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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와 실재의 본성
서론 : 정보는 중요한가?
물질과 물질 세계에 관한 물려받은 관념들이 이십 세기 물리학과 생물학의 혁명적 전개를 감당할 수
없었다는 것은 더 이상 비밀이 아니다.
여러 세기 동안, 물질은 '단단한, 질량이 있는, 딱딱한, 침투할 수 없는, 그리고 움직일 수 있는 입자들'로
이루어져 있다는 아이작 뉴턴의 관념이, 자연 법칙들은 현재의 물리적 상황에 의거하여 미래에 무슨 일
이 일어날 것인지 정확히 예상해야 한다는 강한 견해와 결합하여 지배했다.
과학적 유물론과 기계론의 이런 결합체는 단단한 물질을 모든 실재의 반석으로 가정하는 상식과 쉽게
합쳐졌다.
고전적 유물론의 세계관(전성기가 1650년과 1900년 사이였다)에서는 모든 물리계가 결정론적 법칙들을
노예처럼 따르는 불활성 입자들의 집합체에 불과하다.
이런 환원론적 세계관에 따르면, 살아있는 유기체, 사회, 그리고 인간 같은 복잡계들은 궁극적으로 물질적
구성 요소들과 그것들의 화학적 상호작용들의 견지에서 설명될 수 있다.
그렇지만, 1850년 경에 이미 열역학의 등장으로 결정론의 보편적 범위에 대해 의혹을 갖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미립자적 물질과 기계론이라는 물려받은 개념들에 대해 의문을 품지 않은 채, 열역학적으로
열린 계들에 있어서 유체와 기체의 물리학은 통계학적 방법들을 사용함으로써만 실제적 관점에서
다루어질 수 있는 것으로 판명되었다.
확률론적 혁명이라고 적절이 불렸던 것에서 결정론은 과학적으로 실체화된 입장이 아니라 형이상학적
믿음의 문제가 되었다.
1870년대에 제임스 클럭 맥스웰 같은 위대한 물리학자는 초기 조건의 무한히 작은 변이들이 비가역적인
거대한 효과를 초래하는 대단히 불안정한 체계들을 지적함으로써[나중에 혼돈 이론의 핵심적 특징이 된다] 이미 결정론의 가정을 의문시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이십 세기에 들어와서야 열역학에서의 비평형 소산 구조의 중요성이 일리야 프리고진 같은
과학자들로 하여금 가역성과 과학적 결정론의 가정들에 더 일반적인 공격을 공식화하도록 이끌었다.
그런데 물질과 물질적인 것이라는 관념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첫번째 단계에서 '물질'이라는 술어는 과학에서 점차적으로 용도를 상실하여 더 강건하고 측정할 수 있
는 질량에 관한 개념들(관성 질량, 중력 질량 등)로 대체되었다.
물질이라는 관념의 대단히 파악하기 어렵지만 여전히 근본적인 것으로의 변환에 관한 이야기는 이 책의
2장과 3장에서 에르넌 맥멀린(Ernan McMullin)과 필립 클레이튼(Philip Clayton)에 의해 상세히 제시
된다.
여기서는 특히 물려받은 물질 신화의 몰락을 강요했고 물리적 실재에서 정보의 획기적인 역할에 대한
새로운 탐구들을 초래했던 이십 세기 물리학의 세 가지 새로운 발달을 지적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첫번째 타격은 아인슈타인의 특수 상대성 이론(1905)과 일반 상대성 이론(1915)에서 비롯되었다.
질량과 에너지의 등가성 원리를 진술함으로써 물질의 장 특성이 주목을 받게 되었고, 과학철학자들은
상대성 이론이 물질이라는 개념의 '탈물질화'를 어느 정도까지 함축하는지 논의하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맥멀린이 지적하듯이, 입자들과 그것들의 상호작용들이 질량과 에너지의 근본적인 장들의
부분적인 표현들에 불과한 것으로 여겨지기 시작했을지라도, 상대성 이론은 여전히 '정지 질량'이라는
개념을 통해 시공간적 존재자들에 관한 어떤 개념을 위한 여지를 남겨 놓았다.
고전적 유물론과 기계론에 대한 두번째 타격은, 근본적인 층위의 실재를 서술하며, 그래서 물질의 본성에
관한 현재의 과학적 논의와 철학적 논의에 있어서 주요한 지위를 부여받아야 하는 양자론에서 비롯되었다.
