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울 알렌스키의 전략과 '바울'의 길
- 영혼의 대오각성을 향하여
예수 정신의 확산을 타도하는 데 앞장섰던 ‘사울’은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를 만나 눈이 멀었다가, 크게 참회한 후 다시 눈을 뜨며 ‘바울’이라는 이름으로 개명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신약성경의 상당 부분을 저술하며 인류 역사에 거대한 사랑의 흔적을 남겼습니다. 서방 세계에서 ‘사울’이라는 이름이 대개 부정적인 뉘앙스를 품는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입니다.
여기, 또 한 명의 사울이 있습니다. 현대 시민운동과 정치 마케팅의 냉혹한 전술가로 불리는 사울 알렌스키(Saul Alinsky)입니다. 그가 남긴 인간 사회의 조직화 및 통치 전술이 오늘날 디지털 세상에서 어떻게 변주(變奏)되고 있는지, 그리고 우리가 왜 이 ‘차가운 전략’을 공부해야 하는지 나누고자 합니다.
1. 디지털 시대로 진화한 알렌스키의 5대 전술
알렌스키의 방식은 본질적으로 '심리전'이자 '프레임 전쟁'입니다. 그렇기에 오늘날의 온라인 환경과 결합했을 때 훨씬 더 폭발적인 파괴력을 발휘합니다.
(1) "적의 규칙(Rulebook)을 이용하라" : 위선(Hypocrisy) 폭로
현대적 적용: 기업이 '친환경'을 내세울 때, 실제로는 환경을 파괴하는 이면의 데이터를 찾아내어 SNS에 퍼뜨리는 '그린워싱(Greenwashing)' 폭로 캠페인이 대표적입니다. 상대가 만든 도덕적 기준을 무기로 삼아 상대를 자가당착의 궁지로 밀어넣는 방식입니다.
(2) "조롱은 인간의 가장 강력한 무기다" : 밈(Meme) 문화
현대적 적용: 정치인의 실수를 짧은 영상(Shorts)이나 짤방(Meme)으로 만들어 희화화하는 전략입니다. 복잡한 논쟁은 대중에게 피로감을 주지만, '비웃음'은 공유가 빠르고 상대방의 권위를 순식간에 해체합니다.
(3) "대상을 명확히 타격하고 개인화하라" : 캔슬 컬처(Cancel Culture)
현대적 적용: 불매 운동을 할 때 막연한 '기업'이나 '정부'를 공격하면 책임 회피가 쉽습니다. 대신 CEO 개인의 과거 발언이나 SNS 기록을 추적해 타격합니다. "이 사람만 없어지면 된다"는 인식을 심어 조직 내부의 분열을 유도하는 것입니다.
(4) "전술은 즐거워야 한다" : 게이미피케이션(Gamification)
현대적 적용: 시위가 비장하고 슬프기만 하면 대중은 지칩니다. 해시태그 챌린지나 기부 챌린지(아이스 버킷 챌린지 등)처럼 참여자가 재미를 느끼며 팬덤 문화를 형성하고, 자연스럽게 메시지를 확산하게 만듭니다.
(5) "전술을 너무 오래 끌면 안 된다" : 스낵컬처와 빠른 이슈 전환
현대적 적용: 온라인 여론전은 매일 새로운 의혹을 던집니다. 하나의 전술에 적이 방어막을 치기 전에, 즉시 다음 이슈(Next Move)로 넘어가 주의를 분산시키는 '속도전'이자 '관심 경제(Attention Economy)'의 핵심입니다.
2. 알렌스키가 남긴 유산과 현실주의
알렌스키는 단순히 착한 일을 하는 이상주의자가 아니라, "권력이 없는 사람들이 어떻게 권력자를 굴복시킬 것인가"를 연구한 철저한 현실주의자였습니다. 그는 "민주주의를 위해 싸우자"는 거대 담론보다 "우리 동네 쓰레기 수거 문제를 해결하자"는 구체적인 자기 이익(Self-interest)이 대중을 움직인다고 믿었습니다. 작은 승리를 통해 대중에게 효능감(우리가 해낼 수 있다는 느낌)을 주는 것이 그의 목적이었습니다.
