데 딘이 “박수를 치면 나올 것 같다”고 말했다. 우레 같은 박수가 터져 나왔다.
“하나님, 이러시깁니까?” 안 나올 수가 없어 걸어 나오면서 간절한 기도를 올렸다. “제가 다른 나라말 하는 건 방언밖에 없다. 방언으로 하겠다.”그렇게 말하고 방언을 하기 시작했는데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내 입에서 나도 놀랄 정도의 유창한 영어가 거침없이 쏟아져 나왔기 때문이다. 지금 생각해도 이것은 분명히 하나님의 성령이 나를 붙잡아 인도해 주신 사건이었다. 30분정도 하나님께서 나의 삶을 통해 역사하신 과정을 이야기했다. 사람들이 은혜를 받아 “하나님 창피는 안 당하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하고 기도했다.
그때 두 사람이 뛰어 나왔다. “당신이 나를 위해 기도해 주면 병이 낫는다고 주님이 말씀하셨다”는 것이다. 한 번도 그런 기도는 안 해 보았는데?
일해서 먹고사는 사람인데 뼈가 부러져 완전히 몸을 못 쓰게 된 사람이었다. 하나님이 기도해 주라고 했다. 영어로 기도를 안 해보아서 한국말로 기도하겠다고 말하고 손을 얹고 “하나님, 이러시깁니까? 도와주세요. 도와주지 않으면 나만 창피 당하는 게 아니라 간증한 후 한국인이고 성령충만한 거 아니까 하나님도 망신입니다.”
하나님이 역사하셨다. 팔 부러진 손이 금방 나아 올라왔다. 저를 소개해준 사람이 “원 선생이 지금 막 미국에 와서 돈이 없는데 우리가 헌금을 해서 모아 주자”광고를 하자 500불이 나왔다. 잔고 780에서 1320불 되니까 흐뭇했다. 미국에서 하나님이 가지가지로 인도해 주셨다.
19. 유학시절
미시간대학에서 공부하며 인턴생활을 시작했다. 한국의 인턴생활도 힘들었지만 미국이 더 힘들면 힘들었지 못하지는 않았다. 그곳의 동양인의사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인턴생활을 통해 나는 생각지도 못했던 상황에 부딪쳤다. 주임교수인 아놀드 와이놀러 박사가 인종차별을 심하게 했다. 유색인종인데다 한국에서 왔다니 실력이 없을 것으로 여기면서 무조건 깔보는 기색이 역력했다. 아침마다 환자 상황 보고시간을 가졌는데 내가 보고만 하면 꼬투리를 잡아 잘못 됐다고 창피를 주었다. 이것이 계속되다 보니 나는 인턴 사이에서 바보가 되는 것 같아 참을 수 없었다. “하나님, 제가 어떻게 해야 합니까? 견딜 수 없습니다. 주님의 자녀는 머리되지 꼬리 되지 않는다고 배웠습니다.”
그런데 나를 괴롭히던 와이놀러 박사가 두 손을 바짝 든 사건이 얼마 지나지 않아 발생했다. 내가 반격할 기회가 생긴 것이다. 나는 취침시간에 최신 의학 잡지와 신문 등을 자세히 정독하곤 했다. 거의 두 번씩 빠짐없이 읽었다.
황인종이라고 나를 멸시하던 와이놀러 박사는 아침보고회에서 의학 잡지에 근거한 최신자료들을 인턴들에게 소개했다. 그런데 사람의 기억력에는 한계가 있으므로 날짜나 통계가 다소 틀리는 것은 당연했다. 이때마다 나는 그것은 정확한 것이 아니라고 분명히 지적했다. “박사님, 지금 말씀하신 통계는 2주전이 아니라 3주전의 것이며 32%가 아니라 32.8%입니다. 32페이지에 나옵니다.”