4장, 5장, 그리고 6장에서 폴 데이비스, 세스 로이드(Seth Lloyd), 그리고 헨리 퍼스 스탭(Henry Pierce
Stapp)은 물리적 실재에 관한 몇 가지 널리 고수되는 가정들에 이의를 제기한다.
데이비스는, 우리가 이른바 자연 법칙들의 수학적 관계들이 가장 기본적인 층위의 서술이라고 가정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정보가 그 위에 물리적 실재가 구성되는 토대로 간주된다면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묻는다.
데이비스는 수학을 일차적이고 그 다음에 물리학이 따르고 그리고 그 다음에 정보가 이어지는 것으로
간주하는 대신에 그 견해는 우리의 설명 도식에서 전복되어야 한다고 넌즈시 말하는데, 그래서 우리는
정보 → 물리학의 법칙들 → 물질로 이어지는 개념적 위계를 발견한다.
우주의 계산적 본성에 관한 로이드의 견해는 양자 사건들을 '양자 비트' 또는 '큐비트'로 취급함으로써
이런 이해를 발달시키는데, 그럼으로써 우주는 '자체를 기록한다'.
로이드는 양자 정보 과학의 관점에서 이 주제에 접근하는데, 양자 정보 과학은 양자 컴퓨터―양자 층위
에서 정보를 처리할 수 있는 장치―를 제작하여 계산 능력의 획기적인 증가를 획득하는 것을 주요 목적
으로 삼는다.
양자 컴퓨터의 비밀은 중첩, 간섭, 그리고 얽힘 같은, 고전물리학에서는 유사한 것들이 없는 순전한 양자
현상의 활용에 놓여 있다.
양자 계산은 대단히 실제적인 연구 프로그램이지만, 로이드는 양자 정보 과학의 개념을 전체적인 세계관
에 대한 기초로 사용하여 우주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양자 컴퓨터라고 공표한다.
다시 말하자면, 물리적 체계가 진화할 때마다 자연은 양자 정보를 처리한다.
로이드의 제안은 기술의 정점을 우주에 대한 은유로 사용하는 오랜 전통의 자연적인 연장을 형성한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탐사 도구와 악기들이 당대의 기술적 경이였고, 그리스인들은 우주를 기하학적 관계
들과 음악적 조화의 표현으로 여겼다.
십칠 세기에는 시계 장치가 가장 인상적인 기술이었고, 뉴턴은 시간을 모든 우주적 변화를 가늠하는
무한히 정확한 매개변수로 삼은 채 결정론적 시계 장치 우주를 서술헀다.
십구 세기에는 증기 기관이 당대의 기술적 아이콘으로서 시계 장치를 대체했으며, 그리고 충분히 확실
하게도, 클라우지우스, 폰 헬름홀츠, 볼츠만, 그리고 맥스웰은 우주를 가차없이 우주적 열사로 미끄러지는
거대한 엔트로피 생성 열기관으로 서술했다.
오늘날은 양자 컴퓨터가 그에 상응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각 은유는 나름의 가치 있는 통찰들을 가져왔는데, 양자 계산 우주 모형에서 비롯되는 통찰들은 이제 막
탐구되고 있을 뿐이다.
실제로 기능하는 양자 컴퓨터가 부재한 상태에서 알려진 가장 강력한 정보처리 체계는 인간의 뇌이다
(이것은 곧 변할 것인데, 고전 컴퓨터들조차도 가공되지 않은 비트 연산의 견지에서 뇌를 극복할 태세이다).
마음과 뇌의 관계는 철학의 가장 오래된 문제이고, 이 책의 맥락에서는 정보-물질 이분법에서 반영된다.
결정적으로, 뇌는 비트 연산 이상의 것을 행한다.
심적 정보는 의미론의 핵심적 성질을 포함하는데, 즉 인간들은 감각 데이터로부터 세계에 대한 이해를
도출하며, 그리고 서로 의미를 소통할 수 있다.
여기서 문제는 의미를 고려하지 않은 채 비트의 견지에서 구성되는 디지털 정보로만 무엇이 설명될 수
있고 무엇이 설명될 수 없는지이다.
정보 이론에 대한 토대가 섀넌에 의해 놓여졌을 떄, 그는 의도적으로 정보가 의미하는 것에 대한 그 어떤
참조도 고려하지 않았고, 오로지 전달 측면만 곰곰히 생각했다.