"전술은 당신이 가진 것(아군)과 상대방이 모르는 것(적의 약점) 사이의 간극을 메우는 예술이다." - 사울 알렌스키
그는 사랑이 넘치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 잠시 사랑이 없는 것처럼 보이는 치열한 전쟁터를 자처해서 만들어 간 인물일지도 모릅니다. 그의 사상은 "상대방을 사랑하라는 종교적 가르침은 개인의 영역에 제쳐두고, 사회 구조를 바꿀 때는 냉혹한 전술가가 되어야 한다"는 확신에 차 있었던 것으로 추리 합니다.
3. 문학이 지향해야 할 길: 사울에서 바울로
여기서 우리는 가장 거대한 철학적 숙제와 마주하게 됩니다. '적을 조롱하고 압박해서 얻어낸 평화'와 '서로 이해하고 포용해서 얻으려는 평화' 중 어느 쪽이 더 지속 가능할까요? 저의 의견을 묻는다면, 저는 사랑이 결핍된 알렌스키의 방식은 결국 또 다른 상처와 잔인한 후유증을 남길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만약 알렌스키의 냉혹한 방식만이 정답이었다면, 역사 속에서 '사울'이 '바울'로 개명하고 개종하는 일, 즉 인간 내면의 완전한 혁신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인간의 내면세계가 변해야 세상이 진짜로 변합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다음과 같은 성경 구절을 마음 깊이 새기게 됩니다.
“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새것이 되었도다!” (고린도후서 5:17)
인간을 부품이나 타격 대상으로 보지 않고, 영혼을 가진 존재로 바라보는 것. 이것이 만고불변의 진리이자 문학이 지향해야 할 길입니다. 우리가 삼국지나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이나 사울 알렌스키가 남긴 사악하고 정교한 인간 심리를 이용한 전략전술을 공부해야 하는 이유는 그것에 동조하기 위함이 아니고 그 사악함을 재빨리 간파하여 이겨낼 수 있는 '선한 지혜'를 얻기 위함입니다.
4. 맺음말: 영혼의 대오각성을 바라며
이 글을 읽는 독자 여러분!
인간 세상은 거짓(도적. 사이비. 사탄. 생명 파괴)과 참(선한 목자. 참 올리브 나무. 천사. 생명 번창)의 영원한 대결 장입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세상은 참을 외칠수록 오히려 더 거세게 조롱당합니다. 2천 년 전 십자가 아래의 사악한 인간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말입니다. 그들은 오늘날에도 "저가 자신을 구원하고 십자가에서 내려오는지 보자!"라며 끊임없이 우리 내면의 선한 마음을 십자가에 못 박고 있습니다. 사악한 인간은 눈앞의 육신과 결과만을 보지만, 깨어난 인간은 육신 너머의 영혼을 봅니다. 우리 인간들에게 영혼의 대오각성이 일어나야만, 비로소 스스로를 구원하고 십자가에서 내려올 수 있습니다.
난생 처음 교회에 발을 디딘 날, 마주 보는 단상에 높이 걸린 가시면류관을 쓰고 맥없이 십자가에 못 박혀 있는 한 인간의 형상을 첫 대면했던 충격이 떠오릅니다. 그날 나를 사로잡았던 ‘알 수 없는 고통과 신비함’의 경험이, 이제 문학을 통해서 비로소 다시 이해되고 부활합니다. 높이 올라간 자는 반드시 내려오게 되어 있습니다. 오직 살아 있는 것들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이는, 우리는 결코 우리가 꿈꾸는 진정한 새로운 세상을 만날 수 없습니다.
세상 모든 곳에서 증오와 분열을 양산하는 '사울 알렌스키'가 사랑과 변화를 전하는 '바울 알렌스키'로 다시 태어나길 바랍니다. 차가운 시스템과 냉혹한 전술을 넘어, 인간의 영혼을 울리고 그 마음을 근본적으로 돌려놓는 이 위대한 기적을 가능하게 하는 유일한 길은, 오직 '문학'뿐이라고 믿습니다. 그래서 나는 문학을 사랑하고 문학에 머물러 있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