와이놀러 박사는 인턴들 앞에서 창피를 당할 수밖에 없었다. 내 머리 속에는 저녁마다 보았던 잡지 내용이 그대로 각인되어 있었다. 하나님이 주신 지혜로 책을 통째로 외우며 공부했던 나였으니 당할 수 없었다. 짓궂은 면이 있는 나는 와이놀러 교수가 아침보고회를 할 때마다 그의 보고 중 잘못된 부분을 꼬집었다. 딱히 잘못도 아니지만 내가 당한 복수를 하는 것이었는데 그의 창백해진 얼굴을 볼 때마다 속이 시원했다.
나중에 회개했지만 와이놀러 박사가 백기를 들었다. 나를 부르더니 도대체 어떻게 그렇게 정확하게 모든 것을 기억할 수 있느냐고 되물었다. 하나님의 주신 지혜의 은사라고 할 수는 없어 서울대학 출신은 다 그렇다고 이야기했다. 그는 나와 함께 근무하는 것 자체가 두려웠는지 내게 다른 병원에 갈 것을 권유했다. 전문의 시험을 보기 위해서는 3년 동안 수련의를 거쳐야 한다. 2년을 마치고 3년째 다른 병원에 가도록 되어 있는데 1년만 마친 내게 1년을 건너뛰고 갈 수 있도록 추천서를 써 주었다. 미국학생들보다 1년 일찍 내과 전문의시험을 볼 수 있게 된 셈이다. 와이놀러 박사가 나를 황인종이라고 깔보고 업신여겼지만 결국 하나님은 내가 인턴 중 제일 먼저 의사가 되도록 해 주신 것이다.
레지던트로 있으면서도 미국인 의사들은 나만 나타나면 수군거렸다. 미스터원은 모르는 것이 도대체 뭐냐고 질문했다. 이 때 나는 자신 있게 대답했다. “예수를 믿으세요. 주님께서 놀라운 지혜와 용기와 자신감을 주십니다. 영적 평안은 당신의 삶을 성공으로 이끌어줄 것입니다.” 우리는 주어진 환경과 여건에 대해 하나님께 불평할 때가 많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에게 좀 더 기다리고 멀리 내다볼 것을 원하신다. 인생은 단거리경주가 아니라 장거리경주다. 금방 결말이 나는 것이 아니다. 좀 손해보고 실패한 것 같아도 그것이 나중에 하나님의 귀한 섭리요, 은혜의 통로였음을 깨닫게 된다.
미국생활은 외롭고 힘든 일의 연속이었지만 주님이 함께해 주신다는 확신이 있었기에 하루하루를 기쁨으로 마감할 수 있었다. 이 무렵 나의 초청으로 미국에 오신 어머니는 내가 침대도 없는 작은 아파트에 지내는 것을 보며 마음 아파하셨다. 어머니의 이 모습을 보며 나의 마음이 더 아팠다. 그토록 고생하시고 먹지 못하고 입지 못하시며 지내오신 어머님이 이제 훌륭하게 성장해가는 아들을 보면서도 가슴 아파하는 사랑에 목이 메었다.
20. 결혼과 개업
미국의학협회의 개업의시험을 통과한 85년에 병원을 개업했다. 대학에서 교수 자리를 주겠다며 남아줄 것을 권유했으나 거절했다. 행동이 자유롭지 못하면 전도하는 데 제약을 받을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레지던트로 있으면서 체험했지만 미국은 공공장소에서 열심히 전도하면 제재가 심했다. 또 사람들이 그것을 이상하게 여겼다. 하나님의 자녀로 주님사역을 감당하게 해달라고 어머니께서 평생을 기도해 오시지 않았는가. 목회자가 되지 못했으니 전도에라도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생각을 이전부터 쭉 해왔다. 사실 나는 그때까지 목회자가 되려는 마음을 갖고 있었다. 단지 때가 이르지 않았다고 여겼을 뿐이다.