그의 이론은 자체적으로 고등한 존재자들의 의미론과 소통을 설명할 수 없다.
기껏해야, 8장에서 테렌스 디컨이 시사하듯이, 섀넌은 정보 잠재력의 구문론적 특징들에 집중했다고 말
할 수 있을 것이다.
심적 영역의 선행하는 특성들은 의식이라는 쟁점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뇌가 어떻게 의식적인 인식을 생성하는지는 여전히 완강한 불가사의로 남아있지만, 그것이 양자역학과
관련되어 있다고 주장하는 정착된 사유 학파가 있다.
확실히 양자역학에서 관찰자의 역할은 고전역학에서와는 사뭇 다르다.
게다가, 양자역학이 정말로 자연에 대한 가장 근본적인 서술을 제공한다면, 어떤 층위에서 그것은 의식과
다른 핵심적인 심적 특성들(예를 들면, 의미론의 출현, 자유의지의 느낌)에 관한 설명을 편입해야 한다.
여러 해 동안 헨리 스탭은 마음과 양자적 맥락에 있어서 그것의 관찰자적 지위를 위한 변론을 지지했고,
6장에서 그는 의식을 진지하게 고려하는 것과 자연에 대한 양자 서술 내에 의식을 수용하는 것을 지지
하는 논리정연한 변론을 제시한다.
물질과 물질적인 것에 관한 물려받은 가정들에 대한 세번째 도전은 1940년대와 1950년대 이후로 혁명
적인 발견들이 이루어져 온 새로운 정보과학과 진화생물학에서 비롯된다.
물리과학과 문화과학의 접면에 위치하고 있는 생물학은 자연에 있어서 정보의 역할을 우리가 이해하는
데 중추적인 역할을 수행한다.
7장에서 존 메이너드 스미스(John Maynard Smith)는, DNA의 서열 구조가 단백질들의 생산과 체계적인
방식으로 인과적으로 관련되어 있기 때문에 생물과학은 본질적으로 정보적인 것으로 여겨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십구 세기에 살아있는 유기체들은 생기력이 주입된 어떤 종류의 마법의 물질로 간주되었다.
오늘날 세포는 슈퍼컴퓨터, 고성능의 정보 처리 및 복제 체계로 취급된다.
현대 분자생물학의 정보적 측면들은 이제 유전자 염기 서열과 유전자 경로들이 진화생물학뿐 아니라
세포생물학과 의학을 이해하기 위한 토대를 형성하는 식으로 두드러진다.
8장과 9장에서 테렌스 디컨(Terrence Deacon)과 베른드 올라프 퀴페르스(Bernd-Olaf Kuppers)는
열역학적(볼츠만) 과정들과 진화론적(다윈주의적) 과정들을 통해서 정보의 중요한 의미론적 층위들이
어떻게 창발할 수 있었는지에 관한 두 개의 독자적인 자연주의적 견해를 제시한다.
두 설명 모두 생물학적 정보가 지도적일뿐 아니라 수용자를 관심의 중심에 두는 '가치 있는' 또는 '유의
미한' 정보와도 관련이 있다고 주장한다.
그렇지만 언제나 유의미한 정보는 기저에 놓인 '정보 잠재력'으로 서술될 수 있는 더 광범위한 정보 상태
들의 집합의 부분집합이다.
이것을 배경으로 삼고서, 디컨은 맥락적 정보―즉, 그가 '부재하는 실재들'이라는 관념의 견지에서 서술
하는 지시 능력과 의미 능력―의 창발에 관한 자연주의적 이론을 제시한다.
그는 정보란 항상 통계학적 정보 잠재력에 상대적이라는 섀넌-볼츠만 견해를 자체의 실제 환경 속에서
현실적으로 유기체에 대해 작동하는 것에 대한 다윈주의적 강조와 결합시킴으로써 이것을 해낸다.
그 다음에 10장에서 야스페르 호프마이어(Jesper Hoffmeyer)는 유전학의 포괄적인 역할을 의문시하고,
오히려 세포중심적 견해의 중요성을 선택하는 생물기호학적 제안을 제시한다.
마지막으로, 11장에서 홈즈 롤스톤(Holmes Rolston)은 타자들에 대한 정보에 근거한 관심의 창발에
관한 자연사를 제시한다.
진화는 악명 높게도 '이기적인' 과정이지만, 결국 그것은 이타주의를 드러내고 다른 존재자들에 대한
관심을 나타내는 체계들을 생성한다.
