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꼽시계
김재언
먹은 밥을 또 먹는다.
하얗게 쏟아지는 이팝꽃이다.
누구의 배를 채우든
먹으면,
불러올 것 같은 꽃이다. 꽃은 어떻게 이 많은 밥을 다 피워냈을까?
허기를 움켜쥐고 비틀거리는 모습이 보인다.
저만치 부서지는 얼굴이다.
가까워질수록,
그들이 누군지 알 것 같다.
이팝이
넓고 넓은 들판을 피우고 있다.
먹은 밥을 또 먹는다
몸꽃을 다 먹어 버린 걸까? 푸던 밥을 또 푸며
밥이 걸어오는 소리를 듣고 있다.
어디서 누군가가 부르면,
그녀는 달려간다.
어디서 부르지 않아도
배를 숨긴 이팝이 달려간다.
16세기에는 전세계의 인구가 5억 명 정도였을 것이고, 18세기에는 전세계의 인구가 10억 명 정도였을 것이다. 20세기 초에는 20억 명 정도였을 것이고, 오늘날 이 21세기 초에는 약 80억 명 정도라고 할 수가 있을 것이다. 지난 20세기에서 불과 100여 년만에 60억 명의 인구가 증가한 것은 과학혁명과 산업발전에 따른 식량의 생산과 그 곡물의 보관에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식량이란 밥이고, 밥이란 에너지이며, 이 에너지를 확보하지 못하면 자동차나 공장이 멈추듯이, 우리 인간들의 생명도 끝장을 보게 된다.
모든 싸움은 영토 싸움이며, 이 영토 싸움은 김재언 시인의 [배꼽시계]에 따른 밥그릇 싸움이라고 할 수가 있다. 이 밥그릇 싸움을 두고 자본주의 진영과 공산주의 진영이 탄생하고, 이 밥그릇 싸움에 의해서 적과 동지가 생겨나고, 수많은 전략과 전술들이 펼쳐진다. 중국의 무역흑자는 미국의 무역적자로 이어지고, 벤츠 회사의 최고의 영업실적은 그 경쟁회사의 파산으로 이어진다. 대형선박회사의 파산은 노동자들의 대규모 실직으로 이어지고, 노동자들의 대규모 실직은 그들이 살고 있는 고장의 시장붕괴로 이어진다. 모든 싸움은 밥그릇 싸움이며, 이 밥그릇 싸움들은 그토록 처절하고 피비린내 나는 싸움으로 이어지지만, 그러나 참된 밥그릇 확보는 너무나도 어렵고 힘들기만 하다.
이팝나무는 물푸레나무과에 속하며, 키가 2~30미터나 자라고, 그 지름도 몇 아름이나 되는 큰나무라고 할 수가 있다. 꽃은 오월 중순에 그 파란잎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피고, 새하얀 꽃은 마치 흰 쌀밥을 수북이 담아 놓은 흰 사기 밥그릇을 연상시킨다. 이팝꽃이 필 때는 보리가 익기 전, 즉, 모든 양식이 다 떨어져 가는 ‘보릿고개’이며, 그 가난하고 힘든 시절에 우리 인간들의 밥에 대한 욕망, 즉, ‘이밥’이 ‘이팝’으로 변모된 것이라고 한다. “먹은 밥을 또 먹는다// 하얗게 쏟아지는 이팝꽃이다// 누구의 배를 채우든// 먹으면// 불러올 것 같은 꽃이다”라는 시구에서처럼, 이팝꽃의 역사에는 우리 한국인들의 굶주림과 허기가 담겨 있고, 그 무엇보다도 흰 쌀밥에 대한 선망의 눈길이 각인되어 있다.
가난한 사람들의 질병은 허기이고, 부자들의 질병은 권태이다. 허기란 배고픔이고, 권태란 먹고 살 걱정이 없는 자들의 피곤하고 지친 삶을 말한다. 허기는 거짓과사기와 생사를 넘어선 투쟁으로 이어지고, 권태는 스포츠와 여행과 사냥과 음주가무로 이어진다. 허기는 권태를 모르고, 권태는 허기를 모른다. 배 고픈 사람은 오직 밥 먹는 것밖에는 생각을 하지 않으며, ‘먹은 밥’을 먹고, 또, 먹으려고 한다. 사흘을 굶으면 쓰레기통을 뒤지고, 열흘을 굶으면 이웃집 담장을 넘거나 은행강도가 될 수도 있다. 신(god)은 개(dog)가 되고, 악마는 천사가 된다. 부자는 악마가 되고, 친구는 적이 된다. 사랑은 불륜이 되고, 이제까지의 도덕의 역사는 패륜의 역사가 된다. 가난은, 허기는 생존의 벼랑끝의 투쟁이며, 그 모든 도덕의 역사를 뒤엎어버리는 민중의 반란이나 혁명의 도화선이라고 할 수가 있다.
이팝꽃은 어떻게 이 많은 밥을 다 피워냈을까? 허기를 움켜쥐고 비틀거리는 모습이 보이고, 가까워질수록 그들이 누구인지도 알 것 같다. “이팝이/ 넓고 넓은 들판을 피우고 있다// 먹은 밥을 또 먹는다.” 어디서 누군가가 부르면 그녀는 달려가고, 어디서 그녀를 부르지 않아도 배를 숨긴 이팝이 달려간다.
김재언 시인의 [배꼽시계]는 밥 먹을 시간을 알려주지만, 이 먹이확보의 길은 타워크레인에서의 고공농성처럼, 참으로 멀고 험난하기만 하다. 이팝은 환영이고 헛꽃이고, 김재언 시인의 [배꼽시계]가 피워낸 ‘몸꽃’이다. 김재언 시인의 [배꼽시계]는 ‘이팝꽃’을 통해서 허기의 역사를 노래한 시이며, 그 배고픔을 온몸으로, 온몸으로 피워낸 ‘몸꽃’이라고 할 수가 있다.
밥의 혀, 밥의 눈, 밥의 코, 밥의 입, 밥의 배꼽, 밥의 성기, 밥의 다리----.
우리들의 [배꼽시계]는 밥을 먹고, 또 먹으며, 오직, 밥만을 생각하고, 또 생각하며, 밥의 길을 따라 움직인다.
밥의 길은 지겹지도 않고, 지루하지도 않으며, 먹고, 또, 먹어도, 그토록 맛있고, 살맛 나는 길로 이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