개업하기 전 미시간대학원에서 음악을 전공하던 민윤식 양을 어느 분의 소개로 만나 한국에서 그녀와 결혼식을 올렸다. 평범한 가정 출신인 그녀와 나는 처음부터 신앙의 호흡이 잘 맞았다. 데이트를 하면서도 서로 손잡고 기도했던 기억이 새롭다. 우리 부부는 신혼여행 대신 어머니를 모시고 금식기도원으로 가서 3일간 기도했다. 하나님 앞에 먼저 바른 삶을 살 것을 서원하고 기도한 것이다.
개업을 하면 주님이 도와주셔서 환자가 많이 몰려올 것으로 알았다. 그런데 전혀 그게 아니었다. 동양인이라는 것을 알고는 왔던 환자도 슬며시 되돌아갔다. 하루에 서너 명을 진찰하기도 힘들었다. 그러면서도 찾아온 환자들을 위해서는 정성을 다해 진료했다. 그들과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대화하며 병의 원인을 찾아냈다.
어느 날 흑인환자를 치료했다. 정성껏 친절하게 대해 주었더니 어려워하며 말문을 열었다. “지금 차에 제가 존경하는 흑인 목사님이 한 분 계십니다. 은퇴를 하셨는데 당뇨가 심해 눈이 멀었습니다. 좀 봐주실 수 있는지요.” 기다리는 환자가 없었으므로 어서 모셔오라고 했다. 더듬거리며 들어온 목사님과 병에 대해 1시간 정도 상담을 했고 약도 무료로 조제해 드렸다. 흑인목사님은 매우 감격해 하며 나를 위해 기도해 주겠다고 하셨다. 가운을 입은 채 그 자리에 무릎을 꿇었다.
환자를 단순한 환자가 아니라 복음을 전할 전도대상자로 보기 시작했다. 동양인 의사가 친절하고 의술이 탁월하다는 소문이 인근에서부터 나기 시작했다. 누구 입에서 나왔는지 이 소문은 삽시간에 퍼졌고 병원은 예약전화를 받을 정도로 환자가 쇄도해 바빠지기 시작했다.
나의 일과는 새벽기도로 시작된다. 하루를 열기 전 어스름한 새벽 여명에 주님을 만나는 기쁨은 새로운 활력을 준다. 새벽기도 가야 한다. 영적으로 예민해야 한다. 교회 밖에 나가면 다 사단의 세력이다. 사단이 우리보다 강하다. 사단보다 강한 건 가브리엘, 마이클, 미가엘 천사밖에 없다. 나는 기도 안 하고 잘 살 자신이 없다. 기도 안 한 날은 하나님이 카운트 안 하신다. 너 일생동안 몇 분을 나하고 살았느냐? 하나님께서 억셉트하는 시간이 얼마나 되나? 우리 생각대로 우리 마음대로 사는 건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으신다. 그건 하나님이 카운트하지 않으신다. 기도하지 않고 여러분의 힘으로 산 날은 전도하고 봉사해도 카운트 안 하신다.
하루라도 하나님이 받아주시는 날로 살아야 한다. 크리스천이 빠지기 쉬운 시험은 일한다고 하면서 기도 안 하는 것이다. 난센스다. 기도하지 않고 어떻게 하나님의 일을 한다고 말하나? 교만한 자다. 하나님께 오만한 자다. 하나님의 명과 인치심 없이 어떻게 하나님 일하나?
병원이 암 전문병원으로 명성을 얻게 되면서 정신없이 바빠졌다. 수입도 늘어나 좋은 집으로 이사하고 하나님의 선교사역도 열심히 도울 수 있었다. 자연스럽게 병원을 하나 더 인수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무리를 하지 않고도 이 병원을 인수하면 연간수입이 약 30만 달러 정도 늘어날 수 있었다. 이 돈이면 자선사업이나 선교 사업을 더 많이 할 수 있으니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회진을 해야 하니 지금보다 더 바빠져 도저히 새벽기도에 나올 수 없을 것 같았다. 30만 불이냐 개업포기냐,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했다. 이 문제를 놓고 기도했다. “돈 많이 벌면 하나님의 일 더 많이 할 수 있지 않아요?” 그런데 마음에 기쁨이 없었다. 하나님께 기막힌 응답을 받았다. “나는 네가 일하는 걸 원치 않고 너를, 너와의 관계를 원한다.” 하나님은 내가 많은 돈을 벌어 선교 사업하고 자선 사업하는 것보다도 새벽 기도하는 것을 더 원하셨다.