감각 지각의 증대와 포유류 뇌의 하향식 능력으로 자연의 윤리적 차원이 진화적 풍경에 등장한다.
세포중심적 견해가 반드시 자기중심적 견해인 것은 아니다.
과학에 기반을 둔 장들이 전체적으로 물질 세계에 있어서 정보의 근본적인 역할에 관한 수용된 정합적인
새로운 견해에 해당한다고 주장하는 것을 잘못일 것이다.
많은 과학자들이 물질과 에너지를 자연의 주요한 통화로 계속 간주하며, 정보는 부차적, 또는 파생적
관념으로 여긴다.
그리고 뉴턴의 역학 법칙들에 대한 정보적 등가물이 없는 것도 참이다.
사실상 우리는, 질량과 에너지에 대해서 그램과 줄(joule)이라는 단위들이 있듯이, 정보에 대한 단순하고
명확한 물리적 척도조차도 없다.
그러므로 비판가들은, 우리가 정보기술에 관해 말할 때, 또는 무엇이든 '조직화된' 것에 관해 말할 때,
또는 이런저런 식으로 우리에게 '이해시킬' 때, '정보'가 다목적의 줄임말로서 사용하는 멋진 은유에 지나
지 않는다고 추정할 것이다.
정보 이론의 불완전한 특질은 이 책의 필자들이 사용한 '정보'라는 술어의 여러가지 별개의 의미들에 의해
예시된다.
예를 들면, 정보적 큐비트로서의 양자 사건들(로이드)은 섀넌 유형의 디지털 정보 또는 그저 유형으로
서의 정보(아리스토텔레스적 정보)와 매우 다른 특성을 지니며, 선행하는 것들은 아무것도 의미 있는
정보(의미론적 정보)라는 창발적 개념을 대체로 해명할 수 없다.
그렇지만, 주제의 잠정적인 특질에도 불구하고, 과학적으로 정통한 존재론에 있어서 정보에 중요한 역할
을 부여하는 것에 대한 두 가지 이유가 제시될 수 있다.
주요 핵심은 정보가 우리 세계에 인과적 차이―우리가 인간의 행위주체성에 관해 생각할 때 즉각적으로
명백한 것―을 만들어낸다는 점이다.
그런데 양자 층위에서도 정보가 중요하다.
파동함수는 어떤 양자계에 관해 알려져 있는 전부를 요약한 것이다.
관찰 행위가 이루어질 때, 그 요약된 지식은 변하고, 파동함수도 변하며, 그래서 그 계의 이어지는 양자
진화도 변한다.
게다가, 예를 들면, 물리적 공명 현상에서 또는 DNA 염기 서열 같은 생물학적 체계들에서 보듯이, 정보적
구조들도 물질적 집합체들에서 부인할 수 없는 인과적 역할을 수행한다.
결국 유전자란 분자 체계가 일을 수행하기 위한 암호화된 지령들의 집합 외에 무엇이겠는가?
그 어떤 진화론도 DNA 염기 서열의 지도적 역할 및 다른 위상학적 구조들에 주목하지 않은 채 설명적
기능을 발휘할 수 없다.
그런데 공명 현상을 주목하지 않은 채 다리도 마천루도 성공적으로 건설될 수 없으며, 그래서 가장 낮은
양자 실재의 층위에서 정보적 사건들이 본질적인 것과 꼭 마찬가지로 정보적 구조들도 물리적 실재의
역사적 전개를 위한 추동력으로서 본질적이다.
질량, 에너지, 그리고 정보라는 환원 불가능한 삼자에 기반을 둔 물질 세계에 관한 철학적 시각들은
철학과 신학에 관한 부분의 기고문들에서 논의된다.
12장에서 생물학자이자 신학자인 고(故) 아더 피코크(Arthur Peacocke)는 복잡계 과학에 기반을 둔
창발론적 일원론이 물질 세계의 균일성뿐 아니라 진화의 나중 단계들에서 발생하는 독특한 층위들에
대해서도 어떻게 민감해야 하는지에 관한 자신의 통합적 견해를 제시한다.
그러므로 피코크의 신학적 종합은 자연주의와 창발론을 범재신론적 신 개념―즉, 신이 자연 세계 전체
이상의 것일지라도 신은 내부로부터 자연 세계에 스며들어 있다는 생각―과 결합시킨다.