과감히 병원 인수를 거부했다. 사실 아까운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하나님 뜻에 순종하는 것이 복이라는 소리가 나를 다독거렸다. 크리스천들이 많은 물질을 소유하게 되면 하나님 사업에 투자할 것을 다짐한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신앙을 먼저 잃어버리게 되는 경우도 많다는 것을 목격했다. 버릴 것과 얻을 것의 우선순위를 잘 선정하는 그리스도인이 돼야 한다. 선교나 자선사업은 내가 하는 것이 아니다. 뜻이 있으면 하나님께서 그 길을 분명이 열어 주신다. 수년전부터 나는 제3세계, 즉 복음의 혜택을 전혀 입지 못하는 아프리카나 남미의 정글지역에 들어가 무료진료하며 선교하는 사역에 동참하고 있다. 여기에는 많은 인력과 물질이 필요한데 이것을 하나님은 정확히 공급해 주신다.
미국 내 녹내장분야의 권위자인 한국인 S박사도 그중 한 분이다. 나는 전도 대상자를 놓고 6개월 정도 준비 기도를 하다가 복음을 전한다. 그래서 이분에게 전도를 했는데 그의 반응이 나를 매우 무안하게 만들었다. “원 박사, 배울 만큼 배운 사람이 왜 그렇게 지나칩니까? 나도 기독교에 대해 알 만큼 알아요. 나에겐 두 번 다시 이 이야기를 꺼내지 마세요.” 얼굴이 화끈거렸다. 이런 무안은 처음이었다.
그런데 이 일을 잊어버린 6개월 후였다. S박사가 나를 만나자는 연락을 해왔다.“원 박사, 정말 미안해요. 예전에 내가 너무했지요. 얼마 전에 병원에 갔더니 암 진단을 받았어요.”
눈물을 글썽이는 그분을 보며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내가 무안을 당한 뒤 기도하면서 S박사가 곤고함을 당해서라도 주님께 돌아오게 해달라고 기도했던 것이 뇌리에 떠올랐기 때문이다. 즉시 S박사를 위해 기도해줄 것을 교회기도팀에 요청하고 나 역시 간절히 기도했다. 자신의 몸에서 암세포가 사라졌음을 확인한 S박사는 온전히 거듭난 신자로 변화되었다. 이때부터 그는 해외 선교의 막강한 후원자가 됐다. 큰 액수의 헌금을 요청해도 선뜻 주셨고, 안과의가 필요하다면 본인이 직접 해결해 주셨다.
12. 암 세미나
나의 전문분야는 암환자를 진료하는 것이다. 오늘도 이 불치의 병인 암 때문에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고 있다. 암은 현미경으로 보면 무질서하다. 암세포 하나하나가 앵그리하게 보인다. 정상세포는 하나님이 만드신 질서가 있어 세포 하나하나가 각자 자기 할 일을 한다. 그런데 암세포는 자기 설 자리에 안 서 있고 마구 자란다. 암세포는 사단과 죄와 같다. 하나님을 멀리 떠난 것과 같다. 암에는 신학이 있다. 암은 무목적, 무의미하게 자라는 세포로 정의된다. 자기만이 자라는 게 아니라 주위 세포를 파괴하고 장기인 간, 폐, 뇌, 뼈로 가 자리를 잡고 자라나 사람을 죽인다.