따라서 피코크의 종교적 견해는 그가 EPN(창발론적 일원론-범재신론-자연주의)이라고 부르는 것의
지평 안에서 전개된다.
13장과 14장에서 철학적 신학자 키스 워드(Keith Ward)와 존 F. 호트(John F. Haught)는 신을 자체적
으로 전개되는 세계에 대한 정보원으로 이해하기 위한 새로운 방식들을 탐색한다.
워드는 그것이 없다면 세계의 법칙성과 그것의 내재적 가치의 결합을 설명할 수 없게 될, 자신이 최고의
정보적 우주 원리라고 부르는 것을 지지하는 변론을 전개한다.
수학적으로 가능한 모든 상태들의 집합에 덧붙여 우리가 거주하는 현실 세계에 우선권을 부여하는 선택
적 가치 원리를 포함함으로써 현실적 우주의 구성을 위한 그런 정보적 코드는 논리적으로 물질적 배치
들을 선행한다.
워드는, 특히 주어진 자연 법칙들이 선(善)과 고유한 가치 같은 성질들을 위한 공간을 제공하는 것으로
간주될 수 있다면, 일차적 존재론적 실재가 신과 동일시될 수 있다고 시사한다.
호트는 정보란 중복성(너무 많은 질서)과 노이즈(너무 많은 우연성) 사이의 면도날 길을 걸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바로 이런 질서와 참신성의 절묘한 혼합이 우주를 단순한 물리적 체계에서 정보 처리의 서사로 변형시
킨다.
모든 '신 언어'는 비유적으로 간주되어야 한다는 점을 상기시키는 한편, 그는 전체 우주적 과정에서 작동
하는 정보 원리로서의 신 개념이 우주의 끝에 존재하는 설계자 신이라는 관념보다 훨씬 더 풍부하다고
주장한다.
자연 전체의 논리적 공간(워드)과 진화적 전개(호트)를 강조하는 한편, 둘 다 세계를 변형시키는 능력을
갖춘 신성한 실재와 조화를 이루는, 또는 심지어 암시하는, 현대과학의 자연에 대한 설명에 기댄다.
그러므로 과학에 기반을 둔 자연주의는 여전히 자연이라는 소세계와 대세계 전역 사이의 구분을 허용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15장과 16장에서 닐스 헨릭 그레게르센과 마이클 웰커(Michael Welker)는 이 책에 제시된
물질과 정보에 대한 새로운 과학적 시각들이 성경적 전통들의 중요한 계보들에 대한 재해석에 참신한
추동력을 부과한다고 주장한다.
그레게르센은 '살이 되는 신의 말씀'(요한 복음 1:14)이라는 신약 성서 개념이 어떻게 우주의 근본적인
조직 원리로서의 고대 스토아학파적 로고스 관념과 구조적으로 유사하며, 그리고 플라톤적 성향으로
미숙하게 해석되지 말아야 한다는 점을 보여준다.
신의 말씀이 물질 세계와 동연적이라는 요한 복음의 견해는 물질과 정보에 관한 현재의 개념들의 맥락―
여기서는 질서와 차이의 공존도 강조된다―에서 유지될 것이고 더욱이 해명될 것이다.
양자 정보에서 의미 정보에 이르는 네 가지 유형의 정보에 관한 유형학이 제시된다.
마지막 에세이에서 웰커는 학제간 논의들(과학, 철학, 그리고 신학 사이의)이 더 일반적인 형이상학적
제안들과 흔히 특수자들에 더 주의를 기울이는 더 구체적인 의미론적 우주들 사이에서 움직일 수 있어야
한다고 넌즈시 말한다.
한 가지 예는 영속하지 않는 '살'과 신성한 에너지로 가득차 있는 특정한 '육체들'의 가능성에 대한 바울의
구분이다.
또한 그런 구분들은 더 일반화된 형식들의 형이상학에서 무시당하는 물질적 공존의 사회적 차원들을 포착
할 수 있을 것이다.
바울에 따르면, 성령은 인간들의 영적인 육체들을 채우며, 그리고 신의 새로운 창조에서 변형될 때 그들을
소통하게 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이 책에서 제시된 에세이 선집이 과학, 철학, 그리고 신학 사이의 대화에 새로운 장을 열기를 희망
한다.
폴 데이비스 & 닐스 그레게르센
<정보와 실재의 본성: 물리학에서 형이상학까지(Information and the Nature of Reality: From Phyiscs
to Metaphysics)>(2010)의 서론을 옮김.