장을 들여다보면 장을 싸고 있는 세포는 밀려서 내려와 3일이 되면 새로운 것이 감싸준다. 백혈구는 7일 사명 감당하고 죽는다. 혈소판은 7시간, 적혈구는 120일 살면 끝난다. 머리도 계속 자라고 살갗도 새 세포가 나온다. 하나님은 육도 영도 매일 새롭게 하신다.
세포가 분열하는데 우리 몸에는 하루 6-7개의 암세포가 생긴다. 근데 왜 암에 안 걸리나? 하나님이 암세포가 자라도록 가만히 두지 않으신다. 암세포 대항세포를 만들어주셔서 암세포를 막아주신다. 서베일런스 셀 백혈구 중 임파선에 특별세포를 만들어 주신 것이다. 경찰세포다. 암 걸리느냐 안 걸리느냐는 암 세포가 경찰세포에게 잡히느냐 먹히느냐에 달려있다.
암 세포가 백만 개 이상 되면 경찰 세포가 감당을 못한다. 아무리 싸울려 해도 몸이 못 이긴다. 암 세포가 하나 생겨 경찰세포가 잡아먹지 않으면 암 진단까지 7년 걸린다. 암이 천천히 자라기 때문에 증세가 그때 나타난다. 마지막 1년까지 증상 안 준다. 암은 꾸준히 몸속에 자기 할 일 다 하면서 자란다. 매일매일 주님께 매달리지 않으면 언제 암에 걸릴지 모른다. 죽음 앞에서는 다 떨고 다 겸손해진다. 한 마디만 해도 받아들인다. 하루에 암환자를 60명 이상 보고 3000명 관리한다.
암의 원인이 뭐냐? 의학계에서 아는 것 중에서 동물실험 등 정말 이것은 암 요인이다 하는 것 하나가 있다. 사람에게 의학적으로 증명된 것은 담배다. 담배는 니코틴이 아니라 방사능, 수소화된 탄소 등이 암을 일으킨다. 담배 한 대 피우면 하루 6-7개 생기는 암세포가 25배 많아진다. 자기 몸 속에 150개나 되는 암 세포를 매일매일 생기게 하는 것이다. 담배 피우는 사람은 암에 걸리려고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다. 그만큼 담배 자체가 더 큰 암의 원인이다. 거기다 술까지 먹으면 4를 곱하면 된다. 그러니까 100배가 되어 하루에 600-700개의 암세포가 생긴다. 그런데 사람들이 길을 걸어가면서도 담배 피운다. 공해가 심하다.
절, 무당, 꼭 연기가 있다. 담배로 스트레스 해소? 누가 그런 생각을 심어주나? 마귀가 퇴폐 문화, 어두운 데 가서, 술 먹는 데 가서 담배 피운다. 악령이 많으니까 악한 사단이 생각을 심어준다. 사업 결정할 때 담배피우는 사람은 사단이 주는 생각으로 사업하는 거다. 담배 한 대 피우면 혈관이 수축한다. 뇌로 가는 혈관이 수축한다. 뇌에서 가장 중요한 피질이 있다. 피가 거기 가는 데 반쯤 줄어든다. 그러면 인간적인 본능으로만 생각한다. 중추신경, 미드 브레인, 생각하는 혈관들이 수축해서 동물적인 생각, 육적인 생각밖에 안 난다.
아버지가 담배 피우면 자녀가 폐기종 폐암에 걸린다. 담배는 발암물질이다. 옆에서 담배피우는 사람 고발할 수 있게 되었다. 자녀들을 위해 담배 끊어라. 하나님이 영적으로 싫어하신다. 담배만 없어져도 나쁜 생각들이, 암이 반으로 줄어든다. 담배와 술이 암세포 증가 원인이다.
그 다음 원인은 공해다. 자동차의 공해가 문제다. 케미컬 화학제품 농약 병충해 없애려는 약들 다이옥신이 암 일으키는 요인이 된다. 이것은 두세 배 정도다. 경찰세포는 무엇의 영향을 받나? 하나님이 만드신 세포다. 하나님이 세우신 룰이 있다. 예수 아무리 잘 믿어도 3층에서 떨어지면 다 떨어진다. 그게 하나님의 법칙이다. 몸도 법칙 안에서 이루어지게 하신다. 무엇이 경찰세포를 콘트롤하나? 잘 알면 경찰세포를 메인테인할 수 있다.
하나님이 만드신 법칙을 무시하면 암에 걸리게 된다. 몸의 영향을 받는다. 코르티솔 호르몬의 영향을 받는다. 부신피질 호르몬은 경찰세포에 대항한다. 경찰세포가 공중에서 폭발한다. 아드레날린이 많이 나오면 경찰세포가 혈관에 있다가 조직으로 나가 잡아야 하는데 혈관에만 있어서 암세포를 못 잡게 된다.
많은 암환자들을 대하다보면 일종의 공통분모를 발견할 수 있다. 그것은 암환자들 중에는 심한 스트레스를 받고 울분을 참아왔던 사람들이 많다는 점이다. 우리 몸에는 자연적으로 나쁜 병균을 몰아내는 항균작용능력이 있다. 부신피질호르몬과 아드레날린 등이 바로 항균작용 물질들이다. 그런데 기분이 좋고 즐겁고 기쁘면 이런 물질이 급속히 생성되는 반면 갈등과 번민, 원망과 고통이 마음속에 자리하면 이 물질들이 억제된다. 그러므로 사람의 마음상태가 병을 진전시키느냐 억제하느냐의 관건이 되는 것이다. 미움과 원망이 자리 잡고 있으면 나쁜 균을 잡는 ‘경찰’ 물질이 생성되지 않는 것이다.
스트레스가 큰 문제가 된다. 우리 몸에서 암을 저항할 수 있는 저항력을 낮춘다. 자기가 받는 불안함에서 온다. 불안함, 스트레스가 어디에서 나오나 잘 생각해야 한다. 스트레스 올 때마다 면역력 뚝뚝 떨어진다. 큰 문제에 부딪쳐 6-7년 전에 큰 신경 쓴 문제 나중에 암이 된다.
암환자 보면서 생각한다. 하나님 앞에서 새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불안함이 있다. 새 사람이 되는 게 문제다. 할례 무할례가 문제가 아니다. 새사람이 되기 전에 종교의식에 매이지 마라. 예수님이 진정한 평안 주신다. 새 사람 되는 길이 뭐냐? 하나님은 우리의 영과 혼과 육이 새 사람이 되기를 원하신다. 모든 어두움 속에서 생기는 우리의 혼과 영이 새사람이 되기를 원하신다. 그러면 암에서 해방된다. 기도할 때 “암을 고쳐주세요.” 하기 전에 내가 새사람이 되게 해 달라고 기도하라. 거기서 새로운 경찰세포가 생긴다. 빌리언 되는 암세포라도 이길 수 있는 새 경찰세포 주신다. 새사람이 된다는 게 뭐냐?
첫째, 화해하는 것이다. 하나님과 화해해야 한다. 이미 화해하기로 작정하고 예수 보내셨다. 예수와 화해해야 한다. 예수님에 대한 앵그리한 게 있다.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면 왜 이런 일이 일어나나? 마음속에 평안이 없다. 새 사람이 안 된 증거다. 분노, 원망하는 마음은 질병에도 약하다. 경찰세포가 떨어진다. 마음에 불안이 남아있다. “네가 나를 알기 전에는 섬기기 전에는 내 속에서 너를 발견하기 전에는” 경찰세포가 죽는다. 예수의 이름만 찾으면 화해한다. 교만해서 예수 안 믿는 것이다. 자기가 뭐가 된 줄 안다. 몸속에선 응어리져서 썩어가는데 솔직하게 깨진 마음으로 나와야 한다.
화해하는 사람에게 가장 먼저 일어나는 표적이 뭐냐? 하나님과 화해하지 않은 증거는 나를 귀히 여기지 않는 것이다. 나와 화해하지 않은 사람이다. 나를 학대하지 마라. 우리 주변에는 자기 자신을 지나치게 학대하는 사람이 많다. 그러나 자학은 잘못된 것이다. 하나님 안에서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자신과 이웃과 사회와 화해할 때 진정한 평안과 자유를 얻을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예수 믿어 변화되는 중요한 현상이 자신과 이웃과 모든 사람과 화해하고 용서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하나님 앞에 새로운 피조물로 거듭남의 확신과 영생을 소유할 때 우리에게 나쁜 불안과 스트레스가 사라진다. 주님은 한 사람을 위해 이 땅에 오셨다. 우리 이 모습 이대로 용납하셨다. 그 모습 그대로 나올 수 있어야 한다.
하나님 나를 사랑하신다는 담대한 믿음을 갖고 나와야 한다. 하나님과 화해의 증거는 이웃과의 화해다. 내 이웃과 화해하지 않은 사람, 손잡고 찬양할 수 없는 사람, 마음의 평화가 없다. 하나님은 인간관계를 통해서 하나님 나타난 예가 없다. 아브라함 얍복강가의 하나님 인간관계에서 자기 모습 드러나기 원하신다.
화해 안 된 사람은 예수 믿는 사람이 아니다. 화해해야 뉴 크리에이션이 된다. 새로운 피조물이 안 되었다 싶으면 다시 예수 영접부터 시작해라. 화해하지 않고 미워하는 가운데 자면 암세포 생긴다. 그렇게 암세포가 100개 200개 늘어나 번창한다.
“암 고쳐주세요” 그게 아니다. 마음에 분함이 많이 있다. 그 마음을 고쳐야 한다. 의사는 방사선 치료 한다. 화학요법으로 100분의 1은 줄일 수 있으나 절대 의학으로 100분의 1 못 죽인다. 그래서 다 못 낫는다. 새사람이 되기를 기도해야 한다. 미워하는 마음이 있으면 하나님의 역사 안 일어난다. 암이 못 낫는다. “경찰세포 길러주세요.” 밸런스 맞아야 완치된다. 재발하지 않기 위해 새사람이 계속 되어야 한다. “내가 주님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하겠나이다.” 주님 앞에 일하면 재발이 되지 않는다.
두 번째, 새로 통합하는 것이다. 내가 하나님과 예수님과 하나가 되는 것이다. 누가 내 안에 사시는 것인가? 내 문제 내가 결정하나? 죽은 사람이 무슨 결정을 하나? 내가 하나님과 연합되었나 안 되었나 무엇으로 아나? 자기를 돌아보라. 죽었나, 안 죽었나? 교회에서 다른 사람들이 나에게 마음 아픈 소리를 꼭 할 때 “너 왜 그래?” 하는 사람은 산 사람이다. 핍박할 때, 나쁜 소리 할 때, “주님, 저 사람이 알지 못하고 그래요.” 아니면 “저 사람이 왜 저래요?” 하고 나를 돌아보고 회개한다. 그러면 내가 예수님과 연합된 증거가 드러난다.
“내가 왜 당해?”하면서 누가 한 얘기할 때 다섯 얘기한다면 내가 살았다는 증거다. 그러면 마음의 평안이 없다. 내가 내 주장, 내 생각, 내 원함대로 살려고 하니까 평안이 없다. 경찰세포가 죽는다. 누가 나를 위해 싸워주나? 예수님이, 천사가 대신 싸워준다.
인생의 문제가 생길 때, 사업이 잘 못 될 때, 낙심하고 “아이구~” 한숨 쉬면 내가 산 것이다. 예수님께 나아와 연합되었으니까 “내 문제가 아닙니다.” 그러면 내 몸에서 부신피질 호르몬, 아드레날린이 올라올 필요가 없다. 새 사람은 내가 죽은 사람이다. 내가 왜 이 세상에 살아있어야 하나 삶의 목적이 생긴다. 새 능력이 생기고 하나님의 이름을 위하여 부신피질호르몬과 아드레날린이 떠내려간다.
셋째 매일매일 부활의 능력을 경험해야 한다. “내 영혼을 내 생각을 내 육신을 새것으로 부활시켜 주소서.” 매일매일 내 삶에서 하나님과 화해하고 옛 습관 자랄 때마다 꾹 누르면서 사는 것이 부활의 삶이다. 다른 이에게, 이웃에게 생명을 주는 것이다. 거기에 내 삶의 가치가 있다. 나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 복이 갈 때 우리에게 새 생명이 드러난 증거다.
우리가 크리스천 된 이유는 내가 잘 되고 잘 먹고 잘 되기 위해서가 아니다. 아브라함 부르신 이유는 축복해서 너를 통하여 온 세계가 복을 받게 하겠다는 것이다. 부는 덤으로 주셨다. 주변 사람들이 복 받으려면 내가 죽어야 한다. 손해 보아야 한다.
내가 예수님을 믿기 때문에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돈을 더 벌 것인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할 것인가? 예수의 이름 때문에 이것을 선택한다. 이때부터 하나님 카운트하신다. 리스크를 선택하는 믿음, 예수님 때문에 위험을 택하는 것이다.
“이것도 저것도 해 주세요” 그러지 말고 “예수님 이름 때문에 위험을 택하게 하소서” 그럴 때 기뻐하신다. 생각이 예수님께 있으면 스트레스 받을 만한 여유 없다. 성령이 주는 스트레스 때문에 기쁨이 넘치고 생명이 넘쳐나는 생명이 솟아나는 사람은 암을 정복할 수 있는 파워가 있다.
넷째 나의 최대의 관심이 하나님에게 가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삶의 목표가 분명하고 새사람이 되어야 한다. 암에 걸린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 왜 나에게 이런 병을 주십니까?”라고 기도한다. 그러나 이런 자세보다는 “이런 문제가 있습니다. 나는 이제 이미 죽었으니 문제해결의 열쇠는 전적으로 주님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주님이 해결해 주십시오.”라는 최대한 낮아지고 깨어지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여긴다.
암의 의학적 치료는 일부분이다. 나머지는 환자가 그리스도 안에서 새사람이 되어 기도하고 하나님과 화해함으로써 스스로 치료해야 한다. 암치료에 영적 각성의 병행은 필수다. 환자들에게 이렇게 말하면 수긍하고 복음을 받아들이는 율이 높았다. 주님을 영접한 암환자들에게서 이런 말을 자주 들었다. “내가 암에 걸리지 않았더라면 절대 하나님을 만나지 못했을 것입니다. 교만하고 부유하고 돈만을 전부로 알고 살아왔던 제가 죽음을 앞둔 절대 절망 속에서 비로소 복음의 진리를 깨달았으니 그나마 다행입니다.”
“닥터원을 통해 암에 걸린 것이 오히려 복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생명을 더 연장하다가 지옥을 가는 것보다 조금 일찍 가더라도 천국에 가게 된 것을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우리의 이 모든 병과 고통을 초토화시키는 핵무기가 있다. 그것은 하나님과의 은밀한 기도다. 이 기도만이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고 병을 물리칠 수 있다.
복음은 인간의 가슴속에서 핵융합을 일으킨다. 복음이 없다면 그들은 고통에 몸부림치며 세상만을 저주했을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으며 건강한 것 자체를 얼마나 감사해야 하는지 모른다. 우리는 길어야 80세인 인생을 멋지고 풍요롭게 살기 위해 모든 정성을 기울인다. 그러나 영원히 사는 영혼에 대해서는 얼마나 관심을 기울이는지 묻고 싶다.
지금까지 올려드린 원종수 권사 간증은 유튜브의 동영상을 듣고 정리한 것입니다. (전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